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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천재'에 해당되는 글 2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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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2020.11.13
  • 축구만 하고 싶었지만 축구 의외의 것들에 휘둘린 비운의 월드클래스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2020.09.07
  • 최고의 천재 영웅 슈퍼스타에서 배신자 악마로의 기막힌 추락 <디에고> 2020.01.15
  • '최고의 음악 영화' 이전에 '드라마의 총집합' <샤인> 2019.07.31
  • 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시인에게> 2019.04.12
  • 천재성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을 찾아보자 <모차르트> 2019.03.29
  • '천재 감독' 코엔 형제의 최정점 <파고>(2) 2018.04.20
  • 과알못을 위한 완벽한 과학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 2018.01.22
  • 어떤 길을 가든 우리는 그녀를 응원한다 <어메이징 메리> 2017.11.01
  • 아슬아슬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천재의 영화 <시인의 사랑> 2017.10.18

인생이라는 체스를 사는 불우한 천재 소녀 이야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11. 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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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퀸스 갬빗>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퀸스 갬빗> 포스터. ⓒ넷플릭스



1950년대 후반 미국 중남부 켄터키주의 어느 보육원, 아빠 없이 살다가 엄마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곤 혼자 살아남은 9살 소녀 엘리자베스 하먼(이하, '베스')은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흑인 친구 졸린이 그녀와 함께해 준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매일매일 두 가지 약을 먹었는데, 초록색 약은 온화환 성품을 주황갈색은 튼튼한 몸을 길러준다 했다. 불시에 혼자가 된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완벽한 식단을 챙겨 주지 못하기에 약으로 보충하려는 의도인 듯했다. 


베스는 어느 날 지하실에 내려갔다가 관리인 샤이벌이 두는 체스에 관심을 가지고 곧 초록색 약, 즉 신경안정제의 효능으로 체스에 비상한 능력을 뽐내게 된다. 신경안정제만 먹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머릿속 체스 게임이 천장에 그려져 시물레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샤이벌에게 방법과 전략과 매너 등을 배우며 곧 그를 이기고 근처 고등학교 체스부 전체와 맞붙어 이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신경안정제에 중독되고 만 그녀에게 체스금지령을 내리고 몇 년 후엔 휘틀리 부부에게 입양되어 보육원을 떠난다. 


먼 곳으로 출장을 가곤 하는 남편을 둔 앨마 휘틀리 부인과 살게 된 베스, 휘틀리 부인이 복용하는 신경안정제를 빼돌려 복용하며 다시 체스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체스에 대한 열망과 돈 벌 길 없이 앞날이 막막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체스대회에 출전한다. 켄터기주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돈도 벌고 일약 스타덤에 오르는 베스, 휘틀리 부인이 매니저가 되어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의 체스 대회들을 석권하기 시작한다. 


US 오픈, US 챔피언십 등의 미국 대표 대회에도 출전하며 미국을 대표할 만한 선수이자 친구들을 만나고, 해외 대회에도 출전해 체스 인생 최대의 라이벌이 될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와도 대결한다. 그토록 갈망하던 최고의 체스 선수 자리에 오를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해 보이는 그녀, 하지만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녀에겐 어떤 날들이 펼쳐질까?


넷플릭스 명작 드라마 폭격의 선두주자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를 만드는 데 열일하는 모양새다. 결코 쉽게 국경을 넘기 힘든 각국의 명작 드라마들이 폭격하듯 시간차를 두지 않고 찾아오니까 말이다. 최근 들어 접한 드라마들, 이를테면 한국의 <보건교사 안은영>, 독일의 <엠파이어 옥토버페스트> <바바리안>, 프랑스의 <라 레볼뤼시옹>, 미국의 <어웨이> <래치드> 그리고 영국의 <퀸스 갬빗>과 곧 나올 <더 크라운 시즌 4>까지. 하나같이 나름의 합리적이면서 확고한 시선을 장착하곤 탄탄한 스토리와 캐릭터와 미장센으로 중무장했다. 


<퀸스 갬빗>은 1983년에 출간된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만큼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함이 돋보인다. 2014년에 드라마로 데뷔해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주조연 가리지 않고 활발히 얼굴을 비춘 '안야 테일러조이'가 베스 역으로 완벽하게 분했다. 그녀가 아니면 이 역을 살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하고 싶다. 그런가 하면 낯익은 얼굴도 몇몇 보이는데, <러브 액츄얼리>에서 리암 니슨이 분한 다니엘의 아들 역으로 큰 명성을 떨친 '토머스 브로디생스터'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두들리로 역시 큰 명성을 떨친 '해리 멜링'이 그들이다. 


'퀸스 갬빗'이라고 하면 필자처럼 뭘까 싶은 이들이 많을 것 같은데, 체스의 오프닝 중 하나이다. 쉽게 말해, 체스 게임을 시작하는 전략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오프닝 전략은 체스의 말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폰'(우리나라로 치면 '졸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을 희생해 '퀸'으로 이후 포지션을 유리하게 진행시켜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인기가 많을 뿐더러 분석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체스라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다


작품은 엘리자베스 하먼의 '성장'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체스 대회와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 그리고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인 듯 시크한 성격에 인생을 어떻게,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베스에게 불시에 '체스'가 다가온다. 이후 그녀는 체스를 잘 두어 최고가 되는 데에 삶의 목적을 두게 된다. 그렇다면, 최고의 체스 선수가 되는 길이 성장의 길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할 순 없겠다. 


베스는 체스를 하지 않는 때에 체스를 통해 인생을 알아간다. 대부분의 인간은 거의 매일 반복되는 뭔가를 하며 살아간다. 대체로 직업으로서의 일일 텐데, 거기에서 기본적으로 돈을 취득하고 나아가 명예와 권력을 소유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생을 알아간다고 생각하진 않을 텐데, 실제론 인생을 알아가거니와 인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함께하며 많은 걸 공유하는 사람들, 내가 하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 나는 누구이고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 등. 


동양의 장기나 바둑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양의 체스도 다분히 남자의 전유물이다. 지금이야 남녀 관계 없이 함께하지만, 50년이 넘은 작품 속 배경에서 여자는 여자부에 소속되어 여자끼리 실력을 겨루어야 했다. 물론, 여자부에서 우승했다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지만 말이다. 그런 배경에서 10대에 불과한 소녀 베스가 독보적인 실력으로 대회를 휩쓰니 세상의 눈이 획기적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극한 일상에서 그녀가 대면한 건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또래 여자아이들의 모습이다. 세상이 가르쳐 준 '여자'로서의 평범성과 보편성을 지는 모습 말이다. 


베스는 그래서 더더욱 체스로 빠져든다. 오롯이 통제할 수 있는 64칸의 체스판을 앞에 두고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놓쳤고 놓칠 뻔한 것들이 있으니, 그녀 곁에서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 준 사람들이다. 체스를 잘하려면, 당연히 체스만 잘하면 된다. 하지만 아무리 체스에 인생을 바친 베스에게도 인생=체스일 수 없듯, 베스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체스 아닌 것들도 필요하다. 체스라는 인생을 살아가는 게 아니라, 인생이라는 체스를 살아가는 걸 깨닫는 데 좋은 인연들이 절대적으로 한몫들 한다.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 너머, 특별한 이야기


<퀸스 갬빗>은 체스를 잘 알면 알수록 재밌을 테지만 체스를 아예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한 내공을 갖췄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만큼 '인생' 이야기가 투 트랙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리라. 중간중간 나오는 체스 대회와 대회 속 게임에서의 알 길 없는 용어, 전략 들이 꽤나 전문적인데, 그래서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체스와 관련되어 있지만 체스 밖의 것들이라 할 만한 스승과 친구와 라이벌과 파트너 들이 빛을 발한다. 베스의 '체스' 이야기가 아닌, '베스'의 체스 이야기. 


그런가 하면, 사실상 '천재'의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다룬 뻔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는데 꼭 그렇게만 느끼지 않았던 건 베스의 특별한 개인적 배경 덕분이겠다. 극중에서 베스의 최대 난적인 러시아 그랜드 마스터 보르고프가 말하기도 했던 바 "물러설 곳이 없으니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배경 말이다. 그녀는 채 10대도 되지 않은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홀로 보육원에 뚝 떨어진다. 10대 중반 입양을 가서 나쁘지 않은 시절을 보내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체스밖에 남은 게 없지만 여전히 어리디어린 나이에 끝없이 계속되는 과중한 압박을 견디기 힘들다. '체스 천재'가 체스 안에서가 아닌 체스 밖에서 힘들어하는 이야기는, 천재 아닌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통용되고도 남을 것이다. 


