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리뷰] <레이디 버드>
영화 <레이디 버드> 포스터. ⓒUPI코리아
매년 초, 영화계는 '아카데미 특수'로 들썩인다. 2월 말경 미국 LA의 돌비극장에서 개최되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인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에 맞춰, 후보에 오른 영화들과 상을 탄 영화들에게 많은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을 제외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때에 맞춰 해당 영화들을 개봉시키는 경우가 많다.
전 세계적으로 3대 영화제라고 하면 유럽의 칸(프랑스), 베를린(독일), 베니스(이탈리아) 영화제를 뽑지만, 그 영향력은 다분히 영화계 내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적인 영화가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나 정치적 올바름이 투철한 영화나 좋은 영화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전 세계 영화계의 중심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지 오래이다.
올해는 <그린 북>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정도가 아카데미 특수를 누렸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미 거대한 성공을 누렸고, <로마>는 극장 개봉을 하긴 했지만 넷플릭스에서 내놓은 작품이기에 정확한 집계가 어려웠다. 반면 작년까지 아카데미 특수는 확실했다. 작년만 해도 <셰이프 오브 워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더 포스트> 등이, 재작년만 해도 <컨택트>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 <라이언> <핵소 고지> 등이 영화 사이즈에 비해 성공을 거두었다. 2018년 아카데미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레이디 버드>도 그중 한 편이다.
자신의 모든 게 싫은 소녀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미국 중부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도시 새크라멘토, 카톨릭계 고등학교 졸업반인 크리스틴 "레이디 버드" 맥퍼슨(시얼샤 로넌 분)은 동부의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따라와주지 못해 엄마와 자주 말다툼을 한다. 보다시피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도 싫어서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게 싫은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친구 줄리와 함께 연극 활동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부유한 카톨릭 집안의 대니를 만나 사귀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코 좋지 못하게 끝나고 만다. 와중에도 그녀는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피력하는 데 주력하고 가족과의 부딪힘은 나날이 더해간다. 어느 날 우연히 봤던 밴드의 기타리스트 카일에게 빠진 그녀, 곧 그와도 좋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 또한 결코 좋지 못하게 끝난다.
카일에게 접근하기 위해 절친 줄리와도 멀어져버린 레이디 버드, 마음 둘 곳이 없다. 대니와 카일과도 좋지 못하게 끝나고, 부모님과 오빠와는 계속 부딪히기만 할 뿐이고, 구질구질한 집구석과 동네를 떠나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녀를 포함 모두에게 좋은 건, 그녀와 모두의 관계가 좋아지고 나서 그녀가 동부의 명문 대학으로 진학하게 되는 것일 텐데...
큰 공감으로 다가오는 부분들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 <레이디 버드>는 <프란시스 하>로 유명한 배우 그레타 거윅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1000만 달러의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작은 영화'인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75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이룩했고, 국내에서는 10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흥행 성공으로만 논할 순 없다. 그렇다고 주지했던 것처럼 아카데미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걸 포함해 전 세계 영화제에서 100관왕을 이룩했다는 것으로만도 논할 순 없겠다. 이 영화는 외적 정보보다 내적 내용이 훨씬 좋고 깊다.
감독 그레타 거윅의 자전적인 내용이다, 아니다 설이 분분했지만 직접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만큼, 영화 주인공의 주요 설정을 제외하면 자전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 새크라멘토, 간호사 어머니, 가톨릭계 고등학교, 동부 대학 진학 꿈 정도의 주요 설정 말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영화의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이 느끼는 인간 관계와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들과 새크라멘토라는 작은 도시만이 갖는 감수성. 공감은 이렇게 오가는 것이다.
필자는 레이디 버드처럼 미국인도, 백인도, 여자도 아니지만 '작은 도시'가 갖는 감수성과 '작은 고향 도시'를 향한 애증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새크라멘토는 캘리포니아 주의 주도이지만, 같은 주에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같은 국제 도시가 있어 묻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도 국제 도시 서울에 살았지만 강북구 번동 중에서도 꼭대기 지역이었기에, 살았을 당시는 물론 떠나온 지금도 그곳을 향한 애증이 충만하다. 그렇지만 그곳만의 감수성은 평생 간직할 것이고, 그만큼의 감수성은 다른 어디에서도 평생 못 느낄 것이다.
그런 한편, 함께 본 아내는 엄마와의 관계가 큰 공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엄마의 그녀를 향한 마음은 언제나 사랑이라는 감정의 전제 하에 있다. 절대 그 이하일 수가 없고 이하일 때가 없다. 하지만 정작 말과 행동은, 누구나 그렇듯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 그 이면의 진짜 마음을 자식(딸)이 제대로 헤아려줄 리가 없다. 딸은 엄마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끼고,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 딸이 밉기는커녕 미안하기만 하다.
그녀의 성장, 그 핵심은?
영화 <레이디 버드>의 한 장면. ⓒUPI코리아
아내가 느낀 또 하나의 공감과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여자'로서의 성장이 맞닿는 부분은 페미니즘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의도적으로 감정과 사건의 절정을 편집 또는 삭제한 것처럼 페미니즘으로까지 가는 것도 피한 듯 보인다. 예를 들면, 헤어지는 장면이나 섹스하는 장면이나 울음을 터뜨린 장면을 스킵하고 바로 이후로 이어져 유추하게끔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에 '절정'이라는 게 없다는 걸 보여주거나, 또는 있긴 할까 하는 반문을 하는 것 같다.
각설하고, 주인공이 엄격한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현재 인생의 모든 면에서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편 그중 한 방법으로 남자 잘 만나 인생 역전하고자 하는 바람이 강하다. 대니나 카일이 다 그런 식이고, 절친 줄리를 뒤로 하고 잘 사는 여식 제나에게 붙는 것도 그런 식이다. 그녀의 성장, 그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건 좋지만, 스스로의 힘이 아닌 누군가의 힘을 빌어 벗어나려는 건 결코 좋지 못하다는 깨달음 말이다.
모두 그녀의 홀로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 방법과 방향이 어떻든 나아가길 바란다. 하다 보면 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면 뭐가 옳은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요원하다. 직접 생각하고 부딪혀야 한다. 누구나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다시 전하는 건 이런 방법이어야 한다. 이 영화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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