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직 사랑뿐>
영화 <오직 사랑뿐>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러브스토리는 인간 역사에서 만고불변의 중심축이다. 당연히 인간이 만든 대부분의 콘텐츠에서도 가장 많이 다뤄진다. 심지어 인간을 만들었다는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에서도 단연 중심이 되는 게 다름 아닌 사랑인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에 웃는,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영국 최초 개봉 2년여만에 한국에 소개되는 영화 <오직 사랑뿐>은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가는 두 남녀의 실화를 다루었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전쟁의 시대는 끝났지만 차별의 시대는 여전한 그때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가 사랑에 빠졌다. 문제는, 흑인 남자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고 백인 여자는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는 것.
영화는 달달하지만 때론 끔찍한 사랑의 모습만으로 스크린을 채우진 않는다. 대신 두 사람의 꿋꿋한 사랑으로 수많은 갈등을 헤쳐나가는 모습이 주를 이룬다. 사실 그들이 사랑하는 것 자체가 그 시대에서는 '위험'과 '위대함'이 수반되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지금에 와서 다시 들여다보는 건 사랑이라는 식상함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랑과 맞물리는 시대를 엿보는 것.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가다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1947년 전후의 영국, 세레체 카마(데이빗 오예로워 분)와 루스 윌리엄스(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어느 댄스파티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들은 흑인과 백인, 사방에서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더욱이 세레체는 당시 영국보호령이었던 베추아날란드의 왕자, 조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루스는 세레체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시련 또한 시작된다. 인종분리정책을 앞세운 영국, 베추아날란드를 호시탐탐 노리는 남아프리카연방, 그리고 세레체 카마의 삼촌 즉, 베추아날란드까지. 전 세계가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래도 그들이 가야할 곳은, 정착해야 할 곳은 영국이 아닌 베추아날란드.
그들이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많았다. 삼촌을 비롯한 가족, 베추아날란드 국민, 영국과 남아프리카연방, 언론, 루스에게는 생소하기 짝이 없는 아프리카까지. 오직 사랑 하나로 헤쳐나가기엔 너무나도 험했지만, 그들은 그야말로 오직 사랑 하나로 모든 걸 헤쳐나간다. 사랑이 삶이 되고 삶이 사상이 되고 사상이 세상이 되는 순간을 목격한다.
한편으론 정치적, 한편으론 로맨틱·드라마틱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멜로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오간다. <셀마>에서 위대한 마틴 루터 킹 목사로 열연했던 데이빗 오예로워가 이성과 감성을 울리는 연설과 한없이 달달한 눈빛으로 또 다른 위대함을 선보였고, <나를 찾아줘>에서 그야말로 무서운 아내로 열연했던 로자먼드 파이크가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한없이 강한 아프리카 최초의 백인 퍼스트 레이디의 파란만장함을 선보였다.
한국 개봉 제목인 <오직 사랑뿐>이 멜로에 중점을 두었다면, 원제인 <A United Kingdom>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중심에는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이 위치하지만, 그 이면에 복잡하기 그지 없는 국내외 정치 정세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에 말하고자 하는 건 '베추아날란드'라는 나라가 아닌가. 영화는 이 두 마리 혹은 수십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느낌이다.
그건 세레체와 루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 사랑과 나라의 공인적 독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자 하기 때문이다. 폭압적 시대를 빗겨가려는 또는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그들의 선택들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맞물려 있는 건 참으로 정치적이지만 한편으론 한없이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하다.
세계사적 흐름과 내부 및 개인의 선택
영화 <오직 사랑뿐>의 한 장면. ⓒ팝엔터테인먼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이야기 또한 역사의 한 부분, 역사를 들여다봄에 있어 중요한 건 세계사적 흐름과 내부 및 개인의 선택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꽤나 탁월한 조망을 보여준다. '사랑'으로 대표되는 멜로를 끝까지 놓지 않은 채 그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를 촘촘히 채워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보츠와나 공화국이 되는 베추아날란드의 면면, 보츠와나 공화국 초대 대통령과 초대 퍼스트 레이디가 되는 세레체와 루스의 면면, 거기에 영국 내부에서도 격렬히 또는 점잖게 오가는 정치적·인도적 차원의 입장에 따른 공방까지. 영화는 전체적으로 차분한 와중에 격정을 토로하고 감성적인 와중에 대단한 이성을 구축하는 한 인간, 나아가 한 나라의 모습 그 자체를 그려내는 것 같다.
결국 돌고 돌아 사랑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사랑인 것 같다. 세레체와 루스였기에 그 모든 것이 그들 앞을 가로막았지만, 세레체와 루스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이 점이 이 영화를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으면서도, 일면 '세기의 로맨스'처럼 가십거리로 봐도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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