이야기의 처음과 끝, 체스의 오프닝과 엔드게임, 베스의 밑바닥부터 최고의 자리까지 남김 없이 모두 보여 준 작품은, 시즌 2의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베스의 이야기로는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나도 강렬했던 베스 아닌 다른 캐릭터로 스핀오프를 제작할 여지도 많지 않다. 그만큼 여러 모로 완벽했던 작품 <퀸스 갬빗>, 하여 제작과 각본과 연출까지 도맡아 한 '스콧 프랭크' 감독의 차기작을 기다려 본다. 그는 <조지 클루니의 표적>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리와 나> <로건>의 각본가로 유명한데, <퀸스 갬빗>으로 본인 인생에 한 획을 그었을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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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드라마, 성장, 여성, 인생, 인연, 천재, 체스, 퀸스 갬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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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만 하고 싶었지만 축구 의외의 것들에 휘둘린 비운의 월드클래스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9. 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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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포스터. ⓒ넷플릭스



니콜라 아넬카,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프랑스 축구선수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만큼의 유명세나 영향력은 없을지 모르지만, 실력 하나는 결코 뒤지지 않았던 선수이다. 원클럽맨과 다르게 여행 다니듯 팀을 옮겨다닌다는 비유적 의미에서 '저니맨'의 대표적 선수임에도, 수많은 명문 팀에서 원했고 또 실제로 많은 명문 팀에서 뛴 경험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에 걸맞는 클럽·개인 기록을 남긴 건 물론이다. 


'월드클래스'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를 일컫는 말인데, 단순히 좋은 실력으로 무장하고 좋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것만으로 월드클래스 반열에 들 수는 없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논란이 많을 개념임에 분명하지만, 명문 팀에서 꾸준히 그리고 때론 결정적일 때 세계 언론지상에 오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팬들의 인정까지 받아야 할 테다. 아넬카는 자타공인 월드클래스 반열의 선수였다. 


그는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각종 문제들로 세계 언론지상에 오르내렸는데,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면 별 것 아닐 일도 있고 자못 심각했던 일도 있었다. 2015년 이후 선수로 뛰고 있지 않은 그는 1995~96 시즌 프랑스 명문 '파리 생제르맹'에서 프로 데뷔를 하였기에 프로 생활을 20년 동안 했는데, 넷플릭스가 그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는 작품을 들고 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아넬카: 문제적 저니맨>, 어떤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펼쳐질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회에 여러모로 희대의 선수 한 명을 오롯이 들여다보고자 한다. 


축구스타 아넬카, 저니맨 아넬카


1979년생 아넬카는, 20세가 채 되기 전 10대 후반의 나이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벵거 감독 부름을 받고 런던으로 향한다. 실력은 보장됐지만 다른 나라 다른 환경 다른 리그에 적응하느냐고 약간의 부침을 겪은 후, 이적 이듬해 폭발한다.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의 '더블'을 달성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듬해엔 PFA 올해의 팀에 들 정도의 개인 기록을 달성한다. 비록 프랑스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해 역사적인 1998년 월드컵 프랑스 우승과 함께하진 못했지만, 그의 경력 첫 번째 전성기였음에 분명하다. 


전 세계 명문 팀들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와 이탈리아 유벤투스가 눈독을 들인다. 결국 레알 마드리드로 향하는 아넬카, 그의 '저니맨'으로서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축구선수로의 정체성보다 '스타'로서의 정체성이 돋보이는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삶, 그는 특히 언론에 시달리고 흔들리며 제대로 축구를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롯이 실력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큰 공을 세운다. 그리고는, 레알 마드리드에 올 때 스페인 리그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경신했던 것처럼 파리 생제르맹으로 돌아갈 때 프랑스 리그 역사상 최고의 이적료를 경신한다. 하지만, 소소한 실적을 남기고는 다시 영국 프리미어리그로 향한다. 


작품에서 살짝 언급되지만, 그의 뒤엔 '클랜' 즉 특정한 목표로 결성된 조직 같은 느낌의 '가족'이 있었다. 그들이 아넬카를 조종해 돈을 보고 적을 옮기게 했다는 것이었다. 일면 맞고, 일면 틀린 말일 테다. 그의 외강내우 성향이 월클럽맨으로서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가족을 중시하는 성향이 한몫했을 수도 있다. 또한 그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바, 그는 축구선수를 엄연한 직업으로 생각하고 비즈니스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축구만 하고 싶었지만, 축구 이외의 것에 더 많이 또 자주 휘둘렸던 것이다. 


화려한 프로팀, 비루한 대표팀


아넬카만큼 전 세계 최고 리그의 명문 팀을 두루두루 거친 축구 선수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파리 생제르맹,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의 유벤투스, 잉글랜드의 아스널과 리버풀과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 터키의 페네르바체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선 득점왕도 했고 올해의 팀엔 두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그는 굳세고 자존심 강한 걸로 유명한 만큼 감독과의 불화가 심한 걸로도 유명했다. 


그 때문인지, 프로팀에서의 화려한 모습과는 달리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선 볼 수 없었다. 국가대표로는 69경기나 뛰었지만 프로 생활 시작점과 궤를 같이하는 1998년 이후 2006년까지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턴과 첼시에서의 빼어난 성적으로 2010년 월드컵에 처음 모습을 보인 아넬카, 하지만 조별 리그 경기 도중 감독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시전한 후 대표팀에서 쫓겨나고 만다. A매치 18경기 출전 정지 중징계를 받고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아넬카였다. 


이 과정에서 감독과 선수들 간의 심각한 마찰과 대립이 있었는데, 벌 떼 같이 달려들어 물어뜯은 언론에 의해 전 세계적으로 퍼졌고 아넬카는 크게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밝혀지지만, 사건이 있은 몇 년 후 당시 감독이었던 도메네크가 다큐멘터리를 통해 아넬카한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없다고 시인했다. 아넬카는 언론의 먹잇감이 되어 억울한 명성(?)을 얻게 된 것이었다. 평소엔 조용하지만 종종 쌓아둔 걸 폭발시키는 아넬카의 성향 때문이기도 할 텐데, 그를 잘 아는 이들로서는 그 못지 않게 황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축구만 하고 싶었지만 다른 것들에 휘둘리다 


그의 축구 인생 20여 년을 돌이켜 보면, 전 세계 축구계의 20년도 함께 보인다. 그가 전 세계 최고 리그의 명문 팀을 두루두루 거친 것도 있거니와, 굵직한 이슈들의 불행하면서도 재밌는 일화와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통해 나의 인생을 투영해 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남는 건 무엇인가?


아넬카가 월 클럽 플레이어가 아닌 저니맨이기에 가능했을 텐데, 유명한 월 클럽 플레이어의 별 탈 없는 엘리트적 일대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 순 있으나 굳이 찾아볼 것 같지는 않다. 반면, 아넬카 못지 않은 저니맨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같은 경우는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싶다(2015년작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 아주 드라마틱하게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짧은 다큐멘터리로 아넬카의 모든 것을 알 순 없을 것이다, 아니 굳이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 작품을 통해 그로선 자신의 지난날을 변명하고 언론을 향해 일침을 날렸고, 보는 우리들은 '재미'를 취득했다. 예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인데, 우리들로선 아넬카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었다. 이런 종류의 다큐멘터리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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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천재 영웅 슈퍼스타에서 배신자 악마로의 기막힌 추락 <디에고>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20. 1.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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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영화 리뷰] <디에고>


다큐멘터리 영화 <디에고> 포스터. ⓒ워터홀컴퍼니(주)



전설 또는 레전드라 일컬어지는 스포츠 스타 중 여전히 현역에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현역이라 함은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나 감독 등으로 경기를 함께 하는 이라 말할 수 있을 텐데,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내기 힘들다. 대부분, 현역 실무직에서 물러나 한 자리씩 꿰차고 있는 것이다. 와중에, 여전히 전 세계를 누비며 감독으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전설이 있다. 그 이름도 찬란한 디에고 마라도나. 


