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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축구계 원조 판타지스타의 '인간'적 일대기 <로베르토 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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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 포스터. ⓒ넷플릭스

 

1994년 제15회 미국 월드컵은 개인적으로도 축구계에 있어서도 의미와 이야깃거리가 많은 대회다.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최초의 월드컵인데, 스페인전 홍명보 선수의 중거리골과 서정원 선수의 동점골 그리고 독일전 클린스만 선수의 골이 기억난다. 그런가 하면, 당시 우승후보 중 하나였던 콜롬비아의 센터백 안드레스 에스코바르가 약체 미국 상대의 2차전에서 자책골을 범하곤 홀로 귀국했다가 총 12발을 맞고 피살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축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본선은 아니지만 지역 예선에선 아프리카의 유력한 본선 진출 후보였던 잠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세네갈 원정길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로 선수단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스타이자 레전드이자 전설인 마라도나가 약물검사 결과 양성 반응을 보여 추방당하기도 했고, 멕시코와 불가리아의 16강전에선 골대가 무너지기도 했다. 이처럼 수많은 일이 점령한 1994년 월드컵에서, 그럼에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일어났다. 

 

당대 세계 최고의 스타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의 결승전 승부차기 실축 사건 말이다. 이 사건은 이후 바조를 영원히 따라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그를 수식하는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 앞엔 언제나 '비운'이라는 말이 붙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베르토 바조: 말총머리의 판타지스타>는 '비운'도 빼고 '말총머리'도 빼고 '판타지스타'도 빼 버린 '로베르토 바조'라는 인간을 조명하려 한다. 그에게서 축구를 빼면 뭐가 남겠냐만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로 그를 들여다보려는 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로베르토 바조의 일대기

 

로비라는 애칭으로 불린 로베르토 바조는 세리아C 리그 비첸차에서 데뷔해 좋은 활약을 한 후 당대 세리아A 리그 피오렌티나로 전격 이적한다. 그의 나이 불과 18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덤덤하고 무심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반응에 로비는 실망한다. 엎친 데 덮친 격, 피오렌티나로 이적하기 직전 경기 도중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는다. 어린 나이에 선수 생명에 아주 지장이 큰 부상을 입은 로비, 우연히 찾은 레코드 가게 주인의 권유로 불교에 심취하게 된다. 

 

불교로 마음을 다스리고 재활훈련으로 몸을 다스린 로비는 다시금 화려하게 비상해 1993년엔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에게 부여되는 발롱도르상과 FIFA 올해의 선수상을 독식한다. 그는 1990년 유벤투스로 적을 옮겨 이후 에이스로 팀을 이끌었고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그리고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막을 올린 것이다.

 

로비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다. 하지만 조별리그에서 부진을 면치 못했고 탈락 위기에서 겨우 토너먼트로 진출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로비의 해결사 본능이 깨어났고, 팀을 결승까지 올려놓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야말로 구국의 영웅. 하지만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전후반과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승부를 내지 못했고, 역사적인 승부차기에서 그만 실축을 해 버리고 만다. 구국의 영웅은 한순간 역적으로 추락하고 마는데... 

 

전설적 레전드의 불운한 면면

 

그동안 자주 접하지 못했지만 넷플릭스에선 자주 볼 수 있는 장르가 축구 다큐멘터리다. 그동안 선덜랜드, 유벤투스, 보카 주니어스 등의 팀과 펠레, 마라도나, 그리즈만, 아넬카 등의 선수를 다뤘다. 다큐멘터리 아닌 드라마로 축구의 근본을 들여다보는 시도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넷플릭스의 축구 사랑, 와중에 '로베르토 바조'가 다큐멘터리 아닌 영화로 찾아왔다. 

 

영화 <로베르토 바조>는 바조를 잘 아는 이와 바조를 잘 알지 못하는 이를 두루두루 아우르려고 또 배려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바조를 잘 알고 또 축구를 잘 아는 이라면, 바조의 축구만을 주구장창 너무 자세하게 들여다보려 하는 의도를 못마땅히 여길 수 있다. 그는 분명 '판타지스타'라는 화려한 별명이 붙은 '레전설'이지만, 판타지스타가 그로부터 시작해 그에게서 끝나 버린 한 시대의 반짝 빛난 개념이기에 그 자체로 부정적인 느낌이 들거니와 주지했다시피 그의 축구 인생이 상당히 불운한 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여 영화는 비록 부제에 '판타지스타'를 붙였지만 영화 내에선 누구도 꺼내지 않는다. 다만, '로베르토 바조'라는 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판타스틱한 실력과 화려한 재간과 눈부신 외모를 앞세워 전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했지만, 선수 생활 내내 괴롭힌 부상의 악령을 끝내 완전히 떨쳐 내지 못하고 좌절을 이어갔던 초라하고 힘 없는 인간 말이다. 그가 얼마나 힘들고 또 자신을 믿지 못했으면 모두의 반대를 무릎쓰고 불교에 귀의했겠는가. 십분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판타지스타' 아닌 '인간'의 모습들

 

판타지스타라는 수식어에 철저히 가려졌던 인간 로베르토 바조를, 영화는 꽤나 철저하고 자세하게 보여 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름 아닌 아버지와 불교의 존재, 아버지는 8남매를 힘겹게 키우며 누구 하나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는 와중에 큰일을 해 나가는 로비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반면 불교는 로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또 앞세워 생각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다큐멘터리 아닌 영화이기에 100퍼센트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들은 아닐 수 있겠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매끄럽게 그의 인생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었지 않나 싶다. 환희와 영광 그리고 고뇌와 좌절의 순간들이 오가고 받아들이는 건 누구나 공감하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다. 유명인의 전기 영화에서 뜻밖의 정보나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 아닌 감정과 감성을 받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전기 영화 아닌 전기 다큐멘터리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정도가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로 일깨운 건 비단 로베르토 바조라는 인간뿐만 아니다. 유명인이라는 수식어에 가려진 한 인간의 진짜 모습, 최고와 최하를 오가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자 전하고 싶은 점은, 로베르토 바조의 선수로서의 '위대함'이 영화에선 거의 그려지지 않기에 영화를 보기 전이나 본 후에라도 한 번쯤 검색을 통해 대략적이나마 숙지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영화가 전하려는 바를 더 정확하고 깊게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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