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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계획' '계단' '계시' 세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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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기생충>

 

영화 <기생충>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젊은 감독, 장편 연출 필모가 채 10편이 되지 않는 그는 봉준호다.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본인은 부끄러워 하지만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 내놓은 <플란다스의 개>부터 달랐다. 이후 3~4년을 주기로 내놓은 작품들, 이를 테면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까지 하나같이 평단과 대중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어느 하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봉준호 하면 박찬욱, 김지운과 더불어 2000년대 한국영화 감독 트로이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하지만 박찬욱처럼 전 세계 영화제와 씨네필이 사랑한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고 김지운의 미장셴처럼 그만의 독창적인 영화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다. 대신 그는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함을 자랑한다. 굳이 '봉테일'이란 별명을 가져오지 않아도 그가 영화를 완벽하게 만든다는 걸 잘 안다.

 

사실 그는 저 둘뿐 아니라 한국영화 감독들을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감독 중 하나이다. 6편의 장편을 내놓으며 약 31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옥자>32만 명을 동원했는데, 넷플릭스 배급작이었거니와 당시 모든 멀티플렉스들이 상영을 반대했음에도 거둔 성과였다. <옥자>가 멀티플렉스에도 정상적으로 개봉했다면 730만 명 정도의 관객이 들었을 거란 예측도 있다. 여기에, <기생충>1000만 명 이상 관객이 들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니 만큼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영화 100주년이라는 적절한 타이틀이 붙은 시기에 <기생충>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탄 것이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베니스, 베를린 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칸영화제의 명명백백 최고의 상인 황금종려상. 이미 흥행에서 비교불가가 된 봉준호 감독에게 평단의 비교불가 딱지가 붙어버렸다. 일찍이 임권택, 이창동, 홍상수, 김기덕, 박찬욱 등이 세계 3대 영화제를 휘젓고 다녔지만 해당 영화제 최고 상을 탄 건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탄 게 유일하다.

 

계획 

 

키워드 1 '계획'.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식탁에 앉아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끝이 보이는 반지하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 분)네 네 식구, 어쩌다 보니 네 명 모두 백수로 지낸다. 돈이 없으니 핸드폰은 있는데 인터넷을 신청하지 못하니 윗집이나 근처 카페 와이파이를 빌리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짠하다. 그들에게도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있으니 기택 아들 기우의 절친 민혁이다. 그는 기택네를 잘 챙겨주는 것 같은데 곧 유학을 떠난다며 기우에게 본인이 하던 부잣집 딸 과외를 부탁한다. 비록 기우는 대학을 다니지 않지만 네 번이나 수능을 본 경험으로 충분히 거짓말을 칠 수 있다.

 

<기생충>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몇몇 단어들을 자주 언급하는데 '계획'이 그중 하나다. 보아 하니 기택네 네 식구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인 듯한대, 그 시작이 우연히 그리고 거짓으로 시작된 부잣집네 딸 과외인 것이다. 기우의 말마따나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 계획적 행위는 현실 탈출 아닌 현실 유지의 의지에 맞닿아 있다. '지상' 아닌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건 언감생심, 지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들이다.

 

영화 속 기택네 식구들의 계획이 잘 성공하길 바라면서도, 그런다고 무엇이 바뀔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들을 응원하고 동조하고 공감하고 있는 내 자신이 싫어지기도 한다. 아직은 영화가 불편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씁쓸하지만 자못 웃기기까지 하다. 한편, 영화 속 이들의 계획과는 달리 영화 밖 봉준호 감독의 계획은 시작부터 완벽해 보인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하면서도 다분히 판타지적인 <기생충> 속 세계는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직조된 직물과 같다. 기택네라는 씨실과 박사장네라는 날실의 교차가 너무나도 정교하다.

 

계단

 

키워드 2 '계단'.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잘 나가는 IT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 분)네 역시 네 식구다. 아내 연교(조여정 분)는 착하고 쿨하고 나이스한데 남편도 그러하다. 흔히 생각하는 상류층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박 사장은 ''을 중요시한다.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을 넘나드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기택네는 그걸 이용해 계획을 짰고 성공한다. 과연 그들도 박 사장의 선을 잘 지킬 수 있을까? 똑똑한 그들이니 이성적으로 잘하겠지만 그만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면 선이 허물어지는 건 한순간이 아닐까.

 

<기생충>의 또 다른 중요 키워드는 '계단'이다. 기택네 계획이 계단으로 상징되는 계급·계층을 허물거나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게 아니라는 건 앞서 언급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똑똑한 그들이니 만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았을 테다. 그러하기에 이 영화에서 계단은 감독이 다분히 일부러 만들어놓은 상징이다. 그 자체로 특별한 뜻이 있다기 보다 기택네와 박 사장네를 오가고 교차하고 비교하는 표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다. 기택네는 계단을 비롯해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오르내리지만 결국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봉준호 감독은 필모를 통해 일관적으로 사회 비판적 성격을 유지해왔다. 자연스레 대안 없는 자본주의 하에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극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을 형상화하여 드러내고자 했다. <설국열차>가 기차라는 수평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와 아이러니하게도 촘촘히 나뉘어져 있는 계급·계층의 단면을 보여주려 했다면, <기생충>은 계단이라는 수직적 구조의 소재를 가져온 듯하다.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구조는, 그래서 더욱더 극명하게 대조되며 한편 절대 서로 맞닿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이쯤 되면 불편하다.

 

계시

 

키워드 3 '계시'.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CJ엔터테인먼트



기택네와 박 사장네의 조우는 자못 훌륭해 보인다. 별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다. 기택네는 기필코 선을 넘으려고 하진 않고 박 사장네는 선만 넘지 않으면 쿨하고 나이스하지 않나. 그냥 그렇게 제 자리를 지키며 살면 만사형통할 것이다. 하지만, 뭔가 하나 빠진 것 같지 않나. '지상'의 박 사장네와 반'지하' 또는 반'지상'의 기택네라면, '지하'에도 누군가가 존재해야 하지 않겠나. 수직적 구조가 완성되어야 한다면 말이다.

 

<기생충>을 이루는 세 개의 ''가 있다면 '계획' '계단'과 함께 '계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인간으로선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이 가르쳐 알게 한다는 뜻의 계시. 영화에서 ''과 함께 박 사장네를 통해 자주 언급되는 '냄새'가 깨달음을 준다. 그건 영화 속 기택네에게도 영화 밖 우리네에게도 동일하게 통용될 수 있을 듯한대, 씁쓸과 불편을 넘어 불쾌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다. 99%라고 일컬어지는 절대다수 소시민이 이 영화를 보고 깨닫게 되는 그것, '계급·계층은 냄새로 구분지어 진다'는 섬뜩하고 불쾌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명제.

 

기택네가 박 사장네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1차 현실적 깨달음, 박 사장네가 사회에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2차 자조적 깨달음, 층과 단과 급을 구분짓는 선이 사실 본능적 냄새로 구분짓게 된다는 3차 명제적 깨달음. 물밑듯이 들이닥치는 개인 정신파괴적이지만 사회 체제파괴적이지는 않은 깨달음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영화는 결코 부정적이기 짝이 없는 암흑세계가 아닌 다분히 지금 여기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명백한 디스토피아 영화이다. 지금 여기의 현실이야말로 최악의 디스토피아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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