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작 열전/신작 영화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마녀 배달부 키키>

728x90



[리뷰] <마녀 배달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 포스터. ⓒ스마일이엔티



'마녀'가 되기 위해선 13살에 고향 마을을 떠나 1년간 다른 곳에서 정착해 수행해야 한다. 13살 견습마녀 키키는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아직 제대로 타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타고 길을 나선다. 바다를 낀 거대한 마을에 도착한 키키와 지지, 하지만 환영받지 못한다. 풀이 죽어 길을 돌아다니다가 빵집의 오소노 아줌마를 도와주게 되고, 이내 오소노의 도움으로 머물 곳을 마련한다. 


빵집에서 머물며 빵집 일도 도와주고 날아다니는 능력을 이용해 배달부 일도 한다. 성심성의껏 고객들을 응대하며 마녀로서의 수행도 하고 마을에도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키키에게는 이 거대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되어온 못마땅함이 자리잡고 있다. 시골 고향 마을에서 출발하면서 돈 몇 푼에 무채색 칙칙한 옷 한 벌 정도만 여분으로 가져온 점이다. 이곳에 와서 보니 또래 친구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게 아닌가. 


마녀로서의 수행과 성장이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 키키는 알지 못한다. 우선 자립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고, 또래 도시 친구들처럼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꾸미고 놀 수가 없다. 이 자괴감을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키키는 마녀라는 특별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13살에 불과한 소녀이기도 하다. 그녀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빵집 오소노 아줌마, 숲속 화가 우르슬라, 도시 친구 톰보는 그녀를 특별하게 여긴다. 


30주년 기념 재개봉 <마녀 배달부 키키>


3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하는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의 다섯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마녀 배달부 키키>가 2019년 30주년을 맞이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브리 설립 이전에 <루팡 3세>가 첫 번째 장편이고, 지브리 스튜디오는 <반딧불의 묘>가 네 번째 장편이다.) 앞서 6월 6일에 재개봉한 <이웃집 토토로>와 불과 20일을 두고 재개봉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성기는 2000년대라 할 만하지만,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80년대를 수놓은 작품들이 긴 세월을 건너 다시 찾아온 것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따로 있는 원작을 바탕으로 연출한 첫 번째 작품이다. 하여, 기본적인 골조와 메시지는 그가 추구하는 세계관과 일맥상통하지만 특유의 핵심 주제와 분위기는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그와 지브리가 내놓은 수많은 명작들을 굳이 나누자면, 이 작품은 하급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렇지만, 한없이 귀여운 캐릭터 키키와 지지, 몽글몽글하고 편안한 분위기, 부담없는 주제 등이 어우러져 개봉 당시 큰 흥행을 이끌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비로소 대중과 연결시킨 작품인 것이다. 다만, 그리 잘 나가지 않았던 지브리 스튜디오 초창기의 애매함과 미야자키 하야오 개인의 네임벨류가 완벽히 상통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제작과정에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줄 안다.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 마녀 키키.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영화의 배경은 시간적, 공간적, 인종적으로 일본 아닌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한 유럽인 듯 보인다. 원작가와 연출가의 기획에 따른 결과였을 텐데, 마녀라는 특별한 존재를 특별한 듯 별다르지 않게 대하는 시대를 상정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바로 전작인 <이웃집 토토로>가 아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특별한 존재를 자못 비밀스럽고 환상적으로 내보이는 것과 다르게, <마녀 배달부 키키>는 모든 이들의 눈에 보일 뿐더러 어울려 살기에 하등 이상할 게 없는 특별한 듯 특별할 것 없는 존재를 내보이는 것이다. 


중년인 듯한 동네 주민들이 '요즘엔 마녀를 잘 볼 수 없다'는 둥 '들었던 대로 날아다닌다'는 둥 하는 걸 보니, 마녀를 이제는 잘 보기 힘든 지나간 구시대의 신기한 존재처럼 취급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키키 본인은 조금 서글플지 모르지만, '키키'라는 주체가 아닌 '마녀'라는 객체이자 대상이 되어 전시되는 것보단 훨씬 건강해 보인다. 그녀가 그녀로서도 마녀로서도 성장과 좌절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이런 건강한 기반이 구축되어 있는 덕분이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확장된 동심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서로 이(異)세계라고 해도 무방한 곳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 거리낌 없이 더불어 살고 있는 모습에 감탄을 보낸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게 최대 미덕이라고 하는 지금이지만, 여전히 '획일화'라는 괴물과의 사투를 계속하고 그 사투에서 이기지 못하는 면면을 보고 느끼고 있노라면 그 감탄의 무게는 무겁기 짝이 없다.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


특별한 마녀이자 평범한 소녀의 성장과 좌절을 그린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한 장면. ⓒ스마일이엔티



특이하기도, 귀엽기도, 부럽기도 한 세계, 그러나 주지한 것처럼 건강한 기반을 갖춘 곳에서 '소녀'이자 '마녀'인 키키가 겪는 성장과 좌절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성장이 마녀만의 능력을 이용하지만 소녀로서의 능력에서 벗어나기 힘든 억척스러운 현실을 반영했다면, 좌절 또한 (사춘기) 소녀로서의 복잡미묘한 심리에서 비롯되지만 역시 마녀로서의 기본 능력이 함께 저하되는 현상도 반영한 것이다. 


특별한 마녀와 평범한 소녀라는 대척점과 거기서 비롯된 상징적 대립 하에서의 성장과 좌절은, 사실 우리 모두 한 번쯤 느껴보고 겪어봤음직 하다. 그건 평생 계속된다. 단순하게든 복잡하게든, 누구든 자신이 때론 특별하게 또는 대단하게 때론 평범하게 또는 하찮게 느껴지는 법이다. 언제든 중심을 잃지 않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단, 더불어 사는 세상인 만큼 내가 남을 알아봐주고 남이 나를 알아봐주는 특별하든 평범하든 개의치 않고 진가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키키에게는 고향 마을에서 그녀를 응원하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말이 통하는 검은 고양이 지지가 있고, 그녀를 마녀로서뿐만 아니라 소녀로서도 알아주는 톰보와 우르슬라도 있으며, 그녀의 성실함과 친절함에 반해 인간적으로 교감하게 된 고객들도 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도 키키라는 존재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가 곧 개인이 각자도생하는 사회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절대적으로 상부상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 절대적으로 혼자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며 살아갈 거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도움과 인정을 주고 받는 데 인색함이 없는 삶과 세상이 되길 바란다. <마녀 배달부 키키>가 보여주는 삶과 세상이 바로 그러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