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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이토록 드라마틱한 역사 이야기가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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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광기와 우연의 역사> ⓒ휴머니스트

<나는 꼼수다>가 팟캐스트 계를 이끌어 가다가 막을 내리고, 그 뒤를 이어 팟캐스트계 부흥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는 팟캐스트가 있다.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 이박사, 이작가가 진행하는 시사대담 팟캐스트로, 주로 현대사 이야기를 한다. 이 중에 이작가는 책도 내고 방송도 하는 등 활발히 활동 중에 있다. 


얼마 전에 개국한 '팩트 TV'에서 이작가가 프로그램 하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작가의 결정적 순간> 한국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역사적 사건의 전후 상황과 관련 인물을 입체적인 분석해 역사가 주는 교훈과 팩트를 전달한다는 취지이다. '10·26 사건, 김재규의 운명적 유턴', '"탁하고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정주영의 소떼 방북' 등의 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사건들이라 할 수 있다. 

<서울신문>에서는 '선택! 역사를 갈랐다'라는 제목의 기획 기사를 작년 초부터 10개월 간 연재한 바 있다. 고대국가부터 시작해 일제 강점기까지. 당시 대표적 라이벌들의 주장과 선택을 비교분석해, 한반도 역사에 어떤 영향들을 미쳤는지 평가하였다. 위의 프로그램이 '결정적 순간'을 다뤘다면 이 기사는 '결정적 선택'을 다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사건들은 드라마틱하다. 분명 사람의 손에 의해 일어난 일이지만, 마치 신의 손길이 닿아 있는 듯 장엄하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임을,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꿀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재미있고 맛깔나는 역사 이야기

유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20세기 독일 문학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전기 작가이자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 유명 작가들에 대한 평전을 많이 출간했고,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을 많이 선보이기도 하였다. 또한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심도 있는 탐구로 명성을 떨쳤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 중 하나가 <광기와 우연의 역사>(휴머니스트)이다. 

이 작품은 역사서로, 부제가 '인류 역사를 바꾼 운명의 순간들'이다. 정확히는 유럽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츠바이크는 말한다. 역사란 무의미하고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며, 사실에 사실을 나열한 것이 고작이라고. 하지만 그런 역사의 장에서도 고귀하고 잊을 수 없는 일들이 극히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순간을 '별 같은 순간들'이라 명명했다. 

"그러한 순간들이 별처럼 빛나면서 지나가 버린 일들 위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으니까."

동로마 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한 마흐메트 2세,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태평양을 발견한(아메리카를 발견해 유명세를 떨친 콜럼버스도 해내지 못했다) 발보아, 나폴레옹의 종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루쉬, 20세기 현대사의 운명을 결정한 레닌 등 책은 유럽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과 사건을 그렸다. 

사형 직전에 살아나 역사에 길이 남을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에서 건져 올린 삶', 위에서 언급한 레닌을 다룬 '세계를 향해 날아간 탄알' 등은 그 챕터 자체로 이미 유명한 고전이 되었다.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언제나 천재를 원하고 그에게는 또 불멸의 모범이라는 명예를 안겨주지만, 유순한 자에게는 그렇지가 못하다. 오히려 경멸하며 밀쳐 버린다. 지상의 다른 신이기도 한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불같은 팔로 대담한 자들만을 들어 올려 영웅들의 하늘로 들여보내 주는 것이다."(본문 속에서)

역사서라면 학을 띠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딱딱하고 재미가 없고 스토리텔링적인 요소 없이 연대기순의 단편적 나열만 있을 뿐이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접함에 있어서, 그런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작가이기도 한 점도 있지만, 그가 이 12가지의 역사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기가 막힐 정도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작가로써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 능력과 능수능란한 표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건에 다가가는 방법이 매우 특이하다. 박진감이 넘친다고 할까? 사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를 최대한도로 끌어들이는 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인물과 사건을 둘러싼 거시적 시선에서 출발해 점층적으로 다가간다. 과거인 그 순간을 현재 시점으로 잘 표현해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듯하다. 이는 모두 결정적이고 운명적인 한 순간을 극도로 긴장감 있고 극적이게 드라마틱하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엄연히 사실에 기반한 역사 이야기지만 소설처럼 믿을 수 없고, 분명 연대기순의 단편적 나열이지만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재미있다', '맛깔나다'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역사 이야기. 

'역사'는 언제까지 재미없고 딱딱하기만 할 것인가?

'역사'에는 분명 재미있는 요소가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역사이야기인 '사극'은 그런 요소들을 최대한도로 끄집어내기 위해 사실과 사실 사이의 행간을 창조해낸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만이 사실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서 차라리 이들이 우리나라 역사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병폐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너무 어렵거나 재미없어서 배우기 싫어한다는 것이다(물론 다른 과목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국가 차원의 당위론적인 측면에서 '역사'와 그 밖의 다른 과목을 같은 급에서 논할 수는 없다). 그래서인지 실제 역사를 튼 '팩션'(팩트와 픽션의 합성어,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다)의 드라마나 영화 등을 보고, 그것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다. 

<광기와 우연의 역사> 같은 서술 방식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역사적 사실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역사를 이처럼 재미있고 극적인 드라마나 영화 같이 그려낼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팟캐스트 <이작가의 결정적 순간>과 <서울신문> 기획 기사 연재 '선택! 역사를 갈랐다'를 비롯해, 많은 역사 관련 콘텐츠들이 교과서가 하지 못하는 역사 교육을 대신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감동으로.

이런 것들을 인지했으면 좋겠다. 아니, 인지해야 하고 바뀌어야 한다. 역사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외우기'만 하는 방법은 지양해야 한다. 역사의 흐름 속에 나를 맡기고 역사와 '대화'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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