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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모모 큐레이터'S PICK'에 해당되는 글 36건

제목 날짜
  • 어벤저스급 캐스팅과 완벽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되살린 고전 <작은 아씨들> 2020.03.18
  • 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2020.03.11
  • 철 없고 생각 없는 어른들의 폭력 앞에 마음 둘 곳 없는 아이 <와일드라이프> 2020.01.17
  • 고흐라는 인간의 내면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세계 <고흐, 영원의 문에서> 2019.12.31
  •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2019.12.06
  • 꿈과 현실 사이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와일드 로즈> 2019.11.18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기까지, 35년 전의 <모리스> 2019.11.08
  •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가 무너지는 대단하고 충격적인 경험 <경계선> 2019.11.04
  •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2019.10.31
  • 코엔 형제 범죄 스릴러의 전설적 시작 <블러드 심플> 2019.10.18

어벤저스급 캐스팅과 완벽한 현대적 재해석으로 되살린 고전 <작은 아씨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20. 3.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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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작은 아씨들>


영화 <작은 아씨들> 포스터. ⓒ소니 픽처스 코리아



그레타 거윅, 미국 독립영화계의 총아에서 어느새 전 세계 영화제를 주름잡는 감독이 되었다. 2006년 단역으로 데뷔한 후, 조 스완버그 감독과 몇 작품을 함께하며 작가로 연출가로도 데뷔한다. 이후 10여 년 동안 배우로 활동하는데, 노아 바움벡 감독과 몇 작품을 함께하며 각본으로도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18년 <레이디 버드>로 단독 연출을 아주 훌륭하게 달성했다. 그녀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제는 배우보다 감독이자 작가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게 된 그레타 거윅, 그녀의 연출과 시나리오 스타일은 배우만 하던 시절 출연했던 영화들과 결을 같이한다. 큰 사건 없이 일상을 영위하며 끝없이 대화가 오가는, 메이저보다 인디를 지향하는 스타일이다. <레이디 버드>로 첫 삽을 뜨고, 일 년 만에 <작은 아씨들>(북미에선 2019년 말 개봉)로 정립을 한 듯하다. 앞으로가 기대되기도 하지만 염려되기도 하는 행보다. 


<작은 아씨들>을 선택한 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신의 한수였다고 생각하게끔 한다. 미국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1868~69년 소설을 원작으로 이미 여섯 차례나 영상화가 되었기로서니 전 세계 사람들 거의 모두가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나, 원작 스타일 자체가 그레타 거윅 스타일과 굉장히 맞닿아 있다. 네 자매를 중심으로 한 가족 이야기를 따뜻하고 섬세하게 풀어내는 와중, 중심이 '여성'이다. 워낙 유명하기에 줄거리를 언급하기가 새삼스럽지만, 모르는 이를 위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한다. 


네 자매의 좌충우돌 성장기


미국 남북전쟁(1861~65), 북동부에 위치한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 미치 가 네 자매가 어머니와 함께 산다. 배우를 꿈꾸는 첫째 메그, 작가를 꿈꾸는 둘째 조,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셋째 베스, 화가를 꿈꾸는 넷째 에이미까지. 미치 부인은 남편 로버트가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네 자매 뒷바라지를 한다. 심성이 착해, 가난한 집구석을 뒤로 하고 보다 가난한 집을 돕곤 한다. 네 자매도 심성이 착하고 굳고 당차다. 


대궐 같은 집에 사는 이웃사촌 로렌스 씨는 자식들을 잃고 손자 로리와 함께 산다. 로리는 네 자매와 친해지고, 조와는 우정을 넘어 사랑의 감정까지 싹트기 시작한다. 로렌스는 가난하지만 재능 있고 심성 고운 네 자매를 위해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베스가 큰 수혜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어릴 때 앓았던 성홍열로 커서도 크게 아프고 만다. 


메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베스는 병약하기만 할 뿐이며, 에이미는 큰고모 조세핀을 따라 프랑스 파리로 가 미술 공부의 빌미로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 한다. 와중에 조는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집안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격변하고 있다고 하지만 너무나도 뚜렷한 여성으로서의 한계에 여러모로 직면한 조의 앞날에 어떤 일들이 들이닥칠까?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1800년대 중반의 여성이란?


2019년작 영화 <작은 아씨들>로만 말하자면, 주인공은 단연 조와 에이미 그리고 로리이다. '작은 아씨들'이라고 하지만, 첫째 메그와 셋째 베스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메그로 분한 엠마 왓슨을 지나, 에이미로 분한 플로렌스 퓨와 로리로 분한 티모시 샬라메까지 지나, 조로 분한 시얼샤 로넌에 다다른다. 20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벌써 아카데미 후보에 네 번이나 오른 믿기 힘든 이력의 소유자이다. 알게 모르게 그녀의 출연작을 섭렵한 이들이 많을 듯하다. <어톤먼트> <러블리 본즈>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브루클린> <러빙 빈센트> 등.


여기에, <작은 아씨들>에는 자그마치 메릴 스트립과 로라 던이라는 대배우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이지만 대척점에서 중요한 역할로 출연한다. 그야말로 명배우들의 집합소 같다는 느낌을 전한다. 메릴 스트립은 큰고모 조세핀으로, 로라 던은 미치 부인으로 분했다. 조세핀은 네 자매에게 '여성'으로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재촉하고, 미치 부인은 네 자매에게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만 하는 길을 제시한다. 


1800년대 중반의 미국 여성이란 어땠을까, 조세핀이 단도직입적으로 알려 준다. 여자라면 마땅히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던가 본인이 돈이 많아야 한다고, 여자로서 돈을 벌려면 사창가로 빠지던가 무대에 서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정하기 힘든, 한없이 씁쓸하기만 한 현실이다. 그녀의 유럽행 제안에, 조는 거절하고 에이미는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미치 부인은 비록 가난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이어가지만 뚝심 있고 활기 있게 모두를 살핀다. '모두'에는 비단 그녀의 가족만 있는 게 아니라, 힘들게 사는 모든 이들이 해당된다. 그녀는 네 자매에게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함께해줄 것을 부탁하고 권유한다. 인류애의 표본으로, 조야말로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고자 엄마의 큰 뜻을 이어받는 장본인이다. 


탁월한 캐스팅과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은 아씨들>은 이전에도 여섯 번 영상화되었는데 상당히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조 미치의 경우 1933년작엔 캐서린 헵번이 1994년작엔 위노나 라이더가 분했고, 에이미 미치의 경우 1949년작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1994년엔 커스틴 던스트가 분했다. 로리의 경우 1994년작이 유명한대, 크리스찬 베일이었다. '어벤저스'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또다시 찾아올 다음 <작은 아씨들>에는 어떤 대세 배우들이 열연을 펼칠지 벌써 기대된다. 


2019년작 <작은 아씨들>이 어벤저스급 배우들의 열연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조로 분한 시얼샤 로넌과 에이미로 분한 플로렌스 퓨가 나란히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는 등 열연에 맞는 대우를 받았지만, 영화에서 보다 빛을 발한 건 그레타 거윅 감독의 각색이라 하겠다. 특히 빛나는 부분은, 의외일지 모르나 7년 차이를 둔 수시 교차편집이다. 큰 사건 없이 대화로 일상을 영위하다가, 작디 작은 선택과 감정의 분출이 세심하고 미세하게 결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불친절해 보일 수도 헷갈릴 수도 있겠으나, 탁월한 선택임에 이의가 없다. 


