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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환상적이고 완벽한 외연미와 현실적인 내연의 조화 <쉘부르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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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쉘부르의 우산>


영화 <쉘부르의 우산> 포스터. ⓒ에스와이코마드



프랑스 현지 개봉 55년 만에 <쉘부르의 우산>이 한국에 두 번째로 재개봉했다. 프랑스에서는 1964년, 한국에서는 1965년과 1992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누벨바그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자크 데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그는 또 다른 누벨바그 대표 감독으로 유명한 아녜스 바르다와 부부로도 유명하다. 자크 데미는 1990년 세상을 등졌고, 아녜스 바르다는 불과 반 년 전 세상을 등졌다. 


영화는 제3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외국어 영화상, 제3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각본상, 주제가상, 음악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진 못했다. 프랑스 뮤지컬 영화의 대표작으로서 노미네이트에 그친 게 의아하지만, 당시 아카데미 시상식을 대표한 영화들이 그 유명한 <사운드 오브 뮤직>과 <닥터 지바고>인 걸 확인하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쉘부르의 우산>은 제17회 칸영화제에서 대망의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멜로 영화가 어떻게 칸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쥘 수 있었을까. 


한편, 이번에 <쉘부르의 우산>이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면서 자크 데미의 다른 네 작품도 '특별전'으로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롤라> <로슈포르의 숙녀들> <당나귀 공주> <도심 속의 방>이 그것들인데, 하나같이 전설적인 작품들이다. 단순히 오래되었다고 해서 전설적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게 아닌, 오래 회자되고 계속 사랑받아 왔기에 전설적이라는 칭할 수 있는 것이리라. 


기와 주느비에브


영화는 제1부 이별, 제2부 고독, 제3부 재회로 이루어져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항구도시 쉘부르, 우산가게를 하고 있는 에머리 부인의 하나밖에 없는 17살 딸 주느비에브는 주유소의 자동차 정비공 20살 기와 사랑에 빠져 있다. 그들은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에머리 부인은 어린 나이의 딸이 앞길이 창창하지만은 않은 기와 결혼하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어느 날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의 독립운동 여파로 기에게 징집명령이 떨어진다. 기의 입대 하루 전 그들은 뜨거운 밤을 보낸다. 


위험한 곳으로 발령이 난 듯한 기, 주느비에브는 기에게서 통 연락이 오지 않는 걸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녀의 뱃속엔 기와의 결실이 자라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에머리 부인은 형편이 어려워져 가지고 있던 보석을 팔고자 하지만 여의치 않다.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젊은 보석상 카사르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에머리 부인은 카사르를 딸 주느비에브와 엮으려 한다. 연락도 없는 기를 기다리기 힘든 주느비에브는 결국 카사르에게 간다. 카사르는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뱃속에 있는 아기까지 책임지겠다고 한다.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제대한 기, 다리를 조금 저는 걸 보니 의과사제대인 듯하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주느비에브의 우산가게로 간다. 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다. 주느비에브는 결혼했고 얼마 안 있어 에머리 부인은 우산가게를 닫았다는 소식을 들은 기는 망연자실하여 하릴 없이 거리를 떠돈다. 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주느비에브는 행복할까. 기와 주느비에브의 자식은?


혁신적 시도와 완벽한 미(美)


영화 <쉘부르의 우산>은 하찮은 줄거리조차 차별화 시키는 혁신적 시도와 완벽한 미(美)를 장착한 걸작이다. 이미 뮤지컬 영화계의 신화적 존재로 오랫동안 유명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될 영화이지만, 현대에 와서 <라라랜드>에 큰 영향을 끼친 영화로 더욱 유명하다. 색감, 음악, 노래 면에서 다시 없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엑스트라조차 거의 없는 한정적 등장인물들이 펼치는 열연이 빛을 발한다. 


주조단역 할 것 없이 모두, 모든 대사를 음악에 맞춰 노래 형식으로 내보낸다. 지극히 단편적인 대화조차 노래로 하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다. 고로 대사가 때론 단편적일지 모르나 절대 평범하진 않은 것이다.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대사들로 꽉 짜여져 있다. 55여 년 전에 프랑스에서 시도한 혁신적 개념이다. 


이 영화를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건 단연코 색감 즉, 영상이다. 색감이 영상을 절대적으로 대체하는 <쉘부르의 우산>은 의상과 벽지와 실내외 장식품과 거리 풍경까지 일체감을 선사한다.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등의 원색을 바탕으로 한 파스텔톤이 시종일관 영화를 장악한다. 당연히 보는 이의 시각도 장악한다. 감탄, 또 감탄하며 감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기는커녕 오히려 더 고급지고 세련되어 보이는 의상은 크리스찬 디올에서 맡았다고 하는데, 등장인물의 의상 색과 배경이 되는 각종 소품들의 색이 인위적으로 어우러지게 하는 건 감독의 솜씨인 듯하다. 색감으로만 보여지는 미장센의 향연이 황홀하기까지 하다. 영화의 다른 모든 걸 제쳐두고서라도 색감만 감상해도 충분하다. 


환상적인 외연과 현실적인 내연


영화의 환상적인 외연과 달리 별 것 없어 보이는 스토리의 내연은 현실적이다. 그러하기에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는 있겠다. 우선, '남자' 주인공 기가 아닌 '여자' 주인공 주느비에브가 주(主)가 된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기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도 가졌지만, 기가 아닌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걸 '선택'한다. 엄마 에머리 부인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한편 연락이 닿지 않는 기와의 불우한 현실이 존재하지만, 카사르가 다른 남자의 아이도 받아준다면 결혼하겠다고 한 본인의 정확한 선택이 작용했다. 


그런가 하면, 주느비에브의 현실적 판단과 선택과 더불어 기의 판단과 선택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랑은 다른 사랑으로 잊는다고 했던가. 그는 주느비에브와의 사랑을 잊기 위해 빠르게 다른 사랑을 찾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그러곤 우연히 마주친 주느비에브와 별다른 느낌 없이 대화를 나누고는 주느비에브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기가 군대에 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주느비에브의 가정 형편이 어렵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기가 다치지 않고 계속 연락이 닿았으면 어땠을까, 그들의 아이를 카사르가 받아주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사람의 힘으론 어찌 해볼 수 없는 운명의 길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더불어 그 길을 속절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모습이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화의 외연이 환상적인 만큼 내연은 한 치의 환상도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 아이러니야말로 이 영화를 걸작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을까. 색감과 음악과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이 영화를 영원히 남게 해준 일등공신이 아닐까. <쉘부르의 우산>을 좋아하는 사람 수없이 많을 테고 이 영화를 수없이 본 이들도 많을 텐데, 이 참에 한 번 더 감상하며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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