그는 선수로서의 현역에선 일찍 물러나 30대 중반부터 감독 생활을 했는데, 빛을 보진 못한 케이스이다. 아예 빛을 볼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일까, 지난 2017년부터 하위권 팀들을 도맡고 있다. 그는 어딜 가든, 어느 팀을 맡든, 여전히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다. 2018년 당시 멕시코 2부 리그 도나도스 데 시날로아를 맡은 이야기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날로아의 마라도나>로 만들어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현역 시절부터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던 극단의 단어들 '신'과 '악마', '영웅'과 '배신자' 등이 지금도 여전히 그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여기 그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우리를 찾아왔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천재 3부작 중 마지막 <디에고>이다. 그의 지난 두 작품은 <세나: F1의 신화>와 <에이미>이다. 일찍 세상을 뜬 두 명의 천재 전설에 이어, 여전히 세상을 뒤흔드는 한 명의 천재 전설을 내보이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선보인 <축구의 신: 마라도나> 이후 10여 년만에 나온 마라도나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 역시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의 특징이 고스란히 내보여지는데, 오로지 옛 영상 자료와 얼굴 없는 현 목소리로만 구성했다. 자료로만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낸 것이다. 


'디에고'와 '마라도나'


다큐멘터리 <디에고>는 '디에고'로서의 마라도나와 '마라도나'로서의 디에고를 모두 보여주려 한다. 무슨 말인고 하면, 디에고는 빈민가 출신의 수줍음 많고 다정한 남자인 반면 마라도나는 최고의 축구 선수로 미디어와 대중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슈퍼스타이다. 그를 잘 알고 있는 이라면 디에고였을 테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게 그는 마라도나였다. 


마라도나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을 증명하듯 일찍이 10대 중반에 충격적인 프로 데뷔로 아르헨티나를 뒤흔들었다. 10대 후반에는 세계 청소년 월드컵에서 원맨쇼로 나라를 우승시키고 본인은 최우수선수로 뽑혔는데, 약관 20세부터는 이미 남미의 왕이었다. 당연한 수순인듯 그가 향한 곳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당연한듯 당시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다. 


기대에 호응하듯 엄청난 퍼포먼스를 펼쳤지만, 질병으로 고생하고 악질적인 태클로 선수생활 자체가 끝장날 위기에 처한다. 몇 개월의 피나는 재활 후 돌아온 그는, 여전한 퍼포먼스를 펼치는데 여전한 악질적 태클로도 고생한다. 결국 참지 못한 마라도나는, 이탈리아로 건너간다. 세리아 A는 당대 최고의 리그로 유벤투스, 인테르, AC 밀란 등 유럽을 호령하는 클럽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가 향한 곳은 리그 우승 한 번 없는 하위권의 그렇고 그랬던 팀 나폴리. 마라도나 신화가 시작되어 끝난 곳, <디에고>가 천착한 때와 장소이기도 하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그의 나폴리 시절


작품은 보여준다. 마라도나의 삶이 곧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이라고 말이다. 1984년 이적 후, 1986~87 시즌부터 믿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축구는 축구장 위의 11명과 감독을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 그리고 팬들이 함께 하는 거라고 하지만, 마라도나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모든 관심과 기대가 그에게 쏠렸고, 그는 '무대' 위에서 완벽히 소화해냈다. 나폴리는 1986~87 시즌 사상 최초의 1부 리그 우승을 일구고 다음 해와 다다음 해에는 준우승 그리고 1989~90 시즌 다시 우승을 차지한다. 1988~89 시즌에는 전무후무한 유럽대항전 UEFA컵을 따냈다. 


자타공인 마라도나의 나폴리 시절 나폴리의 퍼포먼스는 100% 마라도나에 의한 것이리라. 더 위대한 건, 나폴리 사람들이 마라도나를 말 그대로 '신'으로 추앙했던 건, 축구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의 그의 인기이다. 나폴리라는 축구클럽은 제처두고서라도, 나폴리라는 도시 자체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천대받고 또 꺼려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 입성해 축구 열기를 수직 상승시켰고 도시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도시를 하나로 묶어 사회, 경제, 문화를 풍성하게 했으니, 마라도나는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이 하나하나 복권을 맞은 것과 다름 아니었다. 


신에게 너무 가까이 가면 추락할 운명이라고 했던가, 마라도나에게도 추락의 순간이 찾아온다. 하지만 높이 올랐던 만큼 추락의 강도와 속도도 매우 강하고 빨랐다. <디에고>는 그 순간을 1990년 준결승전이라고 전한다. 아르헨티나는 지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절정기 마라도나의 당연한 원맨쇼에 힘입어 우승했었는데, 이번 이탈리아에서도 다시 한 번 높이 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준결승전 상대가 하필 이탈리아에 장소는 나폴리... 운명의 장난인 건지, 누군가의 소행인 건지. 


나폴리는 격정에 휩싸인다. 나폴리에서의 마라도나는 말 그대로 신, 하지만 이탈리아인에게 축구는 역시 말 그대로 신이기에 이탈리아 대표님의 승리와 높은 곳으로의 행보는 당연한 것이었다. 결과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승리. 이후 거짓말처럼 이탈리아 전역의 마라도나를 향한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그는 한순간 신에서 악마가 된다. 미디어, 사법당국, 세무당국 할 것 없이 그를 향해 집중 융단폭격을 날린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듯, 마라도나는 여성편력과 마약복용 등 수많은 스캔들이 함께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의 대상인 천재의 내면


마라도나는 천진난만하면서 좋지 않은 의미로 자유분방한 악동의 이미지가 강하다. 굳이 미디어에서 그를 끌어내리고자 만들어내지 않고라도 말이다. <디에고>가 포착해 잡아낸 면모가 바로 그 부분인데, '마라도나'는 슈퍼스타의 압박감을 잘 받아낼 수 있었지만 '디에고'는 그럴 만한 그릇이 아니었다고 말이다. 디에고로서는 모든 생각을 잊고 놀고(여자도) 마시며(마약도) 풀 수밖에 없었다. 


자업자득이라고 말할 수도, 그만큼 올라갔으면 내려와도 괜찮지 않느냐 말할 수도 있겠다. 당연히 맞는 말인데, 거리를 두고 보면 그의 삶만큼 극단의 굴곡을 지닌 삶도 없다.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물고 뜯고 즐기는 존재이자 무조건적인 존경과 추앙의 대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단순히 빈민가 출신이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성공 스토리가 아닌, 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악마이자 배신자로 추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라도나는 그만의 이야기를 계속 써내려가고 있다. 


천재의 삶은 흥미의 대상으로 소비되어 외면만 보기 마련이다. 내면을 들여다보면 천재가 갖는 흥미의 상(像)이 깨지기 때문이다. <디에고>는 과감히 천재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했고 철저히 파헤치는 데 성공했다. 그럼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성공했을까? 성공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당시 자료만으로 전했기로서니 객관적이었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괜찮은 스토리텔링까지 맛볼 수 있었으니 여한이 없었다 하겠다. 이 작품으로 비로소 마라도나 신화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었다. 마라도나가 만들고, 마라도나 아닌 이들이 파괴시킨 신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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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디에고, 마라도나, 미디어, 슈퍼스타, 신화, 악마, 영웅, 천재,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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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음악 영화' 이전에 '드라마의 총집합' <샤인>

오래된 리뷰 2019. 7.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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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샤인>


영화 <샤인> 포스터. ⓒ 라이크 콘텐츠



'음악 영화'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랑받고 있지만 그 양상은 시대에 따라 꾸준히 변화해왔다. 공통적으로 음악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려 했다. 그들은 항상 고군분투하는데, 80~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스토리가 부각되고 스토리 속 인간보다 환경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결국 주인공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 양상이 달라진다. 인간이 부각되는 듯하지만, 잘 짜여진 스토리와 변하지 않는 환경이 주를 이룬다. 


2007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유명세가 자자한 몇 편의 음악 영화들이 나온다. 하나같이 이후 음악 영화의 공식이 된 작품들이다. <원스> <어거스트 러쉬>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가 그 작품들이다. 이듬해에는 <맘마이아!>가 나와 대성공을 거두며 뮤지컬 음악 영화의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는 2018년과 2019년에는 <보헤미안 랩소디> <로켓맨> <예스터데이> 등 전설적인 현대 음악 거장들을 다룬 음악 영화들이 줄을 이어 또 다른 이정표를 세울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 수많은 음악 영화들 사이에서 고고히 빛나는 독보적 영화 한 편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북미에서는 1996년, 국내에서는 이듬해에 개봉한 <샤인>이다. <샤인>은 위에서 언급한 '인간이 주인공'인 시절에 만들어진 대표급 영화라 할 수 있다. 우린 이 영화를 통해 단편적으로나마 한 인간의 온전한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아주 잘 보여진 아빠와 아들 즉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이다. 


