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 포스터. ⓒ넷플릭스
고백하건대 '블랙핑크'를 잘 모른다. 어느 정도냐 하면, '아! 이 노래가 블랙핑크 거였어?' 하고 놀라는 정도. 그들의 노래야 하도 많이 들어 봤으니 모르기 힘들 테지만, 그 노래가 그들의 노래인지 모를 때가 많거니와 그들을 구성하는 다양한 모양새를 전혀 모르는 것이다. 4명으로 구성된 걸그룹이라는 건 알지만 각각의 멤버들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와중에 블랙핑크를 조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가 공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통해 여성 아티스트 다큐멘터리를 접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가장 최근 공개되었던 <미스 아메리카나>였다.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로, 거대한 명성과 인기와 이름 뒤에 가려진 진짜 테일러 스위프트를 알려 준 소중한 콘텐츠. 그 전에도 넷플릭스는 여성 아티스트로는 레이디 가가와 비욘세 다큐멘터리를 공개했는데, 모두 꽤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네 번째가 바로 블랙핑크인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재미없지 않다, 굉장히 재미있다. 그리고 재미있어야 한다. 하여, 재미없을 것 같은 다큐는 애초에 보지도 않는다. 솔직히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는 내외적으로 그리 관심 가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하지만, 봐야 할 이유가 있었다. 난 블랙핑크를 잘 몰랐지만 알고 싶었다. 모두 방탄소년단을 입에 올리지만, 걸그룹으로서 블랙핑크는 방탄소년단에 필적할 유일한 아티스트라 하지 않는가. 시대를 일정 정도 이끌고 또 책임지고 있는 대상을 기본적으로나마 알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블랙핑크의 독보적인 기록들
작품은 1시간 20여 분의 길지 않은 분량으로 블랙핑크의 데뷔(2016년 8월)에서 3년 후 월드 투어까지를 다룬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성공 가도의 스토리를 보여 줄 거라 예상되었는데, 실제로는 매우 아기자기했다. 포커스가 블랙핑크라는 그룹의 현재와 미래에 있지 않고 블랙핑크를 구성하는 4인 따로 또 같이의 과거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 말고는 '제5의 블랙핑크 멤버'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YG의 책임 프로듀서이자 블랙핑크 프로듀서 테디 정도가 나와 인터뷰할 뿐이다.
잠깐 블랙핑크의 영향력을 수치로 들여다본다. 지난 10월 2일 블랙핑크 첫 정규 앨범 'THE ALBUM'은 빌보드 200 차트 2위에 올랐고 그 덕분에 빌보드 아티스트 100에서 정상을 밟기도 했다. 또한 이 앨범은 KPOP 걸그룹 최초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지난 8월 28일 셀레나 고메즈와 함께 발매한 싱글 'Ice Cream'는 빌보드 핫 100 차트 13위에 올랐다. KPOP 걸그룹으로서 독보적인 기록이다. 또한 작년엔 KPOP 그룹 최초로 세계 3대 음악 축제 중 하나로 불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아츠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다.
그런가 하면, 블랙핑크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V LIVE와 스포티파이와 페이스북 팔로워 수는 모두 국내 탑 수준이다. 유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로 따지면, 10억 뷰 이상 기록한 곡이 3개에 이른다. 총 10개의 뮤직비디오가 있는데, 모두 1억 뷰 이상을 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는 걸그룹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핫한 걸그룹인 건 분명하다. 그런 그들의 지극히 소소한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이 작품인 것이다. 블랙핑크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교과서적인 다큐멘터리라고 할 수 있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의 다양한 문화 결합
테디가 말하길 모든 그룹에는 정체성을 결정짓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고 한다. 블랙핑크의 경우 다양한 문화의 결합으로 눈에 띄고 특별하다고 하는데, 4인의 멤버가 각각의 개성과 배경을 갖고 빛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유기적으로 보완하고 결합하는 모습에 있다고 하겠다. 제니, 리사, 지수, 로제가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니는 메인래퍼로 솔직한 매력을 가진 완벽주의자라고 한다. 그녀는 10살 때까지 서울에서 자랐다가 5년 동안 뉴질랜드 유학을 다녀와 연습생을 거쳐 데뷔했다. 제니의 눈에 태생 천재로 보인 이가 있었으니 리사다. 그녀는 메인댄서이자 리드래퍼로 발랄한 실행주의자라고 한다. 평소와 다르게 실행에 들어서면 무섭게 집중하는 타입이다. 태국인으로, 태국에서 자라 태국 현지 오디션을 통해 데뷔했다.
리더 없는 그룹인 블랙핑크의 맏언니이자 실질적인 리더 역할의 리드보컬 지수는 소탈함이 엿보인다. 비쥬얼 담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미모를 자랑하며, 데뷔 전에 TV 광고와 드라마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블랙핑크 하면 생각나는 독특하고 독보적인 음색을 담당하는 이는 메인보컬이자 리드댄서 로제다. 그녀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가서는 연습생이 된 16살 때부터 한국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외로움을 타고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타입이지만, 끊임없이 성실한 노력으로 헤쳐 나간다.
작년 연예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버닝썬 게이트'로 특히 YG 엔터테인먼트의 명성이 곤두박칠 쳤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열렬히 좋아라 했던 'YG 엔터테인먼트'라는 문화 공동체와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신뢰 또한 없어졌다시피 했다. 블랙핑크도 예외일 순 없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이 작품을 보니, 버닝썬 게이트와 YG를 떼 놓을 순 없겠지만 버닝썬 게이트와 블랙핑크는 떼 놓아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평범해서 오히려 특별한 다큐멘터리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라는 다큐멘터리 콘텐츠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이목을 끌 만한 화려한 편집도 없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사실을 건네려 하지도 않고, 모두가 알지만 애써 쉬쉬했던 진실의 뒷이야기를 파헤치려 하지도 않고, 역사의 길이남을 만한 성공의 뒷이야기를 치열하게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특별한 게 있다면 블랙핑크 그 자체다. 하여, 그들의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디서도 블랙핑크의 성공한 현재만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작품은 평범하기 그지 없지만 통속적이지 않고 별 게 없어 보이지만 특별하다. 블랙핑크 입장에서는 팬 아닌 이들에게도 다가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테고, 팬 입장에서는 블랙핑크가 편안하고 긍정적으로 보다 많은 이에게 가 닿을 수 있을 테며, 블랙핑크와 접점이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유명 연예인의 꾸미지 않은 일상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특별한 공감을 전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장면이다. 차량을 타고 어딘가로 이동 중인 멤버들이 "이제는 가냘픈 이미지의 노래도 해 보고 싶다"며 소소한 바람을 드러내고, 연습생 시절의 식당을 방문해서는 "우리가 마흔 넘어서도 춤을 출 수 있을까?"라며 미래에 대한 보통의 질문을 던진다. 특별한 이력을 쌓아 왔고 쌓고 있으며 쌓아갈 그녀들이지만, 우리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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