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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차별'에 해당되는 글 11건

제목 날짜
  • 특별한 여성들의 위대한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라며...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2) 2020.08.25
  • 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란 무엇인가 <사라진 소녀들>(1) 2020.04.01
  • 소외와 차별의 사회문제, 화끈한 블랙코미디로 들여다보다 <개 같은 날의 오후> 2019.09.18
  •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2019.04.01
  • 더할 나위 없는 버디 콤비 장르물이자 광폭 우화 <주토피아> 2018.06.29
  • '차별의 반복'으로 구분하고 적을 만들고 군림한다, 영화 <디트로이트> 2018.06.06
  •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2017.08.23
  • 세월호 참사의 그늘,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의 시작 <세월> 2017.04.20
  • 이면의 이면까지 생각해봐야할, 할리우드식 웰메이드 영화 <히든 피겨스> 2017.03.24
  • 그녀들에게 남았던 유일한 선택,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서프러제트> 2016.08.03

특별한 여성들의 위대한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라며...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20. 8.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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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독자에게]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표지 ⓒ유노북스



제목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원작 <Bright Precious Thing>의 제목을 그대로 차용했다. 저자와 책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경우 원작의 표지와 제목을 그대로 가져오곤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기에 모험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제목만 봐서는 도통 무슨 책인지 알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한편 무슨 책일까 하고 호기심을 유발하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즉 출판사 내부에서의 강력한 반대를 무릎쓰고 이 제목을 밀어붙인 데에는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퓰리처상 수상 작가 게일 캘드웰의 네 번째 에세이로 그녀의 강렬하고도 참혹했던 젊은 날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녀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여성들 이야기 그리고 이웃집 소녀 타일러와의 세대를 초월한 우정 이야기를 큰 축으로 전한다. 


저자는 말한다. 혐오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된 그녀의 젊은 날도 반짝거리고 소중하고, 그녀가 꿋꿋하게 살아 낼 수 있게 해 준 특별한 여성들도 반짝거리고 소중하며, 노년에 이른 그녀가 삶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할 수 있게 강력한 힘과 의미로 다가온 이웃집 소녀 타일러도 반짝거리고 소중하다는 것이다. 저자와 저자의 삶을 둘러싼 것들과 저자의 삶을 관통하는 모든 것이 '반짝거리고 소중하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의 젊은 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나 강렬하고 참혹한 혐오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되었기에, 역설적으로 반짝거리고 소중하다는 표현을 쓴 것일까. 또한, 그런 저자가 '특별하다'고 한 여성들은 누구일까. 그들에게서 어떻게 영향을 받은 걸까. 가장 궁금한 건 이웃집 소녀 타일러가 아닐 수 없다. 그녀 덕분에 한없이 무겁고 아프고 슬플 분위기에 매몰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믿기 힘든, 믿기 싫은, 여성으로서의 젊은 날


이 책이 최초에 눈에 들어오고 번역출간을 결심하고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게 된 건, '여성의,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여성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데, 하여 이 출판사에 들어오고 난 후 여성 에세이를 꾸준히 출간해 왔던 바,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기도 하거니와 결이 다른 점도 있다 하겠다. 이 책은 '미투 캠페인'으로 폭발한 '페미니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밝히길, 본인은 여성운동의 혜택을 제대로 받진 못했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출판사로선 모험이고, 책임기획편집자로선 좋은 기회이자 위기이기도 하다는 점 또한 고백한다. 


들여다보면, 이 책의 중심이 되는 저자의 젊은 날 이야기가 '미투'와 다름 아니다. 1951년생인 저자가 대학에 진학한 1968년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고 삶을 살아 낸 이야기 말이다. 간략하게나마 서술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수학과 교수한테서 미적분은 여성과 맞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고, 여성을 존중할 줄 모르는 놈한테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 그런가 하면, 1970년 19살엔 당시만 해도 불법이었던 임신 중절 수술을 받으러 멕시코까지 갔다 왔고 히치하이킹을 하려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보스턴 글로브>에서 어엿한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유명한 남자 작가에게 '정중하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저자는 손가락 열 개로 세어지지 않을 정도로 자주 가지각색의 성희롱을 당해 왔다고 말한다. 


기획편집하면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훑고 정독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따로 떼어놓으며 읽었지만 지루하기는커녕 볼 때마다 새로웠다. 아마, 저자가 겪었던 일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남자인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도 싫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오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남자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하고 낯설겠지만, 여성이라면 옆집 이웃만큼이나 익숙하게 느낄 만한 이야기들이라고. 그런가 하면, 본인의 이야기가 시시하다고 말한다. 훨씬 암울한 이야기들이 셀 수 없이 많다고... 극악무도한 폭력과 악랄한 포식의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많다고 말이다. 사람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곤 하는데, 실상은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다를 줄은 몰랐다. 이 책을 통해 고백한 저자의 삶에는 일말의 거짓말도 없을 테니, 우리는, 우리 남자들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걸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자유니 평등이니 정의니 박애니 따위를 논할 순 없을 것이다. 


암울한 젊은 날을 꿋꿋이 살아 낼 수 있게 한 특별한 여성들


이 책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에 암울한 이야기만 들어 있진 않다. 저자가 추구하는 바도 아닐 뿐더러, 읽는 재미와 사색의 감동을 내보이는 에세이로서의 가치에도 맞지 않다. 하여, 저자는 암울한 젊은 날을 꿋꿋이 살아 낼 수 있게 그녀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특별한 여성들을 소환한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인과 문학 속 인물, 가족, 선생님, 멘토, 친구 그리고 이웃집 소녀 타일러에 이른다. 그들은 저자의 삶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들의 이야기는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이웃집 소녀 타일러는 저자가 말하는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의 핵심이자 저자가 앞선 시대의 여성들에게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을 전해 주어야 할 후세의 상징과도 같다. 


그녀를 차별한 수학 교수 이전에 스프링어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그녀는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잃었음에도 당당함과 다정함을 잃지 않았는데, 저자로 하여금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가 하면, 캘드웰이 중년일 때 만난 늙은 마조리는 자신감 넘치고 용맹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개들과 함께 살았는데, 부자였기도 했던 바 뭇 여성들의 멘토이자 롤모델로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진정한 여성으로서의 품위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었다. 저자에겐 우정 이상의 소울메이트로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함께했고 함께하고 있으며 함께할 캐롤라인이 있다. 그녀는 비록 저자와 오랜 세월 함께하지 못했지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책은, 저자의 젊은 날 이야기와 현재 저자와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웃집 소녀 타일러와의 우정이 큰 얼개를 구성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보다 보면, 분개하고 슬퍼하다가 언젠가 싶게 웃고 즐거워지는 나를 발견한다. 이야기를 대함에 있어 감정의 확실한 높낮이를 부여하려는 저자의 계책일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타일러라는 존재는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녀 덕분에 매 이야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거니와, 전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곳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결국, 무례하고 고단한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갈 타일러에게 건네는 기억인 것이다. 


