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로제타>
영화 <로제타> 포스터. ⓒ찬란
전 세계 수많은 영화제들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 칸 영화제에서 수많은 상이 수여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황금종려상'이다. 당연히 평생 한 번 타본 감독도 많지 않을 터, 그런 황금종려상을 두 번 이상 탄 감독들이 있다. 일명, '칸이 사랑하는 감독'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 건 1955년이지만, 그 전후로 일정 기간 '국제영화상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때까지 합치면 총 8번이다.
그중 한 명이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1996년 <약속>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후 9편을 내놓을 동안 칸에서 6번 수상했다. 칸의 경쟁부문 주요 상이 '황금종려상'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심사위원상' '감독상' '각본상' 그리고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정도가 있는데, 다르덴 형제는 심사위원상을 제외한 모든 상을 탔다. 칸의 보기 드문 애(愛)다르덴심이다.
그중에서도 1999년 그들의 두 번째 장편영화 <로제타>는 특별하다. 칸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게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연스레 그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며, 이 영화가 벨기에 사회에 끼친 영향이 실질적으로 엄청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또 이뤄내고자 한 걸 정확히 행할 수 있었다.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로제타
로제타는 계속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공장에서 일하던 18세 로제타는 수습기간을 채우고는 쫓겨난다. 이럴 순 없다고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고 부탁하고 발악해보지만 해고 통보를 받은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나와야 한다. 앞날이 막막하다. 그녀는 알코올중독자 엄마와 함께 이동식 트레일러에서 생활한다. 헌옷을 팔고 관리인 몰래 낚시를 해서 생계를 이어보려 하지만 그마저도 어렵다.
수습기간을 채웠을 뿐이라 실업급여도 받기 힘들다. 여기저기 아무 데나 들어가 일자리를 청해보지만 거절당하기 일쑤다. 와플과 맥주로 끼니를 때울 뿐이다. 와플 가게 사장에게 일자리를 얻어 와플 반죽 일을 시작한다. 가게에서 일하는 리케와도 친해져 친구가 된다. 무표정하기만 하던 로제타에 얼굴에 억지웃음일지 모를 웃음꽃이 피어난다. 그녀는 일자리를 얻었고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반죽 일을 시작한 지 3일 만에 로제타는 쫓겨난다. 사장이 본인의 못난 아들을 그 자리에 대신 앉힌 것이다. 로제타는 이런 법이 어디 있냐고, 어떻게 3일 만에 쫓아내냐고, 아들놈보다 내가 훨씬 일을 잘한다고 하며 발악한다. 하지만 달리 방법은 없다. 당장 일을 그만두고 나가는 수밖에. 로제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핸드헬드, 클로즈업, 롱테이크
영화는 핸드헬드, 클로즈업, 롱테이크 등으로 로제타의 내면을 표현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영화 <로제타>는 1998년 당시 청년실업률이 50%에 육박했던 벨기에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 숙달된 기술과 지식을 갖추지 않은 사회초년생 청년들은 일자리를 잡기 힘들었고 힘들고 힘들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50%의 실업률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극중 로제타의 하루하루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일자리가 생계와 직결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르덴 형제는 앞으로도 그들의 영화에 계속 쓸 영화적 기법으로 로제타의 내면을 충실히 들여다보았다. 로제타의 처절하지만 특별한 사건이랄만 한 게 없는 일상에 열중하게 만든다.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기법은, 로제타가 두 발로 디딘 현실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어지럽기 짝이 없어 보기가 힘들지만, 그럴수록 로제타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그녀의 내면은 이보다 더 어지럽겠구나.
클로즈업에 이은 롱테이크는, 그런 로제타의 무표정을 비춘다. 그녀는 생계도 유지하고 엄마도 챙겨야 하는 와중에 일자리를 얻으려는 몸부림을 친다. 그야말로 치가 떨릴 정도로 어지러운 현실인데, 표정은 딱히 없는 것이다. 모든 걸 초월한 듯보이는 그녀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을 이입하게 만든다. 그녀의 속사정을 아는 만큼, 그녀의 무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이다.
대사를, 특히 로제타의 대사를 거의 찾을 수 없는 와중에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건 비단 영화적 기법들 덕분은 아니다. 세상에 내놓은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국내개봉에 성공한 것처럼, 20년 전 당시의 벨기에 청년과 지금 한국 청년의 상황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공감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고 쉽게 좋아지지 않나 보다.
로제타 플랜
영화가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타는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벨기에 정부는 '로제타 플랜'을 가동한다. 영화 <로제타>의 한 장면. ⓒ찬란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더불어, 유럽을 대표하는 사회주의 감독이라 할 수 있는 다르덴 형제. <로제타>는 그들의 초창기 작품인 만큼, 사회주의 성향에 기반해 상당히 투철하게 현실비판적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다. 현실이라면 다름 아닌 '자본주의'가 아닐까 싶다. 오로지 개인 스스로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로제타를 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대리인으로 '기업'을 내보인다. 로제타를 쫓아내는 사장들 말이다. 하지만 그건 기업을 이끄는 오너의 개인적 마인드이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들을 내보인 이유는, '정부'에게 그들을 컨트롤하라고 항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기업들이 이따구로 행동해서 청년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렇게 생활하고 있으니 너네가 나서라, 하고 말이다.
영화가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 영화제에서 보란듯이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을 타면서, 벨기에의 현실이 전 세계에 알려진 마당에 정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벨기에 정부는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청년실업대책을 더욱 강화해 2000년부터 '로제타 플랜'을 가동한다.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에겐 일자리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기업에게는 일정 이상의 청년 고용을 의무화했다.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을 현실로 옮긴 가장 정통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르덴 형제는 지금도 세상을 바꾸려는 생각으로, 어쩌면 영화를 수단으로 생각하며 영화를 찍고 있을 것이다. 다 좋은데, '로제타 플랜'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언론에 오르내리며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씁쓸하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다. 로제타 플랜만으로는 '궁극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세상 아닌 개인의 안위, 장기 아닌 단기만을 보고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건 세상을 구성하는 대다수의 마인드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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