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무라이의 시대>
역사는 평화와 혼란의 반복이다, 통일과 분열의 반복이기도 하다. 평화 시대에는 문(文)이 득세하지만, 역설적으로 평화 시대를 이룩하기 위해선 절대적인 무(武)가 필요할 테다. 당대에는 당연히 평화의 시대가 좋겠지만, 시간이 흘러 역사를 들여다볼 땐 혼란의 시대가 재밌기 마련이다. 수많은 호걸이 온갖 전략으로 머리를 써 가며 서로 죽고 죽이는, 인간 본성을 자극하는 짓들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 보면, 거의 모든 나라에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혼란과 분열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중 단연 가장 유명한 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중 '전국시대'일 것이다. 기원전 1046년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지속된 주나라 시대의 후반부 격인 '동주' 시대의 후반부에 해당되는데, '전국칠웅'으로 묘사되는 일곱 나라가 온갖 권모술수와 피 튀기는 전쟁으로 수많은 소국을 흡수하며 살아남아 시대를 이어갔다. 전국(戰國)시대, 말 그대로 나라들끼리 전쟁을 일으키는 게 상시적인 시대를 말한다.
이 전국시대의 타이틀을 그대로 물려받은(?) 때가 또 한 번 존재한다. 바로 일본으로, 15세기 중반에 시작되어 17세기 초반에 비로소 종결된 '전국시대'를 말한다. 중국의 전국시대 못지 않게 친숙하며, 일면 무(武)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대였기에 마니아들이 많다. 하여, 일본 전국시대는 중국 전국시대보다 삼국시대에 대치 혹은 버금간다고 할 수 있겠다.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사무라이의 시대>는 일본의 전국시대(이하, '전국시대')를 다룬다. 다만, 통상적으로 전국시대의 시작이라 하면 1467년의 '오닌의 난'을 말하는데 이 작품은 1551년 오와리의 다이묘 오다 노부히데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그 유명한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 말이다. 그의 죽음 후 둘째 아들 노부나가는 우여곡절 끝에 가문의 일인자가 되었다. 물론, 가문 내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겪어야 했다. 이 시대, 주군을 내치는 하극상과 가족을 죽이는 행위는 비일비재했다.
오다 노부나가 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더불어 일명 '전국 3영걸'이라 불리며 일본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다. 100년 가까이 지속되던 전국시대를 종결시키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건 다분히 외적으로 쉽게 드러난 모습이고, 그는 당시 그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파격을 앞세워 중세였던 일본에 근세를 안겼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문제는, 이 작품에서 노부나가의 그와 같은 면모는 일절 찾아보기 힘들었다.
작품에는 노부나가의 파천황적인 생애만 부각된다. 아무리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제작했다기로서니, 이 정도로 얼렁뚱땅 편파적으로 생애를 보여 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여하튼, 노부나가는 파죽지세로 전국을 통일하다시피 했고 1568년에 교토에 입성해 1573년엔 교토에서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쫓아내 버린다. 무로마치 시대가 확실히 막을 내리고, 전국시대도 사실상 막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휘하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두고 동맹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두며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인생의 끝은 가히 좋지 않았다. '혼노지의 변'으로 명명된, 최측근의 반란으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때는 1582년, 노부나가는 서부 원정 중인 히데요시의 원군 요청에 최측근 아케치 미츠히데를 투입한다. 오래전부터 주군에 대한 불만이 쌓인 미츠히데는 돌연 노부나가 토벌을 꿰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당하고 만 노부나가, 이후 천하는 또 한 번의 혼란으로 접어드는 듯했다.
오다 노부나가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천하 통일을 목전에 두고 최측근에게 암살당한 오다 노부나가, 그 혼란을 완벽하게 다잡은 이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빠른 상황 판단에 이은 속전속결로 서쪽을 공략하던 군사를 교토로 돌려 미츠히데를 격파한다. 이후 오다 가문의 분열 와중을 수습하며 히데요시는 명실공히 새로운 천하인으로 정권을 수립한다. 훗날, 이때를 여전히 전국시대로 두기도 하지만 오다 정권과 더불어 '쇼쿠호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히데요시는 전국시대에서 찾아 보기 힘든 삶을 살아왔는데, 평민에서 시작해 똑똑한 머리와 탁월한 군사적 재능과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 등으로 노부나가의 오른팔 자리까지 올랐고 급기야 천하 통일 후 관백의 자리까지 올랐다. 천황을 대신하며 정무를 총괄하는 자리로, 일본 천하의 일인자 말이다. 그는 아마도 우리나라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일본인, 아니 외국인 중 하나일 텐데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통일 후, 평생 전쟁만 해 온 사무라이들의 힘을 분출할 방법을 찾다가 고안해 낸 비책이었다.
