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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들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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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결혼 이야기>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10년, LA에서 잘 나가던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이 연극 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와 결혼하면서 뉴욕으로 떠나 생활한 세월이다. 그 사이 그들은 아이도 낳고 찰리의 극단에서 연출가와 배우로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니콜은 LA로 돌아가고 싶었고 찰리에게 제안했지만 뉴욕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게 꿈인 찰리는 듣지 않았다.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는 관계. 


불에 기름 부은 격으로 니콜과의 잠자리를 뜸하게 하던 찰리가 극단 동료와 불륜을 저지른다. 물론 찰리는 원나잇이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때마침 니콜에게 드라마 배우 제안이 들어오고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그녀는 아이와 함께 LA로 향한다. 그들은 자연스레 별거 수순으로 들어가고 이혼 조정 과정에 들어간다. 처음엔 큰 생각하지 않은 듯, 둘 사이의 원만한 조정을 원했다. 


하지만 니콜이 드라마 제작 스텝이자 이혼 선배(?)의 조언을 얻어 실력 좋은 변호사 노라와 이혼 과정을 전담시키면서 국면은 전환된다. 찰리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뉴욕 아닌 LA에서 변호사를 구해 조정 과정을 진행해야 했다. 곧, 치열하고 치졸하고 치욕스러운 이혼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혼하기 전까진 결혼 생활이 이어지는 만큼 결혼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의 최고작


영화 <결혼 이야기>는 뉴욕 출신의 미국 이야기 전문가 노아 바움백 감독의 최신작이자 최고작이다. 그는 데뷔 이후 줄곧 블랙 코미디 계열의 드라마를 선보였는데, 한결 같이 청춘과 가족 이야기에 천착했다. 결혼과 이혼 이야기를 전하는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노아 바움백 작품들을 집대성했거니와 그의 필모상 다음 챕터로 가는 중요 길목으로 비춰진다. 


뉴욕 출신의 블랙 코미디 드라마 전문 감독이 한 명 떠오른다. '우디 앨런', 2000년대 들어 전 세계 대도시를 한 바퀴 돌면서도 끊임없이 뉴욕 이야기를 변주해오며 제2의 전성기를 맞고는 위태위태해진 그의 자리를 노아 바움백이 이어받을 모양새이다. '특별한 도시 뉴욕, 보통 사람의 이야기'라는 모토로 <프란시스 하> <위아 영> <미스트리스 아메리카> 그리고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스>까지 연달아 내놓았다. 


연출 데뷔를 앞뒤로 그는 절친 웨스 앤더슨 감독과 각본으로 비즈니스 연을 맺었는데,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과 <판타스틱 Mr. 폭스>가 그 작품들이다. 노아 바움백 작품의 미장센에서 웨스 앤더슨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그런 한편, 노아 바움백이 영향을 준 이도 있는데 그레타 거윅이다. 그들은 <프란시스 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를 함께 했다.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 <바비>를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 공동 각본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그레타 거윅은 우디 앨런과도, 웨스 앤더슨과도 한 작품씩 한 이력이 있는 만큼 영향을 주고 받는 그들이다. 


이혼 이야기이자 결혼 이야기


영화는 두 갈래 스토리로 이어진다. 이혼이라는 목적에의 과정과 그 자체로 목적이자 과정인 결혼. 니콜과 찰리는 사랑의 결과물로 결혼을 택해 아이를 낳아 과정을 영위했지만,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인간 대 인간의 어긋남을 이혼으로 결론 맺는다. 하지만 이 사실은 알아야 할 것, 법적으로 이혼이 결정될 때까지 그들은 결혼한 사이이기에 둘이 함께 해야만 하는 일이 많다. 그것도 아주 사소한 일들. 


이혼에의 과정은 점점 과열되어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힐 때까지 계속되지만, 과정으로서의 결혼 생활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들에겐 아이가 있지 않은가. 그들 간의 결혼과 이혼에 아무런 원인 제공을 하지 않은 죄 없는 아이 말이다. 아이를 위해 그들의 결혼 생활은 끝까지 이어져야 하고, 끝나고 나서도 결코 완전히 매듭지어질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 이 영화를 보는 중엔 '이혼 이야기'가 제목에 보다 어울리지 않나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래서 '결혼 이야기'이구나 하고 생각을 바꾸거나 혹은 원래대로 돌리게 되는 경험을 할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에서도 뉴욕이라는 곳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의 기법에 기댄 측면이 크다. 영화는 특정된 공간이 아닌 평범하고 한정된 공간에서 현실톤과 연극톤을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큰 방점을 찍는다.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의 순간포착 모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영화를 통해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는 자탕공인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은 일찍이 좋은 연기를 선보였으니, 스칼렛 요한슨은 어벤저스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매치 포인트>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아담 드라이버는 스타워즈 일원으로 활약하기 전후로 <헝그리 하트> <패터슨> <블랙클랜스맨>을 포함 수많은 '아트 영화'에서 발군의 실력을 선보였다. 한편, 아담 드라이버는 노아 바움백과 <결혼 이야기>로 세 번째 함께 했다. 


그들의 연기로 발현되는 결혼 이야기 속 이혼의 이유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니콜의 말에 따르면 찰리가 니콜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상 서로가 서로를 가장 좋아했던 최초의 행동이 종국엔 가장 꼴보기 싫은 모습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는 필연의 양상 때문인 것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 부분이 서로를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을 말하는 걸로 대칭을 이루는 게 백미인데, 결혼에서 이혼으로 가는 선상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했다. 


영화는 기막힌 순간포착의 모음 같이 느껴진다. 누구나 순간포착은 가능하고 순간의 기억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이 끝없이 이어지면 기가 질릴 만하다. <결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순간포착을 완급조절로 완화시킬 수 있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능력과 원숙미가 함께 걸린 작품이다. 평범한 와중 순간의 극단을 보여줌에 있어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건, 비어 보이지 않는 여백의 미를 깨닫고 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결혼 이야기>는 걸작이고, 이 작품을 비로소 노아 바움백 감독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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