[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얼룩진 네트워크: 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
1984년 5월 30일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오후 6시 30분경 '마누엘 부엔디아'는 사무실을 나와 차를 타고자 주차장으로 향한다. 그가 차에 거의 도달했을 때쯤, 검은색 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쓴 키 큰 남자가 뒤에서 다가와 총을 쏜다. 네 발을 맞은 부엔디아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날도 권총을 지니고 있었지만 불시의 습격을 막을 순 없었다.
부엔디아가 살해당할 당시, 부엔디아의 동료를 비롯해 몇몇 목격자가 암살자의 얼굴을 봤다. 또한 부엔디아가 살해당한 현장은 신문에 실려 멕시코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송출된다. 매우 큰 사건이었기 때문인데, 살해당한 '마누엘 부엔디아'는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언론인이었다. 그는 멕시코시티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신문이자 가장 많이 읽히는 신문인 <엑셀시오르>에서 일하면서, 'Red Privada'라는 칼럼으로 정치·경제·사회·외교 분야 전반에서 행해지는 정부 및 집행 기관의 부패와 비리를 가감없이 폭로해 왔던 것이다.
하여, 그는 엄청난 명성과 인기를 얻은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싫어했고 심지어 살해 협박을 당연한 듯 받았다. 혹시 모를 실질적 위협에 대비해 항상 권총을 소지하고 다녔다는 게 이해된다. 목숨을 내놓고 진짜 '정의'를 위해 나아간 저널리스트,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영화 <얼룩진 네트워크: 어느 저널리스트의 죽음>은 마누엘 부엔디아의 삶과 1960~80년대 멕시코의 정황을 들여다본다.
멕시코 언론인, 마누엘 부엔디아 살인 사건
작품의 외형을 간단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마누엘 부엔디아, 그의 생전 모습과 육성을 들을 자료는 물론 남아 있지만 그의 글을 생동감 있게 읽어 줄 내레이션이 필요하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배우 '다니엘 히메네스 카초'가 내레이션에 참여해 무게감을 더했다. 더해서, 68회 베를린 영화제 각본상에 빛나는 <무세오>의 각본가 '마누엘 알칼라'가 연출을 맡았고 2020년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는 여기에 없다> 제작자 '헤라르도 가티카'가 제작을 맡았다.
각종 폭력에 의해 구금당하고 살해당하는 언론인을 기리고 또 알리기 위해 1993년 유네스코의 추천을 받아 유엔이 재정한 '세계 언론자유의 날', 매년 5월 3일이다. 언론인 암살의 상징과도 같은 '마누엘 부엔디아 암살 사건'이 어언 35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언론인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거니와, 한두 명이 아닌 수십 명 이상에서 백 명 이상이 매년 살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막강한 권력일까, 위험한 의무일까.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른 걸까.
마누엘 부엔디아는 신학교를 나온 뒤 멕시코의 대표적 보수 정당 공식 잡지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래 가지 않아 관심을 잃고는 범죄 전문 신문 'La Prensa'에 들어갔다. 그는 그 신문을 완전히 탈바꿈시키는 수완을 발휘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었던 신문의 색깔을 정보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1970년 들어 멕시코시티의 언론 및 홍보 책임자로 임명된 부엔디아, 같은 해 6월에 자행된 학생 시위대 학살 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권력자들의 잘못되고 부조리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CIA, 연방보안국, 마약 카르텔 네트워크
1950~60년대 멕시코는 당시 여타 나라들과는 다르게 검열 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권력과 언론은 긴밀하게 얽혀 있었으니, 정부는 '피프사'라는 용지 회사로 언론을 지배하고 통제한 것이다. 모든 신문의 인쇄 용지를 피프사가 생산했으니 말이다. 또한, 미국의 FBI를 그대로 본따서 만든 '연방보안국'으로 모든 사람의 모든 걸 알고자 했다. 물론 그중엔 언론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시기에 언론인이 된 부엔디아의 앞날엔 결코 평탄하지 않은 길이 펼쳐질 것은 명약관화했다.
부엔디아가 정보를 얻고 글을 쓰는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매일같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촘촘히 확인하고 기록하고 스크랩해서는 나열하고 재취합해 '진짜'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진짜 정보는 이미 수없이 나와 널리 퍼져 있는데 누구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가 그런 식으로 살해당하기 전까지 파헤쳤던 의혹 또는 진실은 누구나 알 만하지만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던 또는 못했던 사건 아닌 사건이다.
그는 미국의 CIA와 멕시코의 연방보안국 그리고 마약 카르텔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이런 주장도 했다, CIA와 연방보안국 고위층이 모두 마약왕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진짜 권력과 돈은 모두 마약에서 나온다고 말이다. 충격 아닌 충격인데, 수많은 콘텐츠를 통해 익히 널리 알려진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엔디아는 보다 자세하게 깊숙이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다. 이후 머지않아 마치 짠 것처럼 살해당했다.
수사 종결, 진짜 범인, 국가 범죄
1980년대 미국을 관통하는 수많은 키워드 중에 '레이건'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미국 제40대 대통령으로 '신자유주의' 체제의 수호신이자 미국 보수층과 공화당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 그의 재임 시절, 최악의 폐착이라 일컬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른바 '이란-콘트라 사건'이다. 마누엘 부엔디아는 이 사건의 핵심에 가닿았었던 바, 미국 CIA가 적국 이란에 몰래 무기를 팔아 벌어들인 돈으로 니카라과의 우익 성향 반군인 콘트라를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마약이 미국으로 흘러들었다는 것이었다.
부엔디아는 또 하나의 마약 사건의 진실에 가닿았었는데, 멕시코 과달라하라 카르텔이 운영하는 대규모 농장을 단속하려다가 보복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진 키키 카마레나가 사실은 CIA와 연방보안국과 마약 카르텔의 결합 고리를 눈치채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전직 마약단속국 요원의 말에 따르면, 키키는 과달라하라 카르텔의 보복이 아닌 CIA와 연방보안국과 마약 카르텔이라는 훨씬 더 크고 국제적인 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거다. 키키의 일정표에 부엔디아의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는 게 또 하나의 핵심 포인트다.
부엔디아가 그렇게 비명횡사한 후 연방보안국에서 거의 모든 자료를 가져가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5년 동안 깜깜무소식이었다. 그러던 1989년, 대통령이 바뀌고 부엔디아 살인 사건을 재수사하기 시작한다. 빠르게, 그렇지만 미심쩍게 지목된 이는 부엔디아의 친구이자 당시 연방보안국 요원이었던 '소리야 페레스'다. 부엔디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저격범은 사망한 걸로 드러났고, 저격범을 오토바이에 태워선 암살현장으로 간 연방보안국 요원 한 명이 함께 지목된다. 그렇게 두 명을 법정에 세워 감옥으로 보내며 수사는 종결된다.
공식적으로 마누엘 부엔디아 살인 사건은 미해결이 아닌 종결이다. 실행자와 핵심 관계자가 정식 절차를 받아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을 받은 당사자들도 그렇고 부엔디아 측 사람들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모두가 한 입으로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미국' CIA와 '멕시코' 연방보안국의 합작, '국가범죄' 말이다.
그렇다, 이 작품은 단순히 마누엘 부엔디아의 삶과 죽음을 들여다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의 삶과 죽음을 통해 CIA, 연방보안국, 마약 카르텔이 따로 또 같이 했던 짓과 했을 만한 짓을 들여다보려는 의도인 것이다. 하여, 채 2시간이 되지 않는 영화보다 최소 4시간 넘는 시리즈로 이것저것 여기저기를 요리조리 더 깊고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만큼 흥미진진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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