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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천재 감독' 코엔 형제의 최정점 <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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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코엔 형제의 <파고>


영화 <파고> 포스터. ⓒ서우영화사



전 세계 시네필이 좋아해 마지 않는 형제 감독들이 있다. 50년대에 데뷔해 70~80년대 유럽영화의 시대정신을 이끌었다는 평가받는 거장 타비아니 형제, 80년대에 데뷔해 현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내놓으며 칸이 가장 사랑하는 감독 중 하나로 우뚝 선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그리고 역시 80년대에 데뷔해 오랜 시간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코엔 형제. 


코엔 형제는 1984년 <분노의 저격자>로 제1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그들과 함께 또는 그 이후로 짐 자무쉬, 스티븐 소더버그, 쿠엔틴 쿠란티노 등 내로라 하는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이름을 알린 바 코엔 형제는 선댄스로 대표되는 미국 현대 인디 영화의 총아이자 시작점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화려한 데뷔를 비롯해 칸 영화제로부터 다르덴 형제보다 더한 사랑을 받으며 80~90년대 전성기를 누린 반면, 2000년대는 상대적으로 주춤한 듯했고, 2010년대 들어선 거의 주류에 안착한 느낌이다. <파고>는 그들의 필모에 있어 여러 모로 최정점에 위치한 영화라 하겠다. 관점을 갖고 들여다보려 한다. 


미국 중북부 노스다코타 주의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1987년 미국 중북부에 위치한 노스다코타 주의 파고, 자동차 세일즈맨 제리(윌리암 H. 머시 분)는 돈에 쪼들려 자신의 아내를 유괴해 돈 많은 장인어른에게서 8만 달러를 뜯어낼 계획을 세운다. 그는 아는 사람을 통해 칼(스티브 부세미 분)과 게어(피터 스토메어 분)를 소개받고는 차까지 빌려준다. 


제리는 아내를 납치해 장인어른에게서 돈을 뜯어내는 대신 다른 방법으로 돈을 한 번에 벌고자 하는데 쉽지 않다. 칼과 게어는 재빨리 제리의 아내를 납치해 그들의 아지트로 향한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한다. 경찰관의 검문에 걸렸고 납치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운 나머지 게어가 경찰관을 죽여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차를 타고 지나가던 목격자 두 명도 끝까지 쫓아가 죽여버린다. 


한편, 사건이 일어난 곳은 노스다코타 주와 인접한 미네소타 주의 작은 시골 도시 브레이너드, 그 일대를 담당하는 경찰서의 서장 마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는 만삭의 몸을 이끌면서도 철두철미하고 영리하게 사건에 접근한다. 결국 이 모든 사건의 원흉 제리의 사무실까지 당도하는데... 


'비교'와 '대조'로 들여다보는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영화 <파고>는 코엔 형제 스타일 그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우린 이 영화에 이르러 비로소 그의 스타일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시네필만을 위한 감독이 아니게 되었고, 그들의 영화도 더 이상 시네필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게 되었다. 특히 <파고>는 마음껏 물고 뜯으며 즐기고 재멋대로 해석을 하며 파고 파고 또 파도 계속해서 무언가가 나오는 정도의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에는 그야말로 수없이 많은 수식어와 해석이 붙고 나온 지 20년이 넘은 만큼 그중엔 정립된 것들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비교' '대조'라는 개념만을 중점으로 들여다보려 한다. 영화사에 영원히 길이 남을 작품에 많은 것들을 들이대는 게 무슨 소용일까. 


얼핏 단조로운 <파고>를 이루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부 이중성을 띠고 있다 시피 한다. 지명 'fargo'를 뜻함과 동시에 'far go'를 뜻하기도 하는 제목, 모든 걸 파묻어 버릴 수도 있지만 모든 걸 드러내기도 하는 하얀 눈, 모든 걸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걸 잃을 수도 있게 하는 돈, 다른 이를 죽이기도 하지만 나를 죽이게도 하는 총. 그리고 그 모든 이중성을 실행하고 이중성에 당하는, 이중성의 화신 인간까지. 


우리는 이 한없이 '재미있는', 그러나 무차별로 잔인해 너무나도 영화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터무니없이 싱겁고 한량스러운 대화들의 남발로 너무나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영화를 굉장히 '진지하게'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코엔 형제는 그걸 의도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들은 계산적이기보다 본능적으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어 영화를 만들었을 테다. 


'본능적으로' 파는 <파고>


영화 <파고>의 한 장면. ⓒ서우영화사



이번엔 최대한 '본능적으로' <파고>를 들여다보자.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그래도 여전히 '너무 많이 가버렸다'는 제목과 모든 걸 드러내어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드는 눈과 결국 모든 걸 잃게 만드는 돈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이를 죽이게 만드는 총이 눈에 보이는 걸 어쩌나. 그것들은 전부 이 영화를 '계산적으로' 볼 때 나온 것들 아닌가. 


정녕 코엔 형제는 천재 중에 천재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놀라움을 지나쳐본다. 이 영화의 물흐르듯 흐르는 이야기에 종종 제동을 거는 건, 다름 아닌 싱거운 대화들이다. 문제는, 이 대화들이야말로 코엔 형제가 '계산적으로' 넣은 게 분명해 보이는 장치라는 것이다. 나는 그 대화들이 굉장히 비(非) 영화적으로도 느껴지는데 말이다. 


사실 이 범죄 스릴러의 기본은 의외로 액션이 아니다. 놀랍게도 대화와 장면(풍경)이 그 기본이다. 대화들은 <파고>라는 영화를 구성하기도 하지만 <파고> 속 인물들의 일상을 구성하기도 한다. 장면들은 역시 영화 속 중요한 장치적 맥락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그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로만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파고>를 인간, 사회, 범죄, 일상, 비극 등 수많은 객체와 주체들로 바라볼 수 있다. 그 모든 걸 남김없이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지 않을까. 안타깝지만(?) 이번엔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그나마 '코엔 형제'에 포커스를 맞춘 것이다. 그들의 또 다른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영화를 해석하는 데에만 공력을 쏟아도 모자라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을 들여다보는 기회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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