'천재' 데이비드의 불행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호주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 데이비드 헬프갓은 아버지 피터로부터 엄격한 피아노 교육을 받는다. 피터는 어린 시절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웠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접었고 이후에는 아버지를 가스실에서 잃었다. 피터는 개인적으로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투영해 오직 1등 만을 강요했으며 가족적으로 절대 헤어질 수 없는 단단한 가족을 이루고자 했다. 


그러던 중 작은 대회의 심사위원 로즌 선생이 데이비드의 재능을 알아보고 데려다 키우려 한다. 역시나 반대하지만 이내 뜻을 굽히는 피터. 시간이 흘러 데이비드는 큰 대회에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의 눈에 띄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피터의 극심한 반대로 무산된다. 기회는 또 찾아오는 법, 이번엔 영국왕립음악대학이다. 장학금을 받고 다닐 수 있는 제안, 데이비드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집을 뛰쳐나와 영국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데이비드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 팍스 교수 밑에서 고통스러울 정도의 노력 끝에 콩쿠르에 나가게 된다. 


데이비드가 선택한 연주곡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바람이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팍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불멸의 곡으로,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는 곡'이다. 데이비드는 이 곡을 완벽히 연주하는데, 연주하는 도중 아버지와의 고통스러운 트라우마를 목도하고, 마치고선 쓰러진다.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갇힌 신세가 된 데이비드, 어느 날 빗속을 달려 당도한 바 '모비스'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교육, 심리, 관계의 미묘함이 공존하는 음악 영화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샤인>은 당해년도 거의 모든 주요 북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쓴 데이비드 헬프갓 역의 '제프리 러시'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신분열증에 걸린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두루두루 완벽히 연기해냈다. 익히 알려진 그의 다른 역할,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헥터 바르보사 선장이나 <킹스 스피치>의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전반을 이루는 또 다른 실질적 주인공은 데이비드의 아버지 피터 헬프갓이다. 그를 통해 보여지는 빙퉁그러진 교육 방식과 가족애의 면면은, 그 자체로 생각할 거리를 던지며 한편 데이비드 헬프갓을 통해 보여지는 흔하다면 흔할 수 있는 천재 이야기를 상당히 희석시켜준다. 덕분에 <샤인>은 영화 안에서는 데이비드 헬프갓이 보다 돋보이게 되었고 영화 밖에서는 보다 입체적이게 되었다. 


물론 피터의 교육 방식이나 가족애의 면면이 특별하다고 보긴 힘들다.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시켜 대신 이루게 하려는 것도, 가장으로서 가족이 흩어지지 않게 단단히 붙잡고 있으려 한다는 것도, 부모로서 자식을 자신의 손 안에 넣고 절대적으로 컨트롤하려는 것도, 자식이 누구보다 잘 되었으면 하지만 너무 잘 되어 날개를 활짝 피는 건 볼 수 없다는 것도 모두 클리셰의 영역에 속한다. 


다만, 이 영화가 나온 지 어언 20년이 훌쩍 지났다는 걸 감안할 때 여타 영화들에게서 클리셰를 당하면 당했지 여타 영화들한테서 클리셰를 가져오진 않았을 거라 보기 때문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그 안엔 교육과 심리와 관계 등의 규정 내리기 어렵지만 다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미묘함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총집합


영화 <샤인>의 한 장면. ⓒ 라이크 콘텐츠



영화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 보면, 크게 세 장으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데이비드가 영국왕립음악대학에 진학하기까지가 1장이라면, 그곳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2장이라고 할 수 있겠고, 콩쿠르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완벽하게 연주하곤 쓰려져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고 난 후의 나날을 3장으로 보면 되겠다. 


1장이 아버지 피터와 아들 데이비드의 관계 설정이 주를 이룬다면, 2장은 '천재란 고통이 수반된다'는 명제를 정확히 보여준다고 하겠고, 3장은 '한 인간의 인생을 규정내리기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한다. <샤인>은 흔히 볼 수 있는 드라마들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의 총집합'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최고의 음악 영화' 중 하나라는 드높은 타이틀도 이 앞에선 큰 의미가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희한하게도 몇몇 이야기들이 겹쳐진다. 오히려 그러했기에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소재로 어쩔 수 없이 모짜르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버지 레오폴트가 일찍이 아들 모짜르트의 재능을 알아채고 지극한 보살핌과 투철한 교육으로 천재성을 성장시키지만, 모짜르트가 장성하고나선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온갖 역경을 뚫고 파란만장 인생을 살아온 한 인간의 진솔한 이야기. 한 인간의 삶을 줄기로 하여 참으로 많은 것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면서도 큰 맥락을 손상시키지 않는 솜씨를 발휘했다. 


다 차치하고서라도, 역시 '음악 영화'다운 솜씨로 장면과 장면 이면도 정확히 캐치하는 음악 선곡을 자랑한다. 장면과 그 이면을 캐치해서 드러내 도드라져 보이게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감상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그저 듣고만 있어도 좋은 그런 음악 말이다. <샤인>에서 음악과 영화는 따로 또 같이 완벽히 조우한다. 영화로서 감상해도 좋고, 음악으로서 감상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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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을까? <나의 작은 시인에게>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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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나의 작은 시인에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 포스터. ⓒ(주)엣나인필름



미국 뉴욕의 작은 섬에서 20년째 유치원 교사로 살아가는 리사(매기 질렌할 분), 매일매일 따분한 일상을 영위하는 그녀에게 유일한 낙은 종종 있는 야간 시 수업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해 좌절할 뿐이다. 자신의 평범한 예술적 감각을 이해와는 와중, 그래도 다정다감한 남편이 있어 위로가 되지만 다 큰 아들과 딸들은 그녀의 성에 차지 않는다. 또 그들은 부모를 경원시하는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유치원생 중 다섯 살 난 지미(파커 세바크 분)가 앞뒤로 오가며 시를 읊는 장면을 포착한다. 그 꼬마에게서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재적 면모를 발견한 리사는 곧바로 달려가 시를 받아적고는 보모에게 말해 집에서도 지미가 불현듯 읊는 시를 옮겨적을 것을 부탁한다. 리사는 지미의 시를 야간 시 수업에서 가서 발표하고 전에 없는 칭찬세례를 받는다. 


그녀는 지미의 시를 몇 편 더 자신의 야간 시 수업에서 발표하는 한편, 지미를 훈련시키기 시작한다. 자신은커녕 주위에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고 또 못하는 그의 시적 예술 재능을 최대한으로 끄집어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시적 예술 재능을 지녔지만 욕망과 열망이 꽃피어난 자신을 대신하려는 움직임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리사의 지미를 향한, 아니 리사의 시적 예술 재능을 향한 광기는 어떻게 흘러갈까. 


유치원 교사


원작의 제목은 <유치원 교사>, 이 제목이 훨씬 더 적절해 보인다.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는 이스라엘의 훌륭한 연출가이자 작가인 나다브 라피드의 2014년작 영화 <시인 요하브>를 원작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로스앤젤레스타임즈가 '훌륭한 원작의 영리한 재해석'이라고 평했는데, 딱 들어맞다고 생각한다. 1980년생 사라 코랑겔로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만큼 감각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제가 <The Kindergarten Teacher>, '유치원 교사'이다. 한국어판 제목인 '나의 작은 시인에게'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이 제목은 직설적이고, 주체가 '작은 시인'처럼 느껴지게 하고, 심지어 영화가 달달할 것 같다고 짐작하게 만든다. 즉, 한국어판 제목은 상당히 잘못 지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겠다. 


