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큐레이터'S PICK] <김군>
영화 <김군> 포스터. ⓒ영화사 풀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다. 정부는 곧바로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한 지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러곤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12월 12일 군내부 강경파 집단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을 장악한다. 그들은 민주화 수순으로 가고 있던 정국을 역행시킨다.
이듬해 5월초 하나회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정국 장악을 넘어서 집권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권과 정치권에선 이 움직임을 경계심 어리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차 5월 중순부턴 본격적으로 시위를 진행했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10만 명이 집결했다가 해산하기도 했다. 5월 20일에는 임시국회가 예정되어 있어 정치권에서도 호응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이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전격적으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내린다. 5월 18일 광주 지역 대학생들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공수부대가 투입되어 강력하게 진압한다. 하지만 공수부대의 진압은 시위하는 대학생들에게로만 향하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죽였다. 광주 시민들과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공수부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도 폭행을 자행한다. 급기야 5월 21일에는 집단발포가 시행된다.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시민군을 결성해 대치한다.
제1광수 또는 김군 추적하기
북한 특수군 제1광수인가, 동네청년 시민군 김군인가.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시민군이 결성될 때까지의 대략적 전개 양상이다. 당시 정권의 하수인 언론들은 이들을 두고 불순분자와 고정간첩의 소행으로 몰고 갔다. 30년이 훌쩍 넘은 2016년에는 지만원 씨가 이들을 두고 북한 특수군이라고 지칭하는 화보집을 출간했다. 400여 명의 북한 특수군이 5.18 당시 광주에 침투해 시위와 공수부대 대치를 진두지휘했다는 주장이었다. 지만원은 그들을 두고 제1광수, 제2광수, 제3광수 하는 식으로 이름을 붙였다.
영화 <김군>은 '제1광수' 추적을 주요 골자로 한다. 5.18 관련 사진자료 곳곳에서 얼굴을 비춘 그를 두고, 지만원은 2010년 평양에서 찍힌 사진 속 김창식 씨라고 주장한다. 손에 지문이 있는 것처럼 얼굴에도 오차 없이 대조할 수 있는 게 존재한다면서. 이에 5.18 관련 단체들은 소송을 내면서 '북한 특수군 광수들'을 찾기 시작해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제1광수는 찾을 수 없었다.
한편, 영화에선 중반이지만 사실 영화가 시작된 지점인 '주옥' 씨의 기억이 이에 맞선다. 그녀는 5.18 당시 임신을 한 몸으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배급하는 일을 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제1광수 아닌 '김군'이 생생하다. 대야에 주먹밥을 담아 트럭 위로 날라주던 그때 보았던 김군, 그는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던 청년으로 아버지 가게의 단골이기도 한 넝마주이였다.
영화는 자못 순수한 의도로 제1광수와 김군을 추적한 것으로 보인다. 같은 사진을 두고, 누구는 제1광수라는 이름 하에 북한 특수군이라고 주장하고 누구는 김군이라는 이름 하에 동네 청년이라고 기억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들지 않은가. 5.18 민주화운동을 전제한 게 아니라 제1광수와 김군 간의 진실 찾기를 전제한 것이다. 물론 그 진실이야말로 5.18 민주화운동에 가장 근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을 테다.
5.18의 모든 이들 이야기
이 영화는 5.18 당시 시민군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5.18 관련 영화는 실로 많이 만들어졌다. 가해자, 피해자, 외부자 등 다양한 시선으로, 정공법과 스케치 등을 통해 들여다보았다. <박하사탕> <꽃잎> <화려한 휴가>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이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꾸준히 관객을 찾아오고 있다. 한편 5.18 다큐멘터리는 그 사안이 사안인 만큼 매해 나오고 있을 테다. 와중에 <김군>은 극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5.18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5.18 민주화운동이 광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일주일 정도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일어난 항쟁이라는 점을 기인해봤을 때, 내년이면 40주년이 됨에도 불구하고 진상이 100% 밝혀지지 않다는 게 기이하다. 사실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지만, 여전히 당시 많은 가해자들은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권력으로 사실과 진실을 오도하고 피해자들은 여전히 힘 없는 소시민으로 사실과 진실을 알릴 역량이 없다. 또한 피해자들은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아픈 기억과 경험'과 싸워야 한다.
<김군>의 '김군 찾기'도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겠다. 지만원이 앞장서 벌이는 가해자들의 '진실의 오도'를 바로잡기 위한 지난한 투쟁. 일반 시민을 북한 특수군으로 둔갑시켜버리는 스케일은 그 황당함 만큼이나 크다. 지만원이라는 사람이 왜 그러는지 알고 싶지는 않으나, 그로 인해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 대해선 알고 싶다. 이 영화는 지만원도, 김군도, 지만원이 지목한 광수들도 아닌 5.18 당시 시민군과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이야기이다.
잘 만든 영화
영화로서도 볼 만하게 잘 만들었다. 영화 <김군>의 한 장면. ⓒ영화사 풀
<김군>은 영화로서 참 잘 만들었다고 본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기본 얼개는 영화를 끝까지 긴장감 어리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영화의 중심소재를 기가 막히게 잡은 것이다. 제작진 또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찾는 과정을 오롯이 담았기에 다큐멘터리에서 느끼기 힘든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김군의 실체를 찾고자 즉 이 영화를 만들고자 만 4년이 걸렸다는데, 찾았는지 찾지 못했는지는 여기서 밝히진 않겠다. 어떤 식으로든 큰 반향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싶다.
소재와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니 만나게 되는 5.18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지난 40여 년 동안 수없이 만나왔던 당사자들은, '당사자들'이기 때문이었지만 이 영화에서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주가 아닌 객에 가깝기에 최소한 보는 이들은 덜 부담스럽다. 부담을 덜 때 슬프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닐까. <김군>의 지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다. <김군>은 그 어떤 5.18 콘텐츠보다 5.18에서 먼 곳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그 어떤 5.18 콘텐츠보다 5.18에 가깝게 다가간 듯 보인다. '제1광수' 또는 '김군'의 사진 한 장이라는 디테일한 소재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태생부터가 디테일하니 과정이 디테일한 건 전혀 이상할 게 아니다.
부디 '진실'을 되찾길 바란다. 이 영화가 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5.18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과의 싸움, 즉 진실과의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그 수많은 삶과 죽음을 이용해 하찮은 욕망을 채우려는 이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김군> 같은 콘텐츠로 훌륭하게 대응해주었으면 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진실의 승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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