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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대한민국을 주무르는 두 거대 인맥 네트워크 집단의 실체 <족벌 두 신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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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족벌 두 신문 이야기>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2020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신문에게 뜻깊은 해였다.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와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동아일보>의 창간 100주년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두 신문은 2019년 한국ABC협회 일간신문 유료부수 통계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가장 오래된 일간 신문 2, 3위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전 KBS 사장 정연주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으로 역임할 당시 칼럼을 통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두고 '조중동 조폭언론'이라는 단어를 만들며 한데 묶였다. 여러모로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들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실체다. 각각 '1등 신문'과 '민족정론지'를 자처하는 이들은, 1985년의 어느 날 느닷없이 싸운다. <동아일보>가 창간을 기념하는 기사에서 본인들은 민족지, <조선일보>는 친일 기회주의 신문이라며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이후 두 신문의 격론과 논쟁이 계속될 듯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리고 1988년 일명 '5공 청문회'라 불리는 국회 청문회, 국회 언론청문회에 <조선일보>의 방우영 사장과 <동아일보>의 김상만 명예회장이 불려 나왔다. 그 자리에서 방우영은 '친일'이라는 단어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 뉴스타파함께센터가 기획·제작하고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가 공동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족벌 두 신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 챕터로 진행되는 바, '앞잡이' '밤의 대통령' '악의 축'이다. 두 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큰 세력을 가진 가문의 일족' 즉, '족벌'로 규정하고 그들의 100년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친일의 최전선에서


결단코 '친일'을 하지 않았다는 사주들의 말에 전면으로 반박하면서, 첫 챕터 '앞잡이'가 시작된다. 일제가 제국주의 침략 전쟁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 새해 벽두 <조선일보>는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1면에 대문짝만 하게 게재한다. 이에 질세라 이듬해 새해 벽두 <동아일보>도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1면 정면에 역시 대문짝만 하게 배치한다. 이때부터 두 신문은 1940년 폐간 때까지 치열하게 히로히토 부부 사진을 올린다. 그런가 하면, 일제의 조선인 대상 육군 지원병 제도를 옹호하며 총알받이로 사라져 간 조선의 청년들을 영웅으로 치켜 세웠다. 


오래된 신화 <조선일보> <동아일보> 강제폐간의 진실은 무엇일까. 두 신문이 사이좋게 1940년에 폐간되고 1945년 광복 후 복간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왜 일제는 자신들을 떠받들기 급급한 두 신문을 찍지 못하게 한 걸까? 이 작품의 첫 번째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문신문통제에 관해 조선총독부가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협의한 최초 경과 개요서를 찾아냈다. 일단, 일방적으로 강제폐간이 된 게 아니라 '협의'를 했다는 게 중요할 것이고 이어 문건에 의하면 두 신문은 폐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조선총독부 측에 막대한 보상금을 받아 냈다는 게 중요하다. 조선총독부로서는 같은 논조의 조선어 신문을 세 개나 둘 필요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조선어 신문 <매일신보>였다. 


물론, 두 신문의 1937년 이전 논조는 이후와 사뭇 다르다. <조선일보>의 경우, 방응모가 사들이기 전에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들이 사장을 맡으며 다양한 성향이 복합적으로 오갈 때도 있었다. <동아일보>의 경우,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문제는, 오랜 역사에 이런저런 연유로 옳은 일과 옳지 못한 일을 하고 난 후 제대로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은 데 있겠다. 1988년 국회 언론청문회 당시 두 신문 사주의 억지 주장에 치를 떨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군부 독재를 찬양하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두 신문의 여정은 광복 후 비로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밤의 대통령' 편에서 자세히 엿볼 수 있는 바, 박정희 군부와 전두환 군부를 지나오며 일제히 정권 찬양에 열을 올린 것이다. 박정희의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지칭하며 합리화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할 때마다 독재 권력을 지지하고 찬양한다. 1972년 유신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여기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신문의 의식 있는 기자들은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1974년, 심각해져 가는 사태를 더 이상 두고볼 수 없었던 <동아일보> 기자들은 언론인으로 그대로 남아 있고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로 하고 출판노조 동아일보 지부를 결성한다. 그 힘으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밀고 나갔고 기자가 기자답게 취재하고 기자답게 보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광고 탄압도 모자라, 자유언론실천협회 핵심 인원들을 해고시켰다. 그런가 하면, <조선일보> 기자들도 사 측의 일방적인 유신독재 찬양 기사에 반박하다가 해고당하기도 했다. 사 측에 반발해 제작을 거부하고 농성하던 수십 명의 기자들 또한 쫓겨났다.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독재 정권 찬양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달았다. 그 결과로 예상되는 바, <동아일보>의 매출액은 3배 이상 올랐고 <조선일보>의 매출액은 6배 가까이 올랐다. 매출액 기준으로 <조선일보>가 드디어 '1등 신문'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두 신문이 찬양해 마지 않았던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이룩한 1987년 6월 민주항쟁 후 형성된 자유로운 언론 환경에서 두 신문은 훨씬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게 되었다. 두 신문은 향후 어디로 향할까,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직접 핵심 권력을 형성하게 된다. 


스스로 권력이 되다


1970~80년대 군부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찬양했던 대표 주류 언론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비주류 친서민 노무현 정권에 대대적인 선전포고 후 부정의 융단폭격을 날리기 시작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려오면, "지난날의 기득권 세력들은 수구언론과 결탁하여 개혁을 반대하고 진보를 가로막"은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해 왔던 수구언론들은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하여 민주 세력을 흔들고 수구의 가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눈여겨 봐야 할 건 수구언론들이 그들 스스로 권력으로 등장했다는 말일 테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두 신문, 아니 두 '족벌'의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은 가히 방대한 인맥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정계, 재계, 관계의 최상위층을 아우르는 혼맥과 전 세계 언론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주 세습으로 누구도 손 쓰기 힘들 정도로 공고히 하고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차근차근 쌓고 있는 인맥 네트워크는, 비록 문화 환경의 급변으로 두 신문의 영향력과 경제력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게 떨어진 후에도 그들의 뒤를 튼튼하게 받쳐 줄 것이다. 


'악의 축'이라는 제목의 세 번째 챕터야말로 <족벌 두 신문 이야기>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핵심 메시지가 꽉 들어차 있다. 동시에, 재밌기도 하고 얻은 것도 많다. 앞서 두 챕터의 이야기들, 즉 일제 강점기와 독재 정권 하에서 두 신문이 행했던 짓들은 이미 많이 들어서 알고 있기도 했다. 반면, 마지막 챕터의 인맥 네트워크 이야기는 속속들이 생전 처음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었다. 두 신문이 대단해 보이기보다 새삼 무서움과 두려움 그리고 허탈함이 앞섰다. 권력이란 게 어떻게든 한 번 잡으면 참으로 오랫동안 아니,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작품은, 2시간 30분이 훌쩍 넘는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바 뒷부분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이자 핵심 메시지가 배치된 것 같아 작품성으로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두 신문의 치부만을 끊임없이 내 보여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피곤하기도 했다. 또한, 역시 두 신문이 주인공이었기에 이를테면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겨레신문> 창간 같은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재밌었고 속 시원했다. 사실만을 전하면서도 블랙 코미디 요소가 다분했던 내레이션이 웃음까지 피식피식 나오게 했다. 진지한 와중에 유머와 풍자를 잊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그동안의 행적이라면, 그들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1970년대 두 신문의 기자들이 사주의 올바르지 않은 짓에 반발했듯, 두 신문에도 진정한 희망의 빛이 다시 한 번 비출 날이 올까. 이 작품을 다 보고 나니, 그 희망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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