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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삶'이라는 거대한 벽, 풀리지 않는 문제에서 깨내 볼 영화 <소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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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소울>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2010년대 들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그도 그럴 것이 <카 2> <카 3> <몬스터 대학교> <굿 다이노> 등이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동안 픽사가 쌓아올린 업적을 향한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내놓았기 때문일 텐데, 픽사라는 회사의 흔들리는 내부 사정도 무시하진 못할 테다. 픽사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디즈니의 위기 탈출에 절대적인 공을 세웠던 존 라세터가 성 추문으로 쫓겨났거니와, 그에 앞서 임금 스캔들에 연류되어 홍역을 치른 픽사였다. 


2015년 <인사이드 아웃>과 2017년 <코코>가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픽사에게 다시 명성을 안겼고, 2018년 <인크레더블 2>와 2019년 <토이스토리 4>가 나란히 속편으로 월드와이드 10억 달러를 넘기는 수익을 안겼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다시 찾아온 픽사는 <소울>을 선사했다. 디즈니는 북미에서 디즈니+로 공개할 수밖에 없었고, 아직 디즈니+가 들어오지 않은 국내에서는 극장 개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존 라세터가 연출한 <토이스토리>의 원안을 만들었고, 픽사의 황금라인이라고 해도 무방한 <몬스터 주식회사> <업> <인사이드 아웃>을 연출한 피트 닥터 감독의 최신작인 만큼 100%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상상력'을 전할까? 그 상상력엔 어떤 현실이 있을까? 픽사로 한정해, 최초로 사람을 주인공으로 했던 작품이 <인크레더블>(2004)이었고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했던 작품이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이었다면 <소울>(2020)은 최초로 흑인을 주인공을 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8년의 차가 있는 바, 2028년에는 어떤 '픽사 최초'가 선보일지 궁금하다.


살고 싶은 영혼 조, 살기 싫은 영혼 22호


뉴욕시의 한 중학교에서 시간제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재즈 음악가 조 가드너, 그에게 좋지만 좋지만은 않은 소식이 날아든다. 학교에서 그를 정식 교사로 채용하겠다는 것, 하지만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 교사로 평생 일하긴 싫다. 물론 그의 가족은 축하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 유명 재즈 음악가인 도로시 윌리엄스의 밴드에서 연락이 온다. 그가 가르쳤던 아이가 커서 드러머로 있는 밴드였는데, 중학교 교사라는 타이틀에 처음엔 실망했던 도로시가 그의 피아노 실력을 보고는 바로 함께하자고 한다. 


꿈에나 그렸던 제안을 받으니 날아갈 것 같은 기분, 기분에 정신이 팔려 위험천만한 뉴욕 한복판을 아무 생각 없이 거닐다가, 맨홀에 빠져 버린다. 알 수 없는 몸의 형태로 알 수 없는 공간에서 깨어난 조, 이내 그는 자신이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한순간 죽음으로 가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조는, 도망치다가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게 된다. 몇 번이고 지구로 가고자 해 보지만 실패하고, '유 세미나'라는 곳으로 향한다. 새로운 영혼들이 지구에서 태어날 요건을 충족하도록 교육시키는 곳이었다. 


얼떨결에 노벨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의 영혼의 이름표를 갖게 된 조는, 새로운 영혼의 멘토가 되어 그로 하여금 지구로 갈 마지막 하나의 열정 '불꽃'을 채우게 한 다음 '지구 통행증'을 가로 채 지구로 가려는 수작을 꾸민다. 그런데 하필 그가 멘토로 함께 하게 된 이는, 22호로서 지난 수천 년간 지구로 가길 거부한 영혼이었다. 함께 이런저런 구역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은 둘은, 지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구역에서 역시 지구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이들을 만나 우연히 코마 상태에 있던 조와 누군가의 고양이로 빙의된다. 문제는, 조의 영혼이 고양이로 빙의되고 22호가 조로 빙의된 것이었다. 과연, 조는 도로시의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 22호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거지?


