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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생각보다 '덜' 무섭고 '덜' 폭력적이며 가망없지 않다 <팩트풀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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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팩트풀니스>


<팩트풀니스> 표지. ⓒ김영사



'확증편향'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의 선입관 또는 선입견을 확증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집 및 탐색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인류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을 오류에 빠뜨렸지만, 소셜미디어가 삶을 지배하다시피 하게 된 지금 더욱 증가하였고 집단화 되었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만 소위 '친구'를 맺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는 아예 상종을 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확증편향에 과도히 치중하면 '진실'을 놓치기 십상이다. 내 생각과 다른 곳 또는 편에 진실이 있다 해도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진실이 필요없고 중요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에게 진실이 필요없어지고 중요하지 않아져서 세상이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여하튼 사람들이 진실을 놓치고 세상을 잘 알지 못하게 된 건 사실이다. 


세계적 석학 한스 로슬링 박사는 의사이자 공중 보건 전문가이자 통계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연구 중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단순히 모르는 정도를 넘어서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를 만들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풀어보게 하였는데, 정답률은 16%에 불과했다. 가령, 침팬지가 무작위로 정답을 고를 때 평균적 정답률일 33% 보다 훨씬 못 미치는 결과였다. 


한스 로슬링 박사는 그 이유로, 사람들이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 아닌 직관적이고 느낌적이고 극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는 그 비합리적 세계관을 이루는 10가지 본능(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 관점, 비난, 다급함)을 정리해 책으로 소개했다.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로 내놓은 <팩트폴니스>(김영사)이다. 하지만, 한스 로슬링 박사는 책을 집필한 직후 2017년 2월 7일 세상을 떠났다. 


극적 본능을 억제하는 방법, '팩트풀니스'


가난과 부, 인구 성장, 출생, 사망, 교육, 건강, 성별, 폭력, 에너지, 환경 같은 주제에 관한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제와 다른 오답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 오답들은 한쪽으로 쏠린다. 세상을 실제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며 더 가망없는 곳으로 여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하고 학습할 때 끊임없이 직관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한다. 하여 세계관이 잘못되면 체계적으로 잘못된 추측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 한스 로슬링은 이런 무지를 뿌리뽑기 위해선 사람들의 지식과 세계관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이터를 좀 더 명확하게 제시한 교육 자료를 개발했다. 아들 올라 로슬링과 며느리 안나 로슬링 뢴룬드가 만든 움직이는 도표가 그것이다.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은 우리 뇌의 작동방식에서 나오는 탓에 바꾸기가 너무 어렵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실은 세계 인구 절대다수가 중간 소득수준을 유지한다. 세상은 해를 거듭하며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극적인 것을 흡수하더라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방편으로,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비합리적 두려움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힘을 건설적 활동으로 돌리기 위해, 극적인 본능을 억제하고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을 발전시키기 위한 생각도구 '사실충실성(팩트풀니스)'를 제시했다. 각 장의 마지막에서 안내한다. 사실충실성은 사실을 근거로 세계에 반응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태도와 관점이다. 극적 본능을 억제하는 방법을 간추려 요약해놓은 것이다. 


비합리적 세계관을 이루는 본능들


비합리적 세계관을 이루는 10가지 본능 중 첫 번째는 '간극 본능'이다. 간극 본능을 통해 제시한 '네 단계 소득수준'은 사실에 근거한 새로운 사고의 틀에서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양극'화하지 않고 네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 책 전반에 걸쳐 이 네 단계가 온갖 것들을 이해하는 도구일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 대다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충실성.