그보다 탁월했던 건,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에 있겠다. 이 역시 그레타 거윅 감독의 능력이 빛나는 부분인데, 조 미치를 중심으로 여성이 직접 여성으로서의 본인 삶을 개척하고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것이다. 고전이라는 한계에서 영화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영화 속 시대와 여성으로서의 한계에서 현재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이 영화는 영화로서도 성공적이고 영화 밖 현실참여로서도 성공적이다. 영화 안팎의 모든 면에서 현시대 가장 완벽에 가까운 '여성 영화'라고 감히 평하겠다. 앞으로 계속될 영화 <작은 아씨들>에서는 물론, 여성 영화 계보의 '고전'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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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그레타 거윅, 여성, 작은 아씨들, 캐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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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를 더해가는, 미국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 <졸업>

모모 큐레이터'S PICK 2020. 3.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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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졸업>


영화 <졸업> 포스터. ⓒ 시네마 뉴원



EGOT라고 하면, 미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네 개를 지칭한다. 텔레비전의 에미상(Emmy), 청각 매체의 그래미상(Gramy), 영화의 오스카상(Oscars), 극예술의 토니상(Tony)까지. 이중 2~3개를 수상한 사람은 발에 차일 만큼 많지만, 4개 모두를 수상한 이른바 '그랜드슬래머'는 현재까지 15명뿐이라고 한다. 우리도 알 만한 사람을 뽑자면, 오드리 헵번, 우피 골드버그, 존 레전드 정도가 아닐까 싶다. 


상들의 특성상 배우나 작곡가가 많은데 딱 한 명만 정체성이 '감독'인 이가 있으니 '마이크 니콜스'이다. 특이하게, 1960년대에 에미상을 제외한 세 부분의 상을 석권하며 명성을 누렸던 그는 40여 년이 지난 2000년대에 이르러 에미상을 수상했다. 1931년에 태어나 2014년에 작고했고 2007년 <찰리 윌슨의 전쟁>이 마지막 연출이었다는 점을 보면, 인생 마지막 혼신의 힘을 쏟아 결실을 보았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우린 마이크 니콜스라는 이름을 잘 알진 못한다. 그만큼 그가 작품으로만 자신의 대중문화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우린 그의 작품을 아주 잘 안다. 196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두 작품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 <졸업>만으로 충분하겠지만, 2004년 <클로저>도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지난 2월, 졸업의 계절에 <졸업>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찾아왔다. 근래 수없이 많은 고전들이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오고 있는데, 걔중 단연 압권이랄 만하다. 


믿기 싫은 기이한 삼각 관계


우수한 성적과 모범적인 생활로 훌륭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더스틴 호프만 분), 부모는 온갖 지인들을 불러모아 환영파티를 열어 벤자민의 앞날을 기획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부담스럽고 당혹스럽고 불안하기만 할 뿐, 이 자리를 한시라도 빨리 피하고 싶다. 여기저기 붙잡여서 당황하던 찰나, 다행히 자리를 피했는데 로빈슨 부인과 맞딱뜨린다. 그녀의 가족과는 예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온 사이.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에서 집에 데려달라고 한다. 낌새가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못할 건 없으니 로빈슨 부인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은 노골적이다시피 벤자민을 유혹한다. 다행히(?) 로빈슨 부인 남편이 집에 돌아와 위기를 모면하는 벤자민, 하지만 머릿속에서 로빈슨 부인을 떨쳐내지 못하곤 결국 호텔로 불러내 육체적 관계를 맺기까지 한다. 그녀는 결혼생활의 싫증으로 그를 탐한 것이겠지만, 그는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던 걸까?


밀회를 이어가던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 와중에 로빈슨 부인의 딸 일레인이 방학을 맞아 집에 온다. 사실, 벤자민 부모님과 로빈슨 부인 남편은 벤자민과 일레인이 좋은 관계로 발전하길 바랐다. 일레인을 본 이후 그녀에게 끌리기 시작한 벤자민, 하지만 로빈슨 부인이라는 무시무시한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결국 일레인은 벤자민과 로빈슨 부인의 관계를 알게 되고, 집을 떠나 학교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과연, 벤자민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로빈슨 부인인가, 일레인인가? 꼭 둘 중에 한 명이어야 하는가?


청춘의 방황, 미국의 일탈


영화 <졸업>은 족히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봐도 막장이랄 만한 삼각 관계를 정면으로 내세운다. 정극 기반의 코미디로,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웃음을 유발하는데 개그보다는 유머에 가깝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책임진 희대의 OST들은 영원히 청춘들의 심금을 흔들 만하다. 여러 모로 이 영화는 영화계 센세이션 따위를 뛰어넘은 대중문화 센세이션의 신화라 할 것이다. 영원히 계속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색채를 더해가는.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하라는 대로만 정신없이 달려온 대학 졸업생 청춘의 방황을 보여준다. 하여, '청춘'이 주요 모토이다. 환영파티에서 어느 분이 '플라스틱!'이라고 외치며 그의 미래를 자본과 물질 세계의 훌륭한 부품으로 재단하듯 단정한 행동에, 반감이 아닌 당혹을 비추는 모습이 가련하기까지 하다. 부모는 벤자민이 자신의 뜻대로 계속 길을 가지 않을 뿐더러 뭐라도 하지 않는 날들이 길어지면서 불평이 쌓이는데, '졸업'이라는 말의 함의가 주는 가련함도 함께 쌓이는 듯하다. 끝과 동시에 시작해야 하는 인간의 삶이란. 


이차원, 삼차원을 건너띄고 사차원적으로 들여다보자면, 벤자민에 미국을 껴맞춰 볼 수 있겠다. 1960년 중반 미국이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전방위적으로 절대적 힘과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거인이자 괴물이었다. 대공황의 위기를 지나, 2차 대전과 한국 전쟁을 치르고, 베트남 전쟁과 냉전이 한창인 상황으로, 해야 할 게 많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지만 깊숙이에선 허무의 기운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와중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건, 도피와 위안과 자극으로서의 일탈이다. 


전설로 회자되는 장면들


비록 일차원과 사차원적이지만 개인적인 차원과 국가적인 차원에서 들여다봐도 큰 위화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영화 <졸업>의 스펙트럼은 어마어마하다. 즉, 이 영화에 그 어떤 걸 들이대도 전부 흡수하고는 나름대로의 답을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전으로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는 바, 우리는 이 작품을 가지고 각자에 맞게 이리저리 가지고 놀 수 있다. 


이 영화는 전설로 회자되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이 세 군데 정도 있다.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든 예상할 수 있을 테고, 심지어 본 적이 없던 이라도 연상할 수 있을 테다. 메인 포스터로도 볼 수 있는, 로빈슨 부인이 스타킹을 신는 장면. 그야말로 평범하고 탈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 중산층의 혁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미국의 중산층을 표현하려 해 왔지만 <아메리칸 뷰티> 정도를 제외하곤 필적할 만한 작품이 없다. 


다른 두 장면은 영화 막바지에 몰려 있다.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50년이 넘는 작품에 스포일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벤자민이 초대받지 못한 일레인의 결혼식에 쳐들어가 일레인을 목놓아 부른다. 이에 응답하는 일레인, 벤자민은 교회 십자가를 뽑아들어 하객들을 물리치고는(?) 함께 도망친다. 수없이 패러디되고 오마주되었을 교회 결혼식장 도주 장면은, 유쾌 상쾌 통쾌한 혁명적 일탈을 시원스럽게 보여 준다. 혼돈스러울 정도로 자유분방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선전하고 있다고까지 느낄 정도이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를 한순간에 뒤집는다. 


