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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거장' 미카엘 하네케가 보여주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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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해피엔드>


영화 <해피엔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카엘 하네케, 자타공인 '거장'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현역 영화감독 중 하나이다. 영화평론가를 하다가 연극, 텔레비전 일을 전전하고는 한국 나이 48세에 비로소 장편영화 데뷔를 했다. 올해로 데뷔 30주년, 그동안 10편 남짓한 작품을 만들었고 어느덧 80세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활동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있다. 


코엔 형제, 다르덴 형제, 켄 로치와 더불어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일 미카엘 하네케, 심사위원대상과 감독상과 대망의 황금종려상 2회 수상에 빛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메인 상에서 각본상과 심사위원상만 타지 못했을 뿐, 그 위의 진짜배기 상들은 모조리 수상한 이력이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09년 <하얀 리본>과 2012년 <아무르>(미카엘 하네키 필모 상으로) 초유의 연속 황금종려상 수상은 그를 더이상 높이 올라갈 수 없을 만큼 올려놓았다. 아무래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5년 만에 들고 온 <해피엔드>는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숙미의 끝을 보여주며 더할 나위 없는 예술로서의 영화를 만들었을지, 시도해보지 않았고 못했던 새로운 것을 찾아 실험정신을 발휘해 영화를 만들었을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해피 엔드>는 후자에 가까웠다. 


파편화되고 단절된 가문


파편화되고 단절된 프랑스의 어느 가문을 중심으로.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프랑스 칼레, 지방 유지이자 건설업 부자 '로랑'가로 13살 여자아이 에브가 들어온다. 그곳에는 최연장자이자 로랑 가문의 건설회사를 일으킨 조르주, 조르주의 뒤를 이어 CEO로 활동 중인 앤, 에브의 아빠이자 외과의사 토마스, 앤의 아들이자 가문과 회사의 유일한 후계자 피에르가 있다. 토마스의 전 부인이자 에브의 엄마는 약물과다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것이다. 다름 아닌 에브가 저지른 일이다. 


식사 때면 어김없이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가족들, 하지만 지극히 파편화되고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조르주는 몇 번이나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지만 실패했고, 앤은 무너진 공사현상 뒷수습을 매정하게 진행하는 등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토마스는 잘 나가는 외과과장이지만 두 번째 결혼임에도 바람을 피우는 듯하며, 피에르는 가문과 회사의 후계자로서 그에 걸맞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피를 나누고 함께 살며 밥을 먹지만 서로를 잘 모르는 듯하다. 아니, 서로를 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족의 일원이자 가문의 일원인 에브를 향한 시선도 못마땅이 아닌 무관심에 가깝다. 와중에 최연장자 조르주와 최연소자 에브가 '죽음'이라는 극단적이지만 순수한 매개체로 조금씩 이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린 이 영화가 '해피'한 '엔드'를 이룰 것 같진 않다. '해피'가 '엔드'하면 몰라도. 


파편 그리고 SNS


영화의 메인 키워드는 '파편'이라 할 수 있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누가 보았든 '이게 뭐지?'라는 생각을 계속 들게 할 영화 <해피엔드>,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여러 의도가 복잡다단하게 깔려 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보는 도중과 보고 난 후에 드는 생각이 전혀 다를 테고, 같은 캐릭터와 사건과 장면을 보면서도 저마다 해석이 다를 테다. 필자는 이 영화를 이룰 수많은 개념들 중에서 나름 몇몇을 골라 관련하여 생각과 해석을 달아보겠다. 현상보다 본질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우선, '파편'이라는 단어 개념을 상정해보았다. 영화 자체의 만듦새도 그러하고, 영화 속 로랑 가문의 면면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지극한 부정적 단면'이라는 전제 하에 감독이 다분히 의도한 듯 보인다. 영화 구성이 매우 불친절하다. 앞뒤를 매끄럽게 연결시키기 힘든 파편화된 장면들이 나열되다 보니, 맥락 있는 이야기를 감상하기가 힘들다. 나중에 은근슬쩍 설명으로 어찌저찌 맥락을 구성하긴 하지만 말이다. 덕분에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지만, 자칫 영화 자체를 기피하게 될 공산이 있다는 점을 말해둔다. 


로랑 가문 구성원들의 파편화된 면면이 아니었다면, 이런 불친절한 구성은 그냥 그렇게 불친절함으로 의미없이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드>에서는 영화 밖과 안이 의미있고 재미있게까지 조우하는 것이다. 그러며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야말로 작금 현대사회의 대다수를 구성하는 중류층의 표본이다. 그들은 오직 자신밖에 모르며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다. 남들에게 해피해 보이는 데에만 신경 쓰며, 극단적 상황이 닥칠 때면 끝까지 놓아주지 않거나 혹은 가차없이 버린다. 파편화된 것도 모자라 단절된 삶을 산다."


파편은 'SNS'라는 소재로 자연스레 옮겨가는 듯하다. 영화 초반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영화 중반 토마스의 채팅 장면을 통해, 후반 다시 에브의 라이브 영상을 통해 감독은 SNS의 특성과 폐해를 다룬다. 우린 SNS로 자연스레 일상적으로 습득한다. 그것이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을 띄고 있더라도 말이다. 한편, 우린 SNS 때문에 당사자와 제3자 간의 직접통로를 경험한다. 피아 구분이 잘 되지 않기에 아직 덜 성장한 아이들에게서 윤리적인 문제가 심심치 않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영화 <해피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사실, 현대사회의 부정적 단면을 직시하고 들여다보고 파고드는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무수히 선보여왔다. 그래서 우린 그 무서움을 익히 알고 그에 대한 두려움을 새기고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많지 않다.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그 무서움과 두려움이 무뎌졌거나 몸에 깊숙히 박혀 감수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해피엔드>는 날카롭거나 집요하게 파고들진 않는다. 광범위하게 루즈하게 들여다보는 수준이다. 다만, 평면적으로 다가가는 게 아니라 입체적으로 다가간다. 소재와 주제, 구성 및 전달 방식, 캐릭터와 사건 요소 등 모든 면에서 입체적이다. 위에서 영화의 만듦새가 파편적이라고 했기에, 영화가 입체적으로 또 유기적으로 다가간다는 게 모순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앞엣것은 의도적인 것이고 뒤엣것은 의도하지 않은 것이 다른 점이라 하겠다. 


영화 속 조르주는 미카엘 하네케의 전작 <아무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조르주는 손녀 에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에브의 기억 속엔 없는 할머니이자 조르주의 부인 안느가 반신불수가 되곤 3년 후 더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자 직접 목을 졸라 죽였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아무르>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물으며 사람과 사람의 촘촘한 사이사이로 파고 들었다면, <해피엔드>는 진정한 사랑이 지나고 난 이후 세대의 삶을 논하며 사람과 사람의 느슨해진 사이사이를 스치듯 지나가는 듯하다. 


현대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은 진정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반면 적당한 사랑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이득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극단적으로 흩어져버린 세상에서는 극단적인 사랑법이야말로 그나마 소용이 있을지 모른다. 왠만한 극단에는 이미 적응되고 무뎌져버린 지금이 아닌가. <해피엔드>를 계기로 한 번쯤 우리와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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