나머지 9가지 본능 중 시선을 끌다 못해 정녕 세계관을 바꾸게 만들 정도의 충격을 주는 것들이 있다. 부정 본능은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우리가 매일 매순간 접하는 뉴스, 좋은 소식과 점진적 개선은 뉴스가 되지 않기에 나쁜 소식과 작은 문제를 전달 받을 확률이 훨씬 높다. 저자는 그런 현상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동시에 현재는 나쁘지만 앞으로 나아지고 있다는 통계적 믿음을 가지고 장밋빛 과거를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 아닌 느낌에 의한 무조건적인 긍정도 부정도 우리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포 본능은 부정 본능과 결을 같이 한다. 뉴스가 나쁜 소식과 작은 문제를 전적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진짜 위험한 것은 외면한 채 무수워 하지만 진짜 위험하지는 않은 것에 공포를 느끼고 그 위험성을 체계적으로 과대평가한다고 말한다. 그 예로 자연재해, 항공기 사고, 살인, 방사성 물질 유출, 테러 같은 끔찍한 사건을 다루는데, 통계적으로는 모두 합쳐도 총사망자의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 본능을 억제하려면 실제 위험성을 '계산'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본능에 동의하기는 매우 힘들다. 1%도 채 되지 않는 확률이지만, 정작 그 1%에 들어간 이들한테는 100%인 게 아닌가. 그 1%를 없는 취급하는 생각이야말로 '극단적 세계관'의 일면으로도 보인다.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그런 한편, '운명 본능'에 관한 생각은 일면 굉장하다. 타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인 운명 본능, 이에 저자는 사회와 문화는 계속 움직인다고 반박한다. 나아가 서양의 사회와 문화가 움직이는 만큼, 비서양의 사화와 문화도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통계적으로 체계적으로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는 건, 아프리카의 경우이다. 비서양의 가장 후진적 문명에 위치한 아프리카가 언젠가는 서양의 최첨단 문명인 유럽을 따라잡을 거라는 것이다. 


문제는, 통계가 사실일지는 모르나 생각의 전개방식이 올바른지는 모르겠다는 점이다. 지극히 서양인의 시선에서 비서양을 내려보는 관점이, 하얀 눈밭에 찍힌 발자국처럼 훤히 보이는 게 아닌가. 서양인인 저자 본인으로선 다분히 '수평적'으로 생각하고 있겠으나, 비서양인이 보기엔 다분히 '수직적'인 것이다. 그나마 대놓고라도 서양인이 이런 생각을 개진하고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보내야 할까?


마지막으로, '간극 본능'과 함께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단일 관점 본능'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저자는 이 본능을 단일한 원인과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성향이라고 규정했다. 이 문제는 저렇게, 저 문제는 그렇게, 그 문제는 이렇게 대하고 풀면 된다는 식의 접근법 말이다. 여기서, 불현듯 생각이 떠오르는 건 바로 이 책과 저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통계' 즉 '수치'의 중요성을 설파하지 않았는가. 마치 그것이 단일한 해결책인 것처럼 말이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세상을 이해하려면 수치가 꼭 필요하지만, 수치만 분석해서 얻은 결론은 의심해봐야 한다. 수치를 보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 이어서 저자는 말한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나 물질적 발전은 수치로 측정할 수 있지만, 경제성장의 목표는 개인의 자유와 문화 발전이며 그런 가치는 수치로 포착하기 힘들거니와 인간의 발전을 수치화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수치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를 모두 보여주지 못한다. 


한편, 이와 관련해 저자는 민주주의도 단일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파격 주장을 한다. 저자는 자유민주주의가 국가를 운영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믿지만', 필요조건이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예로, 한국을 들었다. 한국이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할 때 줄곧 군부 독재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도 단일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 예로 한국의 군부 독재 시절 경제와 사회가 크게 발전했다는 걸 든 건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한다. 그때는 전 세계가 호황기였기에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도 크게 발전했다. 반면, 지금은 전 세계가 불황기이기 때문에 국부 독재 국가들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들을 하게 만드는 책임에 분명하다. 그 주장들에 동조하던 동조하지 않던, 그저 느낌으로 세상을 바라봤던 기존에서 수치를 기반으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책이 그걸 노린 것이라면 굉장히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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