결혼식 도중 호기롭게 도망친 벤자민과 일레인, 함박웃음을 지으며 버스를 타고는 어딘가로 향한다. 하지만 곧바로 들이닥친 현실, 딱 들어 맞는 신조어가 하나 있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줄임말 '현타', 함박웃음에서 일순간 당혹과 허무와 걱정이 오묘하게 뒤섞인 표정으로 돌아선 그들을 보고 있기로서니 준비와 계획 없는 미래가 얼마나 무시무시할 수 있는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NG로 우연히 만들어진 걸로 유명한 이 장면 하나로, <졸업>은 이미 충분한 전설적 퍼포먼스를 한 차원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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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OT, 대중문화, 더스틴 호프먼, 마이크 니콜스, 미국, 일탈, 장면, 전설, 졸업,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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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없고 생각 없는 어른들의 폭력 앞에 마음 둘 곳 없는 아이 <와일드라이프>

모모 큐레이터'S PICK 2020. 1.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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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와일드라이프>


영화 <와일드라이프>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폴 다노, <옥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 전에 이미 <미스 리틀 선샤인> <데어 윌 비 블러드> <유스> 등 명작의 주연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배우이다. 큰 영화보단 내실 있는 영화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왠만한 배우들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필모를 쌓았다. 여담으로 2021년 개봉 예정인 <더 배트맨>에 주요 빌런 중 하나인 리들러로 출연한다고 한다. 


그가 지난 2018년 내놓은 연출 데뷔작 <와일드라이프>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우리나라에선 명성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불리는 리처드 포드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폴 다노와 함께 그의 오래된 연인 조 카잔이 각색을 맡았다. 칸, 뉴욕, 선댄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데뷔 퍼포먼스를 보였다. 


여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연기파 배우들인 제이크 질렌할과 캐리 멀리건이 부부로, 폴 다노와 생김새뿐 아니라 분위기까지 닮은 호주 출신의 신인 배우 에드 옥슨볼드가 사실상 주인공인 아들 조로 열연했다. 감독으로선 배우에게로 향하며 튈 수 있는 연기를 작품으로 당겨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끔 하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자칫 연기만 남은 구멍 숭숭 뚤린 영화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떠난 아빠와 마음이 떠난 엄마 사이의 어린 아들


1960년 미국 서부 몬태나, 제리(제이크 질렌할 분)와 자넷(캐리 멀리건 분) 부부와 외동아들 조가 이사온다. 평범할 것 같았던 가족에게 실직이라는 불행이 닥친다. 제리가 식료품점에서 해고 당한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는 제리를 대신해, 먹고 살아야 하기에 자넷은 수영강사로 취직하고 조도 사진관에서 일을 시작한다. 와중에 제리에게 식료품점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지만 제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곧 이어지는 제리의 폭탄선언, 하늘의 도움 없이는 진화가 될 것 같지 않은 위험한 산불 현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돈도 많이 주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터였다. 조는 아빠의 멋있고 이상적인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넷은 남편이 식료품점을 마다 하고 굳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그가 가족을 말 그대로 떠난다고 인식한다. 


제리가 떠나자마자 자넷은 전에 없이 한껏 차려입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내 수영을 배우러 오는 갑부 워렌 밀러와 가까워진다. 그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는데, 그 자리에 조가 함께 한다. 조는 아빠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기에 엄마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와중에 자넷은 조를 데리고 산불 현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산불을 두 눈으로 목격한 조는 갈팡질팡 마음 둘 곳을 잃고 헤매는데... 제리는 돌아올까? 자넷도 돌아올까? 어린 조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시대와 조우하는 캐릭터들과 상황


영화 <와일드라이프>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철 없는 어른 부모를 둔 어린 아들의 안타까운 성장 이야기이다. 가족에게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돈과 자부심을 택한 제리와 기다렸다는 듯 아들을 내팽겨둔 채 돈과 외로움을 채워줄 불륜에의 길을 밟아가는 자넷 모두 철 없는 걸로는 모자란 생각 없는 폭력적 어른들이다. 그들의 이기적인 말과 행동 모두가 조에겐 상시적 폭력으로 다가왔을 테다. 


직접적이지도, 물리적이지도 않은 일반적 폭력 같지 않은 폭력 앞에서 조는 자신보다 가족을 택한다. 즉, 아빠와 엄마를 모두 지켜 한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한 것이다. 학교 공부는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일에 전념해 돈을 벌어오고, 물리적으로 없는 아빠와 정신적으로 없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며, 해체되어 가는 가정을 지키려 한 것이다. 


영화는 개인적으로 아쉽게도 당대 미국의 자화상을 펼쳐놓지 않는다. 그저 변화에 직면한 가족의 갈등과 노력과 해체를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1960년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황금시대 한 가운데였다. 다만, 1950년대 물질적·정신적으로 최고의 절정기를 보낸 직후로 변화의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으니 1960년대는 격변과 혁명과 위기의 시대였던 것이다. 


영화에선 제리는 돈도 많이 받으면서 원하는 일을 하려는 물질적 자부심의 발로일 테고, 자넷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다는 명분 하에 자유분방의 자유를 만끽하는 정신적 자부심의 발로일 테며, 워렌 밀러는 두 번의 전쟁에 출전해 다른 사람들의 무능함 덕분에 갑부가 된 정통 기득권의 모습일 테다. 조는 불안한 만족의 시대에 10대 중반을 맞이한 불행의 청소년으로 곧 다가올 변혁의 시대 직전 봉합의 의무를 스스로 떠안은 세대라 하겠다. 제리와 자넷은 다가올 시대의 기치가 될 '와일드라이프'의 선경험자일까, 앞 세대의 풍요로움을 받기만 한 없어져야 할 대상일까.


개인적인, 가족의 성장 이야기


<와일드라이프>를 보는 시선의 눈높이 또는 깊이가 제각각 다를 수 있겠다. 주지한 것처럼 캐릭터들과 상황을 시대상과 조우시킬 수도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제리와 자넷의 행동 모두 일면 이해가 간다. 개인이기 이전에 가족의 일원이라고 하지만, 가족의 일원이기 이전에 개인이기도 한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게 다름 아닌 내 자신이라고 본다면, 그들의 행동은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다. 


문제는,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최소한의 보살핌과 챙김을 주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의 눈엔 차분하고 조심성 있고 착하고 말썽 없는 조가 다 큰 것처럼 보이겠지만, 조로선 14살의 어린이로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나이이다. 그가 보는 세상은, 그들이 보여주는 세상임과 동시에 그들이 만든 세상인 것이다. 그들의 '와일드라이프'적인 세상이 정상적이라고 할 순 없을진대, 그가 받아들이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다. 조를 향한 안타까움의 원천이다. 


공감이라는 차원에선 위의 시대 이야기보다 아래의 개인 이야기가 앞선다 하겠다. 시대와 장소와 사람을 불문하고 누구나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말이다. 가정 환경이야말로 가장 절대적으로 그 사람을 규정한다. 그저 중요하단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영화는 그 중요성과 과정을 밀도있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폴 다노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폴 다노 '감독'의 연출이 심히 기대된다. 그만의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는 단단한 연기 공력이 연출에도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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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변화, 성장, 시대, 와일드라이프, 폭력, 폴 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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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라는 인간의 내면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세계 <고흐, 영원의 문에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2. 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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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고흐, 영원의 문에서>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줄리안 슈나벨 감독, 미술 학도들에겐 유명한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세간에선 미국 신표현주의 운동을 이끌며 앤디 워홀과 바스키아 더불어 미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 칭송받는다. 즉, 전 세계 미술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미술가라는 얘기다. 그건 그가 감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다. 


