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스핀 아웃>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핀 아웃> 포스터. ⓒ넷플릭스
출중한 재능으로 출중한 성장가도 안에서 출중한 성적을 기록해온 피겨스케이팅계 엘리트 캣 베이커, 하지만 그녀는 처참한 사고로 머리를 다친 후 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나기 시작한다. 시간은 흘러 더 이상 밀려나면 가망이 없는 나이가 되었고, 그럼에도 이기지 못해 포기하고 만다. 그때 코치 다샤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저스틴과 페어 피겨스케이팅을 제안한다. 캣은 저스틴을 싫어했는데, 그는 잘생기고 부유하고 인기 많고 실력 출중한 안하무인 나쁜 남자였다.
우여곡절 끝에 저스틴과 페어를 하게 된 캣, 피겨스케이팅 인생 제2막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 앞을 막는 수많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 듯 나쁜 듯 종잡을 수 없는 배 다른 여동생 세리나, 어릴 때부터 가장 친했지만 더 높은 순위는 언제나 캣의 차지였기에 마음속 깊이 앙금이 있는 젠, 세리나의 담당 코치로 심상치 않게 의심이 가는 미치, 그리고 최악의 상대인 엄마 캐럴까지. 특히 캐럴은 한때 잘 나가는 피겨스케이터였는데 캣을 임신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심각한 조울증을 앓고 있어 많은 이들과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엄마와 동일한 증세를 갖고 있는 캣, 그녀는 심각한 트라우마로 고생하는 와중에 생전 처음으로 페어에 임하며 선수 경력에 어려움을 겪는 한편 약 없이는 몸과 마음을 제어할 수 없는 조울증으로 엄마처럼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연 그녀는 페어 스케이팅으로 화려했던 선수 경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모두를 떠나가게 만드는 조울증을 잘 관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피겨 스케이팅, 관계, 막장
2020년 새해 벽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핀 아웃>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파란만장 선수 생활과 우여곡절 관계 형성과 지리멸렬 거듭되는 막장으로 점철된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이 되는 캣 베이커 역에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열연했다. 드라마 <스킨스>로 이름을 알리고 영화로 <메이즈 러너> 시리즈로 명성을 떨친 그녀가 원톱 주연 영화 <크롤>로 크게 오른 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것이다.
작품은 겉으론 화려하기 그지 없고 한없이 아름다울 것만 같은 피겨 스케이팅의 피가 나고 알이 배기고 이가 갈리는 이면을 들여다보려 했다. 넘어져 다치기 다반사인 건 물론 발톱이 빠지는 건 당연지사다. 매일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훈련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렇게 영겁이라고 느끼는 시간 동안 쌓아올린 훈련 결과가 단 몇 분만에 결정된다. 절대적인 건 없다, 무조건 상대평가이기에, 무조건 남을 이겨야 한다.
하지만, 남을 이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게 함정이다. 나를 이기는 게 훨씬 어렵다. 경기 안팎의 무지막지한 압박들 속에서, 오로지 나(또는 파트너와 함께) 혼자만 있는 빙상장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야 하니까 말이다. 작품은 아름답고 황홀하기만 한 빙상 연기를 펼쳐 보인다. 사실, 그 모습들만 보아도 이 작품의 이유로 충분하다 하겠다. 물 위에서 평온한 오리가 물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오리발을 놀려야 하는지 알면 알수록, 평온함을 한없이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아니한가.
조울증이 주는 관계의 어려움
<스핀 아웃>이 말하고자 하는 건, 피겨 스케이팅의 면면이 아닐 수 있다. 피겨는 수단일 뿐, 작품은 조울증이라고 하는 질환의 어려운 관계에 목적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캣 베이커와 엄마 캐럴 베이커 모두 제어는커녕 통제 불가능한 조울증으로 본인은 물론 주위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작품은 피겨의 안팎 못지 않게 조울증의 안팎을 내밀하게 다룬다.
조울증에 대해 잘 모르는 게 있다면, 우울증에 더해 조증이 더해졌을 뿐이라는 잘못된 상식에 있다 하겠다. 작품은 조울증에서 우울증보다 조증이 훨씬 더 심각하고, 조증이야말로 조울증 심각성의 주체라고 말한다. 캣과 캐럴은 조증을 막기 위해 리튬을 먹는데, 부작용으로 시무룩해지고 힘이 빠지는 증세를 보인다. 운동선수로서 치명적이기에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캣으로 분한 카야 스코델라리오는 그 미세하면서도 극단적인 변화를 잘 연기해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캐릭터에 알게 모르게 빠져들게 한다. 어떤 콘텐츠에서든 해본 적 없을 피겨 연기와 더불어 조울증 감정 연기 또한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예부터 질환 연기는 고수들만 할 수 있는 법, 아역부터 연기를 시작해 많지 않은 나이에 많은 경력을 쌓은 그녀도 이 작품으로 비로소 연기 고수가 되는 것일까.
재미 요소로 작용하지 않은 막장
이 작품이 '막장'이라는 타이틀을 멀리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어 보인다. 피겨 스케이팅과 조울증이라는 소재로 부당 50여 분의 10부작이나 되는 짧지 않은 시간을 커버하는 게 쉽진 않았을 테다. 물론, 두 주요 소재에 보다 천착해 내밀하고 진득한 이야기를 끌어냈으면 좋았겠지만 이 작품은 그러지 않고 다른 선택을 했다. 두 소재 사이의 관계에 막장 요소를 잘게 부숴 넣은 것이다.
주연급에 해당하는 주요인물들 사이의 막장은 그래도 용인해줄 만할 것이다. 관계의 지난함을 설명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뒤로 갈수록 주요하지 않은 인물들의 불필요한 막장 관계를 선보인다. 그러곤 빠르게 나름의 해결책을 선보이는 걸로 보아서는, 어느 정도의 시간 때우기로 볼 여지가 많다고 하겠다.
아쉽게도 이 작품에서 막장이 재미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많은 막장 드라마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재미로만 본다면 탁월한 것과는 다른 결이다. 하여, 전체적으로 길이를 압축하고 감정은 풍부하게 가져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따른다. 시즌 2의 여지를 남겨둔 결말로 보이는데, 결정되어 진행된다면 시즌 1의 아쉬운 막장을 겉어내고 혹은 재미 있는 막장으로 탈바꿈하면 좋을 듯싶다.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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