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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소년에서 소녀로, 그리고 발레리나로의 험한 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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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걸>


영화 <걸> 포스터. ⓒ리틀빅픽처스


벨기에 영화 시장, 자국 영화 점유율은 터무니 없이 낮은 반면 할리우드 영화와 프랑스 영화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강국 프랑스 옆에 붙어 있기에 어쩔 수 없기도 할 텐데, 특히 벨기에의 3개 행정 구역 중 하나인 남부의 왈롱 지역이 여러 모로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왔고 받고 있다. 그곳에서 그 유명한 '다르덴 형제'가 태어나 활동했다. 하지만 정작 벨기에 영화는 왈롱이 아닌 북부의 플란데런이 중심이라 할 만하다. 왈롱이 프랑스 영화와의 경계가 모호한 것과 다르게 플란데런은 벨기에 영화의 정체성을 나름대로 확립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벨기에 영화와 감독이 우리나라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경우는 많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다르덴 형제와 그의 영화들이 제일 알려졌을 테고, <제8요일>로 유명한 자코 반도르말 감독이 눈에 띈다. 2010년대 들어 마이클 R. 로스컴이 세계 유수 영화제에 좋은 영화를 내놓으며 우리나라에도 개봉을 이어왔고, 그의 영화들에 빠짐 없이 출현했거니와 할리우드에 안착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도 있다. 


그런가 하면, 2018년 혜성같이 등장해 전 세계 수십 개의 영화제에서 이름을 알렸을 뿐만 아니라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되어 4관왕(황금카메라상, 국제비평가협회상, 퀴어 황금종려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루카스 돈트 감독의 <걸>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화제를 뿌린 그때 말이다. 우리나라엔 3년 여만인 2021년 새해에 개봉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여성이 되고자 하는 라라


16세 '소녀' 라라는 남들보단 뒤늦게 발레리나가 되고자 한다. 기본적인 동작도 힘들 테지만, 피나는 연습을 할 준비는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는 성호르몬 억제제를 맞으며 여성이 되고자 한다. 비록 몸은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2년여 동안 여러 모로 힘든 과정이 되겠지만, 가족의 전폭적인 물리적·정신적 지지가 있어 든든하다. 


라라는 발레 기숙 학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자 8주간의 수습 기간을 보낸다. 그녀는 성기를 티나지 않게 하고자 강력한 하얀색 천테이프로 그 부분을 동여맸다. 활동할 때는 배변활동을 아예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저어하게 된다. 몸무게가 계속 빠지니 몸은 허약해지고 중요한 수술에 차질이 생길지 모를 지경에 다다른다. 의사와 아빠는 그녀의 행동에 제지를 가하지만, 그녀로선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성기가 못마땅한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그녀가 여자탈의실을 이용하는 걸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지 조사하기도 한다. 


이미 여성인 라라는, 여성의 몸을 갖고자 그리고 발레리나가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이어간다. 가족들은 응원해 주고, 의사는 용기를 불어넣어 주며, 학교에서는 최대한 존중해 주려 한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모든 게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아니, 모든 건 아닐 것이다. 외부요인이 아닌 내부요인일 텐데, 꾸준히 호르몬 주사를 맞아도 큰 진척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남성의 몸 말이다. 하루빨리 수술할 날이 오길 기다리지만, 수술이 잘 되지 않을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16살, 모든 게 혼란스러울 나이에 당면한 큰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세계적인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


<걸>은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꿔 결국 이뤄 내고야 말았던 세계적인 발레리나 '노라 몽세쿠흐'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성장 영화이다. 처음엔 자신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걸 꺼려해 거절했지만, 고심 끝에 전폭적인 지지와 참여로 돌아선 노라 몽세쿠흐. 영화가 그녀의 이야기를 100% 담고 있진 않겠지만 그녀가 인생을 통해 자연스레 전하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에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세상에 맞선 소수자 영웅의 투쟁과 역정과 성공을 담고 있지 않다. 그저 평범한 한 사춘기 여자아이의 남들보다 힘든 성장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남들보다 늦게 발레리나로서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고, 남들과는 다르게 남성의 몸을 태어났지만 여성의 몸을 가지고 싶어한다. 젠더와 섹스가 일치하는 시스젠더가 아닌, 젠더와 섹스가 일치하지 않는 트렌스젠더이기 때문이다. 


젠더 담론의 한가운데에 있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미 트랜스젠더를 이룬 와중에 아직 트랜스섹스를 이뤄내지 못한 상태의 안타까움과 함께 선천적으로 태어난 남성의 몸에서 여성의 몸으로 바꾸는 과정이 얼마나 고난할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가 하면, 라라가 여성으로서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으로 왜 머리를 기르고 조신하게 행동하고 스커트 또는 짧은 반바지를 입으며 액세서리를 달고 화장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가기도 한다. 물론, 여성이라는 점과 상관없이 그런 것들을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또 모티브로 삼은 실존인물 노라 몽세쿠흐가 좋아한 모습일 수 있겠지만 여성이라며 보여 주는 모습에의 선택이 너무 평면적이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한편 입체적으로 하려 했다면 어디까지 어떤 식으로 보여 줘야 했을까 싶기도 하다. 


10대 중반의 지독한 성장담


영화는 대신, 사춘기에 당면한 10대 중반의 어리지만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라라의 지독한 성장담을 한 축으로 형성해 보여 준다. 대다수 남들과는 다른, 그래서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역경을 몸소 체험하며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여자이지만 내 몸은 여전히 남자이고,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이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으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고 내가 잘하고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남자의 몸에 적합한 '발레리노'가 아닌 여자의 몸에 적합한 '발레니나'가 되기로 결심한 '남자의 몸'을 가진 '여자' 라라, 발끝으로 서는 기술인 푸앵트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어 고전을 면치 못해 말그대로 발에 피나는 연습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얼굴이 찡그려지고 가슴은 짓이겨지는 듯하지만 응원하게 된다. 물론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훨씬 더 노력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테지만 그녀를 더 응원하게 되는 건, 그녀가 자신의 선택을 믿고 후회하지 않으며 나아가려 하는 태도 덕분이다. 비록 자못 흔들리긴 하지만 말이다. 


누구나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순간순간 작은 선택을 하고, 결정적일 때 큰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름 없는 건, 수많은 선택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는 것이다. 라라는 되돌리기 힘든 큰 선택을 했고, 후회 없이 책임을 지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또 다른 선택들을 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가 남의 것처럼 느껴지고 보여지지 않는다. 비록 현상 자체는 대다수 나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지만, 본질은 대다수 나와 완전히 동일선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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