1996년 <바스키아>로 영화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이후 20년 넘게 4편의 극작품만을 내놓았다. 하나같이 '좋은' 작품이었음은 분명한대, <비포 나잇 폴스>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대상을 수상했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잠수종과 나비>로 칸영화제 감독상과 골든글로브 감독상,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했다. 이후 연출한 두 작품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그의 최신작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바스키아> 이후 실로 오랜만에 돌아온 본업이었던 미술 관련 영화이다. 그가 진가를 발휘하고 우린 그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이 작품으로 주연 고흐로 분한 윌렘 대포가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영화는 고흐의 시선으로 본 세상과 고흐를 보는 시선의 훌륭하고도 조화로운 양립을 구축했다. 북미에서는 2018년 11월에 개봉했으니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데 1년 넘게 걸렸다.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


프랑스 파리,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와 함께 예술가 공동체를 꾸리려는 모임에 참가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고 행하고자 하는 것들이 정작 예술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 자리에서 폴 고갱이 일갈하고는 뛰쳐 나온다. 평소 고갱을 존경하던 고흐는 그 모습을 보고 같이 나와 고갱의 의견을 경청한다. 고갱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마스가스카르로 향하고, 고흐는 새로운 빛을 찾아 프랑스 남쪽으로 향한다. 


프랑스 아를, 고흐는 파리에서의 우중충한 빛을 뒤로 하고 노란집에서 생활하며 청량한 빛 아래의 진정 원하던 그림을 그린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사람들은 알아봐주지 않았다. 아를 사람들은 그를 멸시하고 멀리했다. 그는 정신이 아프기도 했다. 가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잊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그를 해코지하자 맞대응했다가 어른들한테 맞고 정신병원에 갇힌다. 테오가 해결해주며 앞으로의 고흐를 위해 고갱을 불러들인다. 정기적으로 그림을 사고 돈을 지불해주는 명목이었다. 


고갱과 함께 생활해 너무나도 좋은 고흐, 비록 둘의 작품 성향은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지만 다음 세대의 선두주자라는 자기확신으로 서로 통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고갱이 많이 유명해졌거니와 고흐와는 작품 보는 눈이 너무나도 달랐기에 파리로 떠나게 된 것이다. 고흐는 계속 되는 환청을 어쩌지 못한 채 고갱에게 주려는 의도로 자신의 귀를 잘라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고흐의 비극과 일화와 명작


영화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미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빈센트 반 고흐의 생애 마지막을 그린다. 고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불과 37세 나이로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마지막 3년여가 특히 유명한 건 비극으로 점철된 그의 나날들과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들 그리고 그의 현재를 있게 하고 미래를 있게 할 명작들에 있다. 영화는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두루두루 살핀다. 


고흐의 비극과 일화와 명작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인정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며 정처없이 떠돌았고, 정신병원을 들락날락했고,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던 대화가 고갱과 함께 지냈고, 그가 떠나자 자신의 귀를 잘라 보내려고 했고, 결국 권총으로 자살 또는 타살되어 생을 마감했다. <노란 집> <카페 테라스>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에> <자화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 등의 명작이 그의 말년에 만들어졌다.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영화는 상당히 불친절하다. 아무리 유명한 이의 길지 않은 말년을 축약해서 보여준다지만, 날짜나 지명도 제대로 언급하지 않은 채 시간과 장소를 멋대로 건너뛰어 버리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전체적으로 흐르는 예술적 시선과 기풍으로 제대로 된 공감을 보내기 힘든 와중에 말이다. 차라리 실제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괜찮을 편집방향이었을 테다. 


고흐라는 인간,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


영화는 이해를 돕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데엔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대신, 고흐라는 '인간'과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을 담으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고흐의 내면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윌렘 데포의 연기와 때론 격하게 때론 미세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워킹으로 알아챌 수 있다. 특히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건 윌렘 데포일 것이다. 자못 식상하지만 달리 할 말이 없을, '고흐보다 더 고흐 같은' 연기로 극을 이끄는 동시에 압도했다. 고흐가 추구했던 예술관, 고흐가 자연을 통해 불러일으킨 영감, 고흐가 자신을 동일시한 그림에 대한 지론을 그가 대신 완벽하게 전한다. 


그런가 하면, 일필휘지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게 그림이라고 여긴 고흐가 바라보는 자연의 면면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 자체에도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다. 미술가 출신의 감독인 만큼, 화가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세상을 어떤 식으로 대하는지 너무나도 잘 표현되어 있다 하겠다. 그걸 다시 우리와 같은 일반 관객이 어떻게 바라볼지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고흐라는 대화가와 그가 그린 명작들이 아닌, 고흐라는 처량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인간'을 들여다보는 데, 이 영화는 수많은 콘텐츠들 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게 분명하다. 제대로 된 고증뿐만 아니라 독창적 해석도 넘치도록 받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영화로 뭔가를 할 순 없을 것이다. 우린 이 영화에 한없이 다가갈 수 있을 뿐이고, 이 영화에서 우리를 향해 뭔가가 나오진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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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영원의 문에서, 마지막, 명작, 비극, 빈센트 반 고흐, 인간, 일화, 자연, 테오, 폴 고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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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2. 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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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결혼 이야기>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10년, LA에서 잘 나가던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이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떠나 생활한 세월이다. 그 사이 그들은 아이도 낳고 찰리의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니콜은 LA로 돌아가고 싶었고 찰리에게 제안했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게 꿈인 찰리는 듣지 않았다.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관계. 


불에 기름 부은 격으로 니콜과의 잠자리를 뜸하게 하던 찰리가 극단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다. 물론 찰리는 원나잇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때마침 니콜에게 드라마 배우 제안이 들어오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LA로 향한다. 그들은 자연스레 별거 수순으로 들어가고 이혼 조정 과정에 들어간다. 처음엔 큰 생각하지 않은 듯, 둘 사이의 원만한 조정을 원했다. 


하지만 니콜이 드라마 제작 스텝이자 이혼 선배(?)의 조언을 얻어 실력 좋은 변호사 노라와 이혼 과정을 전담시키면서 국면은 전환된다. 찰리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욕 아닌 LA에서 변호사를 구해 조정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곧,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욕스러운 이혼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혼하기 전까진 결혼 생활이 이어지는 만큼 결혼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의 최고작


영화 <결혼 이야기>는 뉴욕 출신의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신작이자 최고작이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블랙 코미디 계열의 드라마를 선보였는데, 한결 같이 청춘과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노아 바움백 작품들을 집대성했거니와 그의 필모상 다음 챕터로 가는 중요 길목으로 비춰진다. 


뉴욕 출신의 블랙 코미디 드라마 전문 감독이 한 명 떠오른다. '우디 앨런',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대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도 끊임없이 뉴욕 이야기를 변주해오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는 위태위태해진 그의 자리를 노아 바움백이 이어받을 모양새이다. '특별한 도시 뉴욕,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모토로 <프란시스 하> <위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그리고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까지 연달아 내놓았다. 


연출 데뷔를 앞뒤로 그는 절친 웨스 앤더슨 감독과 각본으로 비즈니스 연을 맺었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과 <판타스틱 Mr. 폭스>가 그 작품들이다. 노아 바움백 작품의 미장센에서 웨스 앤더슨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런 한편, 노아 바움백이 영향을 준 이도 있는데 그레타 거윅이다. 그들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함께 했다.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 <바비>를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공동 각본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은 우디 앨런과도, 웨스 앤더슨과도 한 작품씩 한 이력이 있는 만큼 영향을 주고 받는 그들이다. 


