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살인자의 고백>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살인자의 고백> 포스터. ⓒ넷플릭스
1983년 미국 텍사스주. 두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헨리 리 루커스, 그의 입에서 세상을 뒤집을 만한 말들이 연이어 튀어나왔다. 그는 자신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으로, 찰스 맨슨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다양하고도 잔인한 수법으로 지난 수 년간 600명 이상의 여성을 죽였다고 주장 혹은 실토한 것이다. 이후 언론의 대활약으로 그는 전국구 스타가 된다.
텍사스주 경찰은 전담반을 꾸린다. 당시 텍사스 레인저 전설이라 불렸던 짐 바우트웰이 전담반을 이끌며 루커스를 전담 마크했다. 그야말로 수많은 미제 사건을 단번에 해결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누가 봐도 석연치 않은 점은 있었다. 루커스는 IQ 80도 되지 않는 낮은 지능, 불우한 가정 환경에서 모친에게 학대를 받은 경험, 끝내 모친을 죽여 복역한 경력, 정신병원 수감 이력까지 갖추었다.
더불어, 비록 루커스가 술술 훑는 사건 당시의 세밀하고도 치밀한 일들은 누구나 믿을 만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일시와 장소들의 말도 안 되는 비약이 경찰과 레인저 아닌 관계자들의 의심을 샀다. 그런가 하면, 루커스는 대하는 사람에 따라 말을 바꾸기도 했다. 자신을 연쇄살인범이라고 말하기도 하면서, 죽이지 않았다고도 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일까, 루커스는 왜 오락가락하는 것일까.
1980년대 미국을 뒤흔든 연쇄살인범 헨리 리 루커스 미스터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살인자의 고백>은 1980년대 미국을 뒤흔든 또 하나의 연쇄살인범 헨리 리 루커스를 둘러싼 황당무계한 미스터리를 다룬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아보아 황당무계하다고 단정지을 수 있는 그 사건과 그는 당시에는 미국 역사상 최악의 악질 연쇄살인사건과 연쇄살인범으로 악명이 높았다. 무엇보다 그의 실토로 수많은 미제 사건이 해결될 수 있었다. 즉, 미국 사법체계 역사상 최고의 '승리'.
작품은 <푸드 주식회사>로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던 로버트 케너 감독이 탐사전문기자 타키 올덤과 함께 만들었는데, 사실 주 대상으로 삼는 건 헨리 리 루커스가 아닌 경찰로 대변되는 미국 사법체계이다. 수없이 많은 유명 연쇄살인범이 있어왔고 현재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인데, 왜 하필 헨리 리 루커스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여담으로, 헨리 리 루커스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 <헨리: 어느 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세븐> <싸이코> <조디악> <양들의 침묵> <살인의 추억>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연쇄살인범 영화 중 하나로 뽑히는데, 존 맥노튼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너무나도 높은 수위로 3년간 개봉하지 못했다고 한다. 루커스를 맡은 이는 드라마 <워킹데드>의 멀 딕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욘두로 잘 알려진 마이클 루커였다.
허언증과 기억 과대증 환자 루커스와 막장 관료주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헨리 리 루커스는 심각한 허언증과 기억 과대증 환자였다. 그는 말하기 좋아했고 기억을 잘했다. 처음에는 수사관들이 관심을 갖고 잘 챙겨주는 데에서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일종의 행복을 느낀 그는, 희대의 발언 이후에 쏟아지는 전국적인 언론의 관심과 할리우드 스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명성에 희열을 느꼈을 테다. 행복한 희열에 취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거기에, 수많은 미제 사건을 해결하여 자신들의 명성과 명예를 드높일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다가옴을 느낀 전국의 수사관들이 루커스를 찾았다. 특히 텍사스 레인저 전담반은 그야말로 미국을 대표하는 상징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동시에 더 높일 야망에 들떠 있었다. 그들은 눈과 귀를 닫고, 마음의 소리까지 덮어둔 채, 루커스를 철저히 이용한다. 이미 형을 산 어머니 살해를 제외한 1건의 살해 혐의만 명백히 밝혀진 그에게 600건이 넘는 미제 여성 살인 사건의 연쇄살인범 누명을 뒤짚어씌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텍사스 레인저를 관리하는 치안국 총책임자를 비롯한 사법체계 당국에 있었다. 그들은 루커스의 거짓말과 경찰의 야망을 눈감아주면서 거기서 떨어지는 크나큰 콩고물을 앉아서 받아먹으려 한다. 한편으론 그들의 수작에 의심을 두기 시작한 검찰의 어느 검사장을 철저히 제압한다. 그야말로 막장 관료주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루커스도 수사관도 사법체계도 아닌, 진짜 문제는 '진짜 범인'
작품은 헨리 리 루커스의 믿을 수 없지만 믿고 싶은 희대의 발언 후 전국적으로 확장되는 연쇄 미제 살인 사건의 전말과 함께 그 이면에 도사린 치졸한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조리 연쇄 미제 살인 사건의 전말로 쏠렸고 또 이 작품을 보는 내내 쏠릴 수밖에 없지만, 작품 자체의 시선은 이면의 이야기로 향한다. 그리고 우린 아이러니에 다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때 작품은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아이러니란 다름 아닌 헨리 리 루커스에 있다. 그는 명명백백한 살인자이다. 어머니를 살해해 복역한 전력이 있거니와, 부인할 수 없는 여성 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죽어 마땅한 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수백 명의 여성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건 또 다른 이야기여야 한다. 물론 어떻게 보든 그는 살인자이기에, 살인자라면 많이 죽이든 조금 죽이든 죽일 놈인 건 매한가지이기에, 그를 대하는 데 혼란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의 이성이 빛을 발하는 부분이 바로 여기라 하겠다. 그는 수백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아니다.
작품은 여기서 시선을 선회한다. 루커스도, 수사관도, 사법체계도 아닌 수백 명의 여성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 말이다. 그들이 서로 말 맞춰 전국을 들었다놨다 하는 사이 진짜 범인은 자유롭게 길을 활보하고 다녔을 것이다. 전국이 이 말도 안 되는 사기극에 속아 넘어간 사이에 말이다. 범인 혹은 범인들은 그 사이에도 범죄를 저지렀을지 모른다. 헨리 리 루커스가 잡혀 마음 놓고 있는 사이에.
포커스가 여기에 이르니, 비로소 헨리 리 루커스 사건의 핵심이 보인다. 수사는 범인을 잡았다는 자아도취를 위한 것이 아닌 즉, 자신들의 수사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피해자를 위해서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루커스 또한 일면 사법체계의 피해자로 보이고 그 또한 자신을 피해자라고 선을 긋지만, 그도 이 사기극의 주요인물이라는 걸 놓쳐서는 안 된다. 그가 아니었다면 성립되지 않았을 사기극 말이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범죄 다큐멘터리는 역시 믿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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