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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이자벨 위페르만 홀로 둥둥 떠다닐 뿐... 어중간하기 짝이 없다 <마담 싸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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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담 싸이코>


영화 <마담 싸이코> 포스터. ⓒ 쇼박스



감독과 배우들 면면, 그리고 간단한 시놉시스만으로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영화가 있다. 제목만 보면 매우 저렴한 스릴러일 것 같은 <마담 싸이코>가 의외로 그러한데, 감독은 닐 조단이고 주연배우는 이자벨 위페르와 클로이 모레츠이다. 이 정도면 시놉시스를 볼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아래에 보다 조금 자세한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하고 3명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먼저 닐 조단 감독, 우리에겐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로 유명하다. 자그마치 25년 전 영화인데, 당대 최고의 남자 배우들인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캐스팅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하지만, 닐 조단은 90년대 각본과 연출을 두루 섭렵한 최고의 감독 중 하나였다. <크라잉 게임>으로 오스카 각본상을 시작으로 런던 뉴욕 LA 시카고 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고, <마이클 콜린스>로는 베니스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푸줏간 소년>으로는 베를린 감독상을 수상했다. 드라마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자유자재 오간 거장이라 할 만하다. 


이에 못지 않은, 아니 '위대하다'고 칭할 만한 거장이 여기 있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이자벨 위페르, 할리우드가 주 무대이지 않음에도 전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한다. 칸과 베니스 여우주연상 2회를 비롯, 40여 년의 연기 활동 기간 동안 수십 번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영화 역사에 길이남을 거장 감독 클로드 샤브롤, 미카엘 하네케의 페르소나로도 유명하다. 더 이상 얻을 것도 올라갈 것도 없는 그녀이지만, 한 해에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여전히 왕성히 활동한다.


이들에 비하면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또 한 명의 주연배우 클로이 모레츠는 갓 20살을 넘은 약관의 나이에도 가히 엄청난 필모를 쌓았다. 10대가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데뷔해 꾸준히 활동한 결과인데, 소싯적 <킥 애스> <렛 미 인> <휴고> 등이 대표작으로 남아 있는 아쉬움이 있다. 또래 나이대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2010년대 후반 들어 출연한 영화들이 하나같이 좋지 못했다. 지치지 말고 계속 꾸준하길 바란다.


현실적인 싸이코


현실적인 싸이코를 그리다.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뉴욕 지하철, 누군가 놓고 간 녹색 가방을 본 젊은 여성 프랜시스(클로이 모레츠 분)는 같이 사는 룸메이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주인을 찾아간다. 녹색 가방 주인은 그레타(이자벨 위페르 분)라는 이름의 기품 있고 격조 있는 중년 여인이다. 남편과는 사별하고 딸 아이는 프랑스에 있어 혼자 산다는 그녀에게, 엄마를 작년에 여의고 아빠와는 멀리 있는 프랜시스는 동질감을 느낀다. 


다시 만나 그레타가 안락사 직전의 개 모튼을 집으로 데리고 오는 데 함께 하는 그들, 이후 마치 엄마와 딸처럼 사이가 가까워진다. 하지만 프랜시스 룸메이트 에리카는 못마땅하고 또 그 모습이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교류를 하던 어느 날 그레타의 집에서 수많은 녹색 가방을 발견한 프랜시스, 바로 집을 뛰쳐 나오며, 그레타로부터 시작된 인위적이고 위선적인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레타는 관계를 끊을 생각이 없다. 프랜시스를 향한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스토킹이 시작된다. 회사와 집을 오가는 건 물론, 에리카까지 스토킹하며 프랜시스를 불안에 떨게 한다. 급기야 프랜시스가 일하는 레스토랑에서 본성을 드러내곤 경찰에 끌려가고 만다. 너무 했나 싶었는지 프랜시스는 그레타에게 사과하고 뉴욕을 떠난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서막의 불과했으니, 그레타의 진정한 싸이코 본성이 깨어난다. 


일상, 집, 모성의 공포


편안한 일상, 특별할 것 없는 집, 포근한 모성의 공포.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마담 싸이코>는 일면 저렴해 보이는 제목과는 다른 원제을 갖고 있다. <그레타>가 그 원제인데, 사실 이 영화는 그레타 즉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나 마찬가지이다. 극중 나오는 모든 다른 인물들은 그레타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물론, 그중 그레타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도구는 프랜시스이겠다. 엄마를 잃은 프랜시스에게 "엄마처럼 널 안아주고 사랑해줄 누군가가 필요하지"라는 빌미로 가학적 욕망이 분출된 폭력을 휘두르니 말이다. 


그레타의 빙뚱그러진 성향도 사실 수단에 불과하다. 그 자체로 목적성을 띤 게 아니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별 다를 게 없는 집과 포근하고 편안한 모성이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하기에 그레타로 분한 이자벨 위페르의 싸이코 연기는 영화에서 절대적으로 자리한다. 뒤틀리고 파괴된 내면 연기의 대가답다. 캐스팅의 대사 닐 조단의 승리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는 그레타가 싸이코 본성을 양파 껍질 벗기듯 하나하나 내놓은 흐름과 결을 같이한다. 공포의 수위가 계단 올라가듯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주지했듯, 1부와 2부로 나뉘다시피 하는 구성이 한몫했다. 다만, 일상 기반 공포답게 심장을 칼로 도려내는 듯한 날카로움 대신 심장을 움켜쥐고 놓지 않는 듯한 쫄깃함을 선사한다. 


아쉬움 가득한 부분들


아쉬움 가득하다. 영화 <마담 싸이코>의 한 장면. ⓒ 쇼박스



<마담 싸이코>는 이자벨 위페르의 영화 급에 맞지 않은 '쓸데없는 고퀄리티' 연기 빼고는 감상할 만한 포인트가 많지 않다. 영화 앞부분에서 보여주려는 일상에 스며든 공포, 뒤틀린 내면의 분출과 뒷부분에서 보여주려는 실존적 공포의 심리적 점진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다른 장르라고 느껴질 만큼 파격적으로 구분을 하면서도 스토리나 맥락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었어야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레타에게 있다. 그레타의 뒤틀린 욕망이 모성 언저리 어딘가에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명확히는커녕 그녀가 보이는 행동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수단으로밖에 느껴지지 않게 한 것이다. 영화 전체가 수단의 수단화로 구성되다 보니 해석할 여지도 딱히 보이지 않아 풍부함마저 지닐 수 없었다.


전체적인 기조는 물론 공포스릴러를 띄되, 앞부분에서는 엄마와 딸, 그 애증의 관계를 풍부한 해석 가능하게 던져놓고 뒷부분에서 속도감 있고 자못 잔인하고 파괴적으로 해석의 한 부분을 보여주며 '모성'의 논란적 함의로 끝을 맺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것이다. 어중간하기 짝이 없는 영화, 어리둥절하게 이자벨 위페르의 얼굴과 대사와 몸짓만이 허공에서 홀로 둥둥 떠다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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