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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열전/신작 영화

세계 역사를 바꾼 위대한 언론과 여성 <더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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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영화 <더 포스트> 포스터. ⓒ20세기폭스코리아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일명 <포스트>. <뉴욕타임스>가 1971년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펜타곤 문서' 보도로 미국에 '치명적이고 회복할 수 없는 손실'을 입히며 명성을 떨친 것처럼, <포스트>는 이듬해 1972년 역시 전 세계를 뒤흔든 '워터게이트' 진상 보도로 명성을 떨쳤다. 영화 <더 포스트>는 어느 신문사의 어떤 보도를 다루는가. 


<더 포스트>는 큰 틀에서 투 트랙으로 진행된다. 명백한 메시지로 점철된 그것들은, 당연한 '언론'과 의외의 '여성'이다. 영화는 <타임스>가 아닌 <포스트>의 '펜타곤 문서' 보도를 다룬다. 왜 <포스트>의 '펜타곤 문서' 보도일까. 최초의 보도로 세상을 뒤집은 건 <타임스>인데 말이다. 또한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의 선택이 중요하다 못해 절대적이다. 그녀의 선택은 왜 특별히 중요한 것일까. 


할리우드의 신 '스티븐 스필버그'와 그의 페르소나 '톰 행크스', 그리고 연기의 신 '메릴 스트립'의 만남은 불꽃 튀긴다. 아니, 그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실상 그러진 않았다. 영화는 감독, 배우, 연기에서 힘을 빼고, 메시지에 거의 모든 힘을 쏟는다. 그래서 기대했던 영화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으나,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이 시대에 반드시 봐야 할 영화로 거듭났다. 그들의 이야기에 한 발 더 들어가보자. 


세계 역사를 바꾼 일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1971년, 베트남 전쟁에서의 미국 의사 결정 기록, 일명 '펜타곤 문서'가 <뉴욕 타임스>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다. 펜타곤 문서 작성에 참여했던 댄 엘스버그가 몇 개월 동안 빼돌려 복사해 제보한 것이었다. 닉슨 정부는 이를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라며 후속 보도를 금지하였다. 


한편, <워싱턴 포스트>는 한낱 닉슨 대통령 딸의 결혼식 보도로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는데, 사태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파악한 편집장 벤(톰 행크스 분)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펜타곤 문서 입수에 사활을 건다. 천신만고 끝에 입수하지만, 발행인 캐서린(메릴 스트립)이 보도를 망설인다. 


'언론의 자유'라는 당연한 권리와 함께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사명으로 중무장한 벤, <워싱턴 포스트> 전통과 역사와 존폐,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직원의 생존과 안전이 걸려 결정을 내리기 힘든 캐서린. 우리는 그녀의 선택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언론의 자유와 사명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해 모든 걸 걸고 나아간다. 그 위기를 기점으로 <워싱턴 포스트>는 더 이상 지역 일간지 수준이 아니게 되었고, 이어진 '워터 게이트' 취재 및 보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일간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회사뿐만 아니라 미국, 나아가 세계 역사를 바꾼 일을 해냈다. 


언론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앞서 말했던 '언론'과 '여성'의 투 트랙을 중심으로, 그 명성 높은 감독과 배우들의 연출과 연기가 아닌 '메시지'에 중점을 둔다. 언론 윤리라는 게 있다.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하고 인간적 연대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의 베트남 참전 계기가 되는 사건이 조작이었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인 줄 알고도 지속했으며, 선거를 조작한 것도 모자라 거짓 선언으로 전 세계를 우롱했다는 사실을 속속들이 들어 있는 '펜타곤 문서' 폭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야말로 진실을 추구하고 사회정의를 지향하는 행동이 아닌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젊은이들을 계속해서 파병시켜 죽게 만든 행위는 인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언론 윤리에 힘을 보탰고, 닉슨 정부의 보도 금지 압박은 자유를 추구하는 또다른 언론 윤리에 합당함을 부여했다. 문제는, 자본주의 세상에선 이 모든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신문사도 회사인 바, 후원과 투자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위대함의 많은 선행 사항 중에 가장 힘든 게 희생이다. 캐서린은 '언론'을 지키고 결국 <포스트>를 지키기 위해, <포스트>를 희생시킬 각오를 한 것이다. 언론이 있고 <포스트>가 있는 것이지, <포스트>가 있고 언론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적중했다. 그녀는 위대한 일을 해냈다. 


이 영화를 상징하는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라는 대사는 나아가 언론의 총체적이고 궁극적인 존재 이유를 반영한다. 궁극적으로 '언론'이 아닌 '국민'을 지키는 게 언론의 의무이자 사명의 결정체라는 것. 국가가 국민을 지키지 못할 때, 지키려 하지 않을 때, 언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여성


영화 <더 포스트>의 한 장면. ⓒ20세기폭스코리아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 캐서린으로 집약되는 '여성'이라는 메시지는 이 영화가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다. '펜타곤 문서' 보도를 다루는 영화임에도 <타임스>가 <포스트>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다루는 언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잊힐 뻔한 한 여성의 성장 이야기가 이채롭다. 


캐서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포스트>를 물려준 이는 캐서린이 아닌 캐서린의 남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갑작스레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채,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캐서린이 경영자가 된다. 가족 경영이라는 꼬리표도 떼지 못한 채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 회사를 이끌어야 하는 처지, 당연히 당당한 결정과 선택을 하지 못하고 휘둘리기 일쑤인 것이다. 


영화는 회사의 존폐가 달린 결정과 선택을 하기까지 <워싱턴 포스트>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습을 포착함과 동시에, 그에 못지 않게 많은 비중을 캐서린이 여성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불편, 부당한 모습에 할애한다. 그 두 접점이 펜타곤 문서 후속 보도 결정이라는 클라이막스에서 만나 확신에 찬 메시지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 고색창연한 메시지들은 속이 뻥 뚫리는 환희를 선사하기도 한다. 


<더 포스트>는 비단 언론의, 언론을 위한, 언론에 의한 영화만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또한 50년 가까이 지난 옛이야기를, 그것도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를 그저 역사를 계속해서 되새김질하는 당위성 차원에서 불러온 것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이 영화는 지금 여기 우리에게 보내는, 명백한 목적 하의 명백한 메시지이다. <더 포스트>는 분명 '기대보다 못 미치는 게' 아닌 '기대와는 다른' 영화지만, 어떤 면에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최고의 영화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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