이혼 이야기이자 결혼 이야기


영화는 두 갈래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혼이라는 목적에의 과정과 그 자체로 목적이자 과정인 결혼. 니콜과 찰리는 사랑의 결과물로 결혼을 택해 아이를 낳아 과정을 영위했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인간 대 인간의 어긋남을 이혼으로 결론 맺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법적으로 이혼이 결정될 때까지 그들은 결혼한 사이이기에 둘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들. 


이혼에의 과정은 점점 과열되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계속되지만, 과정으로서의 결혼 생활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들에겐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들 간의 결혼과 이혼에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않은 죄 없는 아이 말이다. 아이를 위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끝까지 이어져야 하고, 끝나고 나서도 결코 완전히 매듭지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이 영화를 보는 중엔 '이혼 이야기'가 제목에 보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래서 '결혼 이야기'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거나 혹은 원래대로 돌리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에서도 뉴욕이라는 곳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의 기법에 기댄 측면이 크다. 영화는 특정된 공간이 아닌 평범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현실톤과 연극톤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큰 방점을 찍는다.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포착 모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영화를 통해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자탕공인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은 일찍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으니, 스칼렛 요한슨은 어벤저스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매치 포인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후로 <헝그리 하트> <패터슨> <블랙클랜스맨>을 포함 수많은 '아트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아담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과 <결혼 이야기>로 세 번째 함께 했다. 


그들의 연기로 발현되는 결혼 이야기 속 이혼의 이유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니콜의 말에 따르면 찰리가 니콜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 서로가 서로를 가장 좋아했던 최초의 행동이 종국엔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양상 때문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이 서로를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로 대칭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영화는 기막힌 순간포착의 모음 같이 느껴진다. 누구나 순간포착은 가능하고 순간의 기억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끝없이 이어지면 기가 질릴 만하다. <결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순간포착을 완급조절로 완화시킬 수 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능력과 원숙미가 함께 걸린 작품이다. 평범한 와중 순간의 극단을 보여줌에 있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건, 비어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를 깨닫고 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혼 이야기>는 걸작이고, 이 작품을 비로소 노아 바움백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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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현실 사이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와일드 로즈>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1.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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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와일드 로즈>


영화 <와일드 로즈> 포스터. ⓒ판씨네마(주)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로즈 린은 미국 내슈빌에서 컨트리 가수로 스타가 되는 게 꿈이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보다도 못한데, 마약 사건에 타의로 휘말려 감옥에 1여 년간 수감되어 있었고 20대의 어린 나이임에도 아빠 없이 두 아이의 엄마로 있다. 성격은 불 같아서, 예전에 활약했던 클럽에 다시 찾아가서는 전과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하여 깽판치고 나오기도 했다. 


로즈 또한 아빠 없이 엄마 마리온이 생활 전반을 도와주는데, 엄마 친구를 통해 로즈는 부잣집 청소도우미로 취직할 수 있었다. 가수의 꿈은 언제 어디서든 꿀 수 있는 것, 주인 수잔나가 나가 있는 사이 집을 누비며 노래를 불렀는데 딸과 아들이 와서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수잔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 로즈의 노래 모습을 런던 BBC의 유명 프로듀서에게 전달하게 해준다. 


하지만, 로즈에겐 두 아이가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아이들을 할머니께 맡겨둘 순 없는 노릇. 더군다나 마리온은 딸 로즈의 허무맹랑한 미국 내슈빌 진출을 반대한다. 그럼에도, 로즈에게 기회가 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로즈에게 음악이란? 로즈에게 가족이란? 로즈에게 로즈란?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답은 없다, 최선의 해답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음악, 여성, 가족


영화 <와일드 로즈>는 가진 것 목소리와 열정밖에 없는 미혼모이자 전과자 로즈의 현실적인 성장을 그린다. 동시에 한편으론 음악영화이자 여성영화이자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각각에서 핵심들만 뽑아와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긍정적인 시너지를 끄집어냈다. 정형화된 스토리에 소소하지만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들이 활기를 더한다.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은 것이리라. 


우선 음악영화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음악성을 뽐낸다. 아무래도 주연의 노래 실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로즈 역으로 분한 제시 버클리는 2008년 영국 BBC의 오디션 프로그램 <I'd Do Anything> 준우승자 출신 답게 극중에서 가창력은 물론 심금을 울리는 깊이를 전달한다. 노래를 부를 때만은 다른 세계의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노래로의 진심이 묻어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노래 또한 연기와 마찬가지로 효율적이고 감흥 깊은 전달이 목적일 텐데, 로즈에게 받은 감동과 여운이 깊다. 특히 극중 로즈가 직접 부르거나 배경으로 깔리는 OST의 가사가 인상적인데, 모두 자신의 얘기를 직접적으로 풀어냈다. 그녀의 말 못할 사정과 진심을 노래를 통해 자연스럽게 전달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가장으로서, 그리고 성장을 위해. 


꿈과 현실 그리고 여성


영화는 로즈를 주축으로 마리온과 수잔나가 그녀를 받치는 두 축이다. 비록 로즈에겐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고 고된 꿈에의 길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는다. 꿈에 있어서는 한 치의 흩트러짐도 없다. 꿈이 있었지만 가난하였기에 현실에 두 발을 꼭 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수잔나는, 그녀를 물심양면 돕는다. 여성으로서의 연대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다. 


하지만 수잔나는 로즈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바, 로즈에겐 홀몸으로 20년 동안 빵집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엄마가 있고 할머니 손에서 키워지다시피 하는 두 아이도 있다. 그들을 뒤로 한 채 홀로 갈 길을 가려 하는 게 올바른 건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다. 다만, 이 영화에서 극에 큰 영향을 끼치는 남자가 없다는 게 눈에 띈다. 로즈와 수잔나, 로즈와 마리온의 관계 자체가 여성영화로의 모습을 상징한다 하겠다. 


로즈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고 가정해보자. 볼 것도 없이 두 아이는 할머니가 키웠을 테고, 로즈는 가장이지만 가족을 지키지 않고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신의 성공을 위해 직행했을 테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는 여자이고 가장이며 성공에의 꿈을 꾸기보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 영화를 보며 생각해야 할 것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꿈인가, 현실인가의 두 갈래에 여성이 자리잡았을 때 선택의 기준과 방향과 옳고 그름은 무엇이 될까. <와일드 로즈>가 여러 신호탄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성장하는 법


영화가 택한 건 성장이다. 로즈 그리고 마리온의 성장. 성장에 있어선 여성 키워드는 빠진다. 그렇다고 꿈과 현실에서 갈팡질팡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인지상정,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보통의 생각이다. 아픈 아이를 두고 성공의 목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가? 이는 여성과 남성을 떠나, 꿈과 현실을 떠나, 인간으로서의 고민이다. 참으로 영리한 영화이다.