반면 원제 <The Kindergarten Teacher>는 그 무엇도 지레짐작하지 않게 한다. 대신 영화를 보며 계속 곱씹을 수 있다. 유치원 교사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여자인 리사, 그녀는 이제 유치원에서 전에 없던 예술적 열망에 눈을 뜨게 된다. 그건 교사, 엄마, 아내라는 명명에서 벗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에게 예술적 열망은 곧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가꾸고 나아가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40대 여성 리사의 삶


교사이자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40대 여성 리사의 삶은 무엇일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영화는 매우 '시시하게' 시작된다. 평화롭고 나른하고 무료한 일상을 단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곧 40대 여성 리사의 삶이다. 안정적이지만, 그래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우선 '리사의, 리사에 의한, 리사를 위한', 리사를 주체로 하여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녀의 고뇌와 열망과 삶을 총체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다섯 살 천재 시인 '지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리사에 의해 '모차르트급 재능의 천재 시인'이 된 지미는, 그러나 영화에서 결코 주인공도 주체도 될 수 없다. 혹자는 이를 두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천재 모차르트와 그를 시샘하는 범인 살리에리를 연상시킬 수도 있겠고, 그 영화에서 사실 주인공이자 주체는 모차르트가 아니라 살리에리라며 운을 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리사와 지미는 살리에리와 모차르트가 아닌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모차르트에 가깝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찍이 알아본 레오폴트가 철저히 교육시키고 또 일명 '그랜드투어'로 유럽 전역을 다니며 홍보도 했기에 모차르트가 모차르트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안타깝게도 리사는 지미의 보호자가 아니고, 다행히도 레오폴트는 모차르트의 보호자였다. 


이런 관계 설정이 영화의 한 축이라면, 그로 인해 변해가는 40대 여성 리사의 삶이 또 한 축이겠다. 유치원에서도 집에서도 시 수업 교실에서도 그녀는 전에 없는 열망 어린 눈빛과 몸짓을 보이며 한껏 활기찬 삶의 여운을 내보이는 듯하다. 물론 그에 따른 희생량이 있어야 하므로, '누군가가 전해주는 시를 그저 읊을 뿐인' 천재 시인 아이 지미가 그 희생양일 것이다. 


예술적 열망의 표출


예술적 열망이 표출되다 못해 폭발한다. 그 끝은 어떤 모습일까. 영화 <나의 작은 시인에게>의 한 장면. ⓒ(주)엣나인필름



크게 영화를 구성하는 두 축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데 다층적인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리사가 단순히 자신의 예술적 열망을 분출할 매개체로 지미를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편 지미의 천재적 시적 예술 재능을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걸 알기에 그렇게 그냥 묻혀버리기엔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극중에서 지미가 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즐기고 하고 싶어 하는지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대략적으로나마 재단하기도 힘들 것 같다. 결국 감독이 전하고 보여주고자 하는 건 리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리사의 시적 예술 열망은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반면 교사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무료한 삶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열망은 추상적으로 드러난다. 


리사의 열망과 욕망이 좀 더 다층적이고 다채롭고 구체적으로 드러났다면 영화가 좀 더 풍성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게 다름 아닌 '시'라는 점에서 나도 모르게 이해가 가기도 한다. 시를 잘 모르지만, 시에 '추상'이 상당히 용인된다는 건 인지하고 있다. 이 영화를 한 편의 시로 생각하면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극 중에서 몇 번이나 읊어지는 지미의 첫 시를 인용한다. 무료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고 특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애나는 아름답다

나에게는 충분히 아름답다

태양이 그녀의 노란색 집을 두드린다

마치 신이 보낸 신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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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성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을 찾아보자 <모차르트>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9. 3. 2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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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모차르트>


<모차르트> 표지. ⓒ아르테


자그마치 20여 년 전 중학교 2학년 음악 시간, 선생님께서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여주셨다. 참고용으로 부분만 발췌한 게 아닌 영화 전체를 보여주신 것. 제대로 된 '영화'를 처음 본 게 아닌가 싶은 기억이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도 최고의 영화로 남아 있다. 


이 영화는 장장 180분의 러닝타임으로 1984년 아카데미에서 8개 부문에서 수상한 걸작으로, 지난해 4월에 작고한 밀로스 포만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그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래리 플린트> 등의 걸작을 남긴 명감독이기도 하다. 


영화는 살리에르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설을 기반으로 쓰인 피터 셰퍼의 동명의 희곡을 바탕으로 하는데,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르가 주인공 격이었다. 워낙 강렬한 영화 덕분인지 때문인지 모차르트의 음악 아닌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천재'라는 이미지와 함께 촐랑대며 흘리는 헤픈 웃음과 비참하게 맞이한 최후 정도이다. 


<아마데우스>는 영화를 보게 되는 계기도 마련해주었지만 클래식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도 마련해주었다. 물론, 클래식을 본격적으로 듣거나 좋아하지 않아도 모차르트의 음악들은 누구나 반드시 들어봤을 테다. 하지만 정작 모차르트, 그의 삶을 들여다볼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만들어진 것 아닌 그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명한 콘텐츠 말이다. 


그가 죽은 직후부터 그에 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다.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들이 그를 연구하며, 새로운 시각과 정보를 통해 그를 끊임없이 재조명하고 있다. 한 번쯤 그의 삶을 훑어는 봐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모차르트>(아르테)를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테마로 기획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최신작 중 하나로, 읽기 쉽고 알기 쉽고 기억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다. 


천재성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기자로 일하며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서 친근하게 소개하는 일도 겸하는 저자는, 책의 방향을 '천재성은 타고나는지, 길러지는지'로 정한 듯하다. 모차르트 하면, 당연시하고 지나치기 쉬운 그 천재적 재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일까? 아버지 레오폴트 덕분에 재능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일까?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면, 당대 봉건적 질서에 맞서고 저항했기 때문에 걸작을 남길 수 있었던 걸까? 이 질문들과 더불어 저자는 '모차르트 여행'의 목표를 모차르트의 눈부신 성공과 쓰라린 좌절, 영광과 고통으로 가득한 삶으로 잡았다. 온실 속 화초의 완벽한 음악과 삶이라는, 모차르트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멀리 두고.


책은 '최초의 범유럽인'이라는 후대의 평가처럼 방대한 활동 범위를 자랑했던 모차르트의 '길 위의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나 아버지 레오폴트가 기획한 '그랜드 투어'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산 교육의 현장이자 연주 실력을 뽐낼 홍보 수단이기도 했다. 35년의 짧은 인생 중에 10여 년을 여행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 여정은 독일 뮌헨, 오스트리아 빈,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이탈리아 로마와 밀라노까지 망라한다. 


그랜드 투어의 총기획자이자 모차르트라는 작품을 만들어낸 장본인인 아버지 레오폴트는, '모차르트 신화'를 만들어낸 사람이자 '모차르트 신화'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일찌감치 발견해 계발하고 알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모차르트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를 표방하는 낭만주의적 모차르트 신화에 있어, 레오폴트에 의해 '만들어진 천재' 모차르트는 걸림돌이다. 


이 책은 모차르트를 '만들어진 천재'라고 보는 쪽이며, 모차르트의 원천 기술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이 아니라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흡수력과 학습력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모차르트 만큼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이 레오폴트이다. 저자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를 보며 '우리 아이를 모차르트처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만들어진 천재 모차르틑 보며 '모차르트 같은 아이가 있다면 과연 레오폴트 같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말이다.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


가정해보자. 모차르트에게 레오폴트 같은 부모가 없었다면? 모차르트가 일찌감치 여러 나라와 도시들을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면? 이 두 가정으로도 충분히 역사에 길이 남을 천재이자 거장 모차르트를 한때 신동이었던 지역 음악가 모차르트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레오폴트가 없었다면 모차르트는 천재적 재능을 계속해서 육성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랜드 투어가 없었다면 모차르트는 천재적 재능을 만방에 떨칠 수 없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모차르트의 천재적 재능보다 레오폴트와 그랜드 투어의 중요성과 영향력을 설파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간과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위에서 주지했던 세 번째 질문이다. 모차르트가 걸작을 써낼 수 있었던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스무 살의 그가 고향 잘즈부르크의 봉건적 질서에 염증을 느끼고 빈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시행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라는 작품의 기획자이자 설계자이자 실행자였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바람을 뿌리치고 그의 품을 떠났기에 예술 세계를 완성할 수 있었다는 사실 또한 책에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차르트의 모습이다.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하늘이 내려준 기적 vs 만들어진 천재, 성실한 일벌레 vs 경제관념 없는 악동, 봉건적 질서에 맞선 혁명가. 책은 이 모든 게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이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이중적인 모습을 갖게 마련인데, 모차르트의 경우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법 없이 두 가지 모습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공존한다는 게 특이하는 것. 후대에 덧씌운 이미지들이 층층이 쌓여가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가늠하기 힘들어진 면도 있다 하겠다. 


