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피폐한 삶을 살았던 할리우드 스타 주디 갈란드를 세련되게 추모하다 <주디>

반응형



[실시간 명작 리뷰] <주디>


영화 <주디> 포스터. ⓒ TCO(주)더콘텐츠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기도 한 세기의 명화 <오즈의 마법사>, 1900년부터 20년 동안 계속된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빅터 플레밍 감독의 1939년작 이 영화가 워낙 유명하여 '오즈의 마법사' 하면 떠올리기 마련이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최고 황금기를 대표하는 작품이기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 하면 회오리바람과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 등이 생각나지만 역시 뭐니뭐니 해도 주인공 도로시가 인상에 남는다. 도로시는 당시 17살의 주디 갈란드가 맡았다. 그녀는 13살 때 이미 당대 최고의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MGM와 계약을 맺었으니, 모자랄 것 없이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 유망주 스타였을 테다. 하지만, 결코 그러지 않았다는 걸 지금의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영화 <주디>는 주디 갈란드의 힘들고 치열했고 지난했던 생애 6개월 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의 이야기도 간간이 떠올리기에 엿볼 수 있다. 할리우드 최고의 '연기파 배우' 중 한 명인 르네 젤위거가 주디를 맡아 '완벽'을 초월한 연기를 펼쳤다. 수많은 영화제에서 당연한듯 여우주연상을 독차지했다. 영화는 어땠을까 궁금하다. 


할리우드 스타 주디 갈란드의 피폐한 삶


1969년 미국, 주디 갈란드는 아이 둘과 호텔을 전전하며 무대에 오른다. 어마어마한 옛 명성에 기대 근근히 맥을 이어가는 느낌이긴 하나,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아닌가. 하지만, 네 번째 남편과의 이혼 후 두 아이의 양육권을 가져와 함께 정착하여 살 만한 여건이 그녀에겐 없다. 방도를 못 찾고 헤매고 있던 그녀에게 영국 런던 공연 투어 제의가 들어온다. 런던에선 여전히 그녀의 인기가 먹혔던 것이다. 


주디는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아이들을 전 남편에게 잠시 맡기고 런던으로 떠난다. 아이러니한 상황이거니와 런던 투어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많은 돈을 얻을 유일한 기회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일상생활을 거의 유지하기 힘든 만큼 피폐해진 그녀이지만, 무대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에 버티며 해나갈 수 있다. 와중에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어려 보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옛 기억과 그때 세뇌된 몸과 마음이 여전히 그녀를 괴롭힌다. 


30년 전 주디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촬영하고 있다. 문제는 촬영이 아닌 촬영 전후 과정으로, 그녀는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건 당연하거니와 생각과 시간의 자유까지 빼앗긴 채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그녀의 의견은 무시당했다. 엄마의 적극적인 협조와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말이다. 그녀에게 할리우드 스타라는 자리를 보장하고 영원히 길이남을 명성을 주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누구보다 피폐하고 힘든 삶을 살았던 것이다. 


주디의, 주디를 위한, 주디에 의한 영화


주디 갈란드를 지칭해 '할리우드를 위해 태어났고 할리우드에 의해 죽었다'고 한다. 정확한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할리우드 최고의 전성기를 든든히 뒷받침한 대표 영화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철저히 길러졌지만 다름 아닌 바로 그 때문에 평생 힘들게 살다가 이른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말로만으로는 크게 실감이 되지 않겠으나, 영화 <주디>를 통해 최소한으로 실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주디>는 주디의, 주디를 위한, 주디에 의한 영화라 하겠다. 하여, 주디로 분한 르네의, 르네를 위한, 르네에 의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르네는 곧 주디였다. 르네를 보고 한 번 생각한 후에 주디에 도달하지 않았다. 르네를 보면 곧바로 주디가 생각났다. 심지어 르네를 잘 알고 주디를 거의 모름에도 말이다. 이어서 주디의 신선한 삶이 뼛속 깊이 박힌다. 쉽게 달아나지 않을 것 같다. 


<오즈의 마법사> 촬영 당시 제작자는 주디에게 주입시킨다. "밖에 나가면 넌 아무것도 아니다. 여기서 연기를 잘 끝마치면 넌 스타가 될 것이다. 너보다 예쁘고 연기 잘하는 애들은 숱하니 내 말을 철저하게 따라야 한다." 그녀의 어리고 순수한 심리를 이용한 어른들의 파렴치한 술수이다. 주디는 외모 콤플렉스를 지닌 채 배우가 되고 싶었고, 엄마는 자신이 못한 꿈을 딸을 통해 이루고자 딸을 스타로 만들고 싶었으며, 제작자는 다루기가 비교적 쉽고 출중한 재능도 있는 주디를 데려다가 떼 돈과 길이남을 명성을 얻고 싶었다. 


세 주체가 각각 바라는 걸 세 주체가 골고루 가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주디만은 크나큰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선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폭력적 학대는 물론 외모 때문에 마약을 섭취시켰고 터무니 없는 하루 식사량을 재단했으며 엄청난 양의 담배를 피우게끔 강요당했다고 한다. 얼마나 잠을 재우지 않았으면, 극중에서 주디가 "어린 시절을 통틀어 5시간도 못 잤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47세의 주디가 매일같이 담배와 술을 달고 살면서 잠을 거의 못 자는 모습을 보면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다. 


주디를 세련되게 추모하다


영화는 할리우드를 향한 메시지가 투영되어 있긴 하나 명백하진 않다. 대신 2019년을 기해 사망 50주기가 되는 주디 갈란드를 향한 헌사의 메시지가 보인다. 하여 영화적으로 보다 세련되었다고 하겠다. 직접적이지 않은, 해당 사안의 대표적 인물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양새가 말이다. 우리는 <주디>를 통해 주디 갈란드를 추모하면서 할리우드의 비인간적 작태의 역사를 되짚고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도출할 수 있다. 


주디 갈란드는 출중한 배우였지만 동시에 출중한 가수이기도 했다. 오히려 스크린에서의 배우보다 무대에서의 가수로 보다 출중함을 뽐냈다고 한다. 영화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어떤 배우보다도 노래를 잘하는 배우도 손꼽히는 르네 젤위거의 철저함 덕분에 주디 갈란드의 황홀한 노래들을 마음껏 듣고 보고 느낄 수 있다. 특히, 누구나의 마음속에서 희망으로 살아 숨쉬는 <Over the Rainbow>는 참으로 오래 기다린 느낌이다. 그 노래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충분하고도 충만하다. 


주디는 진실에 맞닿아 있는 친구가 필요했을 테다. 영화에서도 잠깐 비추는데, 그녀의 진실한 팬을 자처하는 한 게이 커플의 진심 어린 기쁨과 기쁜 슬픔이 그녀를 감동시키는 유일한 마음이었다. 그녀를 주디 갈란드로 생각하든 스타로 생각해든 괜찮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말고 그저 그대로 바라봐 주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이용하여 자신의 잇속을 챙기려 했다. 그 괴리에서 그녀는 괴로워했다. 


비록 한없이 늦었지만, 이 영화로 그녀를 제대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 영화가 그녀의 신산하고 피폐했던 인생을 이용해 할리우드를 비판하려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겠다. 오롯이 그녀를 그녀로 바라보며 추모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으니 말이다. <주디>는 좋은 영화임에 분명하다. <주디>를 봐야 할 이유가 생겼고, 봐야 할 의무가 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