마리온의 성장은 다시 꿈과 현실의 선택이다. 그녀도 꿈이 있었을 터, 하지만 실현되지 않아 20년간 빵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 아닌가. 딸의 진심을 깨닫고 그녀의 꿈을 응원한다. 인지상정이 꿈과 현실의 선택으로 교묘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흥미롭다. 성장의 다층적이고 다채로운 모습을 짧지만 굵게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성장은 아니다. 때론 뒤로 물러서는 것, 양옆으로 새는 것, 정해진 길 없는 곳으로 향하는 것도 모두 성장의 면면이다. 즉, 일차원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와일드 로즈>는 쉽게 보여주지만 그 이면은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은 성장이 시종일관 함께한다. 참으로 멋진 영화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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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있기까지, 35년 전의 <모리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1.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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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모리스>


영화 <모리스> 포스터. ⓒ알토미디어㈜



지난해 전 세계를 사랑의 물결로 물들였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하, '콜바넴'), 주인공으로 분한 티모시 샬라메를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주었지만 영화계의 시선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훌륭하게 각색한 제임스 아이보리에게 말이다. 그는, 1928년생으로 90세의 연세로 감각적이고 섬세한 영화를 내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누구인가. 1960년대 초에 장편 연출로 데뷔해 많은 걸작 소설을 원작으로 걸작 영화를 내놓은 바 있다. 특히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호 E. M. 포스터의 걸작들을 다수 영화로 옮겼는데, <전망 좋은 방> <모리스> <하워드 엔즈>가 그것이다.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있어 자타공인 최고의 제임스 아이보리이기에, 하나같이 원작 못지 않은 걸작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주지한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제작 당시 즈음에 한국에도 소개되었지만, <모리스>만은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번에 32년 만에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한다. 원작자 E. M. 포스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 소설을 완성한 1914년 당시 사회통념 상 받아들일 수 없는 소재와 주제인 바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엔 출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여 그가 죽은 이듬해인 1971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영화 <모리스>는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고, 두 주연배우인 휴 그랜트와 제임스 윌비가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으며, 음악상까지 수상했다. 참고로 당시 볼피컵 여우주연상은 <씨받이>의 강수연이 차지해 우리나라 영화계에도 깊이 각인된 해이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그들


20세기 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의 모리스가 지주 집안의 귀족 클라이브를 만난다. 여타 친구들처럼 함께 문학, 철학, 음악 할 것 없이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대화들로 한껏 대학생활을 만끽한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만 흘러야 하는 감정이 그들 사이를 관통한 것이다. 


클라이브의 반대로 육체적인 관계까지는 가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 건 아는 그들, 어느 날 터진 사건으로 클라이브가 돌아선다. 클라이브가 속했던 사교모임을 이끌던 자작 학우가 동성애로 재판을 받아 모든 것을 잃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잃는 게 두려웠다. 반면 클라이브를 잃는 게 두려웠던 모리스는 전에 없이 힘들어 한다. 


모리스는 의사를 찾아가 병을 치료해달라고도 하고 최면술사를 찾아가 여성을 사랑하게 해달라고도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았고 여성을 사랑할 수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 클라이브의 하인 알렉이 그를 알아보고 접근해온다. 육체적 관계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비윤리적, 비합법적 사랑


영화는 '모리스'를 통해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며 그에 엮인 영국의 당시 시대상까지 곁들인다. 명확히 나뉘어져 있진 않지만 사실상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모리스와 클라이브가 1부를 주요하게 구성한다면 모리스와 알렉이 2부를 주요하게 구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동시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신을 알아가며 시대를 거스르는 모리스의 성장 서사도 엿보인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 출신이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보수적인 수업을 받지만 자신도 모르게 남성 학우에게 끌리는 걸 어찌할 수 없다. 모리스도 클라이브도 마찬가지다. 다만 육체적 관계로의 발전을 저어하는 건 클라이브다. 그런 가운데 보수적인 영국의 법체계가 그들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다. 그들의 사랑은 '비윤리적인' 동성애에서 '비합법적인' 동성애로 옮겨간다. 윤리와 법은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 아닌가.


안으로 천착할 수밖에 없는 그들, 잃을 게 많은 클라이브는 한때의 치부로 넘어가려 하는 반면 모리스는 자신의 문제로 치환시켜 본다. 그에겐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게 병이어야만 하고, 병이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남성 아닌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그때 그 앞에 이르른 알렉은 천사 아니면 악마인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전에 <모리스>


<모리스> 개봉 35년 만에 <콜바넴>이 개봉했다. 두 작품 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본을 쓰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외적 공통점 외에, 작품 내적으로도 공통점이 많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풍광과 역시 아름답기 그지 없는 두 주인공 청년은 설정상의 공통점이라 한다면, 피아노와 풀밭과 사과·복숭아는 둘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그 자체론 특별하지만 기시감을 유발하는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한편 <콜바넴>이 사랑의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풍광만이 기억에 남아 평면적이라고 한다면 <모리스>는 그에 더해 여러 생각할 거리들을 남겨 보다 입체적이라고 하겠다. 극의 배경이 되는 100여 년 전 영국에서 동성애가 넘어야 할 산은 무수히 많았다. 윤리와 법이라는 외부의 산, 역사와 전통까지 지니고 있다. 그 앞에서 한낱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모리스가 가는 길은 단순히 현실 아닌 이상의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투와 다름 아니다. 목숨과 명예와 재력 등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식적인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세상은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다.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선 과거를 들여다보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 <콜바넴> 이전에 <모리스>가 있었고, <콜바넴>의 아름다움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모리스>가 한 역할을 지나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로서가 아닌, 영화 속 시간과 공간 배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 인지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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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나들고, 경계가 무너지는 대단하고 충격적인 경험 <경계선>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1.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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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경계선>


영화 <경계선> 포스터. ⓒ(주)제이앤씨미디어그룹



스웨덴 출입국 세관원으로 일하는 티나, 그녀는 냄새로 감정을 읽어내어 손쉽게 불법 입국자를 적발한다. 일 잘하고 신뢰 가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괴물 같은 외형을 가져 스스로를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킨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간 숲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도박꾼과 함께 살아가는 게 그 일환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출근해 불법 입국자 적발에 여념이 없다. SD카드에 아동 포르노를 잔뜩 넣은 멀쑥한 남자 한 명을 잡고는, 또 한 명의 남자를 잡고자 한다. 그런데, 그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 날 또 만난 그, 역시 잡아들였지만 문제가 없었다. 분명, 불법의 냄새가 났는데 말이다. 사실 그에게서 나는 냄새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이 있었다. 뭔가 본능적으로 끌리는... 그리고 그의 외모 또한 자신과 비슷했다. 


한편, 티나는 아동 포르노 사건의 뒤를 캐는 데 그녀만의 능력으로 도와준다. 그런가 하면, 알 수 없는 그 보레가 기거하는 호스텔로 찾아가선 얘기하다가 벌레를 먹게 된다. 이제까지 살아오며 아리송했던 자신의 정체에 한 발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급기야 그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선 함께 살자고 제안하는 티나, 그들은 곧 사랑에 빠진다. 보레와의 사랑은 티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티나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동 포르노 사건 뒤에 보레가 있다는 걸 알고 고민에 빠진다. 그녀는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경계를 넘나들다


영화 <경계선>은 이란 출신의 스웨덴 감독 알리 아바시의 2018년작으로, 제71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의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엔 2019년 10월 말에야 개봉되었으니, 최초 개봉 이후 1년 반만에 늦게 소개된 것이리라. 뛰어난 작품성과는 별개로, 쉬이 가시지 않는 충격이 작품을 휘감고 있기 때문에 수입하기까지 오랜 고심이 필요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영화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거니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기도 한 명작 스웨덴 영화 <렛 미 인>의 원작자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북유럽 특유의 자연 경관 배경, 기기묘묘한 스토리, 아름답고 슬픈 서정적 로맨스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경계선> 또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보다 심도 깊게 생각할 거리가 넘치고 넘치는 게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괴물의 외형을 한 티나와 보레를 중심으로, 영화 내적으론 인간과 비인간, 남성과 여성, 아름다움과 추함,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의 경계를 넘나들고 영화 외적으론 신화와 현실, 판타지와 스릴러를 넘나든다. 그런가 하면, 경계에 대해 정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는 나름대로의 해답을 내놓기도 한다. 


