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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미미하지만 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연결을 찬란한 작화로 표현한 수작 <해수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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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해수의 아이>


영화 <해수의 아이> 포스터 ⓒ (주)영화사 오원



포구 마을에 사는 소녀 루카, 핸드볼 동아리에 속한 그녀는 기대하던 방학 첫날 훈련 도중 선배를 팔꿈치로 가격해 팀에서 제외된다. 사실, 선배가 먼저 그녀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지만... 선생님도 동료들도 그녀를 믿어 주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외로운 루카, 술캔이 수북한 집에 엄마가 있지만 그녀를 반겨 주지 못한다. 루카는 마음을 달래려 어릴적 추억이 깃든 도쿄의 수족관으로 향한다. 그곳엔 아빠도 있었다. 


수족관 관계자 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루카는 그곳에서 특별하고 신비한 바다 소년 우미(바다)를 만난다. 그는 필리핀 앞바다에서 발견되었는데, 당시 바닷속에서 듀공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그에겐 형 소라(하늘)도 있는데, 그들은 지금은 루카의 아빠가 일하는 수족관에서 임시로 지내고 있지만 해양학자 짐 그리고 그의 조수 앙글라드와 함께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루카와 우미 그리고 소라는 급속히 친해진다. 


한편, 바다의 축제가 다가오는 듯 운석이 떨어지고 거대 고래가 출현하는 것도 모자라 보기 힘든 심해어가 뭍으로 나와 떼죽음을 당하는 등 이상한 현상이 계속된다. 우미와 소라 또한 바다의 축제에 연관이 있는 듯,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보인다. 바다 소년 형제를 이용해 축제의 실체를 밝히고 메커니즘을 알고자 하는 과학자와 권력자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와중, 운석아을 품고 있던 소라는 루카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에게 운석을 전하고 사라진다. 우미와 함께 소라를 찾아나선 루카,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특별하고 신비한 경험을 만끽한다. 


'드림팀'이 모여 만든 수작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해수의 아이>는 <리틀 포레스트> 원작자로 유명한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또 다른 유명작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로 유명한 와타나베 아유무가 연출을 맡았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 음악을 전적으로 맡다시피 했던 20세기 일본 최고의 아티스트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주제곡을 맡기도 했다. 


여러 모로 '드림팀'의 면모를 보인 작품인데, 그에 걸맞게 큼지막한 상을 탔다. 일명 '일본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로 아트, 엔터테인먼트, 만화,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선정해 시상한다. 2000년대 들어 심사위원 추천작이 신설되었고 5년여 전부턴 신인상도 선정해 시상하고 있다. <해수의 아이>는 2009년 만화 부문 우수상을 탔고, 2019년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을 탔다. 애니메이션 부문 대상작 중 알 만한 작품으로는,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크레용 신짱>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정도가 있겠다. 


반면 박스오피스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후술하겠지만, 보는 이에 따라 모 아니면 도 정도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서 기대하는 난이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는커녕 어른이 보아도 결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이 보여 준 작화의 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애니메이션=신카이 마코토'였던 이유 중 하나가 빛을 적재적소에 이용한 작화였는데, <해수의 아이> 앞에선 명함을 내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


애니메이션 영화 <해수의 아이>를 제대로 보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원작 만화를 접해 스토리와 메시지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견해를 갖추고 영화를 보는 방법이 가장 좋을 텐데, 막바로 영화를 접하게 되면 스토리나 메시지나 대사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머리로 받아들이려 하지 말고 가슴으로 흘러가듯 받아들이되 최대한 아름다운 작화를 감상하는 데 집중하는 게 좋을 듯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으로 시작해 우주적인 이벤트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가는 이야기는,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이 주를 이룬다. 태곳적부터 반복되어 온 바다의 축제는 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 때마침 떨어진 운석이 '씨앗'이고 운석을 품은 소라가 루카를 '게스트'로 선택해 씨앗을 전한다. 그녀는 축제에 참여해 별의 탄생을 견인하는데, 몸 속에서 운석 씨앗을 깨워서는 우미에게 전한다. 우미는 별로 재탄생하여 세상 밖으로 나간다.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곳은 바닷속 거대 고래의 뱃속이다. 


한 번에 절대 이해하기 힘든 온갖 상징과 은유로 뒤섞인 대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나 '별의 탄생'이라는 거시적 측면 외에 외로웠던 사춘기 소녀 루카의 '성장'이라는 개인적 측면도 함께 보인다. 스스로를 하찮고 나약하고 우울하며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그녀였는데, 범우주적으로 가장 특별한 축제를 한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 함께했으니 이후 스스로를 '경이'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게 되었을 거라고 본다. 


또한 영화를 보는 우리들한테는 '우주=인간'이라는 공식을 여러 가지 측면과 대사로 전한다. 특별한 바다 소년 형제 소라와 우미가 별로 재탄생하는 것이나 한낱 어린 인간 소녀에 불과한 루카가 별의 탄생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우주의 탄생에 일조하는 한편 인간은 범접할 수 없는 대우주의 극히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우주의 일부분인 경이로운 존재 인간, 우주의 일부분일 뿐인 미미한 존재 인간.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방법


이 영화의 백미이자 압권인 아름답고 찬란한 작화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매순간 반짝이는 순간,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스토리, 별의 탄생을 통해 인간과 자연과 우주의 연결을 전하는 메시지를 사진을 찍은 듯 보이면서도 한편 만화적인 작화로 선보이려 하는 건 가히 신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도대체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가장 근접한 답을 보여 준 것이다. 작화가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영상 매체가 대중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는 둘 모두의 입맛까지 잡아야 하게 된 현대 어느 때 이후, 영상 매체는 가장 기본이 되는 '보이는 것' 못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생각하는 것은 스토리와 다름 아니겠다. 그럼에도, <해수의 아이>의 경우 스토리를 저멀리 보내 버리고 보이는 것에만 열중해도 충분하다는 걸 입증했다. 비록 스토리 또한 아름답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보는 진짜 방법, 즉 세 번째 방법은 두세 번 보면서 한 번은 작화를 감상하고 한 번은 스토리와 메시지에 집중하고 한 번은 모든 걸 아우르면서 감탄하는 것이겠다.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굳이 몇 번 돌려 보면서까지 이해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해한 만큼 머리와 가슴과 마음으로 많은 걸 받을 수 있을 거라 단언한다. 감성과 이성의 면면을 두루두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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