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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올곧은 신념을 입체적 에피소드에 담아낸 수작 로드무비 <낙엽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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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낙엽귀근>


영화 <낙엽귀근> 포스터. ⓒ블루필름웍스



공사판에서 4년 동안 함께 일하던 친구 리우콴유가 운 없게도 술을 마시다가 죽자 시체를 짊어지고 그의 살아생전 고향으로 향하는 중년 남자 라오자오, 사장을 비롯 주위 사람들은 당연히 화장할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친구와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다. 꼭 고향 땅에 묻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수중엔 500위안뿐 사장이 리우콴유에게 준 5000위안은 건드릴 수 없다. 그런가 하면, 그들이 일하는 '선전'에서 리우콴유의 고향 '충칭'까지는 장장 1400km나 되는 대장정의 거리이다. 


라오자오와 리우콴유는 앞으로 벌어질 수많은 우여곡절을 시작한다. 버스에 타서 잘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나타난 강도 무리의 습격을 받아 돈을 몽땅 빼앗길 위기에 처하지만, 죽은 친구를 향한 의리에 감동한 강도 두목이 외려 다른 승객들한테 빼앗은 돈을 모두 그에게 주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 때문에 버스에서 쫓겨나고 만 그들이다. 시체와 함께 버스를 탈 수 없다는 승객들의 당연한 반발 때문에. 여정의 시작부터 인생의 쓴맛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앞으로의 여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허름한 숙소에서 500위안을 도둑맞고는 시름에 빠져 있다가 까칠하게 굴던 트럭 기사에게 차를 얻어탈 수 있었다. 버스에서의 일과 반대되는 상황이 아닌가. 힘들어 보였던 트럭 기사의 사연을 들어 보니 실연을 겪었던 것, 라오자오는 인생 선배로 적절한 조언을 해 주어 트럭 기사로 하여금 새로운 목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돈도 절도 없는 라오자오는 친구 시체와 함께 그의 살아생전 고향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진심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여정이다. 


이 영화가 뒤늦게 개봉하게 된 이유들


영화 <낙엽귀근>은, 지난 2018년 국내에 <영혼의 순례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티베트 순례단의 라싸 순례 여정 다큐멘터리로 중국 역대 다큐멘터리 순위 3위에 드는 위업을 달성한 장양 감독의 2007년 작이다. <영혼의 순례길>의 '여정'이 국내에 소소하지만 작지 않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판단 하에, <낙엽귀근>을 늦게나마 소개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 본다. 


장양 감독의 많은 영화가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타기도 했던 바 이 영화도 그러했는데,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을 탔고 벤쿠버와 도쿄와 뉴욕과 하와이와 홍콩 영화제 등에 초청되어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었다. '낙엽귀근'이라는 말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본래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의미한다.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변용이 가능한 바, 영화가 개봉한 날(2020.9.24)을 미루어볼 때 추석 명절을 겨냥한 게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추측을 해 본다. 특히, 올해 추석은 그 어느 때와 다르게 '코로나 19'로 정부에서 특별방역기간을 정했고 왠만하면 고향을 찾지 말라고 당부했기로서니 영화 속 죽은 친구 고향으로의 여정이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었을 테다. 문제는, 영화관을 찾지 말라는 당부 또한 함께 내려 왔다는 것...


직선적 신념을 곡선적 이야기에 담다


각설하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단연 한 사람이 눈에 띈다. 원톱 주인공이라고 할 만한 '라오자오', 그리고 그를 연기한 '자오번산'. 영화를 통해 거의 접한 적이 없는 듯한 그는, 찾아 보니 '중국의 찰리 채플린'이자 '중국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불리는 유명한 대희극인이라고 한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성공해 회사를 설립하고는 자가용 비행기까지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 1970년대 연극배우로 데뷔해 TV와 영화까지 종횡무진 활약했고 활약하고 있는, 자타공인 '중국 NO.1 연예인'이다. 


<낙엽귀근>은 자오번산 즉, 라오자오의 원맨쇼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를 잘 모르는 우리에겐 신기한 것이, 영화가 로드무비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오히려 그들이 훨씬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많이 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그들과의 짧은 에피소드들에 인생의 모든 것, '희로애락'과 '신념'이 담겨 있는 것도 신기하다. 메시지를 던지는 방식이 직접적이지 않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알 수 있게 했다. 이를테면, '의리' '신의' '진심' 등의 직선적 신념을 희로애락 듬뿍 담긴 곡선적 이야기에 담은 것이다. 


에피소드들 하나하나 버릴 게 없다. 버리기는커녕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것들이다. 특히 기억에 남을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꾸역꾸역 시체를 짊어지고 갈 때까지 가서는 길가에 전복된 크나큰 트럭의 타이어를 빌려서 편안하게(?) 길을 가다가 급경사길에서 그만 놓치고 만다. 타이어 속 시체는 낭떠러지 격의 숲속으로 떨어지고, 라오자오는 그를 포기하려던 찰나 자신도 함께 죽기를 결심한다. 하지만 자살에 실패하고 눈을 떠 보니 어느 가족이 구해 준 게 아닌가. 그들은 라오자오에게 밥도 챙겨 주고 라오자오의 사연을 듣고는 멀리까지 차를 태워 주기도 한다. 


라오자오의 여정에 감정을 이입하다


영화를 보다 보니, 라오자오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게 아니라 라오자오와 길 위에서 만난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어땠을까. 라오자오의 사연을 믿고 그와 시체를 태워줬을까, 라오자오의 허름한 외모와 '시체'라는 말만 듣고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그의 신념과 의리는 당연히 박수를 보낼 만하지만, 오히려 그를 도와준 이들의 행동에 보다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영화로라도 대할 수 있어 참으로 진귀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롤러코스터 타듯 위로 아래로 쉼 없이 오르내리는 라오자오의 여정을 보고 있노라면 당연히 누구나의 '인생'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와 닿는 건 인생이 아닌 그의 '여정'이다.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과 어느 순간에도 잃지 않는 여유와 끈기 그리고 인생 여정에서 꼭 필요할 임기응변을 두루두루 갖춘 라오자오의 여행 같은 여정이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다. '나도 모든 걸 뒤로 한 채 팔도강산을 누비는 여정을 떠나고 싶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라오자오에게 가닿는다.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당사자적 입장이 아닌 제3자적 입장이지만 라오자오처럼 살면 좋겠다 싶게 만든다. 그의 성격이 부럽다, 모든 이와 잘 어울리고 모든 상황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재밌겠다 싶다. 그렇지만, 외려 이 영화는 라오자오를 주체 아닌 수단으로 생각하고 썼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캐릭터가 아닌가. 그런데, 영화를 보는 입장에선 인생 여정의 희로애락보다 '라오자오'라는 캐릭터에 주목하게 된다. 어찌 되었든, 잘 만든 영화임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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