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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35년 전 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제 납치살인 사건의 전말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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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 포스터. ⓒ넷플릭스


1984년 10월 16일 프랑스의 작은 마을 보주, 4살짜리 남자 아이 그레고리 빌맹이 납치·살인당해 볼로뉴강에 버려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발견된 당시 그레고리는 손과 발이 밧줄로 묶인 채 저항 없는 평온한 모양새를 띄고 있었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고 강력한 용의자로 '까마귀'를 지목한다. 까마귀는 그레고리 살인 사건이 있기 전부터 빌맹 부부를 괴롭힌 괴한이었다. 그는 1981년부터 장난 전화, 익명의 편지를 보냈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은 까마귀의 행각은 매우 대범했다. 무엇보다 빌맹 부부와 가족들을 매우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수사의 초점은 빌맹의 지인과 가족을 향한다. 유일한 단서라고 할 수 있는 까마귀의 편지 필체를 대조하며 색출한 결과 빌맹의 친척 중 한 명인 베르나르 라로슈가 지목된다. 베르나르의 처제 뮈리엘이 목격자로 진술하여 신빙성을 얻는데, 이후 번복하는 바람에 꼬이기 시작한다. 


결국 베르나르는 풀려나고 오래지 않아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한다. 그레고리의 아빠 장마리가 베르나르를 쏴죽이고 만 것이다. 사법경찰이 수사지휘권을 맡게 되면서 수사는 다시 시작된다. 그들은 베르나르 아닌 그레고리의 엄마 크리스틴을 의심한다. 20대 초중반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 크리스틴을 향한 억측이 마구잡이로 양산된 것이다. 프랑스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이슈가 된 그레고리 빌맹 살인 사건은 도무지 해결될 양상을 보이지 않은 채 용의자에 대한 억측만 난무하며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레고리 빌맹 살인 사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프랑스 다큐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이라 할 만한 1984년 그레고리 빌맹 납치·살인 사건을 다루었다. 프랑스에선 유명하다고 하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는 거의 정보를 얻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점이 이 다큐멘터리로 시선을 가게 했을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 사건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백주대낮에 4살짜리 어리디 어린 아이 그레고리 빌맹을 납치하고 살해해 강에 유기했지만 목격자도 증거도 없이 결국 미해결되었다는 외면의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 자체만 두고 보면 극악하기 이를 데 없는 악마의 소행으로 보겠지만, 시야를 넓혀 보면 더 극악한 미제 사건도 많은 게 사실이다. 


이 사건이 띄는 극악무도성은 발생 이후 보이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행태들에서 보인다. 사건 전의 행태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런 사건 전후의 행태들이야말로 이 다큐멘터리가 힘을 발하는 원동력이기도 한대,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고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장장 35년 전 먼 나라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비극 속 비극의 연쇄


우선, 사건 초반에는 까마귀의 정체가 중요했다. 주지했듯 그는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서 오랫동안 빌맹 부부와 가족을 괴롭힌 장본인인데, 그레고리 빌맹 사건과 궤를 같이 한다. 문제는 그가 빌맹 부부를 너무 자세히 알고 있었다는 것, 자연스레 대상은 부부를 포함한 가족들 전체로 향한다. 여기서, 추악한 이면을 마주한다. 노동자 계층인 빌맹 가족 전체에서 빌맹 부부만이 성공하였는데, 평소에 부부를 향한 시샘과 질투가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불행의 씨앗이 어떤 식으로 자랄지 모르겠지만, 이미 싹을 틔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만큼 추악한 사건이 과열 양상을 띈 건 기자들 때문이다. 그들은 알 수 없는 유력 용의자 까마귀의 정체, 젊은 나이에 성공한 부부, 유일하게 성공한 부부를 향한 가족들의 시샘과 질투가 얽히고설킨 이 사건이 특종감이라는 걸 직감했을 테다. 물론, 기사 덕분에 이 사건이 유명세를 타 범인을 잡으려는 노력이 타 사건에 비해 많아졌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난무하는 억측 때문에 수사가 갈팡질팡하고 또 다른 비극이 발생하고 무고한 피해자가 생겼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의 최악의 결정타이자 비극은 빌맹 부부의 몰락이다. 장마리는 가깝게 지내던 기자의 수사내용 공유로 격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용의자였던 친척을 쏴 죽이고, 크리스틴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용의자로 몰리며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미움받는 여성이 된다. 작품은 빌맹 부부, 그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틴 이야기에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 작품의 끝에 다다를수록 정녕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는지 궁금해진다. 물리적으로 아이를 죽인 괴물과 정신적으로 아이의 부모를 죽인 괴물들.


콤플렉스의 발화 작태와 마녀사냥의 실태


<누가 어린 그레고리를 죽였나?>는 결국 사건 발생 9년 만인 1993년 미해결로 종결 지은 그레고리 빌맹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그 다방면·다층적 실체에 접근하려고 했거니와 거기에 더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이 작품은 그쪽으로, 즉 여성을 향한 프레임적인 선정적 억측의 분위기를 띄지 않지만 사건 자체는 그러했기 때문일까. 나도 쉽게 휘둘리는 약한 대중일지 모른다. 


극중에서 기자들은 말한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있는 거라고. 그들은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보다 조금씩 더 나아간 자극적 보도를 이어가는 것이가. 그런가 하면, 경찰들은 말한다. 때론 명명백백한 증거보다 오랫동안 쌓아온 경험에 의한 감이 맞다고. 그들은 감이 사건을 해결했던 극소수의 사례를 가지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건에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 게 아닐까. 


35년 전 먼 나라의 이야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자신의 콤플렉스와 분노와 증오를 어린 아이를 살해하는 것으로 풀고자 한 범인의 끔찍한 작태는 인간 사회에서 언제 어디서나 행해지고 있다. 물리적 살해의 형태를 띄고 있지 않더라도 말이다. 또한, 중세에나 있었던 마녀사냥이 20세기 후반의 최선진국에서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었다는 게 충격적이다. 마녀사냥 또한 인간 사회에서 언제 어디서나 행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충격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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