<소울>은 비주얼, 메시지, 음악에 상상력, 유머, 열린 태도 등 그야말로 영상 매체 중 애니메이션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에 도달한 면모를 과시한다. 러닝타임은 평균치인 2시간에 턱 없이 부족한 1시간 40분밖에 되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건 많다 못해 넘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성인'을 위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수준이 되었고 '아이'들이 보기엔 상당히 어렵지 않나 싶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메시지'일 텐데, 이 영화가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사항 중에 하필 메시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니 더욱 어렵게 비춘다. 


재즈를 삶의 이유라며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자기확신과 실력을 가진 조 가드너는, 하필 '꿈'을 이룬 순간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다. 모두가 삶의 안정 대신 꿈이라는 삶의 이유를 찾아 나서라고 하는데, 조는 이 얼마나 안성맞춤인가.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앞에 살고 싶은 이유를 모르는 영혼이 나타났고 함께 우여곡절을 겪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조로서는, 얼토당토 말도 되지 않는 삶의 이유인 것이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보며, '아직 세상을 잘 모르네, 제대로 된 꿈을 꿔 봐'라고 할 것이다. 


이 영화는 통념과 시대정신을 바꿀 만한 인사이트로 지금 세대와 다가올 세대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맞는 거지'라는 생각은 더 이상 통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거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자신이 찾은 해답으로 살아가면 될 테다. 조 가드너로선 오직 재즈에만 몰두, 몰입, 과몰입하는 것만이 삶의 이유일 필요는 없고, 22호 영혼으로선 일상의 아무것도 아닐 순간순간이 아름답게 보이며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다만, 영화는 일련의 유려한 서사로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편하게 삶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보여 주고 있지는 못하다. 영화를 크게 나눈다고 했을 때, 챕터가 바뀌는 부분이 그리 매끄럽진 않다. 우연에 기댄 게 자주 보인다. 대신 태어나기 전의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저세상 상상력과 뉴욕의 길거리를 함께 관통하고 있는 것 같은 현실 상상력이 아우러져, 애니메이션이어야만 할 수 있는 포스를 뿜어 낸다. 상당히 어렵지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부여 한 것이리라.


누군가에겐 '인생 영화'


제목 '소울'엔 두 가지 중의적 의미가 있을 테다. 영혼을 뜻하는 '소울'과 재즈 음악가를 포함한 음악가가 지녀야 할 정신과 애정과 신념을 일컬는 '소울'이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두 배경, 조 가드너와 22호가 영혼으로서 존재하는 '태어나기 전 세상'과 조 가드너와 22호의 영혼이 각각 고양이와 조 가드너로 빙의한 '뉴욕시'의 현실에 맞닿아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에서의 '소울'은 또 다른 무엇에 다다른다. 주지한, 영혼으로서의 소울이 지향하는 게 음악가의 정신, 애정, 신념으로서의 소울에 있다면 영화는 나아가 '지금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나로서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토대를 먼저 세우고 난 뒤 소울로서의 소울로 향하면 좋지 않을까 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다. 


하여,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삶에 직접적으로 실천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말이다. 그동안 교육받고 경험하고 실천하며 헤쳐 왔던 삶의 이중, 삼중의 역설을 뒤로하고 한 발 더 나아가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열린 태도'야말로 이 영화를 볼 때 핵심 중 핵심 키워드라 할 만하다. 아무 생각 말고 영화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반드시 다시 한 번 보며 정립된 생각으로 대응해 보면 좋을 테다. 살아오면서 느꼈던 '뭔가 하나 빠진 느낌'을 채울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소울'이라는 단어의 한자어 '疏鬱'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 본다. '소통할 소' '답답할 울'의 두 글자로, '답답한 마음을 풀어헤친다'는 의미를 갖는다. <소울>을 다 보고 나면, 누군가는 반드시 답답한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나는 어떻게?' '나는 왜?'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둥실둥실 떠다니는 물음들을 어느 정도 해소하게 해 주는 힘이 있는 애니메이션이었다. 해소해 주진 못해도, 공감과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너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냐, 우리 모두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 하지. 내 생각을 한 번 들어 볼래?' 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겐 '인생 영화'로 등극할 만하다. 삶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면 언제든 꺼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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