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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갤버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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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갤버스턴>


영화 <갤버스턴> 포스터. ⓒ ㈜삼백상회



세기말에 프랑스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하여 조연으로 차근차근 입지를 쌓고 주연으로 발돋움 후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도 모자라 메이저 영화 주연을 꿰찬 배우. 데뷔한 지 10여 년 후에는 감독으로도 데뷔하여 단편 필모를 쌓은 후 다큐멘터리와 장편까지 섭렵한 감독. 물론 각본도 직접 쓴다. 그런가 하면 가수로도 활동한 바 있다. 멜라니 로랑을 수식하는 말들이다. 


그녀는 올해는 활동 소식이 없지만 작년까지 매해 숨막히는 활동을 해왔다. 그 최신작 중 하나가 우리를 찾아왔다. 유명 미드 <트루 디텍티브> 시리즈와 영화 <매그니피센트 7> 각본을 썼던 닉 피졸라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 함께 한 <갤버스턴>이다. 멜라니 로랑이 감독으로 참여했다. 잔잔하지도 파괴적이지도 않은 애매함과 잔잔하기도 하고 파괴적이기도 한 풍성함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영화라 할 수 있겠다. 하드보일드한 스타일에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남부 텍사스주에 있는 작은 도시다. 19세기 번창한 항구도시로 시작했지만, 20세기 초 최악의 허리케인이 강타해 재앙적 피해를 입혔다. 이후 잘 막아냈지만, 종종 크나큰 피해를 입혔다. 근처의 휴스턴이 급부상하면서 급격히 위축되었다. 여전히 중요한 곳이지만,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작은 휴양지 정도의 위상이다.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청부살인업자와 매춘부의 도망 여행.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대략의 내용과 분위기 모두 기시감이 들게 한다. 죽을 병에 걸린 청부살인업자 로이(벤 포스터 분), 알콜 중독에 니코틴 중독인 듯 보이는 그는 보스 스탠의 명령에 동료와 함께 누군가를 헤치러 어느 집에 잡입한다. 하지만 곧 역습 당해 동료를 잃고는 간신히 살아남아 빠져나온다. 어린 매춘부 록키(엘르 패닝 분)와 함께. 그들은 스탠의 함정에 빠진 걸 깨닫고 정처 없이 도망 여행을 떠난다. 


도중 록키는 자신의 집으로 가 여동생 티파니를 데려온다.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셋은 안전해 보이는 갤버스턴의 어느 모텔에 정착해 장기투숙한다. 로이는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이곳까지 쫓아오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씩 마음을 논다. 셋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편안한 시간도 가진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 가지 못하는 듯하다. 사건이 엉뚱한 데서 터지고 말았던 것이다. 스탠의 압박이 아니라, 록키와 티파니의 기막힌 사연과 그에 따른 비극이 부른 참사 때문이었다. 그들이 노출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니, 이미 노출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있긴 한 걸까. 거기에 '행복'이라는 패가 있을 리 만무하다.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영화 <갤버스턴>은 확실한 장점과 명백한 단점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보여진다. 배우 출신 멜라니 로랑 감독인 만큼, 캐릭터에 매우 천착했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이라는 베테랑들이 그에 철저히 부합했다. 잔혹한 외면에 저항하고 버티기 위함인 듯한 쓸쓸한 내면을 탁월한 연기로 표현해냈다. 그러면서도 그 이름값에 맞게 튀지도 않고 작품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스토리와 사건이 그를 받쳐주지 못한 듯한 인상이다. 나이 든 순정한 마초킬러와 그를 따르는 모든 걸 잃은 어린 여자. 그들은 언제 파멸이 눈앞에 다가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께 여정을 떠난다. 다시 없을 좋은 시간도 보낸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비극이 찾아온다. 좋은 기억과 예쁜 장면만을 남긴 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프랑스의 <레옹>과 한국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이밖에 수많은 킬러 이야기를 다룬 영화에서 이 스토리 라인이 변주되었다. <갤버스턴>도 그 변주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이 영화는 주지했듯 '갤버스턴'이라는 지명이 주는 분위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휴양 항구도시의 평화로운 외향을 띄고 있지만, 그 이면엔 살기 힘들게 하는 재앙적 재해의 빈번함과 한때 번창했다가 위축된 도시의 역사가 복잡다단하게 함축되어 있다. 하지만 갤버스턴이라는 배경과 두 주요 캐릭터 간의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되진 못한 것 같다. 따로 노는 느낌이랄까. 각각 꽤 괜찮은 미장셴을 선사하지만, 굳이 둘을 어울리게 하여 '그림이 되게끔' 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운명 앞에 가해자 아닌 피해자


운명 앞에 피해자들이 운명 앞에 피해지 갤버스턴으로... 영화 <갤버스턴>의 한 장면. ⓒ ㈜삼백상회



여기서 그래도 눈여겨봐야 할 건 사람의 힘으론, 개인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이다. 갤버스턴에 재앙적 허리케인이 계속해서 들이닥치는 것도, 갤버스턴보다 훨씬 더 큰 도시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로이가 보스의 추격을 따돌리기 힘든 것도, 록키가 매춘부로 살아가는 것도 어찌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수많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어찌어찌 헤쳐 나가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세상을 이끌어가기에, 그들이 보기에 어찌할 수 없는 것들 앞에 주저앉는 건 그저 나약한 것일 테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결과론적으로 도출되는 것이고, 어찌할 수 없는 건 어찌할 수 없는 거다. 


<갤버스턴>은 그런 면에서 운명의 피해'자'들이 운명의 피해'지'로 대피하여 소중한 시간을 갖다가 다시 가해자들 앞으로 끌려가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한 듯한 영화의 분위기는 거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신기하게 다 보고 나면 기분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뭔지 모를 여운이 남는다. 마지막의 슬프게 소소한 반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우리 모두 운명 앞에서 절대 가해자 아닌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 동질감이 그리 괜찮지 않은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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