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가 독자에게]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표지 ⓒ아시아
영화와 더불어 단언컨대 우리가 가장 많이, 자주 접하는 대중매체 콘텐츠는 드라마이다. 아니, 영화는 극장이라는, 직접적인 돈이 지불되는 제한된 곳이 메인 매체인 반면 드라마는 TV라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무한정의 곳이 메인 매체이기에 가장 친숙한 콘텐츠인 게 자명하다 하겠다.
즉, 드라마는 우리의 삶의 깊숙히 들어와 있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라면 삶 그 자체와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드라마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라고 해도 알게 모르게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보다 그 영향력에 비해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가 정통적으로 상정했던 시청자층의 협소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드라마를 오직 TV로만 접할 수 있었을 때는 오히려 영화보다 영향력이 훨씬 떨어졌을 것이다. 아침, 저녁, 밤 시간대에 주로 방영한 드라마, 그 드라마의 주시청자는 주부였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사회에서 빅마우스 역할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었다.
시대가 지나 대중매체가 다양해짐에 따라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채널이 많아졌다. 영화는 여전히 제약이 있는 반면, 드라마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시청자층은 다양해지고 다양한 시청자층을 수용할 다양한 드라마를 선보이게 되었다. 웰메이드 영화처럼 웰메이드 드라마도 탄생했다.
드라마 분석과 연구와 비평
드라마를 무시하기는커녕 한국드라마는 일본, 중국을 포함 아시아를 완전히 점령했다. 드라마에서 파생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유행을 선도했다. 단순히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왔던 드라마는 우리의 세상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그런 드라마에 대한 분석과 연구와 비평은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다.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우리의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는 드라마가 어떻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지 스토리텔링적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 책이다. 드라마는 시대를 선도하기도 하고 시대에 각고히 발맞춰 가기도 한다. 반면 절대 시대에 뒤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일단 만들면 온국민이 한 번쯤은 본다는 가정 하에 영화나 책처럼 종종 있는 허투루 만들어진 콘텐츠가 절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드라마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일본드라마도 종종 다루며 멜로, 가족, 판타지, 범죄의 네 가지 장르로 나눠 분석한다. 지금은 전방위적으로 퍼져 나갔지만 '한류열풍'의 원조는 한국드라마일진대, 그들 거의 모두가 멜로이다. 멜로와 필적할 만한 제작 편수를 자랑하며 흥행불패에 가까운 신화를 써내려온 가족드라마.
201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제작 편수를 늘리며 새로운 흥행신화를 써내려가고 그 환상성에 우리의 이야기를 잘 녹여내며 호평을 받고 있는 판타지드라마도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자리잡아 가장 대중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인기를 얻고 있는 장르인 범죄는 우리나라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상륙한 모양새이다.
드마라를 통해 현 시대를 들여다보다
이 책은 드라마 장르의 구분에 따른 분석, 드라마의 변천사, 드라마와 함께 해왔던 함께 하고 있는 시청자와의 조우 등을 소재와 주제로 삼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드라마가 만들어진 당대의 시대상을 요밀조밀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시청률의 압박은 심할지 모르지만, 영화보단 덜 상업적일 테고 영화보다 더 소통지향적일 테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드라마'에 한정해 누군가의 연구와 누군가의 드라마 집필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고, 또한 추천사를 통해 드라마 마니아, 드라마 작가지망생, 드라마 비평이나 논문을 준비하는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 책에서 '드라마'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즉, 드라마를 통해 다른 무엇, 현 시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드라마는 대상이 아닌, 대상을 들여다보는 창으로서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책은 드라마 자체를 들여다보는 데에도 훌륭히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난 편집자로서 그 점을 인지했고 저자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는 목적으로서의 드라마와 수단으로서의 드라마 모두를 들여다보는 데 문제 없이 가능한 훌륭한 책이다.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
저자의 멜로드라마와 판타지드라마를 대하고 분석하는 시선은 대단히 균형 잡혀 있고 공감간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멜로드라마를 가장 무시하고 하찮게 여길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런 고정관념 속에서 저자는 그 인기요인과 위험성을 분석한다. 패턴으로 고착화되어 간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있지만, 반복적으로 누적된 경험으로서의 관습이 기대와 만족감을 주기에 마니아층과 팬덤 형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로맨스가 생기고 사랑에의 금기를 내보이는 데에도 변화가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사랑을 모두 성취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하고, 결혼의 신성함과 순결은 더 이상 도덕적 관념의 틀 안에서만 해석되지 않게 되었으며, 중년과 노년의 로맨스와 재혼이 더 이상 특별하거나 망측한 짓이 아니게 되었다. 또한 불륜, 동성애 등은 금기의 선을 넘어선 지 오래이다.
저자는 드라마가 판타지라 말한다. 드라마가 현실을 기반으로 하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며 판타지의 환상성이 우리 안의 결핍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별에서 온 그대>의 사랑에의 욕구, <너의 목소리가 들여>의 행복에의 욕구, <시그널>의 정의에의 욕구. 드라마는 판타지이고 판타지는 우리 안에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드라마 관계자들은 사람들의 결핍과 결핍에 따른 욕구를 면밀히 분석해 현실적인 대리만족과 현실참여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여렴이 없다. 이 책은 무엇보다 그분들을 향한 헌사일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는 그런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이다. 언젠가 세상은 보다 좋게 바뀔 것이다. 아니, 이미 세상은 보다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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