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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블록버스터로 들여다보는, 재난 대처의 모습과 자세와 방법 <열화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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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열화영웅>


영화 <열화영웅> 포스터. ⓒ 레인주니어 픽쳐스



2019년 중국 영화 시장은 어느 때보다 중국 영화의 힘과 영향력이 컸었다. 흥행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상위 10걸에 중국 영화가 아닌 작품은 할리우드 대작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분노의 질주: 홉&쇼>만 있을 뿐이었다. 흥행 규모도 막강했는데,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월드와이드 성적 1/5를 책임진 중국 시장에서 그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중국 영화가 2편이나 있었던 것이다. 


중국 영화 시장이 더 이상 내수용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 급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와중, 2019년 중국 영화 시장 10걸에 정통파 영화 하나가 눈에 띈다. <열화영웅>이 그 작품이다. 중국 영화의 흥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영웅적 이야기에 발을 걸친 '국뽕', 참신한 소재,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 등이다. 이 작품은 영웅적 이야기에 발을 걸친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열화영웅>은 지난 2010년 한국 서해에 인접한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에서 일어난 송유관 폭발사고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 원작으로 했다. 이 사고는 소방관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추가 사망자가 없던 걸로 유명한대, 영화도 소방관들에 포커스를 맞췄다. 하지만 국가재난급 위기 상황은 개개인의 희생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영화로 말미암아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과 자세와 방법을 들여다보자. 


'기본'이라는 재난 대처 자세


건물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 특근1중대, 불은 끄면 되는 것이지만 3층에 있다는 여자아이 구출이 급선무다. 장리웨이 대장은 부하 한 명을 대동해 직접 구하러 간다. 무사히 여자아이를 구하지만 불길이 갑자기 3층을 급습한다. 장리웨이는 급히 방을 열고 창문을 깨선 모든 불이 그쪽을 향햐게 하여 탈출할 수 있었다. 모든 불을 진화하고 후속 조치를 취하는데, 신참들을 보낸다. 하지만, 창고에 수많은 LPG 가스통이 모여 있었으니... 2차 폭발로 건물 전체가 박살나고 만다. 신참은 사망하고, 장리웨이는 대장직에서 직위해제된다. 


재난급에 해당하는 사고는 아니지만, 재난에 대처하는 아주 중요한 자세를 보여준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고 했던가, 장리웨이 대장은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데 솔선수범하며 완벽하게 대처했지만 꺼진 불을 다시 보는 데에는 소홀히 한 감이 컸다. 눈에 보이는 난제를 해결하고는 마음을 놓고 신참으로 하여금 후속조치를 취하게 한 것이다. 잘못을 저질렀다기보다는 기본을 충실히 행하지 않았다. 


재난에 대처하는 가장 중요한 자세는 '기본'이다. 당연하고 식상할지 모르지만, 반드시 숙지하고 지키고 마지막까지 따라야 한다. 재난이라는 게 방심을 먹고 사는 괴물이기도 한 바,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 언젠가 이겨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후속조치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항 중 하나이다.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긴장이 풀려 기본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그때 재난은 다시금 머리를 든다. 


재난 대처에서 가장 중요한, 예방과 조치


특근1중대에서 둥산중대로 발령이 난 장리웨이, 하지만 그는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로 소방관으로서 더 이상 적격인 상태가 아니었다. 머지 않아 제대를 해야 하는 상황, 그때 중국 최대 항만 도시 빈하이 시에서 사상 최대의 송유관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시의 거의 모든 소방관들이 출동해 진입 작전에 돌입하지만, 쉽게 잡히기는커녕 부상자만 속출한다. A01 탱크가 불길의 원흉이자 중심부인 줄 알았지만, 더 중요한 건 길 건너편 화학 탱크 집합소이다. 알고 보니 A01 탱크와 화학 탱크 집합소 사이가 잠궈지지 않았다는 것. 800만 시민의 목숨이 위험하다. 


현대에서 재난은 인재(人災)라고들 한다. 기술이 기술인 만큼 예방할 수 있고 예상할 수 있고 대처할 수 있음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하지 않거나 하지 못하거나 실수하곤 하는 것이다. 재난에는 예방과 조치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후속조치야말로 그 다음의 사고를 예방하는 수순과 다름 없으니, 예방의 일환이겠다. 이 영화에서도 밸브가 고장인데 중국 쪽에 알리지도 않고 그저 바꾸라고만 명령했을 뿐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아 보이거니와 사명의식 또한 가지고 있지 않아 보인다. 


수많은 소방관이 출동해서 진압작전을 시행하고 있는 와중 현장 책임자는 계속 뭔가를 숨기려 든다. 그는 불이 쉽게 잡힐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도 집에는 빨리 탈출하라고 하고는 뒤늦게 지휘관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그것도 모자라 또다시 더 늦게 보다 중요한 사실을 알린다. 부상당하고 죽어가는 소방관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한 채 헛고생만 하고 있을 뿐이다. 늦게나마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고자 하니 희생이 필수적으로 동반되게 되었다. 


올바른 조치를 위해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과 실천뿐만 아니라 모든 사실의 공유가 수반되어야 한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본인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건 당연한 것일 테고, 본인만의 생각으로 행동하거나 작은 거 하나라도 은폐하려 해선 안 된다. 불행의 씨앗이 바로 거기에 있다. 현장 책임자가 본인의 생각만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빨리 사실을 공유했으면 훨씬 적은 희생으로 훨씬 빨리 진압했을 것이다. 


재난 대처의 주체는 역시 '인간'


A01 탱크와 화학 탱크 집합소를 연결하는 밸브를 잠그기 위해선, 죽음을 각오한 개인의 희생적 행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너무 늦은 것이다. 장리웨이가 부하 한 명을 데리고 출동한다. 와중에, 특근1중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화학 탱크 집합소 앞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고 펑린중대는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물이 떨어지지 않고 급수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다다르는 소방관들,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며 피할 수 없는 희생을 마주하는데... 과연 사상 최대 폭발 사고를 진압할 수 있을까?


재난에 대처하는 주체는 역시 인간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들을 재난에서 구해내어 다시 인간에게 돌려놓기 위해 인간이 대처하는 것이다. <열화영웅>은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 재난에 대처함에 있어 임무와 희생을 주(主) 삼았다. 그렇다, 재난을 대처하는 데 희생이 없을 수 없다. 꼭 죽음에 이르지 않더라도, 개인의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나 언제 자신에게도 닥칠지 모를 위험을 무릎쓰는 것이나 모두 희생의 모습이다.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게 시스템이다. 


시스템 또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것이지만,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평상시에도 훈련을 거듭한다. 일반인도 기본적인 대피요령이나 응급처치요령을 숙지하는 것도 이와 같다. 유사시엔 일사분란하게 몸에 각인된 시스템의 일부로서 움직이며 상황에 대처한다. 그럴 때 중앙통제의 힘이 발휘된다. 통제란 평상시엔 발휘되어서는 안 되지만 유사시엔 그 무엇보다 잘 발휘되어야만 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건, 인간으로서의 온정이다. 재난이 들이닥치면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하는데,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인간만의 마음을 간직하고 또 베풀어야 한다. 물론, 주지한 재난 대처의 모든 자세와 방법들과 달리 터무니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인간만의 온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난 이후를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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