스웨덴 난민 문제로의 확장


티나로 말할 것 같으면, '못생겼다' 정도가 아닌 '괴물 같다' 정도의 외형을 가졌다. 냄새로 감정을 읽고, 사람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며, 숲속에서 평안을 찾고, 동물과 가까이 지낸다. 보레가 말하길 티나는 인간이 아닌 멸종 위기에 처한 종족 '트롤'이라는데, 사실이라면 티나의 모든 걸 합당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 티나는 여성으로서의 성관계를 할 수 없었던 게 남성의 생식기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티나라는 존재 자체가 경계선을 말한다. 태생으로 저쪽에 속하지만 후천적으로 이쪽에서 지내왔기에, 뭐라고 한마디로 지칭할 수가 없다. 어떤 존재를 두고 반드시 한마디로 지칭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만드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일 텐데, 100%에 가깝게 달성했다 해도 무방하다. 티나는 그도 그녀도 되고 인간도 트롤도 된다. 티나와 보레는 추하지만 아름답다. 보레는 옮지 않은 일을 하지만, 인간의 시선에서일 뿐이다. 


영화 밖으로 확장시켜 보면, 이란 태생으로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리 아바시 감독이 보이고 나아가 스웨덴의 난민 수용 갈등이 보인다. 알리 아바시 감독에 대해선 잘 모르니 뭐라 말할 순 없겠으나, 스웨덴의 경우 문제시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북유럽하면 떠오르는 포용, 화합, 융합의 정책이 최근 몇 년간 유럽을 강타한 난민 문제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모로 흔들리는 사회와 경제의 원인을 이민자와 난민자들에게 전가시키는 모양새라고 한다. <경계선>을 스웨덴의 현실에 적용시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미묘한 경계 도는 경계의 미묘함


문제작으로서의 작품 외향적 분석과 함께, 작품성으로서의 내면 분석도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는 뇌리에서 쉬이 지워질 것 같지 않은 굉장한 캐릭터성이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정작 활동성 있고 와일드한 액션을 취하지 않는 정적 연기를 펼친다. 와중에 카메라는 주인공의 표정과 움직임을 살피는 데 수시로 클로즈업을 사용하는데, 그 미묘함을 포착하고자 한 것 같다. 미묘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경계'를 표현하는 주된 소재가 아닐까 싶다. 알게 모르게 '미묘한 경계' 또는 '경계의 미묘함'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비록 한순간일지도 모르지만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오직 나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차원과 시간과 공간을 넘어 통합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바라본 인간은 '한낱'이라고 표현해도 과분한 존재가 아닐까.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본 수많은 경계들이 허물어지는 대단한 경험을 한다. 곧 극중 티나의 경험이다. 


영화의 중반, 가히 충격적이고 불쾌하기까지 하지만 일면 이해가 되는 순간 아름다운 광경으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목격할 것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괴물 같이 추했던 티나가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영화의 모든 면면들이, 우리의 시선을 강탈하고 머릿속을 헤집어놓으려는 게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열어주기 위한 것임을 깨닫길 바란다. 물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각각의 몫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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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점철된, 난해한 우주 스릴러 <하이 라이프>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0.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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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하이 라이프>


영화 <하이 라이프> 포스터. ⓒ올스타엔터테인먼트



아무것도 모른 채 감독과 배우들의 면면만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여성 감독이자 북미의 대표 영화제인 뉴욕영화제의 총아라고 할 만한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신작, 로버트 패틴슨과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을 맡은 <하이 라이프>도 그런 경우였다. 지난 6월말에 개봉한 <마담 싸이코>도 그러했는데, 영화가 상당히 기대에 못 미쳤었다. 


줄리엣 비노쉬라고 하면, 이자벨 위페르와 더불어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로 세계 3대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미국 영국 여우조연상을 최초로 석권한 걸로 유명하다. 그도 그렇지만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의 면면을 보면 '영화 보는 눈이 탁월하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로버트 패틴슨은, 그 유명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2000년대 말에서 2010년대 초를 화려하게 수놓고는 예술영화로 노선을 틀어 연기력을 뽐냈다.


<하이 라이프>는 사실 로버트 패틴슨이 원탑 주연에 가까운 영화인데, 보다 진중하고 누가 봐도 연기에 도가 텄다고 생각할 만한 배우를 염두에 뒀다는 클레어 드니 감독의 심중을 로버트 패틴슨이 열렬한 구애로 움직였다고 한다. 영화를 즐김에 있어 그의 연기를 일순위로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그런 그가 매달렸다는 영화의 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태양계 밖, 지구의 범죄자들


태양계 너머 우주 어딘가, 몬테는 우주선 안에서 홀로 아기 보이스를 키우고 있다. 태양계를 지나온 후부턴 지구와 통신이 되질 않는다. 원래부터 혼자였던 건 아니었는지 죽은 걸로 보이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는 우주복을 입혀 그들을 우주선 밖으로 하나하나 내보낸다. 몬테를 포함, 그들 모두는 사형수에 준하는 범죄자들이다. 그들은 블랙홀에서 에너지를 추출해오는 임무를 띄고 있다. 


사실 그들은 지구에서 행한 실험의 일환으로 우주선을 탔다. 금기를 범하고 사형수가 된 범죄자들을 우주로 버려 사실상 사형시킨 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체크하는 것이다. 하여 그들은 의무적으로 지구와의 통신을 이어가야 했다. 문제는, 우주선 안에서 행해진 또 다른 실험이다. 아이를 죽이고 우주선에 타게 된 딥스 박사는 우주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게 가능할지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실험을 강행한다. 


하나둘 씩 죽어가는 범죄자들, 추악한 욕망과 본성을 오가며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죽이며 자신이 자신을 죽인다. 와중에 태어난 아기 보이스, 욕망과 본성을 억제하며 살아간 몬테. 하지만 포기 없이 살아가려 해도 희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지구와의 통신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구로 돌아갈 순 없을 테고 돌아간다 해도 사형수를 면치 못한다. 그렇다고 임무를 행하기에도 힘들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우주의 망망대해를 하염없이 돌아다닐 뿐이다. 


금기와 욕망


영화 <하이 라이프>는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SF라고 하기엔 힘들고 긴장감을 유발하는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힘들다. 장르적으론 여기 한 발 저기 한 발을 걸치곤, 온갖 은유와 상징으로 다양하고 난해한 질문을 던지며, '있어 보이는' 영화를 내놓았다. 어정쩡한 우주SF보단 괜찮을 수 있겠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느낌이 강하다. 


'금기'가 영화를 관통한다. 몬테가 아기에게 타부 인형을 건네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려준다. '금기'라는 뜻의 타부, 몬테는 여동생을 살해했고 딥스 박사는 남편과 자식을 살해했다. 딥스는 우주선에서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행하는데, 방사능으로 죽을 게 뻔한 상황에서도 여자 탑승자들에게 계속 임신 실험을 강행하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몬테에게 약을 먹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한 후 그를 강간해 정액을 빼내어 보이시를 억지로 임신시킨다. 


금기된 행동의 결과로 결국 우주선에 타게 된 범죄자 탑승자들, '욕망'이 그들을 휘몰아친다. 자위방에서 욕정을 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강제로 이성을 탐하다가 비극적인 결과를 낳기도 하고, 갑작스런 뇌종양으로 죽어가면서도 마지막으로 갖는 생각이 이성을 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가 하면, 딥스는 모든 행동이 욕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 결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자신이 자신을 죽이는 금기에의 욕망이 고개를 든다. 


