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미래의 미라이>
<미래의 미라이> 포스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감독으로 평가받으며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가히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 이후 거의 예외없이 3년 만에 한 편씩 내놓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확고히 구축했다. 호소다 마모루 월드라고 해도 충분하다.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까지 이토록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내놓는 것도 쉽지 않을 터, 그의 작품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을 테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믿고 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겠다. 누가 뭐래도 재패니메이션의 거장이다.
그동안의 기록을 깨고 <괴물의 아이>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 <미래의 미라이>는 <늑대아이>부터 시작된 '아이' 시리즈의 연장선상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소다 마모루'라는 이름에 비해서는 평범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말할 수 있겠다.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롭고 유기적 결합,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과 메시지는 여전하고 원숙해지기까지 했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준 것들에 비해 흡입력과 상상력이 조금 미흡하다. 하지만, 호소다 마모루 월드에 입문하는 이라면 역시 물론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4살 아이 쿤, 생의 최초 위기
<미래의 미라이>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유독 기차를 좋아하는 4살 남자아이 쿤에게 여동생 미라이가 생겼다. 엄마, 아빠 그리고 반려견 윳코와 함께 행복하기만 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와중에 난데 없이 나타난 미라이의 존재는 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혼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된 쿤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라이에게 엄마, 아빠의 시선과 관심이 쏠린다. 쿤으로선 이해할 수도, 이해하기도 싫은 그 모습은 단순히 시선과 관심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느낀다. 엄마, 아빠는 쿤이 아닌 미라이만 사랑하게 된 것이다.
행복하기만 했던 삶에 위기가 찾아온 쿤, 건축가 아빠가 지은 집 안의 마당에 나갈 때마다 가족들을 만난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는 윳코, 미래에서 온 미라이, 그리고 다른 가족들의 과거 모습들까지.
그래도 바뀌지 않는 건, 바뀌지 않는다고 쿤이 느끼는 건 엄마, 아빠의 사랑이 자신이 아닌 미라이에게만 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쿤이는 자의 또는 타의로 가족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생의 최초 위기를 잘 타개할 수 있을까?
단절과 상실을 채우는 가족의 면면들
<미래의 미라이>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장남·장녀의 삶에 최초의 존재론적 위기가 닥치는 건 동생의 출현이다. 그건 단순히 개인의 지엽적이라 할 수 있는 물리적·정신적 위기가 아닌 , 총체적 위기인 것이다. 더 이상 내가 나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으로 시작해 외로움과 고독감과 단절감까지 느낄 수 있다.
쿤의 입장에서 미라이의 출현은 그 자체로 존재 말살의 위협까지 느낄 수 있는 '폭력'일 수 있다. 머리가 커갈 수록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게 되지만, 흔히 어린 아이들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친하게' '사이좋게' 지내보라고 한 마디 하면 잘 지낼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쿤은 미라이와 잘 지내보려 한다. 생명의 신비에 대한 신기함, 한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입장에서의 동질감 등이 발현되어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부모, 즉 어른이다. 그들은 큰 아이의 작은 아이를 향한 관심의 모양이 위태롭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그게 비록 사실일지라도 진실은 아닌데 말이다.
이후 큰 아이는 작은 아이와의 관계가 단절됨을 느끼고, 이미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어른들과의 관계에 더해 더할 나위 없는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 <미래의 미라이>는 큰 아이의 관점으로 보는 가족의 면면들이다. 가족의 면면은 곧 가족의 역사가 되고 가족의 역사는 곧 큰 아이와 작은 아이 그리고 엄마, 아빠와의 관계 형성 또는 복구로 이어진다. 아니, 이어지길 바라는 듯이 보인다.
상상력과 통찰력의 조화는 훌륭했으나, 구성과 방식이 별로였다
<미래의 미라이>의 한 장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는 쿤의 현실과 머릿속 생각 즉 판타지를 위화감 없이 조화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아이'는 엄마 뱃속이 기억나고 동물은 물론 식물과도 얘기가 통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마 아이들의 머릿속은 어른들보다 훨씬 무궁무진하고 정교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과 판타지를 구성하는 방식이 훌륭하진 못했다. 그 자체가 가지는 훌륭함, 그 본질이 보여준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거기까지 가는 데 느끼는 지루함이 뒤로 갈수록 다른 모든 걸 압도했다.
가족의 역사를 통해, 세세하고 복잡다단한 것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 즉 쿤과 미라이를 만든 것이라는 깨달음이 참으로 대단하지만 그 대단함을 위해 포기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소다 마모루의 전작들에 비해서 이 작품 <미래의 미라이>는 균형적이지 못했다. 한층 원숙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택한 방식에의 오류가 크게 다가온 것이다.
여기에,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미화까진 아니라 할지라도 미묘하게 대하는 듯한 태도와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에게 떠맡기는 듯한 태도 등에서 제대로 되지 못한 비성숙한 느낌을 받았기에, 차마 '그럼에도'라는 말을 붙이기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예리하고 묵직하고 원숙한 통찰력을 선보였기에 충분히 가치 있고 좋은 영화였고 여전히 차기작을 기대케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문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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