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애틀란틱스>
영화 <애틀란틱스> 포스터. ⓒ넷플릭스
2019년 제72회 칸 영화제는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하며 역사에 길이남을 이슈를 남겼다. 잘 알려진 여러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애틀란틱스>가 단연 최고의 화제로 남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세네갈 출신 프랑스 영화인 마티 디옵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역사상 최초로 아프리카계 여성 감독이 경쟁부분에 진출하고 심사위원대상(황금종려상에 이은 2등상에 해당하는 그랑프리)을 수상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아프리카'가 아닌 '여성' 감독인데, 아프리카계 남성 감독의 칸 영화제 진출은 일찍이 1987년 술레이만 시세의 <밝음>이라는 작품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 영화제로선 비록 보여주기 식일지 모르나 뒤늦게나마 세계적인 기류를 따르며 진보적인 사상의 최일선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천명하고 확실한 이슈몰이를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겠다.
<애틀란틱스>는 '대서양'을 뜻하는 제목에서 유추가 가능하듯 북서 아프리카에 위치한 세네갈의 항구도시이자 수도 다카르를 배경으로 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후술하겠지만, 다양한 사회 비판적 이야기를 얇게 깔고 사랑과 여성 등의 현실적 주제들을 유령과 대서양이라는 영화적 소재들과 버무렸다. 쉽지만 어렵고, 촘촘하지만 헐거워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
돈을 벌고자 바다를 건넌 남자와 남겨져 결혼한 여자
세네갈의 항구도시이자 수도 다카르, 최신식 건물 공사판에서 남성 청년들이 불만에 차 있다. 몇 개월째 임금을 받지 못해 사무실로 들이닥치지만 딱히 해결방도가 없다. 술레이만은 어쩔 수 없이 돌아가 여자친구 아다를 만난다. 즐겁지만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는 그들, 사실 아다는 열흘 후 부자 오마르와 결혼을 앞두고 있고 술레이만은 동료들과 함께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갈 예정이다.
하지만 자신의 속사정을 서로 말하지 않는 그들, 결국 술레이만은 떠나고 아다는 오마르와 결혼을 한다. 결혼 전 술레이만과 동료들이 대서양을 건너지 못하고 몰살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다,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마르와 결혼하는 게 너무 싫다. 그녀는 여전히 죽은 술레이만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가족들과 친구들 모두 부러워하는 한편 이해하지 못한다.
아다와 오마르의 결혼 날, 아다의 침실에 큰불이 난다. 모두 나서서 불은 껐지만 원인은 밝혀야 하는 법, 유능한 경위 이사는 원인 모를 열병에 시달리면서 불의 원인을 파헤치려 한다. 그는 죽은 줄 알았던 술레이만이 목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술레이만과 아다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이후 동네에 이사와 같은 열병에 시달리는 여인들이 하나둘 생겨나는데... 과연 아다의 침실에 불을 지른 사람은 누구일까? 사람들이 열병에 시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레이만은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것일까?
입체적 활력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
영화는 아다의 침실에 큰불이 나고 이사가 불의 원인을 찾아가며 이야기가 급발전한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공포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무섭지는 않은 '유령'의 등장으로 이어지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목숨 걸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가 돈을 벌려다가 실패해 죽음을 맞이한 술레이만과 동료들의 영혼이었고 동네 여인들의 열병 원인이기도 했다. 죽은 영혼들이 산 사람의 몸에 씌워 밀린 임금을 받으러 간 것이다.
그렇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 줄기는 임금 체불이다. 임금 체불 때문에 청년들이 목숨을 잃고 아다 침실에 큰불이 나고 술레이만과 아다가 용의자로 몰리고 여인들이 열병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자체로 임금 체불과 빈부 격차 등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일 수 있지만, 별 게 아닌 듯 쉬운 이야기에 입체적 활력을 불어넣는 건 아다를 둘러싸고 이뤄지는 이야기에 따른 또 다른 사회 비판적 메시지들이다.
길지 않고 짤막하게 보여주는데 여성 인권 문제와 가부장 문화 문제, 종교에의 억압, 경찰 기업 유착, 신부 지참금 문제 등 다양하고도 깊이 있다. 이 모습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결혼과 수사이다. 세네갈에서 여자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개인의 생각 없이 억압적인 상황 속에 팔려가는 듯 결혼하며 심지어 처녀성 검사도 받는다. 경찰은 합리적인 수사가 아닌 그들의 뒤를 봐주는 기업 위주의 수사를 진행한다. 그곳에도 최신식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만큼 결코 자본적으로 뒤떨어지는 건 아닐진대, 의식과 사상들에 있어 뒤떨어지는 게 진짜 문제라고 영화는 말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새로움으로 다가온 기억
유령이 등장하니 공포 장르라고 해야 하겠지만 무섭진 않고 사회 비판적 요소가 매우 많은 이야기들이 난립하는 와중, 영화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아다의 성장과 대서양의 변화에 따른 OST가 담당한다. 아다는 신여성이라 할 만한 의식 변화를 체험하며 주위 모두의 기대와 압력를 뚫고 자신의 생각을 발현해 행동으로 옮긴다. 처음엔 술레이만과의 사랑이 큰 요소였지만 나중엔 자신이 중심이 된다.
그런가 하면, 영화 내내 대서양이 비치는데 그 모습들이 다양하다. 신비롭고 처량하고 당찬 것처럼 보이는 바다의 변화무쌍한 면면이 아다와 술레이만의 관계 또는 아다와 술레이만 각각의 현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나아가 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에 맞춰 기기묘묘한 OST가 한몫하는데, 자못 신경을 긁는 듯한 소리들이 영화에 또 다른 이야기를 선사하며 입체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칸 영화제 그랑프리'라는 타이틀이 아니면 결코 보지 않았을 또는 볼 기회가 없었을 '아프리카계 여성 감독'의 영화, 전체적으로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전체를 이루는 개개의 포인트들은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새로움으로 다가왔기에 좋았고 기억에 남을 듯하다. 지금 이 순간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보다 더 나은 선택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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