작업하는 내내 마음이 참 많이 아팠다. 슬프기도 했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으며 분노에 치를 떨기도 했다. 그러지 않을 수 없었다. 감정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이 책을 '포장'하면서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했다. 대신 품위와 기품을 유지하고 내보이고자 했다. 그것이 여성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남자로서 감히 생각했다. 많은 분께 가 닿길 바랄 뿐이다. 같이 아파하고 슬퍼하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길 바란다. 특별한 여성들이 전하는 영감과 유산이 모두에게 닿길 바란다. 이 책의 편집자로서 작지만 큰 바람이다.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 10점
게일 캘드웰 지음, 이윤정 옮김/유노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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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게일 캘드웰, 데이트 폭력, 미투, 반짝거리고 소중한 것들, 성희롱, 여성, 젊은 날, 차별, 페미니즘, 폭력
  • BlogIcon 휘게라이프 Gwho
    2020.08.25 17:37 신고

    잘보고 갑니다 .. ^^
    오늘 하루도 행복 하세요!

    • BlogIcon singenv
      2020.08.25 17:40 신고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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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란 무엇인가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4.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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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사라진 소녀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 포스터. ⓒ넷플릭스



2010년 5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오크 해변에서 섀넌 길버트가 홀연 자취를 감춘다. 당일, 엄마 메리 길버트는 섀넌과 통화하고 다음 날 놀러온다는 딸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메리는 남편 없이 홀로 공사장과 술집에서 일하며 다른 두 딸 셰리, 사라를 부양하고 있다. 막내 사라는 그녀의 말에 따르면 심한 조울증을 앓았다. 셰리는 잘 버티고 있었지만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다. 


메리는 놀러온다는 딸은 오지 않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연락도 받지 않자 찾아 나선다. 그녀는 딸이 어떤 일을 하고 있었는지 잘 알았던 듯 남자친구와 기사를 찾아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섀넌이 무작정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오히려 메리에게 추궁한다.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냐고, 그냥 돈만 쳐 받으면 다냐고 말이다. 그 사이 경찰은 오크 해변 근처의 길고 해변에서 여성 네 명의 시체를 발견한다. 섀넌은 없었다. 


섀넌에게 큰일이 생겼다고 확신한 메리는 경찰을 압박하는 한편 피해자들 모임에 합류해 같이 직접 사건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방법은 경찰을 더욱더 압박해 수사하게끔 하는 것밖에 없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성 노동자'들이라 경찰이 수사를 하기는커녕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이 경찰은 섀넌의 실종을 여성 네 명의 살인 사건과 동일선상으로 두지 않았다. 메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 실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라진 소녀들>은 '롱아일랜드 미제 연쇄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한 로버트 콜커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Lost Girls: An Unsolved American Mystery>를 원작으로 했다. 선댄스 영화제 단골손님이자 다큐멘터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리즈 가버스 감독의 신작으로, 미국 인디영화 스타일이 한껏 묻어난 수작이다. 


상업영화로서 으례 지녀야 할 최소한의 웃음기나 극적 요소까지 완벽하게 빼내고 다큐멘터리적 진중함과 단백함을 최대한 부각시켜, 스토리와 사건과 인물에 집중하게 했다. 와중에 영화는 연쇄살인이라는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는 최소한으로 포커싱하고, 사건과 주요하게 관계되어 있는 다른 부분에 포커싱을 맞춘다. 성 노동자 살인 사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경찰, 사건(!)과 경찰(?)에 맞서 연대하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 


1990년대에 데뷔하여 30여 년 동안 주로 조연으로 활동하며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꾸준히 모습을 비추는 배우 에이미 라이언이 메리 길버트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추격하는 '엄마'의 진면목을 잘 표현해냈다. 그 이면의 불편한 이야기들까지도 대수롭지 않게 포용해낸다. 문제가 있더라도, 포커스는 그녀와 그녀의 딸이 아닌 사건과 경찰에 가 닿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


원작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딱 두 가지로 압축된다. 경찰의 노골적 차별 수사와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경찰은 피해자가 성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대량의 시체 유기에 따른 명백한 연쇄 살인 사건임에도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거니와 근처에서 실종된 섀넌의 경우 찾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며 오히려 메리에게 책임을 추궁하려고 한다. 


메리는 경찰에 알리고 이후 강력하게 요청하고 압박했지만 통하지 않자 직접 단서를 찾아 나서며 섀넌의 뒤를 쫓는다. 경찰은 아전인수 격으로 경찰에게 맡기고 빠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많은 시간이 흘러 수사를 시작하는 경찰, 쫓으라는 섀넌을 안 쫓고 엄마 메리의 과거를 쫓는다. 메리가 친딸 섀넌을 버린 과거가 있다는 것, 섀넌이 어떤 참혹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애써 모르는 채 하며 돈을 받고 있다는 것. 


교묘하게 물타기를 시전하는 경찰에 메리는 꿈쩍도 하지 않지만, 메리의 다른 두 딸이 흔들린다. 사라는 정신적으로 아프고, 셰리는 엄마한테 실망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메리로서는 섀넌을 찾으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무너질 수 없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자못, 너무 한 게 아닌가 싶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또한 더 크고 더 잘못된 걸 못 보게 하려는 수작의 일환이다. 우리가 이 영화에서 보고 듣고 느껴야 할 건 메리의 부정적인 과거와 현재가 아니라 메리의 부단한 현재이다. 그녀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섀넌, 사건, 경찰이다. 


피해자 여성 유족들의 연대


메리는 피해자의 여성 유족들과 모임을 가지지만, 쉽게 융화되지 못한다. 아니, 융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들과 자신은 다르다며, 그들이야말로 성 노동자 가족을 나 몰라라 하며 죽고 나서 추모하는 모습으로 물타기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메리는 행동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벽에 부딪히고 만다. 이후 어쩔 수 없이 또는 필연적으로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깨닫는다. 


연대는, 가진 것 많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밀어주고 이끄는 게 아니다. 그건 결국 함께가 아니라 혼자 가겠다는 표시와 다름 아니다. 진정한 연대는, 가진 게 충분하지 않은 자들이 모여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고 위하고 감싸안으며 함께 하는 것이다. 하여, 결코 쉽지 않다. 아프고 슬프고 힘든 만큼 잡음이 많고 삐걱거리며 잘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 하기에 더욱더 서로를 믿고 바라봐야 한다. 


