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영화] <크롤>
영화 <크롤>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릴 때 수영을 시작해 꾸준히 선수생활을 하고 있는 헤일리, 최고의 위치에는 살짝 모자라지만 코치였던 아빠의 말마따나 '최상위 포식자'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다. 그날도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온다. 무시무시한 허리케인이 오는데, 아빠가 평소완 다르게 연락이 안 된다는 것이다. 헤일리는 허리케인이 향하는 아빠 집으로 향한다.
헤일리의 아빠 데이브는 아내와 합의이혼을 한 후 혼자 살고 있었는데, 막상 집에 가보니 강아지만 있고 데이브는 보이지 않는다. 뭔가 으스스하고 께름칙한 느낌이 들어, 강아지와 함께 옛날 집으로 향한다. 데이브가 이혼 후 다른 사람한테 기탁해놨다고 했지만, 혹시 모르는 게 아닌가. 정작 가보니, 데이브의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보이지 않는다. 지하실로 향하는 헤일리, 그곳에 데이브가 기절해 있다.
데이브를 구해선 위로 가려는 찰나, 믿을 수 없게도 초대형 악어가 등장해선 헤일리를 위협한다. 알고 보니 데이브도 악어한테 물려 부상을 당했던 것. 헤일리도 다리에 부상을 당하지만 가까스로 악어를 물리친다. 하지만 그들은 지하실에 꼼짝없이 갖힌 신세가 되고 말았다. 더군다나 역시 믿을 수 없이 초대형인 허리케인이 본격적으로 강타하기 시작해 집안으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악어의 위협을 무릎쓰고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는 물바다가 된 밖이야말로 악어 세상... 안에는 초대형 악어, 밖에는 초대형 허리케인,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올해 최고의 재난 공포 영화
영화 <크롤>은 북미에서 지난 7월에 개봉한 재난 공포 장르로, 5개월 가까이 지나 한국에 상륙했다. 입소문으로 일종의 '강제개봉'된 형태인데, 최근 몇 년새 공포영화에서 종종 나오는 공식이다. 여전히 높은 로튼 토마토 점수(12월 2일 현재 83점)를 기록 중이며, <인디와이어>가 '올해 최고의 작품' 리스트에 이 영화를 올렸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올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크롤>"이라며 기대를 증폭시켰다.
'재난 공포' 장르라는 면을 부각시켜 보자면, 재난엔 초대형 허리케인이 공포엔 초대형 악어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플로리다엔 실제로 믿을 수 없는 허리케인이 자주 휩쓸고 지나가는데, 영화는 지난 2009년 미국 남동부에 큰 피해를 준 허리케인 플로렌스 당시 홍수에 겹쳐 주거 지역에 거대한 악어들이 출몰한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필모만 훑어도 알 수 있는 '공포 전문 감독' 알렉산드르 아야와 '공포 전문 제작자' 샘 레이미의 최신작으로, 영드 <스킨스> 시리즈와 영화 <메이즈 러너> 시리즈로 유명한 카야 스코델라리오가 히로인 헤일리로 분했다. 재난과 공포라는 헤아리기 힘든 극한이 공존하는 상황을 장르적 쾌감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으로 깔끔하게 재밌었다.
최소의 배우와 배경, 최악의 허리케인과 악어 떼
영화에서 재미없는 요소를 찾기보다 재미있는 요소를 찾기가 쉬웠다. 다만, 재난 공포 장르를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초대형 블록버스터 느낌이 아니라는 점이 누군가에겐 실망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다수에겐 바로 그 점이 실망 아닌 궁극적 재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 <크롤>은 최소의 배우와 최소의 배경만을 제공할 뿐이다.
하여, 영화가 주요 대상으로 하며 주인공이 헤쳐나가야 할 주요 대상은 재난의 허리케인이 아닌 공포의 악어이다. 그것도 어엿한 집의 지하실에 침범한 악어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주인공은 악어에게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악어를 피해 물바다가 되어 가는 자신의 집에서 탈출해야 한다. 사면초가, 설상가상이다. 흥미로운 설정부터 반은 먹고 들어가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공포 장르가 축소화된 건 꽤 되었다. 축소되는 대신 내밀해지고 세밀해졌다. 비록 공포이지만 공감의 영역대가 넓어졌다. 한편, 재난 장르는 영화 자체가 사라졌다시피 했다. 공포 장르처럼 축소화시키기가 힘든 것이다. 이 영화는 공포에 재난을 가미시키는 영리함으로 식상함을 탈피하고 새로운 재미를 불어넣었다. 앞으로의 하이브리드 장르 또는 장르 융합이 기대된다.
시간을 재밌게 보내는 방법
영화가 성공을 약속한 듯 보이는 건, 익숙함이 새로움을 받쳐주기 때문이다. 당연한 듯 등장하는 복선들과 제 발로 걸어들어가는 위기에의 길과 충실히 따르는 서사와 못난 캐릭터들 간의 관계 회복으로 인한 성장까지, 짧은 러닝타임 동안 이 모든 걸 이질감 없이 표 나지 않게 드러낸다. 수십 년간 만들어 온 할리우드 재난과 공포 장르 공식을 충실히 따르되, 양념을 맛있게 친 것이다.
상업영화에 있어 새로움만을 추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기존의 공식을 따르되, 새로움에서 비롯된 흥미 자극 요소를 적재적소에 얼마나 잘 넣는지가 중요한 것이리라. 또 하나 중요한 건, 현실감이다. 재난과 공포라는 게 흔히 있는 일을 바탕으로 할 수 없겠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하다는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 시간을 죽이는 영화가 아니라, 시간을 재밌게 보내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신작 열전 > 신작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인 스트립 댄서들의 합당한 범죄 행각 <허슬러> (0) | 2019.12.18 |
---|---|
춥디 추운 바람을 이겨내는 여성들의 연대 <영하의 바람> (0) | 2019.12.16 |
심각한 문제의식을 인상적인 외형으로 보여주다 <위!> (0) | 2019.11.29 |
'신카이 마코토' 이름 하나로 본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재 <날씨의 아이> (0) | 2019.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