명나라를 치기로 결정한 히데요시는, 조선에게 길을 내 줄 것을 요청하는데 조선 왕이 거절하자 조선을 먼저 치기로 결정한다. 그러곤 주로 측근 다이묘들로 구성된 대군을 파병해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한다. 곽재우 등의 의병과 이순신을 위시한 수군의 활약으로 패퇴하고 마는 일본군, 평생 영민하게 살아온 히데요시 인생 후반부 최대·최악의 실책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임진왜란에 대해 거의 또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곽재우의 의병 활동이 잠시잠깐 그려질 뿐 이순신의 이름 석 자로 나오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조선인과 조선 복장과 조선 왕실을 말도 안 되게 그려 내 작품 자체에 대한 의구심까지 들게 만들었다.
여하튼, 1598년 히데요시에게도 죽음이 찾아온다. 노부나가처럼 불시에 죽음을 맞아 후대를 챙기지 못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챙겼다. 오른팔 격이자 오랜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필두로 '오대로' 섭정 체제를 수립해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보필하며 정무를 보게 한다. 서로의 힘이 비슷해 서로를 완벽하게 견제하는 균형 잡힌 체제였는데, 참으로 오랫동안 기회를 엿본 이에야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일본 천하는 안정기에 접어 들었지만, 일본 천하를 완전하게 지배할 이는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은 듯보였다.
전국 3영걸의 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기다림과 인내의 상징과도 같다. 오다 노부나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처럼 천하를 주무를 영향력을 행사해 본 적은커녕, 오다 노부나가와 전국시대 최강의 다이묘 다케다 신겐 사이에 껴서 이리저리 치이다가 노부나가의 동맹 자격이지만 사실상 휘하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 없는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엔 그런 관계를 자연스레 히데요시와 맺게 되었고 말이다. 평생을 치이고 수그리고 기다리다가,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이에야스는 공공연히 세력들을 규합하고 천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준비에 들어간다. 이에 히데요시 살아생전 '오봉행' 즉 가장 막강한 실무 담당자 중 한 명이었던 이시다 미츠나리가 나서서 오대로의 나머지 세력을 주축으로 한 반대 세력을 규합한다. 이 두 세력, 동군과 서군은 1600년 세키가하라에서 맞붙는다. 서군 측이 우위를 점했지만, 이내 유력 다이묘들의 배신으로 급격히 무너진다. 사실상 이 전투 하나로 일본 천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가져가게 된 것이다. 비록, 1603년에 도쿠가와 막부를 세우고 1615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든 다이묘 세력과 '오사카 전투'를 치러야 했지만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세 인물 중 이에야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적다. 실제로도 가장 인기가 적고 앞선 두 인물보다 개인적인 능력치도 떨어진다. 일본이라는 건물을 부숴 버린 오다 노부나가와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터를 마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리드미컬하고 흥미로운 인물상과 인생에 비해, 앞서간 이들이 마련해 놓은 터 위에 건물을 올렸을 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물상과 인생은 상대적으로 재미도 없고 별 볼일 없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 대 개인으로 보아 '그렇게 살고 싶은' 인물은 이에야스가 아닐까 싶다.
제목 '사무라이의 시대'가 이 작품의 내용이나 메시지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일본에 사무라이가 출현한 건 헤이안 시대로 10세기쯤이라고 하는데,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 이전에도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일본에 이른바, '사무라이의 시대'가 도래한 만큼 아무리 전국시대가 사무라이의 전성기라고 해도 온전히 '사무라이의 시대'라고 말할 순 없다고 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사무라이의 정치·사회·문화적 변화와 속성을 깊숙이 들여다보지도 않았고 말이다.
차라리 '전국 3영걸의 시대'처럼 구미가 당기는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역사 다큐멘터리치고 고증 면에서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면에서나 전달력 면에서나 가히 형편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이니, 재밌는 척이라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개인적으로 아주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본 전국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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