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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정점에서 나락까지 떨어진 대중문화의 아이콘 <존 드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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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존 드로리안: 디트로이트의 왕>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존 드로리안> 포스터. ⓒ넷플릭스

 

1985년에 선보여 3편까지 크게 히트 친 로버트 저메스키 감독의 <백 투 더 퓨쳐> 시리즈를 통해 'DMC-12'는 신화의 존재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우뚝선다. 영화 속 괴짜 발명가이자 과학자 브라운 박사가 DMC-12를 타임머신으로 개조해 과거로 또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난 것이다. 아는 사람만 알았던 자동차 모델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자동차 모델로의 급변화이다.

 

하지만, 1985년 당시 DMC-12는 이미 망한 회사의 제품이었다. '존 드로리안'이 1975년에 설립해 채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1982년에 망해 버린 회사 'DMC(DeLorean Motor Company)' 말이다. 회사는 사라지고 그 회사의 유일무이한 제품만 영원히 남게 된, 안타까우면서도 아이러니한 경우라 하겠다. 뭔가 기막힌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냄새가 풍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존 드로리안: 디트로이트의 왕>은 DMC-12를 내놓은 DMC의 설립자 존 드로리안의 파란만장했던 1980년대를 중심으로 그의 흥망성쇠를 짧고 굵게 들여다본다. 그는 어떻게 성공가도를 달렸고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졌는가.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를 이야기들이다.

 

여러 면에서 전설적인 인물인 존 드로리안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들이 이미 다수 존재하는 바, 이 작품은 드로리안의 1981년 전성기 당시를 담은 다큐멘터리 <드로리안>의 미공개 촬영본을 담은 게 큰 차별점으로 다가온다. 그의 진짜 모습의 또 다른 면을 40년 만에 볼 수 있는 것이다.

 

존 드로리안의 성공가도, 화려한 시절

 

존 드로리안, 1950년대 중반 'GM(General Motors)'에 입사해 유례없는 승승장구로 전설의 반열에 진입했다. 그는 그 유명한 '폰티악 GTO'의 책임자 중 하나였는데, 이 차로 말할 것 같으면 2도어 스포츠카를 지칭하는 '머슬카' 전쟁을 시작한 모델로 잘 알려져 있다. 1950~60년대 당시 미국은 전후 호황에 힘입어 중산층이 대폭 확대되며 마이 카 시대를 열었고 이들이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량 스포츠카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다.

 

폰티악의 대대적인 성공에 힘입어 1965년 젊은 나이에 GM 역사상 최연소 부서장이 된 드로리안, 이후 1973년 GM을 박차고 나올 때까지 GM의 대표 주력 브랜드인 쉐보레를 총책임지기도 했고 초거대 그룹 GM의 자동차 및 트럭 생산 부문을 총책임지기도 했다. 그가 GM의 꼭대기에 오를 게 기정사실화되던 그때 그는 GM을 나온 것이다. 항간에서는 해고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GM 시절부터 화려하기 그지없는 삶의 모습으로 조명을 받았는데, 당대 최고의 모델 중 하나이자 세 번째 부인이기도 한 크리스티나 페라리와 함께 정재계는 물론 연예계 유명인사들을 두루두루 만나고 다녔다. 잘생긴 외모, 중후한 분위기, 출중한 능력, 아름다운 부인까지 그야말로 모든 걸 갖춘 그에게 관심 갖지 않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걸 즐겼다. 그는 관심종자였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오직 성공만을 바라보며, 호화로운 사치 생활

 

드로리안은 루마니아 출신으로 뉴욕 아닌 디트로이트를 택한 이민노동자 부모님을 뒀는데, 알코올중독으로 술에 빠져 지냈던 아버지의 학대와 폭력으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행히 어머니의 결단으로 이혼 후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학대와 한부모 그리고 가난한 경험은 그를 빙퉁그러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슨 수를 쓰든 성공만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큰 돈을 버는 것에만 시선이 가 있던 그는, 대학교 시절에 이미 큰 사기를 쳐서 감옥에 갈 위기에 쳐 했었지만 교수의 도움으로 면할 수 있었다. 능력은 출중했지만 옳고 그름의 판단 개념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GM에서 또 DMC에서 출중한 능력을 발휘해 전설적인 업적을 남기지만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게, 다 이유가 있는 것일 테다.

 

1973년 DMC를 차리고 DMC-12 개발에 착수하면서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푸에르토리코에 공장을 지으려다가 급선회해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공장을 짓게 되는 드로리안, 일자리가 급했던 영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벨파스트는 개신교와 가톨릭교의 갈등이 전쟁으로까지 번져 도시 전체가 전시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드로리안은 공장을 짓고 자동차를 생산하고 판매하기까지 강행한다.

 

그 과정에서, DMC-12 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 왔던 빌 콜린스를 내치고 로터스 창업자 콜린 채프먼과 손을 잡기도 하고 개발이 늦어지는데 돈은 없으니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기도 한다. 또한, 품을 팔아 여기저기 투자자를 찾고 영국 정부에 계속해서 추가 투자금을 요청하면서도 호화롭기 그지없는 생활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사치를 부린 그였다.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영원한 대중문화 아이콘

 

1982년, 존 드로리안은 느닷없이 코카인 밀매 혐의로 체포된다. FBI의 함정 수사로 걸린 것이었는데, 그는 한 번에 떼돈을 벌기 위해 마약 브로커와 거래를 한 것이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조치의 일환이었을지 모르나,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그의 무개념이 불러온 비극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무혐의로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 사이 회사는 망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또, 탈세와 횡령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지만 역시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의 사치, 마약, 탈세, 횡령 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가 설립하고 주도한 회사의 파산엔 그의 망상과 다름없는 얼토당토한 비전이 절대적인 몫을 했다. 드로리안은 1970~80년대 세계 아니 역사상 최강대국의 지위에 있던 미국이 낳은 괴물이었을까. 아니다, 그는 시대를 선도해 왔고 앞으로도 시대를 선도할 것이라고 자신을 맹신했다. 전쟁 한가운데에 있던 도시에 공장을 지었고, 석유 파동 등으로 경기 침체가 찾아왔음에도 시장에 진출했다. 독창성 어린 기술적 실험이 주를 이룬 파격의 궁극체 하나만 믿고 말이다.

 

그는 당연히 자신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더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쫄딱 망하고 말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는 끝까지, 투자자에게도 언론에게도 허울 좋아 보이는 현재 상황 그리고 장밋빛만 비출 것 같은 비전만 내보인다. 그는 혼동한 게 아니라 부정적이고 암울한 한쪽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 버린 게 아니었을까. 그가 최소한 현재 상황을 솔직히 털어놨으면 인생이 그렇게까지 처참해지진 않았을지 모르겠다 싶다.

 

DMC-12는 2020년대인 지금도 여전히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단순히 클래식 자동차 중 하나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동차로 신화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비록 문제가 아주 많은 자동차였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게, DMC-12을 개발한 존 드로리안은 화려했던 시절을 뒤로 한 채 몰락하고 파산해 쓸쓸한 말년을 맞이하며 세상을 등졌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인재의 아쉬운 퇴장이고 한편으론 당연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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