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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덴마크산 독특한 현대적 스릴러 영화 <더 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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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더 길티>


영화 <더 길티> 포스터. ⓒ(주)팝엔터테인먼트



긴급 신고 센터 112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스게르(야곱 세데르그렌 분), 그는 본래 경찰으로 재판 중인 사건 때문에 경질되어 이곳에 있다. 내일 재판을 잘 받으면 무리없이 복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에 대한 재판인지 아스게르는 퇴근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안하고 초조해 보인다. 그는 이런저런 '별 볼 일 없는' 긴급 전화를 받고 있다. 


와중에, 어떤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 아가"라고 말을 건넨다. 흔하디흔한 장난전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대화의 양상은, 곧 그녀가 납치 상태에 있다는 걸 알아치린 후에도 바뀌진 않지만 긴박하게 흘러간다. 이후 아스게르는 이벤이라고 알린 납치된 여인을 두고, 다른 지역의 긴급 신고 센터 교환대와 동료 경찰과 이벤의 딸, 이벤의 남편 등과의 통화를 이어간다. 


퇴근 시간을 많이 남겨놓지 않고 벌어진 이 사건에 아스게르는 자리를 옮겨가며 매진한다. 교환대로서 그의 일은 사건에 개입하는 게 아닐 테지만, 본직이 경찰인 만큼 사건에 개입하는 것인지 그가 연류된 사건에 대한 재판과 관련되어 있어 개입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아주 개략적으로만 유추할 뿐. 납치된 여인은 잘 구출될까? 그는 내일 재판을 잘 치를까? 그전에 그는 오늘 퇴근을 잘 할 수 있을까?


여러모로 특이하고 기대되는 영화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덴마크산 스릴러 <더 길티>는 영화 개봉 전 특이한 마케팅으로 주목을 받았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봉미정>이라는 현실반영 제목으로 극장 관계자들이 윗선의 개봉 반대를 돌리기 위해 마케팅을 한 것인데,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어 '강제개봉'되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도무지 보지 않고선 배길 수 없게 영상과 글을 내보내 필자도 몇 번이나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사전 마케팅을 통해 가장 크게 부각시킨 건, 오로지 통화를 통해서만 영화가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실제로도 그랬는데, 동료들이 몇몇 얼굴을 비추는 걸 제외하곤 오직 아스게르의 얼굴만이 스크린을 채운다. 그리고 나머지는 아스게르와 누군가의 통화들이다. 


초반의 몇몇 통화들은 본격적인 사건에 발을 담구기 전 숨고르기용으로 그냥 지나칠 수도 있고 지나쳐도 크게 무리는 없지만, 덴마크의 현실을 살짝이나마 엿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감독의 치밀한 연출일지 모른다. 


영화는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는데, 바로 전년도 수상작이 다름 아닌 <서치>이다. 서치 또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로, 스크린을 오직 PC와 모바일과 CCTV로 채웠다. 그 점에서 <더 길티>와 <서치>는 영화적 기법 측면에선 동일선상에 서 있지만 또 영화적 기법을 완성시키는 주요 소재의 측면에선 정반대에 위치해 있기도 하다. 여하튼 제35회 선댄스영화제 관객상을 기대된다.


한정된 것들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과 등장인물과 감각과 소통 등의 제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다. 동료들과 함께 있는 사무실, 혼자만 있는 방, 블라인드 친 방, 붉은색으로 점철된 방, 사무실 밖으로 옮겨다니며 한정된 공간임에도 그 자체를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에 충실하게 대입시켜 이해와 몰입을 도왔다. 


실제 사건이 진행되는 시간과 아스게르가 근무하는 시간, 그리고 관객이 영화를 보는 시간이 일치하게끔 하여 감정이입을 완벽하게 맞췄다. 여기에 1인극에 가까운 등장인물의 최소화도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극대화시켰다. 여기에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제약은 감각과 소통이다. 


현대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각은 모아지는 게 아니라 퍼진다. 감각이 무뎌짐을 느낄 수 있는데,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인간을 편안하게 하는 대신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각을 퇴화시킬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다. <더 길티>는 실로 오랜만에 '집중'이라는 걸 하게 만든 영화이다. 오직 듣는 것으로 상황과 감정을 상상해내야 하니까 말이다. 


듣는 것도 듣는 것이지만, 오직 통화만 할 수 있으니 만큼 소통의 제약도 여러 의미로 치명적이다. 소통의 제약도 감각의 제약과 일맥상통하는데, 현대사회의 병폐 중 하나가 소통의 창구가 많아지는 만큼 진정한 소통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 아닌가. 영화는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방편으로 감각과 소통의 제약을 택했지만, 동시에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 같다. 


죄책감


영화 <더 길티>의 한 장면. ⓒ(주)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제목이 <The Guilty>로 알다시피 '유죄' 혹은 '죄책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반면, 덴마크어 원제는 <Den skyldige>로 '범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영어 제목을 채택하였는데, 보다 더 정확하고 보다 더 영화가 가지고 또 주는 의미를 잘 드러낸 듯하다. '유죄' 아닌 '죄책감'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이벤 납치 사건이라는 메인과 아스게르 재판 사건이라는 서브로 진행되는 영화는, 막판에 가서 두 사건에 생각할 수 있고 유추할 수 있지만 꽤나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반전은 영화 밖 관객은물론 누구보다 영화 안 아스게르에게 큰 충격를 주고 영향을 끼치는데, '죄책감'이 발현되어 사건이 터지기도 하고 해결되기도 한다. 


이는 시종일관 감독이 의도한 여러 중의적 의미 표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바, 경찰이라는 공공의 개념과 큰 실수를 저지르고 공공으로서의 할 일을 넘어선 개입이라는 사사의 개념을 오고간다, 또 아우른다. 시작부터 끝까지 이보다 더 영리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의 향연이다. 한껏 기대했던 영화가 한껏 풍족한 볼 거리를 선사한 격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많아서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