효율적이지 못한 은유와 상징


범죄자 탑승자들을 상징하는 게 금기와 욕망이라는 단순 추상 개념뿐만은 아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들을, 특히 몬테와 딥스를 지칭하는 개념이 존재한다. 욕망의 화신과도 같은 딥스와 달리, 몬테는 적어도 우주선에선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극중에서 몬테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듯, 자신은 수도승이고 딥스는 마녀이자 주술사인 것이다. 욕망은 타락하고 타락한 욕망은 파멸에 이르는가. 


몬테, 딥스와 더불어 극중 중요인물 중 하나라고 할 만한 보이시 또한 분명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을 테다. 그녀는 관계를 가지지 않고 임신하였다. 동정녀 마리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가 성령의 아이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수태고지' 후, 성모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 수도승, 주술사, 마리아 등의 상징으로 보아 영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는, 그러나 주지한 은유나 상징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저 늘어놓기만 하고는 제대로 연결시켜 의미 있는 무엇을 내놓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희망을 찾을 길 없는 상황에서 선택을 하는데, 그것이 희망일지 허무일지 보는 이들마다 다를 것이라는 열린 결말과 해석 정도? 결국 해석을 요하는 또는 강제하는 서사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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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엔 형제 범죄 스릴러의 전설적 시작 <블러드 심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10.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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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블러드 심플>


영화 <블러드 심플> 포스터. ⓒ(주)콘텐츠 윙



오랜 세월이 흘러 전설을 처음 혹은 다시 목도하는 건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경우 극장 개봉을 해주지 않는 이상 접하기가 쉽지 않다. 외국 영화인 경우엔 더욱 어려운 건 자명한 사실이다. 다른 채널로는 잘 접하게 되지 않으며 제대로 된 번역으로 즐길 수가 없다. 하여 얼마전 최초 개봉했던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나 역시 얼마전 수십 년만에 재개봉한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 같은 경우는 축복이라 하겠다. 


오래전의 전설적인 작품들이 재개봉이나 최초 개봉으로 선보이는 건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가 있다. 이번 11월 초에 최초 개봉 예정인 1985년작 <타이페이 스토리>나 1987년작 <모리스>의 경우 작품 자체가 대단하기도 하지만 감독인 에드워드 양과 제임스 아이보리가 최근 여러 루트로 다시 한 번 이름을 알렸기 때문이겠다. 한편, 코엔 형제의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블러드 심플>의 경우 제2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상영되면서 큰 호응을 얻고서 개봉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블러드 심플>은 국내에선 극장 개봉 대신 비디오로 정발되면서 '분노의 저격자'로 번역되어 불렸다. 이 영화는 코엔 형제를 말할 때 항상 따라다니는 '선댄스 영화제' 제1회 심사위원대상작이다. 언젠가부턴 거꾸로 선댄스 영화제를 말할 때 코엔 형제가 따라붙었지만 말이다. 여하튼, <블러드 심플>은 선댄스 영화제가 추구하는 작가주의 독립영화의 부흥에 가장 잘 부합하는 영화라 하겠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불륜 사건


미국 텍사스, 바를 운영하는 마티에게 자신을 사립탐정이라고 밝힌 남자가 찾아와서는 사진을 건네며 말한다. 마티의 술집에서 일하는 종업원 레이와 마티의 아내 애비가 침대에 함께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고, 그가 말하길 밤새도록 쉬지 않고 뒹굴더란 것이었다. 마티는 나쁜 소식을 전한 사립탐정 비저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술집에 찾아온 레이는 마티에게 오히려 뻔뻔하게 "뭐죠?" "날 치겠소?" 식으로 굴며 비웃으며 2주치 급료를 요구한다. 마티는 너 따위와 얘기를 섞고 싶지 않다며 아내 애비가 그러고 있는 게 자신을 우습게 만든다고 말한다. 레이는 해고 당한다. 레이의 숙소에 함께 기거하게 되는 레이와 애비, 마티는 애비를 납치하려다가 실패한다. 


레이와 애비를 용서할 수 없는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약속하며 레이와 마티 청부살인과 확실한 뒷처리를 맡긴다. 자신은 비저의 제안에 따라 낚시를 떠나고, 비저는 실행에 옮긴다. 다시 만난 그들, 비저는 총으로 쏴서 죽인 그들의 사진을 마티에게 건네고 마티는 비저에게 1만 달러를 건넨다. 그때 비저가 마티를 죽이는 예상치 못한 짓을 저지르고, 레이가 다시 마티를 찾아와서는 죽은 마티와 애비의 총을 보고는 애비가 마티를 죽였다고 판단해 현장을 치우고 마티를 데려가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하드보일드 고전 오마주


<블러드 심플>은 코엔 형제의 고전, 그중에서도 하드보일드 고전을 향한 오마주의 일환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개인이 상황이나 환경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해결해 나가거나 또는 꼬일대로 꼬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상황이나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된 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옛날이야말로 한 개인이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옛날의 범인(凡人)은 세상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 반면 지금을 비롯 점차 범인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하여 비극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을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원제 'blood simple'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하드보일드 소설 창시자라 불리는 대실 해밋의 데뷔작 <붉은 수확>에서 따온 단어로 폭력적인 상황에 장기간 몰입한 사람들의 추악하고 두려운 사고방식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 애비를 제외한 세 남자의 사고와 행동을 들여다볼 것도 없이 대략의 겉모습으로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는 곧 '그럴 수도 있겠다'로 바뀐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이 자못 평범해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시선으로는 별 것 없을 만한 고전 스타일을 가져와 '코엔 스타일'로 변형 아닌 비틀기와 재해석을 시도한 게 35년 전이니 말이다. 바로 그 비틀기와 재해석에 이 영화를 보는 이유와 방법이 있다. 메이저와 마이너 경계에서 35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코헨 형제의 시작을 살펴보는 건, 현대 영화의 아이콘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름 없을 것이다.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


영화를 시작하는 내레이션이 눈길을 끈다. "세상은 불만자로 가득해.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교황이 잘못하면 미 대통령도 그 어느 것도 잘못될 수 있어. 난 불만을 가진 채로 살 거야. 이웃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모두 헛일이야. 러시아 체제는 모두들 서로에 협력하도록 되어 있어. 그건 이론일 뿐이고, 내가 아는 건 텍사스야. 여기선 너는 너야."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이 영화를 관통한다 하겠다. 


불확실성은 현대 사회를 지칭하고 상징하는 대표적 개념이다. 시시각각 어디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현대 사회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 불확실성은 항상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개념이었을 터, 35년 전 코엔 형제는 영화를 통해 불확실성의 굴레에 처한 인간을 고찰했다. 코엔 형제는 일면 정형화되어 왔을 불확실성을 확장시키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펼쳐 보인다. <파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이어질 코엔 형제표 범죄 스릴러의 시작이다. 


<블러드 심플>로 시작된 전설은 코엔 형제뿐만 아니다. 형 조엘 코엔의 실제 부인인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이 영화의 주연으로 연극계에서 영화계로 성공적으로 이착륙할 수 있었다. 이후 코엔 형제의 페르소나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에서 단역, 조연, 주연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아카데미 2회 수상의 빛나는 업적을 자랑한다. 한편 코엔 형제의 업적은 정리 및 언급이 불필요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의 촬영 감독과 단역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배리 소넨펠드는 이후 코엔 형제와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면서 촬영 감독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빅>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미저리> 등으로 촬영 감독으로선 최고의 커리어를 쌓은 그는 <아담스 패밀리>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해냈고 이후 <맨 인 블랙> 시리즈로 크게 흥행해 유명 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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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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