<사라진 소녀들> 속 연대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다들 말 못할 사정이 있다. 추악할 수도 추잡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크고 궁극적이고 한마음 한뜻이 되는 정의를 위해 뭉쳐야 한다는 건 잘 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필요한 인간다운 정의 말이다. 영화는 다른 건 잡시 접어두고 지금 이 순간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직시하라고 말한다. 영화 속 이들도 힘겹게 도달해 계속 나아갈 그것과 그곳, 영화 밖 우리들도 가 닿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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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경찰, 독립영화, 롱아일랜드 살인 사건, 사라진 소녀들, 엄마, 연대, 차별,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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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2 15:29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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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와 차별의 사회문제, 화끈한 블랙코미디로 들여다보다 <개 같은 날의 오후>

오래된 리뷰 2019. 9.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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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개 같은 날의 오후>


영화 <개 같은 날의 오후> 포스터. ⓒ순필름



4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의 어느 여름 날 5층 짜리 조그마한 아파트 단지, 전압을 이기지 못한 변압기가 터지니 주민들은 집안에서 버티지 못하고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땀을 식히고 있던 그들 앞으로 정희가 도망쳐 나오고 뒤이어 남편 성구가 쫓아오더니 때리며 끌고 가려 한다. 거친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한 아파트 여자들이 모여 성구를 집단구타한다. 같이 나와 있던 남자들이 각자의 아내를 말리려 하지만, 이내 싸움에 휘말려 여자 대 남자의 싸움이 되고 만다. 


싸움이 한창일 때 경찰이 도착한다. 몇몇 남녀가 나 몰라라 도망간다. 남자들은 경찰 쪽으로 가서 사건 경위를 고하고 여자들 9명은 옥상으로 도망간다. 옥상에서 선탠 중이던 독신녀도 휘말려 10명이 된다. 그녀는 옥상에 올라온 9명의 여자들 중 한 명의 남편과 바람을 펴서 분쟁의 씨앗이 될 뻔하기도 한다. 성구는 의식불명에 처했다가 죽고 만다. 기동대장을 위시한 경찰들은 옥상으로 간 여자들을 살인범으로 취급하며 현행범 체포로 간주한다. 이에 여자들은 성구가 정희를 때린 것에 대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하며 옥상에서 농성하기 시작한다. 


이미 옥상에 올라와 있던 또 한 명의 여자, 아들에게 구박받던 할머니 한 분이 여자들이 도우려 했음에도 투신자살하고 만다. 여자들의 옥상 농성이 아닌 할머니의 투신자살이, '남편 구타에 응징한 여인들 경찰 진압에 투신으로 맞서'라는 식으로 방송을 크게 타면서 여성단체들이 지지하며 이른바 전국구 사건이 된다. 이 기가 막힌 대치 국면은 어떻게 진행될까? 그 끝은 어떨까?


사회문제 블랙코미디


1995년작 <개 같은 날의 오후>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여전히 산적한 사회문제들을 직설적으로 풍자적으로 풀어낸 블랙코미디 영화이다. 작품의 연출과 공동각본을 맡은 이민용 감독은 청룡, 대종, 백상, 춘사 4개의 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당대를 휩쓸었던 것이다. 그 이유를 25여 년이 지난 이 작품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통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보자. 위에서 주지하지 않았지만, 40도 불볕더위 때문인지 당대 한국사회 혹은 한국사회 자체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인지 폭력을 동반한 갈등 장면들이 나온다. 곧 영화의 주요 장소가 되는 아파트의 주민들로 수렴되는데, 마냥 더위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를 만한 푹푹 찌는 더위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그 장면들은 뒤이어 펼쳐질 초유의 갈등과 대비된다. 앞엣것들은 차라리 낭만적인 것이다. 하물며 같은 아파트의 휴가 떠난 빈 집을 털러 왔다가 옥상 농성 때문에 출동한 경찰의 대치로 옴짝달싹할 수 없게된 빈집털이범들의 생각과 행동도 하찮을 정도이다. 모두 초유의 갈등이 보여주는 정당함과 당연함을 합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이다. 투신한 할머니의 경우는 얘기가 다르지만 말이다. 


소외와 차별


영화는 보다시피 성 대결로 출발한다. 남편에게 핍박받는 여자를 구하고자 아파트 주민 여자들이 연대했고 의리를 지키고자 함께 농성하는 것이다. 여자로서가 아니라 노인으로서 핍박받은 것이니, 엄연히 농성하는 여자들과는 별개로 투신한 할머니의 사례조차 한통속으로 보일 정도로 그들의 모습은 투철하다. 동시에 영화는 이 지점부터 '소외'와 '차별' 문제도 논하기 시작한다. 


최초에 옥상에 올라간 여자들은 9명, 옥상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던 여자 1명은 외도의 당사자이다. 이 문제를 두고 처음엔 외도가 주가 되었지만 뒤에선 독신녀로서 겪는 소외와 차별이 주가 된다. 혼자 사는 여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는 것이다. 독신남에게로는 향하지 않을, 실제하는 소외와 차별이다. 


그러는가 하면, 그곳의 여자들보다 더 예쁘고 조신하고 착해 보이는 긴머리의 밤무대 가수 여자 1명이 있다. 기동대장에 의해 신분증 상 남자임이 밝혀져 옥상 위가 발칵 뒤집힌다. 왜 남자가 여기에 있냐,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냐, 밤무대 가수라더니 어쩐지 꺼림칙했다. 이 말에 호스티스 여자 2명이 발끈한다. 내분이 일어난 것이다. 


혼자 사는 소설가 지망생 여자 1명이 이 내분을 일거에 봉합할 한 마디를 던진다. "지금 우리는요. 남자냐 여자냐 그런 성 문제를 떠나서 외롭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우리가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지점에서 영화는, 그리고 10명의 여자들은 한 층 더 높은 차원으로 진입한다. 성 대결이 아닌 소외와 차별에 대항하는 행동인 것이다.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잘 알 순 없지만 25여 년 전 이 영화가 나왔을 때 만듦새 아닌 메시지를 두고 엄청난 논란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속 뉴스에서도 소개하지만, 당시는 기혼 여성의 61%가 남편한테 맞았던 경험이 있다고 할 만큼 남녀의 성차별이 당연한 걸로 생각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런 때 나온 전위적(혁신적, 급진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작품이 어떤 몰매를 맞았을까. 틀린 걸 올바르고 당연하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와중에 틀린 게 틀린 거라고 말하는 건, 역으로 몰려 그냥 틀린 게 되어버릴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 않는가. 


오히려 그러하기에 성차별은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은 성차별을 넘어 성차별이라는 소외와 차별의 한 방면을 지지하는 사상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성 대결 하에서의 페미니즘 관점으로만 보려 하지 말고 소외와 차별에 대항하는 이들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이라는 관점으로도 봐야 한다. 영화는 영리하게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개 같은 날의 오후>를 그저 199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은 배우들이 출동해 은근 스펙터클하고 시원시원하고 재밌는 코미디 영화로만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필자 또한 오랫동안 그러했다. 머리가 크고 무엇이 올바른지 최소한의 감각을 지녔다고 생각한 채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로 인식된다. 조금은 투박하고 직설적이긴 하지만, 굉장한 블랙코미디로 쉽게 찾기 힘들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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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개 같은 날의 오후, 명작, 블랙 코미디, 사회문제, 성대결, 성차별, 소외,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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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양성평등을 위해 투쟁하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4. 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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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포스터. ⓒ영화사 진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33년에 태어나 한국 나이 87세로 1993년 대법관에 임명되어 35년 넘게 재직 중이다. 그녀 앞에 붙은 가장 큰 수식어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이자, 최초의 유대인계 여성 연방대법관'이다. 첫 번째도 아닌 두 번째가 그리 중요한가?