그리고 모차르트를 둘러싼 이들의 '진짜' 모습 또한 무엇이 진실일까. 악녀 부인 콘스탄체, 모차르트를 시기질투해 독살한 살리에리. 책은 둘 다 신빙성이 적다고 판단한다. 과연 콘스탄체가 음악에 대해 무지하고 영리하지 않으며 남편에게 충실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 초연 당시의 성악가로 추정되고, 그녀 덕분에 모차르트는 바로크 음악의 매력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부당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모차르트 사후 재혼했다는 사실 때문인데, 그들 부부는 모차르트 전기를 출간하기도 했던 바 그녀가 모차르트에게 충실하지 않았다는 것도 어불성설에 가깝다. 


한편,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빈에 정착한 후 살리에리와 경쟁 관계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험담을 퍼부은 쪽은 살리에리가 아닌 모차르트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는 한편 그들은 경쟁뿐만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였기도 하다. 또한 최근에는 그들을 빈 궁정 음악계의 신구 파트너 관계로 보는 학자들도 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는데, 2015년에 발견된 악보로 동료 성악가의 복귀를 축하하는 무대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함께 작곡했다고 한다. 진상 규명과 함께 명예 회복이 필요한 이는 모차르트가 아닌 살리에리가 아닌가.


들을 것도 많고(626곡에 이르는 작품), 연구할 것도 많고(모차르트를 둘러싼 수많은 진실과 거짓), 생각해볼 것도 많은(축조와 해체, 재건축의 과정을 밟아왔고 앞으로 밟을 모차르트)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 이 <모차르트>라는 한 권의 가벼운 책으로 완벽히는커녕 조금도 들여다본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를 포함 많은 이들이 손쉽게 최소한 무지에서는 벗어나게 도와주는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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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투어, 레오폴트, 모차르트, 살리에리, 천재, 콘스탄체,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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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감독' 코엔 형제의 최정점 <파고>

오래된 리뷰 2018. 4.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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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엔 형제의 <파고>


영화 <파고> 포스터. ⓒ서우영화사



전 세계 시네필이 좋아해 마지 않는 형제 감독들이 있다. 50년대에 데뷔해 70~80년대 유럽영화의 시대정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받는 거장 타비아니 형제, 80년대에 데뷔해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내놓으며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선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그리고 역시 80년대에 데뷔해 오랜 시간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코엔 형제. 


코엔 형제는 1984년 <분노의 저격자>로 제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그들과 함께 또는 그 이후로 짐 자무쉬,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쿠란티노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바 코엔 형제는 선댄스로 대표되는 미국 현대 인디 영화의 총아이자 시작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화려한 데뷔를 비롯해 칸 영화제로부터 다르덴 형제보다 더한 사랑을 받으며 80~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반면, 2000년대는 상대적으로 주춤한 듯했고, 2010년대 들어선 거의 주류에 안착한 느낌이다. <파고>는 그들의 필모에 있어 여러 모로 최정점에 위치한 영화라 하겠다. 관점을 갖고 들여다보려 한다.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 주의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1987년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노스다코타 주의 파고,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윌리암 H. 머시 분)는 돈에 쪼들려 자신의 아내를 유괴해 돈 많은 장인어른에게서 8만 달러를 뜯어낼 계획을 세운다. 그는 아는 사람을 통해 칼(스티브 부세미 분)과 게어(피터 스토메어 분)를 소개받고는 차까지 빌려준다. 


제리는 아내를 납치해 장인어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돈을 한 번에 벌고자 하는데 쉽지 않다. 칼과 게어는 재빨리 제리의 아내를 납치해 그들의 아지트로 향한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관의 검문에 걸렸고 납치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운 나머지 게어가 경찰관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차를 타고 지나가던 목격자 두 명도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린다. 


한편, 사건이 일어난 곳은 노스다코타 주와 인접한 미네소타 주의 작은 시골 도시 브레이너드, 그 일대를 담당하는 경찰서의 서장 마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만삭의 몸을 이끌면서도 철두철미하고 영리하게 사건에 접근한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원흉 제리의 사무실까지 당도하는데... 


'비교'와 '대조'로 들여다보는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영화 <파고>는 코엔 형제 스타일 그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우린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그의 스타일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시네필만을 위한 감독이 아니게 되었고, 그들의 영화도 더 이상 시네필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게 되었다. 특히 <파고>는 마음껏 물고 뜯으며 즐기고 재멋대로 해석을 하며 파고 파고 또 파도 계속해서 무언가가 나오는 정도의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는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수식어와 해석이 붙고 나온 지 20년이 넘은 만큼 그중엔 정립된 것들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비교' '대조'라는 개념만을 중점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영화사에 영원히 길이 남을 작품에 많은 것들을 들이대는 게 무슨 소용일까. 


얼핏 단조로운 <파고>를 이루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부 이중성을 띠고 있다 시피 한다. 지명 'fargo'를 뜻함과 동시에 'far go'를 뜻하기도 하는 제목, 모든 걸 파묻어 버릴 수도 있지만 모든 걸 드러내기도 하는 하얀 눈, 모든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게 하는 돈, 다른 이를 죽이기도 하지만 나를 죽이게도 하는 총. 그리고 그 모든 이중성을 실행하고 이중성에 당하는, 이중성의 화신 인간까지. 


우리는 이 한없이 '재미있는', 그러나 무차별로 잔인해 너무나도 영화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터무니없이 싱겁고 한량스러운 대화들의 남발로 너무나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영화를 굉장히 '진지하게'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그걸 의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들은 계산적이기보다 본능적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어 영화를 만들었을 테다. 


'본능적으로' 파는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이번엔 최대한 '본능적으로' <파고>를 들여다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그래도 여전히 '너무 많이 가버렸다'는 제목과 모든 걸 드러내어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드는 눈과 결국 모든 걸 잃게 만드는 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를 죽이게 만드는 총이 눈에 보이는 걸 어쩌나. 그것들은 전부 이 영화를 '계산적으로' 볼 때 나온 것들 아닌가. 


정녕 코엔 형제는 천재 중에 천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놀라움을 지나쳐본다. 이 영화의 물흐르듯 흐르는 이야기에 종종 제동을 거는 건, 다름 아닌 싱거운 대화들이다. 문제는, 이 대화들이야말로 코엔 형제가 '계산적으로' 넣은 게 분명해 보이는 장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대화들이 굉장히 비(非) 영화적으로도 느껴지는데 말이다. 


사실 이 범죄 스릴러의 기본은 의외로 액션이 아니다. 놀랍게도 대화와 장면(풍경)이 그 기본이다. 대화들은 <파고>라는 영화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파고> 속 인물들의 일상을 구성하기도 한다. 장면들은 역시 영화 속 중요한 장치적 맥락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로만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파고>를 인간, 사회, 범죄, 일상, 비극 등 수많은 객체와 주체들로 바라볼 수 있다. 그 모든 걸 남김없이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번엔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그나마 '코엔 형제'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영화를 해석하는 데에만 공력을 쏟아도 모자라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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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 범죄스릴러, 비교, 시네필, 천재, 코엔 형제, 파고, 해석
  • BlogIcon TheK의 추천영화
    2018.04.21 05:22 신고

    추천 누르고 가요^0^^

    • BlogIcon singenv
      2018.04.21 08:49 신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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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알못을 위한 완벽한 과학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8. 1.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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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야밤의 공대생 만화>


<야밤의 공대생 만화> 표지 ⓒ뿌리와이파리



자타공인 2017년 최고의 책으로 손꼽는 책, <야밤의 공대생 만화>(뿌리와이파리). 해가 넘은 지금에서야 접했다. '과알못', 과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아도 재미있고 심지어 유익하기까지 한 책이 분명하다. 저자는 태블릿 펜을 산 겸으로 '만화나 그려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는데, 책에서 소개한 몇몇 인물들의 위대한 발견의 이면과 맞닿아 있어 흥미롭다. 


나는 문과생으로, 명명백백한 과알못이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화학, 물리, 생물, 지구과학에서 기억나는 건 '칼카나마알아철니주납수구수인백금' 주기율표 정도이다. 문제는 주기율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른다는 것이고, '칼카나마~'가 어떤 것의 줄임말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알못의 고백은 이쯤에서 접는다. 


대신, 역사와 위인 이야기는 좋아한다. 고로 과학사도 좋아라 한다. 정작 중요한 그들의 업적이 무엇인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좋아한다는 말이다. 아울러 만화 또한 좋아한다. 소년만화도 좋아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교양만화에 눈길이 많이 갔고 자연스레 많이 접했다. 


