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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한국 고유의 서정시 시조를 한영대역으로 선보이다 <시조, 서정시로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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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시조, 서정시로 새기다>


<시조, 서정시로 새기다> 표지. ⓒ아시아



지금은 문학 편집자로 밥 벌어 먹으며 일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엔 국어 시간이 가장 싫었다. 국어 실력이 형편 없기도 했었는데, 국어를 못해서 국어 시간이 싫었던 건지 국어 시간이 싫어서 국어를 못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전자이지 않을까 싶다. 왜 국어를 못했을까. 고3 중요한 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소설 책을 보다가 걸려 선생님께 압수당하기까지 할 정도로 글을 읽는 건 좋아했는데 말이다. 


글을 읽으며 감상하고 나름의 정답 없는 해석을 생각하며 즐기는 대신, 글을 읽고 정해진 해석에 맞춰 정답을 찾는 게 맞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하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생각해본다. 문학 작품을 접하고는 '아, 좋다!'가 아닌 '저자의 의도가 뭘까? 이 작품에 숨겨진 주제와 소재는?'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식은 문학을 직업적으로 다루는 한편 제1의 독자이자 팬으로 접하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런 와중에,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아닌 '시조'를 출간하게 된 건 신의 장난인가 신의 계시인가. 학창 시절 가장 멀리했던 것들 중에서도 압도적이었던 시조를 다루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면 안 되는 작업이 아닐까. 더군다나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수록하는 한영대역집으로 말이다. 편역자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텍스트는 전적으로 그분들께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시조의 한영대역, 시조 전공의 한글과 영국 중세 문학 전공의 영어


아시아 출판사는 잡지 <계간 아시아>를 비롯 '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소설' 'K-픽션' 'K-포엣' 시리즈까지 한영대역집을 이어왔다. 공력과 노력과 시간과 돈 등이 비할 데 없이 많이 들지만, 계속 해오는 건 아무도 하지 않아서이다. 한국 문학을 외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 차원 높은 의무감이 잠재하고 있을 테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면서 편역자들이 좋아하는 시조인 11명의 시조를 모은 한영대역 시조집 <시조, 서정시로 새기다>는, K-포엣 시리즈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기획했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을 것 같은 시조 한영대역집은 그 자체로 스페셜하지 않은가. 여기에, 두 편역자인 한국 학자 고정희와 영국 학자 저스틴 M. 바이런-데이비스의 조합이 스페셜했다. 


그들은 각각 시조와 영국 중세 문학을 전공했다. 그리하여 고정희 역자는 가능한 한 원문의 의미를 그대로 옮기고자 한 반면 저스틴 역자는 원문의 뉘앙스를 영문에 잘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한글이나 영어 하나로만 내보이는 것이었다면 이 정도의 조합이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한글과 영어를 동시에 내보이는 작업에서는 시조 전공의 한글과 영국 중세 문학 전공의 영어 조합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편역자들이 직접 고른 11명 시조인의 시조


고정희 역자에 따르면, 시조는 음수율을 가진 3개의 시행으로 이루어진 운문이다. 시조의 율격을 음수율로 볼 것인가, 음보율로 볼 것인가는 오랜 쟁점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조의 율격은 영문 번역 과정에서 그대로 유지하기 힘들기에 대신 시조의 서정적 특질을 전달하고자 했다. 제목에 시조와 서정시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가 함께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 


편역자들이 직접 고른 11명의 시조인들은 우리가 대부분 이름 한 번쯤 들어봤음직 하다. 맹사성, 이황, 정철, 윤선도, 황진이 등. 나아가 한 소절 정도는 역시 들어봤음직 하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 첫 구절이 '강호에 봄이 드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 탁료 계변에 금린어 안주로다 // 이 몸이 한가해옴도 역군은 이샷다"이다. 이 중에서 특히 '역군은 이샷다'가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적어도 나에게 익숙한 시조는 이 책에 실려 있는 시조들은 아니다. "어부단가" "도산십이곡" "어부사시사" "전원사시가" 등 당대 시조의 정통과 흐름을 가장 잘 대변하는 시조들이겠지만 말이다. 대신,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가 머리에 맴돈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그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눈에 띄는 시조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2곳이다. 제2부 시조 장르의 정점에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통째로 실은 게 그 하나다. 춘사, 하사, 추사, 동사로 이루어진 40수 짜리 초대형 시조를 말이다. 역자들은 그럼에도 윤선도가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시조 시인이며 "어부사시사" 한 편으로 다른 시조들의 이미지와 조우할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나아가 시조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고 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제4부 기생과 중인 남성 가객들의 시조에 황진이의 시조들을 다수 실은 게 그 둘이다. 전부 무제인데 그중 하나를 읊어본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쟈랑 마라 // 일도 창해 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수여 간들 엇더리' 다른 시조들보다 쉽다는 느낌이 든다. 젠체하지 않고 직설적이라 괜찮은 느낌도 든다. 황진이의 시조가 오히려 이 책의 품격을 올려주고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이 책을 작업하는 시간이, 내겐 시조에 쉽게 다가가는 시간이었다. 내 성격이 두루뭉술해서 그런지 두루뭉술한 작품을 싫어하는데, 시가 좀 그런 면이 있지 않은가. 시조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막상 제대로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맛을 맛볼 수 있었다. 투박하고 옛스러운 시조라는 장르가, 아름다운 서정시로도 읽힐 수 있다는 게 말이다. 그건 시와 시조가 비슷하다는 말일 텐데, 오히려 그 반전이 감상의 흥을 돋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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