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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을 떠나 사건과 사람을 대하는 다큐멘터리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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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킬러 인사이드: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킬러 인사이드: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 포스터. ⓒ넷플릭스



아론 에르난데스, 어느새 잊혀진 이름이지만 한때 미국을 뒤흔든 최고의 풋볼 슈퍼스타이자 믿을 수 없는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였다. 굳이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그는 지난 2017년 교도소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이라고 해야 할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법이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는 피고의 항소 결과가 나오기 전에 피고가 사망하면 피고의 혐의가 사라지는 법이 지속되었다가, 아론 에르난데스의 자살 후 바뀌어 피고의 항소 결과가 나오기 전에 피고가 사망해도 피고의 혐의는 계속 남게 되었다. 


그는 어떻게, 왜 슈퍼스타에서 살인자로 추락하게 되었을까. 듣는 순간 생각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20년도 더 된 그 유명한 'O. J. 심슨 사건' 이후 가장 유명한 혹은 악명 높은 사건의 주인공이지 않을까 싶다. 심슨도 에르난데스와 마찬가지로 최고의 풋볼 슈퍼스타에서 살인용의자로 추락했다. 그런데 희대의 드림팀 변호인단을 꾸려 무죄를 받았고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다. 다만, 심슨의 경우 은퇴한 지 20년 가까이 된 이후 벌어진 사건이고 에르난데스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당시 벌어진 사건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킬러 인사이드: 아론 에르난데스는 왜 괴물이 되었나?>는 아론 에르난데스 살인 사건을 심층적·다각적으로 들여다본다. 제목에서 유추해볼 수 있듯, '아론 에르난데스'라는 사람에 천착해 그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과 피해자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어본다. 하여, 하나의 결론에 이르진 않는 대신 다양하게 생각해볼 거리를 던진다. 복잡다단하다. 


믿을 수 없는 사건의 진원을 찾아서


작품이 우선 건네는 사실은, 그가 평소에 얼마나 잘 웃고 매너 있고 착실하고 서글서글하고 능력 있고 인기가 많은지에 관한 것이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난 그의 평소 행실에 무수히 많은 칭찬세례를 날린다. 대() 대중에게 완벽한 슈퍼스타로서의 모든 면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그가 죽였다고 의심되는 대상은, 다름 아닌 그의 처제의 남자친구 오딘 로이드였다. 수많은 증거가 다른 누구도 아닌 그를 가리켰다. 


믿을 수 없을 것 같은 사건의 진상 아니 진원을 찾고자 작품은 그의 가정환경부터 들여다본다. 그야말로 '왕'과 다름아니었다는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에르난데스는 억압된 생활을 이어간다. 그게 뭐 대수랴 하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과 작품에서 증언하는 친구에 따르면 그는 동성을 사랑하는 성소수자였다.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세상의 이목 때문에, 풋볼선수의 이미지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단단한 아버지의 상을 굳건히 따르고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았는데, 10대 중반에 어처구니 없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에르난데스에겐 세상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문제는 이어서 터진다. 어머니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에르난데스와 가장 가까운 사촌의 남편과 살림을 차린 것이다. 이 무슨 황당한 경우란 말인가. 에르난데스는 또 한 번의 큰 충격을 받고 어머니와의 반목이 계속된다. 


또 다른 가해자들


물리적 학대 못지 않게(에르난데스는 아버지에게 물리적 학대도 당했다고 한다) 정신적 학대도 한 사람의 어린 시절과 삶 전체를 규정하는 데 절대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에르난데스는 누가 봐도 용서 못할 학대가 아닌, 스스로 억압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어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 변명도 저항도 할 수 없는 학대를 당했다. 그러면서도 그 대상을 롤모델로 삼았는데, 어느 날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에르난데스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고 멀리 플로리다 대학교로 떠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월등한 신체능력과 출중한 실력, 센스로 이름을 떨치고 졸업하기 전에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에 입단한다. 그의 나이 불과 20살 극초반이었다. 누구도 부러워할 만한 코스를 지났거니와, 그에겐 약혼녀와 아이도 있었으며, 2012년엔 40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그가 체포된 건 2013년이다. 2년 동안 법정 공방을 이어갔지만, 결국 그에게 1급 살인죄가 판결되고, 절대 석방될 수 없는 종신형으로 평생 감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최고의 변호사를 고용해 그에게 걸린 또 다른 살인 사건 '보스턴 사건'의 법정 공방을 이어갔고 무죄판결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방에서 자살한 사건은 주지한 사실이다. 


그가 살인자로 감방에서 자살하게 되기까지 일련의 사건을 나열해 보면 또 다른 가해자들이 눈에 띈다. 그에게 보이지 않는 정신적 학대를 자행한 아버지와 황당무계한 짓으로 더욱 더 큰 학대를 저지른 어머니도 있겠지만, 가장 큰 건 다름 아닌 '풋볼'이 아닌가 싶다. 그는 육체적 폭력으로 둘러싸인 풋볼로 자신의 성정체성을 완전히 감추려 했거니와, 바로 그 육체적 폭력의 결과로 사후 판정 받은 CTE가 우발적 폭력과 살인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CTE란, 만성 외상성 뇌질환으로 기억상실과 폭력성을 가져온다고 한다. 


이야깃거리 아닌 생각거리를 건네다


사이코패스라든지 소시오패스라든지 감정이 없거나 감정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이들의 살인과 에르난데스의 살인은 비슷한 점이 있다. 자신이 행한 폭력과 살인 행위에 별 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선천적이라든지 특수학대가 자행된 가정환경 때문이라든지 하는 원인 규명 노력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다. 그래서 비록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버리고 만다. 신선하지 않은 것이다. 


이 작품도 에르난데스의 어린 시절 아픔을 그의 믿기 힘든 이중생활 이면의 주요 원인으로 내세우려 하는 게 보였기에 신선하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풋볼이라는 폭력성 짙은 운동이 더해지면서 원인을 들여다보는 데 입체감을 부여했다. 풋볼 때문에 에르난데스 내면의 모순이 갈라지고 갈등하고 상충된 것이다. 풋볼에 열광하는 이들은 알게 모르게 그에게 끝없이 이어지는 상처를 남겼고, 그의 내면을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인기와 명예와 돈을 위해 감독을 비롯한 구단 고위층들은 그를 인간 아닌 도구로 사용했다. 


이 작품이 에르난데스를 도구로 이용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그의 사례를 통해 참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질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대신, 위험해 보이지만 '생각거리'를 건넬 수 있는 만큼 에르난데스를 둘러싼 이야기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객관적으로 사건과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작품이 가해자 에르난데스만큼 많이 할애한 대상이 피해자 오딘 로이드이다. 치명적 범죄 사건에서는 언제나 피해자 보다 가해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피해자를 둘러싼 이야기도 많이 전하고자 했다. 아론 에르난데스라는 본질의 행위는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아론 에르난데스라는 개인의 행위는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는 측의 대표이기도 하겠다. 개인적으로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부딪힘이다. 과연 내가 그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와 비슷한 또는 똑같다시피 아니 더 피폐하게 살았을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옳다 그르다를 규정하기 힘든 생각거리를 던지는 콘텐츠는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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