이 책은 그 지점에서 완벽히 부합한다. 과학을 알지 못해도 심지어 싫어해도, 만화를 좋아한다면 역사를 좋아한다면(?) 이 책은 맞다. 결정적으로, 이 책에서는 현재진행형의 다양한 개그코드와 저자의 과학을 향한 애정(또는 애증일까)을 맛보고 엿볼 수 있다. 엄선된 댓글을 읽는 건 큰 즐거움이다. 


과학기인 또는 과학천재 열전


책은 과학인물사를 표방하지만, 실상은 과학기인열전 또는 과학천재열전에 가깝다. 고로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례들이 가득하다. 그중 단연코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아이작 뉴턴이다. 그는 최단강하곡선을 하룻저녁에 풀어버렸고 미적분을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새로운 화폐를 만들기도 했다. 너무나도 유명한 뉴턴의 생소한 일화들이 재밌다. 


한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의 이야기는 자못 심금을 울린다. 그의 업적은 너무나도 어마어마한데, 그 업적들 중 상당수가 그가 눈이 먼 이후에 올린 것들이라고 한다. 라플라스의 "오일러를 읽으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고 그의 위대함이 묻어난다. 


여기, 역사상 최고의 천재 존 폰 노이만이 있다. 그는 7살 때 8자릿수끼리 나누기가 가능했고 9살 때 미적분을 마스터했으며, 15년 전에 읽은 책을 모두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다. 20대가 되자 한 달에 한 편꼴로 논문을 썼다 한다. 그리고,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컴퓨터와의 계산 배틀에서 싱겁게 이겨버렸다는 실화 전설이 내려온다. 


과학계의 천재 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알버트 아인슈타인 정도가 떠오를 텐데 이 책 덕분에 수많은 숨겨진 천재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혹은 슬픔. 물론 역사에 길이 남을 연구로 칭송받지만 생전에 주목을 받지 못한 천재들도 존재하거니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으니 마냥 절망(?)에 빠지는 결과만 낳는 건 아니다. 


<야공만>이 시사하는 것들


<야밤의 공대생 만화>는 참으로 많은 걸 시사하고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이런 식의 콘텐츠여야만, 즉 현재진행형의 수많은 인터넷 드립과 패러디로 중무장한 콘텐츠여야만 관심을 갖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이런 식으로도 충분히 훌륭하게 어렵고 지루한 지식들을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큰 축을 이룬다. 


책을 접하기 전에는 앞엣것의 마음이 주를 이루었다면, 책의 첫 페이지를 보는 순간 뒤엣것의 마음으로 급격히 옮겨 갔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는 것, 더 읽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서 그런 저런 마음 같은 건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드는 생각은 어서 빨리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 뿐.


한편, 저자는 마치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자신의 작업을 겸손하게 말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부터 만화 그리는 걸 좋아하고 만화가가 꿈이기까지 했다는 말은 결코 그 '끄적거림'이 그저 끄적거림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을 다 본 즉시 '나도 뭔가 해볼까?'하고 생각해봤는데, 그 '뭔가'가 나에겐 없다는 슬픈 자책만 돌아올 뿐이었다. 저자가 챕터를 끝낼 때마다 올리는 교훈을 나도 써 볼까?


아니, 쓰지 않을 테다. 생각나는 게 하나같이 우울하고 슬픈 것들이다... 황새 따라 하려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가 되긴 싫다는 말이다. 이것도 일종의 교훈일까. 여하튼 <야밤의 공대생 만화>를 '과알못', 아니 '만알못', 아니 '책알못' 한테도 과감히 맹목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이 책 읽으면 좋아질 것이다. 과학도, 만화도, 책도.


야밤의 공대생 만화 - 10점
맹기완 지음/뿌리와이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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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길을 가든 우리는 그녀를 응원한다 <어메이징 메리>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1.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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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메이징 메리>


오랜만에 힘뺀 마크 웹 감독이 역시 오랜만에 힘뺀 크리스 에반스를 주축으로 좋은 배우들과 함께 <어메이징 메리>로 돌아왔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몸에서 힘을 빼면 더 좋은 연기를 선 보일 수 있을 거라는, 알듯 말듯한 조언이 있다. 비단 연기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통용되는 조언이겠다. 이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말일 텐데, 진짜로 힘을 잔뜩 들인 것들만 맡다가 가끔 전혀 힘이 실리지 않은 가벼운 것을 맡기도 한다. 분위기 전환이랄까, 쉬어가는 시간이랄까, 아니면 그것이 진짜 하고자 하는 바일까. 


마크 웹 감독은 데뷔작 <500일의 썸머>로 또 하나의 현대판 클래식 주인이 되었다. 매우 평범한 이야기이지만 특유의 감각으로 특별함을 끄집어 냈다. 그런 그를 할리우드가 가만히 놔두지 않았던 바, 그만의 감각만 쏙 빼어내 블록버스터를 만들게 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1, 2>다. 극히 나쁘진 않았지만, 전혀 좋지 않았다. 


<어메이징 메리>라는 작품으로 데뷔적의 감성과 감각을 다시 선보이려 한다. 조만간 <리빙보이 인 뉴욕>이라는 로맨스 영화로 또 한 번 더 찾아온다고 하니, 그 전초전이라고 해야 할까. 수없이 많은 히어로 영화들로 근육질을 뽐내며 미국을 지켜내느라 진땀 흘리고 있는 크리스 에반스도 함께다. 둘이 나란히 힘 뺀 와중에, 연기파 배우 두 명과 천재 아역배우 한 명이 자리를 지킨다. 


치졸한 법정 공방, 그래도 언제나 시선은 메리로


가족끼리 벌이는 법정 공방, 참으로 치졸하지 않은가. 그래도 그들의 시선은 오직 메리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미국 플로리다의 한적하고 조용한 해변 마을에서 배를 고치며 살아가는 프랭크(크리스 에반스 분), 그에겐 여자 아이 한 명이 있다. 다름 아닌 여조카 메리(멕케나 그레이스 분)인데, 그녀는 불과 7살 짜리 수학 천재다. 하지만 프랭크는 그녀를 영재 학교가 아닌 평범한 학교에 보낸다. 메리는 적응하기 힘들어 한다. 


소소할 수도 심각할 수도 있는 사건을 일으킨 메리는 쫓겨날 위기 또는 영재 학교로 갈 기회를 갖지만, 프랭크는 단호하게 선을 그어 이 평범한 학교에 메리가 계속 다닐 수 있게 한다. 얼마 후 메리의 외할머니이자 프랭크의 어머니 에블린(린제이 던컨 분)이 찾아온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수학자로, 메리 역시 수학자로 크길 바란다. 


에블린과 프랭크는 메리의 앞날을 두고 대립하고 급기야 법정 공방까지 이어진다. 그 대립 사이에는 에블린의 작은딸이자 프랭크의 여동생인 천재 수학자 다이앤의 자살이 있다. 에블린은 다이앤이 못다 이룬 수학자의 꿈을 메리가 이어 받게 하려는 것이고, 프랭크는 다이앤의 불행한 삶과 죽음이 메리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수학 천재 메리를 둘러싼 할머니 에블린과 삼촌 프랭크의 치졸해 보이는 법정 공방이 기본 골자인 이 영화는, 더 많은 시간을 메리를 향한 두 혈육의 보다 합리적이고 감정적이며 진심어린 걱정과 고뇌에 투자한다. 물론 거기에는 각자 자신의 상황과 생각이 투영되어 있지만 언제나 시선은 메리로 향한다. 마크 웹의 감각이 이를 보좌한다. 


마크 웹이 선사하는 소중하고 예쁜 순간들


마크 웹이 <500일의 썸머>에서 보여주었던 순간과 일상의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선보인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특별할 것 없는 어린 천재의 이야기와 가족들 간의 치졸한 공방, 힘든 과거에 기인한 현재의 방향성 다툼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영화를 평범하게 만드는 이런 소재들이야말로 마크 웹이 감각적으로 잘 다룰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데, 쉽게 잊히지 않는 순간들을 잘 포착할 줄 안다. 