두 번째가 있으면 첫 번째가 있는 법, 미국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은 샌드라 데이 오코너이다. 1981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어 2006년까지 재직하였다. 그녀는 중도보수 성향으로 전형적인 균형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반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최초엔 중도진보 성향에 있었다가 부시 대통령 때 강경보수가 들어오자 강경진보 성향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살아오면서 행했던 수많은 소송들의 성향을 비추어볼 때 진보적이지 않을 때가 없었다. 


다큐멘터리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는 간략히나마 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그녀의 삶은 곧 투쟁이었고, 그 투쟁은 법을 향한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해, 아니 양성평등을 위해 평생을 투쟁한 삶이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분노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 긴즈버그, 코넬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간다. 하지만 뉴욕 로펌에서 일하게 된 남편을 따라 이사를 하게 되어 컬럼비아 로스쿨에 편입해 학위를 딴다. 


그녀의 남편 바티는, 그녀의 말마따나 '여자에게도 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해준 남자인데 평생 긴즈버그를 서포트했다고 한다. 긴즈버그는 평생 최고의 행운이 바티와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1950~60년대라는 점을 상기시켜봐야 하겠다. 


1963년 럿거스 로스쿨 교수가 된 그녀, 1993년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30여 년 동안 미국 자유인권협회 법무자문위원,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 미국 연방상소법원 판사로 재직하며 명성을 떨친다. 


변호사로도 일했던 1970년대 그녀가 맡았던 남녀평등 관련 소송건들은 크나큰 족적을 남겼는데, 이미 하늘과 땅만큼 벌어져 있는 남자와 여자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끝없이 투쟁하는 와중에도 혼자가 된 아버지가 자식을 키우고자 했을 때 양육수당을 줄 수 없다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을 맡는 등 전략적인 행보도 보였다. 그야말로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의 소유자인 것이다. 


차별이 법적 금지로 되기까지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긴즈버그의 행보는 대법관이 되고 나서도 계속된다. 진보 성향이기 때문에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판결한 소송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양성평등과 소수자 차별 금지를 중심에 두고 수없이 자주 '나는 반대한다'를 외쳤다. 


대법관이라 하면 이미 일개 개인이 아닌 한 나라를 이끄는 삼권(입법, 사법, 행정) 중 사법권 그자체와 다름 없기 때문에, 오직 헌법에 기초해 판결을 내려야 한다. 거기에 어떤 개인적 신념과 정치적 성향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긴즈버그는 어떠했을까. 혹자는 정치적 성향은 몰라도 개인적 신념이 다분히 스며든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 덕분에 미국 법은 일찍이 1970년대에 성차별을 법적으로 금지시키게 되었다. 물론 현재까지도 다양하고 세밀한 부분까지 퍼져 있는 온갖 차별들을 계속해서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지만 말이다. 


즉, 그녀의 개인적 신념은 더 이상 개인적 신념이 아닌 법적 조항이 된 것이다. 그녀로부터 시작해 모두가 받아들이게 된. 세상을 바꾼 사람이 많다지만, 이토록 점진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전략적으로 바꾼 사람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보다 많이 알려지길 바란다. 


바라는 것들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의 한 장면. ⓒ영화사 진진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긴즈버그의 남편 바티가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없겠지만, 누군가는 강력한 진보 성향으로 양성평등에 대한 투철한 인식이 있지만 정작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긴즈버그 같은 대단한 사람도 여자 혼자로선 해낼 수 없었기에 남편 바티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게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남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결국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거창하지 않은 사소한 실천들 말이다. 


긴즈버그는 그야말로 대단한 일을 해왔다. 법으로서 누구도 토를 달지 못하는 차원의 투쟁을 해왔고 이겼고 바꿨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것들은 너무 많다. 인식은 바꿀 수 있다지만, 행동은 바뀌기 쉽지 않다. 행동을 바꾸려면 긴즈버그의 방식 아닌 다른 방식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위 등을 통한 직접적 목소리와 행동을 내는 것 말이다. 


행동을 바꾸려면, 행동이 주가 되는 방식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아온, 성공한 여성의 스토리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와 결을 같이하는 또 다른 영화들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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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 법, 양성평등, 여성, 차별, 투쟁,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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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할 나위 없는 버디 콤비 장르물이자 광폭 우화 <주토피아>

오래된 리뷰 2018. 6.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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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주토피아>


<주토피아>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1930년대 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월트 디즈니 살아생전 황금기를 보냈지만 1960년대 중반 그의 사후 오랫동안 부침을 겪는다. 1990년대 들어 완벽한 부활, 그야말로 디즈니 역사상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축한다. 그 시기에 나온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고전이자 명작이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2000년대 들어 암흑기가 부활, 2006년 픽사와 합병하여 존 라세터가 돌아와 디즈니를 진두지휘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2000년대 후반 들어 존 라세터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뻗치면서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완벽하게 부활한 것도 모자라 제2의 르네상스를 연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하면 픽사였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할까. 연일 고전 명작에 오를 만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주토피아>는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다. 최소한 디즈니의 두 번째 암흑기와 제2의 르네상스 시대를 통틀어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주토피아>는 현 시대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스로에게 던지는 우화로, 애니메이션으로서의 기술적 측면과 스토리와 장르와 캐릭터성의 엔터테인먼트적인 측면, 그리고 최소한 청소년 이상은 되어야지만 제대로 이해해보려는 마음가짐이나마 가질 만한 수준높은 주제의식까지 두루 갖춘 잡식성 완벽함을 자랑한다.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에게 주어진 임무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토끼 주디 홉스는 부모님은 물론 아는 모든 동물들에게서 반대와 멸시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토끼 경찰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게 꿈이다. 그는 340km 떨어진 곳에 있는 위대한 도시 '주토피아'로 향한다. 그곳은 동물들의 이상향으로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도시이다. 주디는 우여곡절 끝에 주토피아 경찰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최전선 제1구역에 배치된다.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고작 주차 단속. 그가 아무리 경찰 학교 수석이라지만, 그는 멍청하고 약해 빠진 '토끼'였다. 그럼에도 주디는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여 참으로 많은 주차 딱지를 끊는다. 어느 날 수달 오터톤 부인이 남편 실종 건으로 찾아온다. 아무 이유 없이 사라질 사람이 아닌데, 실종된 지 열흘이나 되었다는 것이다. 


주디는 선뜻 나선다. 서장은 그에게 48시간 동안 찾을 것을 명령하고 그렇지 못할 시 주디에게 경찰복을 벗으라고 한다. 주디는 곧 단서를 찾아내는데, 하필 그 단서의 시작점이 되는 주인공이 일전에 안면 있는 사기꾼 여우 닉 와일드였다. 주디는 닉에게 당한 뒤통수 치기를 이용해 꼬득여 수사를 진행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는 장르물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이 훌륭한 장르물이다. 초짜 경찰이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사건을 아무런 지원 없이 홀로 맞서게 되고, 콤비를 이루는 게 경찰이 아닌 범죄자라는 점이 콤비 범죄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콘셉트인 것이다. 그걸 애니메이션으로 위화감 없이 그려냈다는 점을 높이 살 만하다.


