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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가족들 간의 미스터리한 불안을 들여다보다 <누구나 아는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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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누구나 아는 비밀>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포스터 ⓒ 오드 AUD , 티캐스트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먼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 고향을 찾은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분)와 그녀의 큰딸, 작은아들. 남편 알레한드로는 바빠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정겨운 회포를 풀고 마을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그러곤 온 동네가 들썩일 결혼식을 올린다. 중요한 건 밤새도록 계속되는 뒤풀이 파티, 지치지도 않는지 새벽에 폭우가 내리고 정전이 되어서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라우라는 딸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패닉 상태에 빠진 그녀를 도와, 평소 가족 같이 대하는 파코(하비에르 바르뎀 분)를 중심으로 가족들이 나선다. 그는 라우라의 오랜 친구이자 과거 지극히 사랑한 연인이었다. 본격적으로 찾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든다. 딸을 살리고 싶으면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거액의 돈을 지불하라고 말이다. 똑같은 문자가 파코의 부인 베아에게도 날아든다. 


결혼식이라는 경사로 모인 가족들이 손녀이자 딸이자 조카의 납치라는 흉사에 삐걱거린다.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으니, 결혼식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 중 하나라는 얘기와 진배 없다는 것. 가족들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묘하고 조용한 긴장감 아래 가족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누구나 알지만 쉬쉬했던 비밀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란 태생으로 프랑스, 스페인 등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는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최신작이다. 이 작품을 그의 필모 중 가장 태작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 2003년부터 시작되어 2~3년을 주기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의 장편 연출작들의 면면이 지극히 화려하기 때문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 스토리텔링의 거장으로, 이란을 대표하게 된 지는 오래되었고 세계 영화계에서도 손꼽히는 감독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누구나 아는 비밀>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는, 사건과 주제에 걸쳐 있는 상대적으로 약간의 진부함을 씻어주고도 남을 캐스팅에 있다. 스페인을 넘어 전 세계 영화계에서도 손꼽히는 두 남녀 배우이자 부부,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그들이다. 사이좋게 칸영화제, 미국 아카데미, 영국 아카데미, 고야상, 유럽영화상 등에서 주조연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다.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여섯 편에 함께 출연해 왔으니, 개개인의 연기력과 부부로서의 합이 맞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10년 결혼한 그들은 사이좋게 대표작이라 할 만한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비롯, 페넬로페 크루즈는 <귀향>이 하비에르 바르뎀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대표작이다. 비록 2010년대 들어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좋은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들이다. 


애매한 영화의 결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영화의 주요 사건은 라우라의 딸 이레네의 납치이다. 그런데 시작하고 1/4 시점에 이르기까지 전혀 낌새를 느끼거나 찾을 수 없다. 이 작은 마을의 풍광이 편안하고 라우라 동생 결혼식 전중후의 면면이 풍성하며 사람들 간의 관계 형성이 모자람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떤 부정적인 요소가 끼어 있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바로 그 점을 영화는 노린 듯하다. 급반전의 서스펜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필모를 들여다보면 공통분모들이 눈에 띈다. 앞서 주지했듯 그가 천착해온 장르는 '미스터리'인데, 소재는 '가족'이고 분위기는 '불안'이다. <누구나 아는 비밀>도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앞부분 30분 가량의 편안하고 한편 화려한 분위기는, 곧이어 들이닥칠 가족 간의 미스터리한 불안을 위한 반전적 준비였던 것이다.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발적 에너지를 응축해 놓고 있는 듯한.


공간적 배경이 모든 게 긴밀할 수밖에 없는 작은 마을이고, 주인공들이 정열적인 라틴계의 대가족 일원이며, 시간적 배경이 그 모든 게 긍정적으로 폭발하는 결혼식이라는 점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모든 게 감독이 전하려 하는 스토리텔링에 철저히 짜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참으로 친절하고 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그저 물 흐르듯 흐르는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겉모양이 상투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당연히 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고 그래야 제 맛을 느끼겠지만, 겉으로만 봤을 땐 이보다 더 막장이라고 느낄 만큼 파격적이지도 않고 우디 앨런 식의 유머러스한 인장이 빛날 정도로 새겨져 있는 한편 사회비판적이기도 한 본격 막장의 결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렇다면 이 영화엔 무엇이 있을까. 


가장 가깝고 가장 불안한 가족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의 한 장면 ⓒ 오드 AUD , 티캐스트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인장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건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 미스터리와 가족과 불안의 삼 박자가 어우러져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아가 우리에게 전하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을진대, 인간 내면 또는 본성의 부정적 면모 정도가 아닐까 싶다. 보다 구체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건, 영화가 그 정도였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누구나 아는 비밀>의 주요 사건인 이레네의 납치 후 가족들이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 즉 서로를 의심하고 비밀을 폭로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서로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 작은 마을에 하필 결혼식 중이라니. 모두 당연히 범인이 '내'가 아니니 '너'일 수밖에. 너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하다 보면 누구나 알지만 쉬쉬 하고 있던 비밀을 끄집어 내어 짜 맞추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를 형성하지 않을 수 없다.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꽃 피우기 때문이다. 반면, 관계 속에서 상대와 자신 할 것 없이 파멸을 맛 보기도 한다. 상대와 자신, 즉 '우리'가 비슷한 파멸을 공존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묻어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우리를 위하고 우리의 관계를 지속 시켜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또 다른 폭발을 다음으로 미룬다. 


이 영화는 인간 관계에 있어 가장 첨예하게 가깝고 그래서 가장 불안한 '가족'의 모습을 다뤘다. "가까울수록 멀리하라"는 말이 있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는 천륜이 내렸기에 선택할 수 없다. 하여, 항상 그 자리에 영원불멸의 형태로 자리 잡아 있다. 하지만 가족은 결코 천륜이 내린 것도 아니고 항상 그 자리에 있지도 않다. 신중한 선택으로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고 언제든 변한다. 최소한 때론 한 발 정도는 물러서 가족을 대할 때 보다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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