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2번째 솔저>
영화 <12번째 솔저> 포스터. ⓒ엣나인필름
제2차 세계대전은 현대 세계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절대적'이라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을 만큼 영향을 끼쳤다. 비록 선진으로 나아가던 유럽이 야만으로 빠지게 되어 충격을 받은 건 제1차 세계대전 때였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더 큰 전쟁이 일어난 건 5대양 6개주 56개 이상의 나라들 모두에게 헤어나올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내년이면 종전 75주년,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 전쟁에 관한 콘텐츠는 여전히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영화도 물론이다. 매해 여러 나라에서 몇 편씩은 만드는 것 같다. 그동안 미국을 위시해 주요 참전국이었던 독일, 러시아,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등의 이야기를 참으로 많이 들어왔다. 특히, 미국과 미국을 상대했던 독일과 일본의 전쟁은 정말 다양한 시선을 선보여왔다.
최근 들어서는 조금 다른 전쟁영화들이 찾아왔다. 2017년에 나온 전쟁영화를 표방한 '재난' 영화 <덩케르크>와 종전 후 연합국 측인 덴마크군이 독일군 소년 포로로 하여금 지뢰를 제거하게 한 실화를 다룬 <랜드 오브 마인> 같은 영화들이 그 예다. 올해에도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이야기가 영화로 나왔다. 당시 노르웨이군의 실화를 다룬 <12번째 솔저>다. 이 영화는 전쟁영화를 표방한 '탈출기'다.
탈출을 상상할 수 없는 탈출
도무지 탈출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영화 <12번째 솔저>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1940년 초반 독일은 노르웨이를 침공해 점령해버린다. 영국에서 독일 항공기지 파괴 임무를 띤 노르웨이군 12명이 급파된다. '마틴 레드 작전'이다. 하지만 접선책 정보 미갱신으로 엉뚱한 사람과 접선을 하는 바람에 노출되어 그들은 배를 폭파시키고 탈출한다. 지상으로 가지만 그곳엔 이미 독일군이 진을 치고 있었고, 현장에서 1명이 죽고 10명이 잡힌다. 1명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1명 얀 볼스루드는 초반 탈출 시도 직후 총에 맞아 엄지발가락이 날아간다. 그럼에도 필사의 탈출을 시도, 첫 위기를 간신히 넘긴다. 그를 쫓는 독일군 대령도 그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추운 노르웨이 땅에서, 엄지발가락이 날아가버린 상태로, 얼음물을 몇 Km나 건너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독일군 대령 커트 스테이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노르웨이인으로 남보다 더 투철하게 충성하거니와 노르웨이에서의 노르웨이인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이보다 더 춥고 추운 만큼 치열하고 치열한 만큼 안타까운 탈출을 상상할 수 없는 탈출이 시작된다. 얀은 스웨덴을 거쳐 영국으로 돌아가는 게 목적이다. 처음엔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탈출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던 그, 가는 길마다 그의 탈출을 돕는 노르웨이인들이 있다. 그들은 그의 탈출을 도우며 희망 없는 현실에서 기적을 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얀의 탈출기는 점점 더 삶보다 죽음을 택하고 싶을 정도로 가혹해진다.
죽음보다 힘든 삶에의 투쟁
그의 탈출은 곧 삶에의 투쟁이다. 죽음보다 힘든. 영화 <12번째 솔저>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 <12번째 솔저>는 한 인간의 죽음보다 힘든 삶에의 투쟁을 그린다.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의 겨울 노르웨이 설원을 배경으로 끔찍한 부상을 당한 채 자연과 싸우고 적군에게 쫓기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게 특이점이다. 지난 3월 말에 개봉했던 매즈 미켈슨 주연의 <아틱>이 생각나게 하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위함으로써 기적을 바라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출했다면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그 자체로 기적이기에 온몸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덴마크와 스웨덴의 지배를 받아왔던 바, 20세기 초에 독립을 하지만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나라를 빼앗긴다. 이에 영국으로 탈출해 망명 정부를 세우고 독일군에 대한 격렬한 저항운동을 시행한다. '마틴 레드 작전'은 그 시작점과도 같은 것으로, 최후의 1인 얀 볼스루드가 살아돌아오는 기적을 연출함으로써 크나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러나 노르웨이 '국뽕'에 심취한 시선이나 행동이 주가 아니다. 물론, 독일군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목숨을 내버리다시피 하며 작전에 투입되는 이들의 영웅적인 행동은 다분히 '국가'가 제일 앞에 나올 수밖에 없게 한다. 반면 얀 볼스루드는 국가보다 11명의 '전우'다.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살아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살아돌아가게 돕는 노르웨이인들 역시 국가보다 '기적에의 희망'이다. 희망 없는 현실을 버티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기적 말이다.
전쟁영화답지 않은, 미시적이고 세밀한
영화는 '전쟁영화'답지 않게 미시적이고 세밀하다. 영화 <12번째 솔저>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는 여타 전쟁영화와는 다르게 거시적 스펙타클이나 총체적 액션이 나오지 않는다. 지극히 미시적이고 세밀하다. 얀의 탈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북극에 가까운 추운 곳 노르웨이의 겨울, 부상 당한 채로 쫓기는 이를 보고 있노라면, 같은 인간으로 그저 응원하게 된다. 제발 붙잡히지 말라고, 제발 죽지 말라고, 제발 살아남아 탈출하라고.
삶은,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죽음에 직면했을 때 죽음을 목도했을 때 비로소 그 온전한 힘을 발하게 되는 것 같다. 그저 눈을 감으면, 몸에 힘을 풀면, 생각을 접으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눈을 뜨고는 몸에 힘을 불어넣고 생각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전쟁에서 이긴다는 막연한 목표 이상의, 인간으로서 계속 살아가야겠다는 숭고한 목표가 생겨난다.
그런 면에서 다분히 전쟁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이 영화 <12번째 솔저>는 굉장하다. 삶에의 충만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제목만 보고 치워버리지 말고 오히려 꼭 끌어안았으면 한다. 그 삶에의 투쟁이 주는 육체적 고통이 상상을 초월하지만, 그래서 얼굴이 찌푸려지고 뒷덜미에 소름이 끼치고 머리카락이 바짝 서고 모골까지 송연해지겠지만, 사실 그게 우리의 삶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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