퀘스트를 완료하듯 하나 하나 실마리를 풀어내는 진행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화적 재미라는 한 마리 토끼를 이쯤에서 완전히 손에 쥔 격이라 하겠다. 여기에 주인공들이 사람 아닌 동물이라는 게 화룡정점이다. 애니메이션으로서, 장르물로서,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캐릭터성을 동물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특히 양육강식 동물 세계에서 최하층에 속하면서 동물로서의 귀여움은 최상급에 속하는 토끼가 동물들의 낙원인 주토피아를 지키는 경찰이 된다는 설정은, 영화적 해석 즉 영화가 줄 수 있는 영화 외적인 교훈이나 감동 또는 깨달음적인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토끼의 성장 또는 좌충우돌이 기대되는 것이다. 


토끼와 콤비를 이루는 동물은 하필 여우다. 토끼와 상극이랄 수 있는 여우는 늑대나 하이에나 등과 더불어 가장 미움을 받는 동물 또는 가장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을 지니고 있는 동물이다. 영화에서 토끼가 상식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여우는 편견 그대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주토피아>가 주는 영화적 해석은 바로 그들, 토끼와 여우에게서 비롯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한 우화


<주토피아>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명백한 우화 <주토피아>는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선사함에도 캐릭터와 배경과 대사 모두 인간 세계에 대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린 이 영화가 다른 손으로 완전히 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관한 이야기, 멍청하고 약한 토끼와 비열하고 믿을 수 없는 여우. 그들은 각자의 타율적 시선을 이유로 세상을 지키고 더 좋은 쪽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없다. 


차별 이전에 편견이 존재한다. 인간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약자라고 통칭되는 노인, 아이,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아닌 타율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버린다. 오랜 시간 고착해 되어온 그 한계는 편견이라는 상대적으로 여지가 있는 두루뭉술한 개념에서 머물지 않고 명백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차별로 나아간다. 돌이키기 쉽지 않다. 


영화는 여기에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만이 아닌 강자에의 편견과 차별 즉, 역차별까지도 다루는 광폭 행보를 보인다. 사실, 여우를 투 톱 중 하나로 내세운 것에서 엿보이는 부분인데 여우에의 편견과 차별이 분명 존재하지만 여우가 동물 세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약자에의 편견과 차별' 또한 그 자체로 편견과 차별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편견과 차별에 대응하는 개념이 평등이라고 한다면, 평등을 약자에 대응하는 개념인 강자에게도 적용해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나도 훌륭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선 동물 세계에의 우화로서 너무 많이 간 게 아닌가 싶다. 아니, 인간 세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물 세계에서는 강자가 강자로서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게 당연하다. 인간은 어떤가? 당연하지 않은 게 정설이지만, 당연해졌다. 


동물이나 인간 세계가 똑같다. 완벽한 우화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동물 세계에서 역차별이 존재하느냐는 점이다. 태초부터 강자인 상황에서 강자라는 이유로 다수의 약자로부터 어떤 조치를 당하는 건 강자가 주체가 되는 차별의 차원이 아닌 약자가 주체가 되는 생존의 차원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류의 고찰이 직선적이고 일차원적이었던 점이 살짝 아쉬웠던 <주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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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범죄, 여우, 우화, 장르물, 주토피아, 차별, 토끼,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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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반복'으로 구분하고 적을 만들고 군림한다, 영화 <디트로이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6.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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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디트로이트>


영화 <디트로이트>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지난 2010년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귀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허트 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가 아카데미 82년 역사상 처음으로 감독상을 차지하였는데, 인류 역사상 최고의 흥행 역사를 쓴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을 제치고 얻은 수확이었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오래 전 한때 영화감독으로보다 제임스 카메론의 아내로 더 명성이 높았다. 


그녀는 1981년에 장편 데뷔를 하여 지금까지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작 10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대단한 과작인데, 90년대 초반 <폭풍 속으로>를 찍고 주가가 폭등한 뒤 내놓은 대작들을 연달아 실패하고 참으로 오랫동안 영화를 내놓지 못했던 이유도 있을 거다. 하지만 필모를 들여다보면, 그냥 과작의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예전부터 선 굵은 액션과 압도적인 분위기를 세심하게 연출하는 데 정평이 나 있는 감독이다. 최근 들어서 그녀가 내놓은 영화들을 보면, 그런 면모에 있어서 현존 최고의 여성 감독 아니, 감독 반열에 올라섰다는 게 명백하다. 최근이라고 해봤자 2010년의 <허트 로커>와 2013년의 <제로 다크 시티>가 있을 뿐이지만. 


차별이 만연한 폭력 현장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그녀가 5년 만에 돌아왔다.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접하지 않을 수 없다. 전작에 이어 그녀가 선택한 실화는 1967년 7월 닷새 동안 미국을 강타한 디트로이트 소요 사태이다. 영화 <디트로이트>는 이 사태의 전반을 들여다보기보다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사건 중 하나를 집중적으로 파고 든다. 명백한 메시지와 압도적인 연출.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1967년 7월 23일 시내 술집에서 흑인들 파티가 새벽까지 벌어졌다. 경찰이 무허가 술집 단속을 이유로 이곳을 덮쳐 손님 전원을 체포한다. 지나가는 흑인들이 모여들어 항의하자, 경찰차들은 황급히 자리를 피한다. 누군가가 인근 가게를 턴다. 겉잡을 수 없을 폭동이 시작된다. 엄청난 수의 군까지 투입된다. 


7월 27일 밤, 알제 호텔에서 총성이 울린다. 어느 흑인 투숙객이 장난감 총을 쐈던 것. 근처에 있던 경찰과 군인들은 알제 호텔에서 쏜 저격수의 총성이라 단정 짓고 알제 호텔을 급습한다. 그렇게 잡혀온 6명의 남자 흑인과 2명의 여자 백인, 장난감 총을 쏜 장본인은 탈출하려다 죽임을 당한다. 


모두 백인 남자로 이루어진 경찰과 군인들은 본격적인 추궁에 들어간다. 그들은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저격수가 쏜 총의 정체를 밝혀내야만 했다. 반면 잡혀온 이들은 총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과 장난감 총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이들 뿐이다. 진짜 총은 없는 것이다. 그 와중에 근처 가게에서 경비로 일하는 흑인 한 명이 가세한다. 총의 정체를 둘러싸고, 죽음의 협박을 가하는 가해자와 사실을 말할 뿐인 피해자 그리고 그 모든 걸 보고만 목격자까지 함께 하는 차별이 만연한 폭력 현장이다. 


