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믿을 수 없는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포스터. ⓒ넷플릭스
2008년 미국 워싱턴주, 10대 후반의 마리는 가택을 침입한 괴한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다.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해 수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담당 형사 파커를 비롯해 수사 관계자들의 일관성 태도는 피해자를 향하지 않았다. 그들은 수사에만 초점을 맞췄고 마리는 자신이 당한 일을 계속해서 다시 되새기며 소상히 전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일관성 없다고 느낄 진술이 이어졌다.
마리의 '피해자답지 않은' 발랄한 행동도 경찰의 눈엔 이상하게 보였다. 경찰은 꼬투리를 잡아 '허위진술' 개념을 들이댔고 마리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가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가 다시 당했다고 번복하려다 만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허위진술로 고발한다. 마리는 친구를 잃고 직장을 잃고 돈도 잃는다. 나락으로 떨어진다.
2011년 미국 콜로라도주, 듀발 형사가 성폭행 사건을 맡는다. 피해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추후 관리까지 하며 정확한 수사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가해자가 그 어떤 범행 흔적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끈질긴 수사 끝에 우연히 남편을 통해 다른 관할서 형사 라스뮤센을 만난다. 알고 보니 그녀들이 맡았었고 맡고 있는 성폭행 수사의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동일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통상 하지 않는 공조수사로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범인의 실태에 접근한다. 그들은 관할도, 성격도, 원칙도 모두 다르지만 피해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제1의 원칙을 공유한 채 수사를 진행한다.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더해가는 올바름의 두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2008~11년까지 미국 워싱턴주와 콜로라도주를 관통해 일어난 연쇄 강간 사건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 2015년 발행한 <프로퍼블리카>의 수석기자 T. 크리스천 밀러와 켄 암스트롱의 기사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를 책으로 옮긴 <믿을 수 없는 강간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들은 2016년 퓰리쳐상을 수상했고, 책은 2018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2017년 말 시작해 전 세계적으로 퍼진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싶지만, 기사 자체는 그 전에 나왔으니 굳이 끼워맞추려 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작품은 그 자체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니 말이다. 시리즈가 지금 아닌 미투 운동 이전에 나왔어도 충분히 '시의 적절'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시의 적절하지 않았던 때는 없었다.
이 작품은 2008년 워싱턴주의 '마리'와 2011년 콜로라도주의 '듀발' '라스뮤센'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된다. 스토리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되지만, 메시지 상으로도 두 축이 메인이 된다. 즉,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와 성폭행 사건의 수사자로 말이다. 한 축의 더해가는 안타까움과 다른 한 축의 더해가는 올바름이 대조를 이루면서 서로를 향한다.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
마리의 이야기는 제목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도무지 믿기가 힘들고 믿을 수가 없다. 성폭행 피해자에서 허위진술 가해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 처참하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지만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남자' 경찰들의 무지몽매한 생각과 파렴치한 대응이 비극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폭행 피해자 아닌 성폭행 피해자한테만 일어나는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심리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고 알아채려고도 하지 않았다.
반면, 콜로라도주의 '여자' 경찰들은 성폭행 사건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대응해야 하고 수사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하지만 단순히 '앎'의 차원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마리의 경우와 달리 수사를 위해 피해자들을 객관적으로 대하면서도, 수사가 결국 피해자들을 위한 것임을 인지하며 피해자들을 주관적으로, 인간적으로 대했다.
하여, 작품은 말한다. 경찰이야말로 또 다른 절대적 가해자가 될 수 있거니와 그런 사례가 여기 버젓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수사에 임해 자신과 자신의 주위보다 피해자를 더 생각하는 경찰도 있고 또 있어야만 한다고도 말한다. '남자'와 '여자' 경찰을 굳이 분류해서 주지했지만, 보다 중요한 건 피해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이라 하겠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피해자를 생각하고 가해자를 잡으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데 남자 경찰이 따로 있고 여자 경찰이 따로 있겠는가.
성범죄 사건 수사의 모든 것
<믿을 수 없는 이야기>는 작품 내외적으로 마음에 와 닿는 스토리와 평생 잊히지 않을 진리를 선물했다.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은 연약하고 선량하고 어리디 어린 마리가 참혹한 피해를 받고 나서 믿을 수 없는 2차, 3차, 4차... 피해를 받아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런 피해를 당하지 말아야지가 아닌, 나는 그런 가해를 행하지 말아야지도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이 왜 이따구지 하는 생각 말이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하지만, 세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별 것 아닌 쉽고 당연한 진리이지만 그동안 생각해내지 못했던 게 있다. '왜 범죄자들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켜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는 거지?' 하는 생각, 심지어는 '범죄자들을 사회 속으로 보내어 자연스레 정화되게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이 작품은 두 경찰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런 놈들은 절대 활개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고 말이다. 실화이니 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니 밝히는데, 작품 내 사건이자 실제 사건의 범인은 결국 잡혀 워싱턴주에서 68년 6개월 형과 콜로라도주에서 327년 6개월 형을 받아 복역 중이라고 한다. 우중충할 수밖에 없는 작품에서 가장 속시원한 장면이었다.
그러며 지금 한국의 우리들에게도 무언가를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전개된 미투 운동, 하지만 많은 피해자들이 2차 이상의 피해를 받았다. 유독 성범죄 사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피해자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한편 성범죄 사건만의 특수성을 면밀히 살피는 객관적 시선도 유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성범죄 사건 수사의 '올바른' A to Z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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