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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1994년을 들여다보며 독립영화의 한계를 넘어 성장, 관계, 붕괴를 말하다 <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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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벌새>


영화 <벌새> 포스터. ⓒ 엣나인필름



1994년 서울, 은희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생이다. 학교 성적은 별로, 한문학원 단짝친구 지숙과 키스 한 남자친구 지완과 자기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학교 후배 유리가 있다. 떡집을 하는 아빠와 엄마, 학교회장을 하며 서울대를 목표로 하는 오빠 대훈, 아빠한테 매일같이 혼나면서도 밖으로 도는 언니 수희와 함께 산다.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엄마는 별다른 힘을 못 쓰며, 오빠는 은희를 부려먹는 한편 마음에 안 들면 때리고, 언니는 집안일에 무관심하다. 은희는 학교 안팎에서 집 안팎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좋게 지내다가도 대척한다. 한편 귀밑에 무언가 만져지기에 병원에 갔더니 혹이란다. 검사를 했더니 심상치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은희 앞에 한문학원에 새로온 선생님 영지가 의미깊게 다가온다. 은희는 온화하면서도 삶에 있어 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영지에게 기댄다. 


1994년은 여러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예고된 채로 혹은 불쑥 찾아왔다. 미국에서 월드컵이 열렸고, 북한의 김일성이 사망했으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은희와 은희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그 대규모 이벤트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1994년만의 팬시적 감성도 엿보인다. 지금은 없어진 또는 다른 비슷한 것으로 대체된 노래방, 삐삐, 트램펄린장 등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다. 


1994년 단면, 2019년 국면


영화 <벌새>는 주인공 은희를 통해 들여다보는 1994년 한국의 단면이자 25년이 지난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국면이기도 하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서 25관왕을 달성하며 10여 년 전 <똥파리>가 달성한 38관왕의 위업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영화로, <우리집>과 더불어 2019년 대표 독립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극장 개봉 한참 전부터 여기저기에서 영화제 수상 소식이 들려왔는데, 그때부터 이미 오매불망 볼 날을 기다리며 기대에 한껏 부풀어 올랐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던데, <벌새>는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훨씬 넘어서는 완전체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필자가 보아온 한국 독립영화들 중 <용서받지 못한 자> <똥파리> <파수꾼> <한공주> 등과 더불어 수위권에 속하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는 분명 훨씬 길었던 분량을 편집하여 이 정도로 줄인 것으로 생각된다. 거의 모든 시퀀스 사이에 공간이 존재했고 그래서 일면 불친절해보였지만 덕분에 오히려 영화가 풍성하고 확장되는 느낌을 주었다. 소품이 아닌 스케일 큰 대작이라는 느낌마저 주었던 것이다. 지극히 보편적이고 또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지극히 특별하고 또 정치사회적인 이야기였다. 


성장, 관계, 붕괴


이 영화는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장점이자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은희의 '성장'을 주요 테마로 다루었다고도 할 수 있을 테고, '관계'라는 꽤나 추상적인 개념을 서사의 중심으로 두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며, '성수대교 붕괴'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소재로 작용해 주제까지 어우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다. 


이밖에도 영화를 구성하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테고 어느 것을 중심에 두고 영화를 보든 틀린 건 없을 테지만, 필자는 이중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벌새>는 은희가 주인공이고 나아가 은희가 사실상 원탑이라고 할 수 있을 테며 은희 1인칭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 그녀가 겪는 일들이 결국엔 관계에 있어 맺고 끊음 또는 연결과 단절의 계속됨이라고 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은희의 성장도 바로 이 관계의 연결과 단절의 깨달음에 있다고 생각하며, 성수대교 붕괴라는 사건의 외연과 내연도 연결과 단절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1994년을 무 자르듯 하여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 자체로 25년이 지난 지금과 이어지고 있는 걸 볼 때 연결과 단절은 <벌새>라는 영화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여타 영화처럼 롤러코스터 식의 온도차를 보이지 않고 여러 면에서 시종일관 잔잔한 파도 정도의 높낮이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누구나의 인생도 롤러코스터가 아닌 잔잔한 파도의 연속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그저 1994년 여중생 2학년의 한때를 빌려 왔을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누구나의 한때와 인생이 아닐까. 


그밖에 이야기들


<벌새>라는 영화 특유의 분위기는 두 배우의 연기가 크게 작용했다. 은희 역으로 분한 박지후 배우는 10대 중반에 불과한 나이임에도 기본적으로 성숙함이 담긴 연기를 내보였다. 얼굴만 클로즈업할 때는 몇 살인지 나이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농익은 표정 연기를 펼치면서도, 전신 풀샷을 잡을 때는 중학교 2학년생 그 나이 때 그대로의 연기 아닌 연기를 펼쳤다. 덕분에 보는 이로 하여금 다채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영지로 분한 김새벽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를 잘 모르는 이도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한 그녀는, 지난 2011년에 데뷔한 한국 독립영화의 대들보다. 내년이면 10년차가 되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경력인데, 독립영화만의 카리스마를 만들어 체득해 뿜어내고 있다.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은희가 유일무이하게 믿고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어른이다. 왠지 실제의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벌새>가 아닌 <벌새 둥지>다. 벌새가 은희라면, 한국에서는 은희에게 초점이 맞춰질 테고 영어권 외국에서는 은희가 찾아 돌아가려는 집에 초점이 맞춰질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은희에게 초점이 맞춰진 <벌새>가 조금은 더 알맞은 것 같지만, 보다 조금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해석으로 영화를 감상하길 원한다면 <벌새 둥지>라는 제목을 유념하는 것도 괜찮은 듯싶다. 


한 이야기가 많은 영화 <벌새> 못지 않게 <벌새>에 대해서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지만, 이도저도 아닐 것 같고 또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여 이만 줄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지난 한국 독립영화들이 천착한 궤, 이를 테면 '개인' '사회' '폭력' 등을 이어가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그들'만이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메시지를 처음 전했다는 의미를 남겼다는 걸 전한다. 당연히 호불호가 있을 테지만, 적어도 보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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