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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도서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6개월, 그리고 세기의 회담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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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1945>


<1945> 표지. ⓒ모던아카이브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기의 회담'이라 할 만한 '북미정상회담'이 있었다. 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북한과 미국의 정상 간 회담으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주요 골자로 하여 미국은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을 북한은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이후 항구적 평화를 위한 청사진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73년 전, 1945년엔 20세기를 대표하는 '세기의 회담'이 두 차례 있었다. 2월의 '얄타회담'과 7월의 '포츠담회담'이 그것들인데, 각각 임박한 나치독일의 항복 이후 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청사진 논의와 나치독일 패망·패망이 임박한 일본제국에 대한 논의가 주요 골자였다. 


이들 회담의 결과, 얄타회담을 통해 스탈린은 동유럽에 공산정권을 세울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철의 장막이 드리워 사실상 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포츠담회담을 통해 일제에 항복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원자폭탄을 투하해 무조건항복을 받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것이다. 


<1945>(모던아카이브)는 1945년에 있었던 두 차례 세기의 회담을 중심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마지막 6개월을 다룬 논픽션이다. 이 책은 <0시 1분>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의 전모를 파헤치고, <빅브라더를 타도하자>로 구소련 붕괴의 순간을 담아낸 마이클 돕스가 '냉전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내놓은 것이다. '이야기'와 '통찰'이 잘 버무러진 작품들로, 학술적 지식은 물론 구술적 재미까지 얻을 수 있다. 저널리스트이자 역사가로서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한 것이리라. 


제2차 세계대전 막전막후


제2차 세계대전은 천신만고 끝에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다. 50여 개국이 연합국을 구성했지만, 실상 미국, 소련, 영국의 3개국이 중심을 이루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 스탈린 원수와 처칠 총리가 이끌었다. 이 책의 시작인 얄타회담은 이 3거두의 작품이다. 저자는 3거두를 비롯한 거물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캐릭터성 있게 구성해 스토리텔링을 입혀 재미있게 전해준다. 


3거두는 서로 완연히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고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모두 20세기를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거니와 영향력 있고 위대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당시 신세계 질서의 기초를 쌓고자 모였을 때 그들은 장애인이 된 대통령 루스벨트, 곰보투성이 혁명가 스탈린, 영국 귀족 처칠이었다. 


얄타회담은 여론의 엄청나게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잇따른 스탈린의 행동은 점점 더 부정적으로 바뀌어 간다. 한없이 긍정적인 루스벨트는 그렇다 치고, 처칠로 하여금 '철의 장막이 드리워지다'라는 생각이 충분히 들게끔 하였던 것이다. 얄타회담에서의 가장 중요한 의제였던 폴란드 문제에서의 동상이몽. 폴란드에서 민주적 정권을 세운다는 합의를, 루스벨트와 처칠의 해석과 스탈린의 해석이 달랐다. 


루스벨트는 얄타회담이 끝난 후 두 달 만에 숨을 거둔다. 그의 뒤를 이어 부통령 트루먼이 대통령이 된다.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히틀러가 자살하고 열흘도 되지 않아 나치독일이 항복한다. 베를린이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점령지로 쪼개진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제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극비로 원폭 투하를 결정한다. 


7월에는 트루먼 대통령, 스탈린 대원수, 처칠 총리가 모여 지난 2월 얄타회담에 이은 전후 신세계 질서 논의를 위해 포츠담회담을 연다. 7월 말에는 처칠 총리가 사임한다. 총선에서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대망의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투하,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 1945년 2월 4일 얄타회담으로 시작되어 숨가쁘게 달려온 현대사 최대의 분기점이자 전환점 6개월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무조건 항복으로 마무리된다. 


스탈린, 그리고 얄타회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스탈린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얄타회담이다. 구두수선공 아들 스탈린은 노상강도와 은행강도, 공장주들을 협박 갈취한 돈으로 볼셰비키 자금을 마련해 유명해졌다. 여러 차례 시베리아에 유배되기도 한 이 '영도자'는 자신이 무너뜨린 러시아 차르의 전통적 방식으로 나라를 통치했다. 비밀주의, 잔인한 권력, 국가권력의 집중. 


완벽한 정치인 루스벨트와 완벽한 귀족 처칠이 예상되는 그대로인 것과는 다르게 '풋내기' 트루먼 대통령은 의외였다. 그가 대통령이 된 2주만에 유럽은 폐허가 되었고 나치독일은 참패 직전이었으며 일본은 본토 최후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고 소련과 미국이 새로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승리가 눈앞으로 다가왔지만 평화는 요원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결단력 있는 빠른 결정으로 난관을 헤쳐 나갔다. 


얄타회담에서 모인 이들은 요즘 시쳇말로 '어벤저스'이다. 침략자(히틀러)에게서 지구를 지켜낸 영웅들인 것이다. 이들이 모였다고, 아니 모인 만큼 논의가 크게 진전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흥미를 자아낸다. 단순히 최대치의 긴장감이 서리는 정도가 아닌, 세계 질서를 다시 세우는 논의가 있는 만큼 거기엔 어떤 '성스러움'이 깃들어져 있는 듯하다. '하늘의 뜻'이라고 해야 할까. 


얄타회담은 결코 미국과 소련이 주축이 된 필연적인 '냉전 시대'로의 변화를 막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부추겼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았지만, 그 완벽에 가까운 '모호함' 때문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대영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고, 미국과 소련은 세계 양대 최강대국으로서 숙명의 대결을 펼쳐나갈 것이었다. 거기엔 트루먼이 승낙한 원자폭탄 투하, 아니 그 이전 루스벨트가 시작한 '맨해튼 프로젝트' 원자폭탄 개발이 큰 역할을 차지할 것이었다. 1945년의 6개월은 이후 20세기 후반의 50여 년간 이상의 지구 운명을 결정지은 시기인 것이다. 21세기의 수십 년 운명을 결정지을 시기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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