차별의 반복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흑인에게 행해지는 백인의 무차별하고 다양한 폭력을 통해, 차별의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시기도 시기였거니와, 장소도 장소였고, 분위기도 분위기였다. 토끼굴에 불을 지펴 토끼로 하여금 뛰쳐나올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뛰쳐나온 토끼는 잡히지 않게 도망가거나 발악을 할 수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일방적인 구도를 영화는 알제 모텔에서의 미시적 구도로 끌고 온다. 그곳에서 생각할 겨를 따위는 없다.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들은 그저 벽을 보고 백인 남자들의 일방적인 죽음에의 협박에 떨고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내려진 차별의 철퇴는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또한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백인 남자들이 전부인 경찰과 군인들은 그런 구도가 당연한 듯하다. 인간 대 인간이라는 구도 하에서 하물며 강력한 범죄용의자라고 해도, 심지어 범죄자라고 해도, 자신을 변호할 권리나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을진대 이건 막무가내다. 그들이 단지 흑인폭동이 한창인 곳에 있는 흑인들이라는 이유로, 그런 흑인들과 함께 놀고 있던 여자라는 이유로. 이 족쇄는 피부색이나 성(性)에만 채워져 있는가 보다. 


알제 호텔 1층 로비에서 펼쳐지는 단순 구도 하에 반복되는 협박과 무지에서 오는 당연한 반박의 시퀀스는, 영화 내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장면 연출이면서 동시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차별의 반복' 메시지의 핵심을 이룬다. 그들은 '차별'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끊임없이 찾아낸다. 그렇게 구분하고 적을 만들고 군림한다. 


인간 군상


영화 <디트로이트>의 한 장면ㅁ. ⓒ㈜팝엔터테인먼트



떡 하니 '인종 차별'이라고 붙여 놓은 듯한 확고한 구도에서, 피해자 측의 여자 백인과 가해자 측의 백인 군인 그리고 목격자 측의 남자 흑인 경비가 눈에 띈다. 이들은 이 구도 하에서 드러나지 않는 또 하나의 피해자, 인종적 선의만 있을 뿐 차별 본질의 선의는 없는 방관자, 정녕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목격자이다. 


차별을 기반으로 하는 일대일 구도에서 당사자가 아닐 때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는 백인이나 흑인이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에, 이들 중 어느 위치와도 맞닿아 있지 않다. 그러하기에 쉽게 생각하고 말하고 재단할 수 있을 것이다. 


차별에 있어서, 차별을 행하고 차별에 당하는 당사자들보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차별의 바운더리 밖이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바운더리 안에 있는 이들이 쉽게 하면 안 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쉽게 할 수밖에 없거나 쉽게 할 수 있거나 쉽게 하고 싶은 것과는 다르게, 바운더리 밖에 있는 이들은 쉽게 하면 안 되는 생각이나 행동들을 말 그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디트로이트>이 보여주는 인종차별 양상의 일대일 구도와 더불어 기타 등등의 인물들 행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인간군상들, 그 축소판이기도 한데, 그 다양성의 본질이 다름 아닌 다양성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차별의 세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차별의 세계엔 역설적으로 '차별도 존재한다'는 다양성 또는 상대성 대신 '차별은 절대 안 돼'는 획일성 또는 절대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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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백인, 여성, 인간 군상, 차별, 캐서린 비글로우, 폭력,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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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오래된 리뷰 2017.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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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익숙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숨겨진 명작 <콘택트>. ⓒ워너브라더스



1980년대 '스타워즈'와 쌍벽을 이루며 그야말로 역대급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백 투 더 퓨쳐'. 그 단편적인 재미만큼은 그 어느 콘텐츠도 따라잡을 수 없을 영화 시리즈였다. 스타워즈에 조지 루카스가 있었다면, 백 투 더 퓨쳐엔 로버트 저메키스가 있었다. 이후 그는 작품성으로 선회하는데, 우리가 모를 리 없는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 2001년 <캐스트 어웨이>,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등이 그것이다. 이쯤까지가 그가 1990년~2000년대 초반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도식을 만들고 알린 시기이다. 기본적인 대서사의 지붕 아래,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유머와 약간의 감동과 약간의 사연과 약간의 전문지식 등이 생동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즐기며 동시에 감정이입과 몰입까지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을 영화 한 편이 있다. 1992년작 <죽어야 사는 여자>는 아니고, 2000년작 <왓 라이즈 비니스>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1997년작 <콘택트>이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장편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문학적 유흥의 완벽한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현실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일을 하는 우주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현실과 지극히 연결되어 있다. ⓒ워너브라더스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어릴 적 매일같이 모르는 이의 교신에 열중했다. 일찍 세상을 떠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끼고 좋아해줬지만 9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수학과 과학 분야에 인생을 건다. 과학이야말로 진리 추구의 해답이거니와 '거대하고 거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 생명체만 존재한다는 건 공간 낭비다'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 신념은 지구 아닌 우주에의 인간 아닌 생명체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게 되는 것으로 발현되고, 그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나 메시지를 잡아내 결국에는 그들과 접촉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녀는 보장된 자리를 내팽겨치고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일개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며 나라의 돈을 받아 천문대를 돌아다닌다. 


'위대한' 일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자본의 지원이 없으면 나라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애로웨이처럼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소속되어 안정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의 논문은 물론이고 행정과 정치도 병행해야 하는 곳이 그런 곳이다. 


애로웨이는 가히 그 출중한 실력으로 몇 년에 걸쳐 수많은 난관을 뚫고 중요한 발견을 해낸다. 외계 생명체가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신호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은 고스란히 그녀의 프로젝트에 가차없이 지원을 끊어버린 국가에서 가로채버린다. 그러곤 군대까지 대동한 검열도 시행한다. 일개 개인의 위대한 발견은 곧 나라의 위대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과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종교와 과학, 이중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


기독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종교가 최우선이지만 과학 또한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워너브라더스



애로웨이가 수신한 신호는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연설이 송출된 후 다시 보내진 것이었다. 지구를 침공한다는 둥 비상식적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내뱉으며 애로웨이의 공을 깎아내리는 국가, 이에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그 영상의 프레임 사이에 있는 디지털 신호를 알아낸다. 그 신호는 다름 아닌 운송 수단, 외계를 오갈 수 있는 운송 수단 설계도였던 것이다. 


이전과 똑같이 다시금 애로웨이의 공을 뺏어가는 국가, 각 나라의 대표를 뽑아 외계로 향하는 운송 수단에 탑승시킨다. 하지만 애로웨이는 그 대표에 낄 수 없었다. 그녀가 종교를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는 이유였다.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대표를 뽑는 대통령 직속 고문단에는 당연히 종교인 팔로 조스(매튜 맥커너히 분)도 있었다. 그와 그녀는 사랑도 나눈 사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나라에서 과학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이중적이기 그지 없다.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건대 신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절대자를 믿는다는 주장 하에 그녀의 신념은 묵살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그녀는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나서도 역사적인 믿음과 대다수의 사람들의 바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표로 선별되지 못한다. 과학자의 비애임과 동시에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라는 절대적 이성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이다. 


