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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이제 독립하다! <웰컴 투 X-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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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웰컴 투 X-월드>


영화 <웰컴 투 X-월드> 포스터. ⓒ시네마 달



세상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한다.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부부를 중심으로 친족 관계에 있는 이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일컫는데, 혼인, 혈연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그러던 게 점차 다양해져, 천륜이라 부르는 혈연이 아닌 관계의 집단이나 구성원들도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대표적인 게 반려동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족에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여기 매우 전통적인 가족 개념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사례가 있다. 오히려 그래서,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가족에의 또 다른 다양성과 포용성을 나타내는 것도 같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와 딸이라는 보고도 믿기 힘든 구성원을 가진 가족. 78세의 시아버지 한흥만, 51세의 며느리 최미경, 23세의 딸 한태의. 최미경은 12년 전 남편을 먼저 보냈지만, 이후로도 계속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다. 


한태의 감독이 제작, 연출, 촬영, 편집, 주연 등 영화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도맡아 한 다큐멘터리 <웰컴 투 X-월드>, 믿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답답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 가족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무슨 말을 할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뻔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그렇지 않다. 참고로, 주인공은 이 가족이 아니라 최미경이라는 걸 미리 말해 둔다. 


남편 없이 시아버지 모시고 12년


학창시절 전교회장까지 도맡아 했던, 똑똑하고 리더십 넘치고 끼도 다분한 한태의. 하지만 대학 진학에 어려움을 겪으며 삼수를 했고 결국 엄마의 반대를 무릎쓰고 숭실대 영상과에 진학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두고 기대주에서 웬수가 되었다고 표현한다. 최미경이 시아버지 사이에서만 관계에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게 아니라, 딸과의 사이에서도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하는 것일 테다. 그런가 하면, 아내로서 12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도 있을 것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딸과 엄마로서의 최미경, 결혼한 많은 여성이 참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채 살아갈 텐데 이분의 경우 보다 훨씬 극대화되었다고 하겠다. 남편이 세상에 없은 지 12년이 지났건만, 남편과의 관계로 생긴 관계들을 저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니 말이다. 그것도 남편 없이 12년이고, 남편과 함께였던 세월까지 합치면 18년이라고 한다. 2013년에 호주로 건너간 한태의의 3살 터울 오빠도 함께 살았다고 하니, 최미경이라는 분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한태의는 그런 엄마를 보고 비혼을 결심, 선언하기에 이른다. '나를 위해 살겠다'는 밀레니얼 세대다운 당찬 포부인 동시에, 평생을 지근 거리에서 두고 본 엄마의 행태(?)에 반감이 설 수밖에 없는 합리적이면서 당연한 선택인 듯보인다. 그런 딸과 엄마는 서로를 가까이하지 못할 것 같은데, 세상 어느 모녀보다 친근해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관계인 것 같다. 답답하고 또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은 이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가장 좋은 부분이다. 


그녀는 왜 그렇게 살아왔을까?


어느 날, 한흥만은 최미경과 한태의에게 통보를 한다. 따로 살자고 말이다.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여전히 잘 맞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집은 한흥만의 것이었으니, 최미경과 한태의는 곧 나가야 했다. 최미경으로선 독립한다는 설렘이나 두려움보다 앞서는 건, 한흥만을 향한 서운함. 그 오랜 세월 동안 어떻게 모셔 왔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한태의는 최미경과 함께 집을 알아보며, 엄마에 대해서도 알아보려 한다. 그녀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남편 없이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걸까? 스스로 몇 개의 가설을 세워 본다. 첫 번째로는, 돈이 없어서? 아닌 걸로 판명난다. 1억 정도의 돈을 마련할 수 있는 걸로 보아, 어떻게든 둘이 살 집을 구할 순 있었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아파트가 좋아서? 그렇다기 보다 주변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듯하다. 세 번째로는, 변화를 싫어해서? 성격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네 번째로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려고? 글쎄...


최미경의 생각과 말을 통해 가장 근접한 가설을 세워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머나먼 전북 익산에서 열리는 큰고모의 큰딸의 아들 결혼식을 보러 모녀가 함께 다녀온 후 최미경의 소감을 통해서 말이다. 최미경의 집안과 분위기가 다른, 화기애애하고 웃긴 분위기. 형식적이지 않은 진심으로, 아는 척하고 반가워하고 말 걸고 손 잡아 주고 좋아하는 친척들. 최미경은 말한다, 몸은 힘든데 마음은 너무 편하고 좋다. 최미경으로선, 단순히 시아버지를 모시고자 했던 게 아니라 시댁 가족들이 너무 좋고 그들과 함께하는 관계가 그립고 그 시간들이 좋았던 게 아닐까. 


며느리, 아내, 엄마에서 독립하자


최미경과 한태의의 독립은, 한흥만과 따로 살게 되었다는 형식적인 겉모양의 그것만은 아니다. 작품은 그렇게 말하고, 또 보여 주려 한다. 최미경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엄마의 역할에서 독립하는 것 말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면 하루라도 빨리 벗어날 걸 강력하게 추천하며 그동안 도대체 왜 그랬냐고 따지게 되지만, 내부의 시선에서 보면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다단한 감정이 소용돌이치지 않을까 싶다. 극과 극의 그리고 모순적인 감정들이 부딪히다 보니 진짜 감정을 찾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한태의은 외부의 시선과 내부의 시선을 이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한데,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이해하기 힘들고 또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응원하게 되는 과정. 그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텐데, 영화의 끝자락에서 행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보여 준다. 최미경은 독립하고선, 딸의 친구들을 초대하고 강아지를 가족으로 들이고 자전거도 배우고 소개팅도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서 조그마한 카페를 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꿈도 꾼다. 


제목 <웰컴 투 X-월드>에서 'X'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왜 'X-월드'일까. 생각할수록 많은 게 연상된다. '틀렸다'는 의미라면, 그동안의 틀려먹은 삶을 뒤로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걸 응원한다는 것일 테다. '이전의'라는 의미라면, 독립하기 전의 삶을 뒤돌아본다는 것일 테다. '미지수'라는 의미라면, 영화에선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독립 후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것 그리고 평생 지근 거리에서 봐 왔지만 엄마의 진짜 생각과 모습을 알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테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맨 마지막 것이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다. 하여, <웰컴 투 X-월드>는 최미경의 최미경에 의한 최미경을 위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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