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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현시대적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그린 신화적 로맨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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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조>


영화 <조> 포스터. ⓒ (주)팝엔터테인먼트



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의 이야기가 전한다. 그는 키프로스의 여인들을 경멸했다고 하는데, 매춘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는 게 그 이유였다. 현실 여성을 멀리한 채 조각에만 몰두한 피그말리온, 너무나도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인 조각상을 만들고는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는 그것에게 정성을 쏟으며 사람 같은 대우를 해주었고 급기야 아프로디테 신에게 간청해 그것은 그녀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피그말리온은 그녀 갈라테이아와 결혼해 자식까지 두면서 잘 먹고 잘 살았다. 


피그말리온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 리메이크되었고 또 모티브가 되기도 하였다.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고,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좋은 영향을 미처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도 유명하다. 여기 피그말리온 이야기가 모티브로 쓰인 또 하나의 작품이 우리를 찾아왔다. 영화 <조>, 특별한 로맨스에 천착해오고 있는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신작이다. 그의 작품들은 지난 2011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작 <라이크 크레이지>를 시작으로 국내에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후 꾸준히 선보인 작품들은 다름 아닌 로맨스물, 하나 같이 영상과 음악의 톤앤매너가 굉장히 감각적이다. 최신 로맨스 영화의 첨단이자 한 축을 이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다만, 그에 비해 한없이 떨어지는 스토리의 빈약함이 큰 단점이다. 보는 맛과 듣는 맛은 출중하지만, 영화가 그것들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지 않은가. 꾸준히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을 연작처럼 내놓고 있는데, <조> 이후 힘든 갈림길에 봉착하지 않을까 싶다. 균형을 찾길 바라며 영화로 들어가본다. 


로봇 조와 인간 콜의 사랑


영화 <조>의 한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조(레아 세이두 분)는 커플의 연애성공률을 분석·예측해 제공하는 연구소에 일한다. 커플들은 관계의 갈림길에서 고민하지 않고 수치로 결정한다. 그녀가 눈길을 두고 있는 이가 연구소에 있으니, 로봇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콜(이완 맥그리거 분)이다. 그는 일에 파묻혀 살다가 이혼하고는 혼자 살고 있다. 왠지 모르게 그의 조를 향한 시선도 남다르다. 그들의 대화도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서로 관심을 두고 끌린다면 알지 못할 이유가 없고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법, 하지만 조는 콜과의 연애성공률이 0%가 나온 걸 보고 의아할 수밖에 없다. 이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뒤로 한 채 조는 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이내 콜이 조에게 고백한다. 사실 넌 내가 만든 로봇이라고. 네가 이렇게 인간과 대등하게 진화할 줄은 몰랐다고. 진작 말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그들의 연애전선에 이상은 없어 보인다. 그들은 서로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꾸준하고 순도 높은 사랑의 모습을 함께 한다. 조의 로봇 동료 애쉬도 응원하고, 콜의 전 부인 엠마도 응원한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조가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망가진 것이다. 콜은 조를 수술시켜 회복하게끔 하지만, 그들 사이는 멀어져 버렸다... 인간 아닌 '로봇'으로서의 조가 너무도 날 것으로 드러나버린 것이다. 한편 잠깐 동안 첫사랑 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신약 베니솔이 출시된다. 


신화적 로맨스, 진짜와 가짜


영화 <조>의 한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 <조>는 현시대적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신화적 '로맨스'를 그렸다. 그 중심엔 '사랑'이 있고, 그 이면엔 '진짜와 가짜'가 있다. 디스토피아라 하면 가공의 완벽한 이상향을 가리키는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유토피아를 꿈꿨다가 실패하여 정반대로 가버린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극중에서도 콜의 회사가 추구하는 게 유토피아다. 로봇이 단순히 인간이 편리해지기 위한 존재를 넘어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완벽한 대체제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처럼 진화를 하는 로봇이 나타나는데, 그게 조이다. 