여기서 영화가 나아갈 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연히 보인다. '조화'. 절대로 맞물리지 못할 것 같은 과학과 종교의 화합. 신은 믿지 못하되 외계생명체 존재는 믿는 애로웨이 박사와 신에의 절대적인 믿음의 팔로 조스 신부가 방향과 신념은 다르되 '진리에의 추구'라는 지향점은 같다는 결론까지. 그건 서로를 존중하고 믿는 것일 테다. 자신이 믿는 바의 중심을 지키면서 상대의 중심에게 다가가기.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영화는 주인공 애로웨이를 통해 말한다. 과학과 종교에의 화합을 말이다.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 ⓒ워너브라더스



인간 대표들의 외계 탐험은 결국 무산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애로웨이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똑같은 종류의 외계 탐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송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녀는 기이하고 기이한 일을 겪고 돌아오는데, 전세계 모든 이가 지켜본 그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18시간은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청문회가 열리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설전이 이어진다. 


과학자 애로웨이 박사의 과학자답지 않은 발언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오로지 그녀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조 달러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 초국가적 프로젝트인 것,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학자적인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직접 경험했고 다같이 나누고 싶기 때문에.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린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전 그 경험을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게 바로 제 희망입니다."


과학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발언이다. '절대자'를 믿는 종교인과 '절대적' 데이터를 믿는 과학자. 그녀는 과학자로서 과감히 한 축을 무너뜨리는 생각과 발언을 한 것이다. 과학의 끝에 영적 경험이 있을 수 있고, 영적 경험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있을 테다. 또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의 발현과 동시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발현, 이는 과학과 종교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다. 그걸 모든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희망이고 이 영화가 바라는 바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지은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였지만 마냥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적으로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신이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는 '위대한' 존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말이다. 그건 외계생명체와의 끈임없는 접촉과 대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절대자의 부정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다. 상호존중과 자가보완이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모든 이의 행복과 그 기반 위의 진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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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그늘, 그리고 다양한 이야기의 시작 <세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7. 4.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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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세월>


소설 <세월> 표지 ⓒ아시아



2014년 4월 16일, 영원한 아픔으로 남을 참사가 발생한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의 침몰, 탑승객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다. 당년 11월에 결국 수색이 종료되었는데, 9명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3년 여가 지난 2017년 3월 22일 드디어 세월호가 인양되기 시작했고, 세월호 참사 3주기가 지난 4월 18일에는 미수습자 9명 수색이 시작되었다. 


하지 못했던 혹은 하지 않았던... 세월호 인양과 미수습자 수색은 나라가 바뀌고 있다는 청신호일까? 그 청신호에 맞춰, 아니 세월호 참사 3주기에 맞춰 많은 관련 책들이 나왔고 나오고 있다. 사실 지난 3년 동안 줄기차게 나왔는데, 세월호의 그늘을 그린 이는 감히 없었던 것 같다. 


세월호 참사 3주기에 맞춰 출간한 방현석 소설가의 <세월>은 '베트남 이주민 가족'이 당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 한다. 한국인 아빠와 베트남인 엄마, 그리고 여섯 살 남자 아이와 다섯 살 여자 아이. 엄마는 희생자, 아빠와 오빠는 미수습자... 다섯 살 아이만 혼자 살아 돌아왔다. 언론에서 소소하게 다뤄졌을 뿐, 많은 이들이 모를 이 이야기는 실화다. <세월>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세월호 베트남'으로 검색하면 겨우 몇몇 기사를 찾아볼 수 있는 이 실화가, 이 소설로 그늘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세상엔 반드시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는 법이다. 나는 감히 이 실화가 그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세월호 참사의 그늘, 베트남 이주민 가족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에서 사는 베트남 이주민 가족이 아니다. 이 세월호에서 희생된 엄마 린의 아버지 쩌우다. 쩌우는 베트남 까마우에서 어부로 살아간다. 딸 린이 나이 많은 한국 남자와 결혼해 한국에서 산다고 했을 때, 그는 마뜩잖아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대항해 항전을 벌였던 일가족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의 행동과 결정은 자본주의 물결의 한 갈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한탄하고 한탄한다. 


그런 와중, 갑자기 딸 네가 제주도로 귀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농사 지으면서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싶다는 바람. 그런데 그 소식은 곧 여객선 침몰 소식으로 점철된다. 자본주의 물결의 한탄이 자본주의 침몰로 갈 길을 잃었다. 처음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가, '전원 구조'라는 소식에 안도하고, 곧 잘못된 발표고 사실 구조된 사람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쩌우는 큰 딸과 함께 한국으로 간다. 


그곳에서 쩌우는 세상에서 가장 기막힌 축하를 받는다. 딸 린이 일주일 만에 건져 올려졌기에, 다른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받은 축하였다. 그리고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또는 못하는 것들을 간직한 채 하염 없이 기다릴 뿐이다. 탈출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도 딸이 거기서 죽어야 했는지, 사위와 외손자가 왜 아직도 그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소설이 주목하는 건, 그리고 우리가 이 소설을 통해 주목해야 하는 건, 베트남 이주민 가족이겠다. 쩌우는 세월호 참사에서 유일하게 생존자, 희생자, 미수습자 가족이다. 기뻐하면서, 비참한 부러움과 기막힌 축하를 받으며, 끔찍한 기다림까지 교차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다름 아닌 그들은 이주민. 똑같은 슬픔을 느끼고 똑같은 목숨일진대, 차별 받는다. 


세월호 참사, 그 다양한 이야기와 진실의 시작


단편에 가까운 중편, 이 짧은 소설에는 참으로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 '세월호 참사'라는 당대 최대 비극이라는 층위 아래, '베트남 이주민'을 한국인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또는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더 깊이 들어가 그럼에도 존재할 '차별', 한편으론 한국은 물론 베트남까지 휩쓸고 있는 자본주의의 폐해까지. 


각 층위의 갯수와 깊이만큼 스토리의 얼개가 얇고, 그러다 보니 소설보다는 논픽션으로 읽힐 여지도 많지만, 던지는 메시지와 생각할 거리가 워낙 많고 깊다 보니 크게 거슬리진 않는다. 오히려 목적에 충실한 글쓰기와 쉬운 문체, 군더더기 없는 전개에 빨리 읽힐 뿐이다. 그러곤 다시 읽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와 층위가 보인다. 


큰 사건엔 다양한 입장과 시각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명백한 한 쪽의 잘못과 한 쪽의 명예로움만으로 비춰지는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이 아직까지도 계속 다양한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오는 게 그 예다. 세월호 참사는 이제 3년,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진실을 인양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이야기가 우리를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 우린 그 다양한 이야기를, 다양한 진실을 마주할 필요가 있다. 


<세월>이 그 시작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작가는 이 소설을 비롯해 일명 '베트남 3부작'을 내놓을 예정이라는데, 세월호 참사와는 또 다른 '한국과 베트남'의 다양한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우리가 결코 고개를 돌려선 안 되는 진실이겠다. 마음 졸이는 한편 작가의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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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의 이면까지 생각해봐야할, 할리우드식 웰메이드 영화 <히든 피겨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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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히든 피겨스>


1960년대 초, NASA에서 오직 실력으로 '흑인 여성'으로 받는 차별을 이겨내려는 세 천재의 이야기, <히든 피겨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천재에 관한 영화를 많이 봐왔다. 차별을 이겨내고 자신의 자리를 찾는 영화도 참 많이 봐왔다. 이 두 이야기를 합쳐, 차별을 이겨내고 실력으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한 천재 영화도 봤다. 모두 진중하고 장엄하고 비장하기까지 했다. 끝이 좋지 않아 비극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유쾌하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는데, 딱 그런 영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히든 피겨스>다. 


