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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철 없고 생각 없는 어른들의 폭력 앞에 마음 둘 곳 없는 아이 <와일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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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와일드라이프>


영화 <와일드라이프>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폴 다노, <옥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 전에 이미 <미스 리틀 선샤인> <데어 윌 비 블러드> <유스> 등 명작의 주연으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배우이다. 큰 영화보단 내실 있는 영화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3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왠만한 배우들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필모를 쌓았다. 여담으로 2021년 개봉 예정인 <더 배트맨>에 주요 빌런 중 하나인 리들러로 출연한다고 한다. 


그가 지난 2018년 내놓은 연출 데뷔작 <와일드라이프>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우리나라에선 명성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가장 미국적인 작가라고 불리는 리처드 포드의 동명 원작을 바탕으로, 폴 다노와 함께 그의 오래된 연인 조 카잔이 각색을 맡았다. 칸, 뉴욕, 선댄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평가를 받으며 훌륭한 데뷔 퍼포먼스를 보였다. 


여기에 설명이 필요 없는 연기파 배우들인 제이크 질렌할과 캐리 멀리건이 부부로, 폴 다노와 생김새뿐 아니라 분위기까지 닮은 호주 출신의 신인 배우 에드 옥슨볼드가 사실상 주인공인 아들 조로 열연했다. 감독으로선 배우에게로 향하며 튈 수 있는 연기를 작품으로 당겨 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게끔 하는 게 어려웠을 것이다. 자칫 연기만 남은 구멍 숭숭 뚤린 영화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떠난 아빠와 마음이 떠난 엄마 사이의 어린 아들


1960년 미국 서부 몬태나, 제리(제이크 질렌할 분)와 자넷(캐리 멀리건 분) 부부와 외동아들 조가 이사온다. 평범할 것 같았던 가족에게 실직이라는 불행이 닥친다. 제리가 식료품점에서 해고 당한 것이다. 절망에 빠져 있는 제리를 대신해, 먹고 살아야 하기에 자넷은 수영강사로 취직하고 조도 사진관에서 일을 시작한다. 와중에 제리에게 식료품점으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지지만 제리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곧 이어지는 제리의 폭탄선언, 하늘의 도움 없이는 진화가 될 것 같지 않은 위험한 산불 현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돈도 많이 주지만,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터였다. 조는 아빠의 멋있고 이상적인 선택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넷은 남편이 식료품점을 마다 하고 굳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걸 받아들일 수 없다. 그녀는 그가 가족을 말 그대로 떠난다고 인식한다. 


제리가 떠나자마자 자넷은 전에 없이 한껏 차려입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이내 수영을 배우러 오는 갑부 워렌 밀러와 가까워진다. 그들은 서로의 집을 오가는데, 그 자리에 조가 함께 한다. 조는 아빠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기에 엄마가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와중에 자넷은 조를 데리고 산불 현장으로 향하기도 한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산불을 두 눈으로 목격한 조는 갈팡질팡 마음 둘 곳을 잃고 헤매는데... 제리는 돌아올까? 자넷도 돌아올까? 어린 조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가.


시대와 조우하는 캐릭터들과 상황


영화 <와일드라이프>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철 없는 어른 부모를 둔 어린 아들의 안타까운 성장 이야기이다. 가족에게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돈과 자부심을 택한 제리와 기다렸다는 듯 아들을 내팽겨둔 채 돈과 외로움을 채워줄 불륜에의 길을 밟아가는 자넷 모두 철 없는 걸로는 모자란 생각 없는 폭력적 어른들이다. 그들의 이기적인 말과 행동 모두가 조에겐 상시적 폭력으로 다가왔을 테다. 


직접적이지도, 물리적이지도 않은 일반적 폭력 같지 않은 폭력 앞에서 조는 자신보다 가족을 택한다. 즉, 아빠와 엄마를 모두 지켜 한 울타리 안에서 어떻게든 같이 살아보려 한 것이다. 학교 공부는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일에 전념해 돈을 벌어오고, 물리적으로 없는 아빠와 정신적으로 없는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며, 해체되어 가는 가정을 지키려 한 것이다. 


영화는 개인적으로 아쉽게도 당대 미국의 자화상을 펼쳐놓지 않는다. 그저 변화에 직면한 가족의 갈등과 노력과 해체를 비유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1960년 미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고의 황금시대 한 가운데였다. 다만, 1950년대 물질적·정신적으로 최고의 절정기를 보낸 직후로 변화의 시기가 눈앞에 다가왔으니 1960년대는 격변과 혁명과 위기의 시대였던 것이다. 


영화에선 제리는 돈도 많이 받으면서 원하는 일을 하려는 물질적 자부심의 발로일 테고, 자넷은 잃어버린 자신을 찾는다는 명분 하에 자유분방의 자유를 만끽하는 정신적 자부심의 발로일 테며, 워렌 밀러는 두 번의 전쟁에 출전해 다른 사람들의 무능함 덕분에 갑부가 된 정통 기득권의 모습일 테다. 조는 불안한 만족의 시대에 10대 중반을 맞이한 불행의 청소년으로 곧 다가올 변혁의 시대 직전 봉합의 의무를 스스로 떠안은 세대라 하겠다. 제리와 자넷은 다가올 시대의 기치가 될 '와일드라이프'의 선경험자일까, 앞 세대의 풍요로움을 받기만 한 없어져야 할 대상일까.


개인적인, 가족의 성장 이야기


<와일드라이프>를 보는 시선의 눈높이 또는 깊이가 제각각 다를 수 있겠다. 주지한 것처럼 캐릭터들과 상황을 시대상과 조우시킬 수도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제리와 자넷의 행동 모두 일면 이해가 간다. 개인이기 이전에 가족의 일원이라고 하지만, 가족의 일원이기 이전에 개인이기도 한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게 다름 아닌 내 자신이라고 본다면, 그들의 행동은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다. 


문제는, 세상에 태어나게 했으면 최소한의 보살핌과 챙김을 주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그들의 눈엔 차분하고 조심성 있고 착하고 말썽 없는 조가 다 큰 것처럼 보이겠지만, 조로선 14살의 어린이로 부모가 세상의 전부인 나이이다. 그가 보는 세상은, 그들이 보여주는 세상임과 동시에 그들이 만든 세상인 것이다. 그들의 '와일드라이프'적인 세상이 정상적이라고 할 순 없을진대, 그가 받아들이는 세상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다. 조를 향한 안타까움의 원천이다. 


공감이라는 차원에선 위의 시대 이야기보다 아래의 개인 이야기가 앞선다 하겠다. 시대와 장소와 사람을 불문하고 누구나에게 가닿을 수 있는 이야기, 가족 이야기 말이다. 가정 환경이야말로 가장 절대적으로 그 사람을 규정한다. 그저 중요하단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다. 영화는 그 중요성과 과정을 밀도있고 세밀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폴 다노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폴 다노 '감독'의 연출이 심히 기대된다. 그만의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지 않는 단단한 연기 공력이 연출에도 이어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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