영화는 흔히 생각하는 디스토피아의 파괴적 단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피폐한 단상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인지 시각적으로 단번에 다가오지 않고 정신적으로 천천히 깊숙히 다가온다. 로봇을 비롯 연애성공률을 예측해준다느니 베니솔을 출시한다느니 '인간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역행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면 유토피아인 것처럼 보였던 세상은 점점 디스토피아적 양상을 띤다. 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조>는 일련의 양상들 그 시작을 주지했다시피 피그말리온 신화의 로맨스에서 따왔다. 다만 신화에서 주체가 창조적 주체인 진짜 인간 피그말리온이었다면, 영화에서 주체는 창조적 객체인 가짜 로봇 조이다. 앞엣것이 인간의 모든 걸 뛰어넘는 감동적인 이야기라고 한다면, 뒤엣것은 로봇의 모든 걸 뛰어넘는 섬뜩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진짜가 가짜를 진짜로 만들고자 한다면, 그건 아직까진 진짜의 컨트롤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손아귀 안에서 바운더리를 치고 나름 안전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가 가짜를 진짜로 만들고자 했다가 실패했는데 가짜 스스로 진짜가 되고자 한다면, 그건 '아웃 오브 컨트롤'이다. 세상을 이루는 금기가 깨진 것으로, 바운더리는 존재하지 않고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는지도 알 수 없다. <조>의 세상이 그렇다. 


예쁜 디스토피아


영화 <조>의 한 장면. ⓒ (주)팝엔터테인먼트



그럼에도 <조>는 로맨스 영화이다. 사랑이 주된 내용인 것이다. 앞서 말했든 <조>의 세상은 금기도 깨지고 경계도 존재하지 않고 안전하지도 않은 디스토피아이지만, 영화의 외형은 철저히 '예쁘다'. 감독의 단순한 취향이라면 실망이다. 순간의 끌림을 위한 CF의 한 장면이 영화의 외형적 텍스트를 이루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를 의도한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정도이다. 영화의 내형적 컨텍스트를 담는 그릇으로 훌륭하게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디스토피아 SF 로맨스 연작을 생각해보면, 완벽하진 않지만 후자에 가깝다. 


사랑에 천착하는 로맨스의 환상과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색감, 빨려들어갈 것 같은 빛의 향연과 그에 조우하는 반사적 아련함과 뿌연 입체감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기까지 하는 것이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으로 패션 디자이너로서 세계적 명성을 쌓고는 영화 감독으로 전향해 그만의 색감과 미장셴으로 독보적 명성을 쌓고 있는 톰 포드의 영화들이 연상된다. <싱글맨>과 <녹터널 애니멀스> 말이다. <조>는 그보다 훨씬 예쁘다. 


음악은 또 어떤가. 그 자신이 아직 30대 후반의 영화 감독으로선 너무나도 젊은 나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느낌의 세련되고 힙한 음악을 예쁜 색감의 영상과 딱 맞아떨어지게 보여주는 것이다. 사랑을 속삭일 때면 여지없이 오글거리는 대사의 연속과 나른함까지 동반되게 하는 낮고 중후한 목소리들의 향연이 계속된다. 녹아내린다는 표현이면 적절할까. <조>는 보고 있으면 한없이 아련해지며 몽롱해지는 마법을 부린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고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 영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두려움이 끼쳐온다. 편안한 듯 균열이 감지되는 불편함이 시종일관 함께 한다. 


영화는, 결국 진짜 인간에게서 진짜 사랑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힘들고 어렵기에 가짜 로봇에게서 진짜 사랑을 찾으려 하고 약을 통해 가짜 사랑이라도 찾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고 찾으려는 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게 되며 진짜가 진짜일 필요가 있는지 가짜가 가짜여도 상관없지 않은지 근원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그런데, 진짜란 무엇이고 가짜란 무엇인가. 이 지극히 철학적인 명제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히지만, 영화는 개의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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