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포스터. ⓒ소니 픽처스 코리아
그레타 거윅, 미국 독립영화계의 총아에서 어느새 전 세계 영화제를 주름잡는 감독이 되었다. 2006년 단역으로 데뷔한 후, 조 스완버그 감독과 몇 작품을 함께하며 작가로 연출가로도 데뷔한다. 이후 10여 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는데, 노아 바움벡 감독과 몇 작품을 함께하며 각본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18년 <레이디 버드>로 단독 연출을 아주 훌륭하게 달성했다.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제는 배우보다 감독이자 작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게 된 그레타 거윅, 그녀의 연출과 시나리오 스타일은 배우만 하던 시절 출연했던 영화들과 결을 같이한다. 큰 사건 없이 일상을 영위하며 끝없이 대화가 오가는, 메이저보다 인디를 지향하는 스타일이다. <레이디 버드>로 첫 삽을 뜨고, 일 년 만에 <작은 아씨들>(북미에선 2019년 말 개봉)로 정립을 한 듯하다. 앞으로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염려되기도 하는 행보다.
<작은 아씨들>을 선택한 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하게끔 한다.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1868~69년 소설을 원작으로 이미 여섯 차례나 영상화가 되었기로서니 전 세계 사람들 거의 모두가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나, 원작 스타일 자체가 그레타 거윅 스타일과 굉장히 맞닿아 있다. 네 자매를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풀어내는 와중, 중심이 '여성'이다. 워낙 유명하기에 줄거리를 언급하기가 새삼스럽지만, 모르는 이를 위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한다.
네 자매의 좌충우돌 성장기
미국 남북전쟁(1861~65), 북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미치 가 네 자매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배우를 꿈꾸는 첫째 메그,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셋째 베스, 화가를 꿈꾸는 넷째 에이미까지. 미치 부인은 남편 로버트가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네 자매 뒷바라지를 한다. 심성이 착해, 가난한 집구석을 뒤로 하고 보다 가난한 집을 돕곤 한다. 네 자매도 심성이 착하고 굳고 당차다.
대궐 같은 집에 사는 이웃사촌 로렌스 씨는 자식들을 잃고 손자 로리와 함께 산다. 로리는 네 자매와 친해지고, 조와는 우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까지 싹트기 시작한다. 로렌스는 가난하지만 재능 있고 심성 고운 네 자매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베스가 큰 수혜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때 앓았던 성홍열로 커서도 크게 아프고 만다.
메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베스는 병약하기만 할 뿐이며, 에이미는 큰고모 조세핀을 따라 프랑스 파리로 가 미술 공부의 빌미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 와중에 조는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집안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격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뚜렷한 여성으로서의 한계에 여러모로 직면한 조의 앞날에 어떤 일들이 들이닥칠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1800년대 중반의 여성이란?
2019년작 영화 <작은 아씨들>로만 말하자면, 주인공은 단연 조와 에이미 그리고 로리이다. '작은 아씨들'이라고 하지만, 첫째 메그와 셋째 베스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메그로 분한 엠마 왓슨을 지나, 에이미로 분한 플로렌스 퓨와 로리로 분한 티모시 샬라메까지 지나, 조로 분한 시얼샤 로넌에 다다른다. 20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벌써 아카데미 후보에 네 번이나 오른 믿기 힘든 이력의 소유자이다. 알게 모르게 그녀의 출연작을 섭렵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어톤먼트> <러블리 본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브루클린> <러빙 빈센트> 등.
여기에, <작은 아씨들>에는 자그마치 메릴 스트립과 로라 던이라는 대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이지만 대척점에서 중요한 역할로 출연한다. 그야말로 명배우들의 집합소 같다는 느낌을 전한다. 메릴 스트립은 큰고모 조세핀으로, 로라 던은 미치 부인으로 분했다. 조세핀은 네 자매에게 '여성'으로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재촉하고, 미치 부인은 네 자매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제시한다.
1800년대 중반의 미국 여성이란 어땠을까, 조세핀이 단도직입적으로 알려 준다. 여자라면 마땅히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던가 본인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여자로서 돈을 벌려면 사창가로 빠지던가 무대에 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한없이 씁쓸하기만 한 현실이다. 그녀의 유럽행 제안에, 조는 거절하고 에이미는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미치 부인은 비록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이어가지만 뚝심 있고 활기 있게 모두를 살핀다. '모두'에는 비단 그녀의 가족만 있는 게 아니라, 힘들게 사는 모든 이들이 해당된다. 그녀는 네 자매에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해줄 것을 부탁하고 권유한다. 인류애의 표본으로, 조야말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엄마의 큰 뜻을 이어받는 장본인이다.
탁월한 캐스팅과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은 아씨들>은 이전에도 여섯 번 영상화되었는데 상당히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조 미치의 경우 1933년작엔 캐서린 헵번이 1994년작엔 위노나 라이더가 분했고, 에이미 미치의 경우 1949년작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94년엔 커스틴 던스트가 분했다. 로리의 경우 1994년작이 유명한대, 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어벤저스'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또다시 찾아올 다음 <작은 아씨들>에는 어떤 대세 배우들이 열연을 펼칠지 벌써 기대된다.
2019년작 <작은 아씨들>이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조로 분한 시얼샤 로넌과 에이미로 분한 플로렌스 퓨가 나란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등 열연에 맞는 대우를 받았지만, 영화에서 보다 빛을 발한 건 그레타 거윅 감독의 각색이라 하겠다. 특히 빛나는 부분은, 의외일지 모르나 7년 차이를 둔 수시 교차편집이다. 큰 사건 없이 대화로 일상을 영위하다가, 작디 작은 선택과 감정의 분출이 세심하고 미세하게 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친절해 보일 수도 헷갈릴 수도 있겠으나, 탁월한 선택임에 이의가 없다.
그보다 탁월했던 건,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있겠다. 이 역시 그레타 거윅 감독의 능력이 빛나는 부분인데, 조 미치를 중심으로 여성이 직접 여성으로서의 본인 삶을 개척하고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다. 고전이라는 한계에서 영화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영화 속 시대와 여성으로서의 한계에서 현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영화로서도 성공적이고 영화 밖 현실참여로서도 성공적이다. 영화 안팎의 모든 면에서 현시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여성 영화'라고 감히 평하겠다. 앞으로 계속될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는 물론, 여성 영화 계보의 '고전'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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