메리는 그 나이대에 걸맞게 놀며 플로리다의 자연과 벗하는 허허벌판과 해변도 좋아하지만, 수학 천재로서의 기지를 한껏 뽐내며 보스턴의 최첨단과 최신식이 주는 멋스러움과 세련미도 좋아한다. 그처럼 프랭크 또는 에블린과 함께 하는 시간은 메리에게도 소중하고 예쁘며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도 소중하고 예쁜 순간을 선사한다. 


그러며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들은 다름 아닌 프랭크와 에블린의 생활과 생각의 연유다. 프랭크는 메리만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플로리다 구석에서 지내고 있다. 그에게도 그만을 위한 생활이 필요한 법, 마크 웹은 그 순간들에 <500일의 썸머> 감성과 감각을 살짝살짝 녹여 놓는다. 전혀 위화감을 느낄 수 없는 일상. 


한편, 에블린은 자신의 이야기가 없다. 오직 딸 다이앤의 과거와 손녀 메리의 현재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부을 뿐이다. 역시 천재였지만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다시피 한 아들 프랭크에겐 그래서 아무런 정을 느끼지 못한다. 사보다 공에 자신의 인생을 쏟은 에블린의 대를 이은 공적 투신 열망은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하다. 


중도적 방향과 방법, 그리고 기본


메리의 인생은 누구도 재단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어리디 어린 본인도 선택할 수 없다. 그럴 땐 중도와 기본이 필요하겠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너무 어린 메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어른들의 메리를 향한 진심어린 일편단심 또는 그것을 빙자한 자신의 삶을 향한 인정에의 열망에 따라 휘둘리고, 결국 법원의 판결에 따를 뿐이다. 그래서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찾아야 할 방법은 '중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당사자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그녀와 같은 천재의 사회적 공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양쪽 모두를 열망하고, 앞으로도 열망할 것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외로운 천재의 내재적 비극, 또는 외톨이 천재의 외부적 비극 모두의 안타까움을. 영화는 천재의 삶을 공적, 사적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것의 앞서 선행되어야 할 삶의 기본이다. 세상에 나온 건 자신의 뜻이 아닐지언정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는 기본, 가족이라는 끈 하나로 자신의 모든 걸 관철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뭐든지 일방적으로 몰아가서 후회가 남을 수 있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기본 등 말이다. 


여러가지 삶의 길이 있다. 한 가지 길로만 평생 갈 수도 있고, 수많은 길들을 오갈 수도 있으며, 길 아닌 곳을 헤치며 갈 수도 있다. 아니, 멈춰서서 관망할 뿐 길을 가지 않을 자유도 있다. 우리 어메이징한 메리에겐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까, 그녀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뭐든 그녀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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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천재의 영화 <시인의 사랑>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10. 18.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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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인의 사랑>


능력과 의욕 상실의 찌질한 시인이 무엇을 하겠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랑? ⓒCGV아트하우스



제주도 토박이 시인(양익준 분)은 등단만 했을 뿐 동인 합평회에서 심심찮게 까이는 수준의 재능을 지녔다. 겨우 방과후교실 선생님으로 활동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시인으로서의 능력도 없고 가장으로서의 능력도 없다. 대신 가정을 이끌다시피하는 아내(전혜진 분)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해서 늦은 나이가 걱정되어 병원에 갔는데, 아내의 노산은 걱정할 필요가 없고 시인의 정자감소증이 문제가 된다. 급기야 남자로서의 능력도 없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능력과 의욕 상실의 시인은 어느 날 아내가 건네준 도넛을 먹고 눈이 번쩍 뜨인다. 환상적인 도넛 맛에 감동을 금치 못한 것, 매일 같이 동네에 새로 생긴 도넛 가게로 달려가 도넛을 무지막지하게 먹어댄다. 그 힘 덕분일까? 동인 합평회에서 소소한 합격점을 성취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도넛 가게 화장실에서 도넛 가게 알바생 소년(정가람 분)이 어느 소녀와 섹스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시인은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정녕 오랜만에 수음도 하고 정자수도 증가했단다. 뭔가를 느낀다. 사랑일까.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심상치 않다. 그 대상이 소녀인지 소년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소년인 것 같다. 어느 날 술취해 밖에서 잠을 청하는 소년에게 다가가고 함께 소년의 집으로 향한다. 하루종일 일만 하는 엄마 대신 다 죽어가는 아빠를 보살피는 소년, 점점 그에게 뭔지 모를 감정을 느껴가는 시인. 


시인의 사랑은 어떨까


시인의 사랑은 특별할까? 아니, 시인이라는 존재가 특별한가? ⓒCGV아트하우스



누구나 가슴 속에 시 한 편은 품고 살고, 누구나 시인을 동경해 마지 않으며, 누구에게나 금지된 사랑에의 욕망을 품고 살 테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평범 이하의 시인의 삶을 통해 이런저런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을 조심스럽게 드러내 오히려 채워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시인의 사랑은 어떨까. 아니, 이전에 시인이란 누구이며 무엇일까. 시인이 아니라서 재단할 수 없지만, 누구나 시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시인이라고 다를 바 없으며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시인은 특별할 것이다. 즉, 시인도 다양한 사람들 중 하나이겠다. 시인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시인에겐 관찰력, 상상력, 집중력 등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인의 사랑 양태는 셋 다 충족해야 한다. 대상에 대한 관찰력, 대상으로부터 날갯짓하는 상상력, 대상을 향한 집중력까지. 그렇다면 소년에의 시인의 사랑은 특별할 게 없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화가 훌륭히 소화해내는 것들


영화는 복잡한 내러티브와 아슬아슬한 경계의 감정선에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지키며 잘 소화해낸다. ⓒCGV아트하우스



자연스러운 '시인의 사랑'을 시인만의 특별함에 가둬 생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은 높다. 시인에겐 찌질하게 그지없는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해주고 시인이 도저히 이끌 수 없는 가정을 대신 이끄는 아내가 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임신한 아내 아닌가. 그녀를 뒤로 하고 소년에게 마음이 가는 건 시인만의 사랑으로서도 용납하기 힘들다. 


시작된 지 오래지 않아 영화는 벌써부터 복잡한 내러티브를 선사한다. 시인의 사랑과 시인만의 사랑의 층위 위에, 그 자체로 이상할 게 없는 정상적인 사랑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사랑의 층위가 겹친다. 동성애 코드는 덤에 불과할 정도다. 영화는 시인에서 시인과 아내, 시인과 소년으로 집중하는 시선을 옮겨가며 복잡한 내러티브를 나름 훌륭히 소화한다. 


무엇보다 훌륭히 소화하고 또한 훌륭한 점은,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도 선을 넘지 않고 나아가는 감정선에 있다. 시인과 소년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인지, 연민하고 이용해먹는 것인지, 그저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도망가고자 또는 조금은 타파해보고자 잠시잠깐 다녀오는 수준의 대상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영화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천재가 만든 영화


한끗 차이로 졸작이 아닌 수작으로 '판명'난 <시인의 사랑>, 여러 면에서 가히 천재의 영화라 할 수 있다. ⓒCGV아트하우스



시인의 여성성이라기 보다 여성적인 시인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시인, 다분히 남성적인 역할을 하는 아내와 다르게 성격이든 신체든 섬세하고 소극적이다. 하지만 그는 남자이기에 한없이 찌질하고 능력없는 이로 보인다. 그런 그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소년에게는 뭐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다. 남성의 발로일까, 여성만이 할 수 있는 행보일까. 여기에서도 복잡한 내러티브와 아슬아슬한 경계가 엿보인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또한 수작과 졸작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여러 코드와 층위를 나열할 뿐 정리하고 해결하지 못해 쓸데없는 상상력만 소진하게 할 뿐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느낄 수도 있는 반면, 산발한 코드와 층위 사이를 때론 발 빠르게 때론 정면으로 우직하게 지나가며 그것들을 이용해 상상력에 살을 붙여 평범함 위에 특별함으로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졸작보단 수작에 가까운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최소한 동성애 코드 위에 우리가 생각하는 '시인'의 사랑이 아닌 '여성적인' 시인의 층위를 입힌 건 아주 참신했다. 거기에 배우들의 열연으로 빚어낸 코믹과 진지함의 병렬과 긴장감 어린 경계에서의 나아감은 최고의 감각을 선물한다. 얼핏 허술한듯 보이는 전체적 이미지 이면엔 그 어느 영화보다 촘촘하고 꼼꼼하게 직조된 경계들의 조합이 보인다. 천재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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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내러티브, 사랑, 섬세, 수작, 시인, 시인의 사랑, 여성성,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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