1961년, 전 세계를 반반으로 가르는 미국과 소련의 승부가 한창이다. 이른바 냉전시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을 계속하는데, '우주전쟁'도 그중 하나다. 소련의 선방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미국, 우주 비행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1958년에 개편창설된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그 중심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역사상 그 누구도 실행에 옮긴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해내야만 한다.


그 와중에 세 명의 흑인 여성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관리자로, 엔지니어로, 그리고 로켓 발사 담당자로. 출중한 실력으로 NASA에 들어왔지만,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능력에 걸맞게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럼에도 해내야만 한다. '적국' 소련에 맞서 우주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도, 차별이라는 '적'에 맞서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도 말이다.


위대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의 숨겨진 '흑인 여성'들


위대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이라는 이면, 그들이 차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흑인 여성이라는 이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숨겨진 사람들'이라는 뜻의 제목, 미국이 이룩한 위대한 우주 비행 프로젝트의 숨겨진 진짜 주인공들이 겉으로 드러난다. 모든 찬사는 당대 대통령 케네디와 NASA 국장, 로켓에 탑승해 우주로 날아간 당사자에게로 쏟아졌지만, 그 뒤엔 이름 없는 이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것. 우린 그들의 이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아니 그들의 이름이야말로 기억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영화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 그들이 다름 아닌 '흑인 여성'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1961년 당시는 비록 마틴 루터 킹의 활약이 극에 치닫고 있는 와중이었지만, 흑인 여성의 인권은 없다시피 했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당하는 어이 없는 차별을 통해 단적으로 보여준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공용 커피 포트를 쓸 수 없어 커피를 마실 수 없고 공용 화장실을 쓸 수 없어 800미터 떨어진 흑인 전용 화장실을 써야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절대적인영향력을 뽐내며 비어 있는 관리자의 일까지 더할 나위 없이 해내지만, 절대 관리자로 승진할 수 없는 처지다. 그 누구보다 대단한 학위를 자랑하지만 남자들만 하는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 물론 그 어떤 남자 엔지니어보다 출중한 실력을 자랑한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무얼까. 누구나 알고 있다, 그들이 '백인 남성'보다 월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에게 돌아가는 건 존경은커녕 일말의 믿음도 아니다. 더욱 철저한 멸시뿐. 


속시원한 차별 첼폐,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1단계의 이면과 2단계의 이면, 그런데 3단계의 이면이 있다? '누군가에 의한' 차별 철폐라는 함정이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들은 반정부·반사회적 폭력 투쟁으로 자신의 인권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철저히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절대적인 실력을 앞세워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한다. 그렇지만, 그럴 때 필요한 건 누군가의 도움 내지 깨달음이다. 누군가는 아마도 백인 남성이지 않을까. 백인 남성이어야만 이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슬프게도, 그 사실을 보여준다. NASA의 고위층 백인 남성이, 오로지 우주 비행 프로젝트를 이뤄내야만 한다는 일념 하에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는 흑인 여성을 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기 위해선 흑인 여성이 포함된 집단 자체를 부정해야 한다. 차별 받고 있는 그 집단의 존재를 없애 평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 흑인 여성은 출중한 실력을 조국을 위해 뽐낼 수 없는 것이다. 


헷갈린다. 양파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느낌이다. 이 고위층이 보여준 행동은 분명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위대한 한걸음 못지 않은 위대한 한걸음이다. 그가 보여준 파워풀한 차별 철폐는 소름 돋게 하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니다. 과정 또한 철저히 실력으로 쟁취했다고도 볼 수 없다. 그런 한편 드는 생각은, 과연 그녀가 출중한 실력이 없었더라도 백인 남성이 그처럼 차별 철폐를 시행했을까 하는 것이다. 마냥 통쾌하고 감동적이지만은 않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우리 손으로 쟁취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하면 될까.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되면, 그 누군가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 누군가의 마음이 바뀌거나, 그 누군가의 자리를 다른 누군가가 취할 때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다르다면 어찌하겠는가.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웰메이드 영화


그럼에도 영화 자체는 나무랄 데 없는 웰메이드 영화다. 그저 즐겨도 아무 이상 없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는 비록 '숨겨진 사람들'을 내세워 유쾌하게 차별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풀어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생각들'은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일부러 풀어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어쨋든 여러모로 위대한 이들의 이야기이니까 말이다. 뭘 더 바라냐,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뿌리 깊은 차별을 이기는 건 정말로 힘드니까. 


정녕 차별이 무엇인지 모르는 내가 함부로 차별과 차별 이면에 숨겨진 생각들을 지꺼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꺼릴 순 있어도 힘이 있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별에도 등급이 있듯이 차별 철폐의 방법에도 등급이 있다. 엄밀히 말해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 세 명은, '백인 사회에서의 흑인으로서 최초'가 되었을 뿐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영화는 이런 이면 속의 이면을 생각하기 민망할 정도로 유려했다. 할리우드식으로 보기 좋게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이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전통적 구성이 완벽하리만치 재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지루할 틈도 없이 생각할 틈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남는 건 영화가 말하고자 한 확고부동한 메시지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인상적인 장면들이다. 매력적인 주인공들은 기본.


요즘 상업영화의 추세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영화였다는 말도 하고 싶다. 높아진 관객의 눈을 의식한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민감한 부분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와 상업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이다. 거기에 당대가 아닌 조금이라도 지난 시대라면 수위는 높일 수 있고 범위는 넓일 수 있다. 여차하면 '영화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재미를 위해 각색을 했으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자' 하면 된다.


<히든 피겨스>는 분명 열광할 만한 소재와 주제와 만듦새를 자랑하지만, 한 번쯤 그 이면을 생각해 볼 일이다. 우주 비행 프로젝트의 숨겨진 조력자라는 1단계를 지나, 흑인 여성으로서 받았던 차별을 실력으로 돌파했다는 2단계를 지나, 차별 철폐의 과정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는 3단계에 이르길 바란다. 물론 영화는 2단계 정도까지만 생각하며 재밌게 보시고, 3단계는 영화가 끝난 후 도달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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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게 남았던 유일한 선택,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서프러제트>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6. 8.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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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프러제트>


지금은 당연한 것들 중 하나인 '민주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그 어떤 참정권 운동보다 길었다. 결정적으로 과격했다.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UPI코리아


영화 <서프러제트>는 일방적이다. 20세기 초 영국, 50년 동안 계속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끄떡없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과격해진다. 그들 말마따나 정부가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돌을 던져 건물 유리창을 박살내는 걸 시작으로, 비어 있는 건물에 불을 지르고 유력 정치가에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급진적 구호를 내건 서프러제트의 주요 활동이었다.

 

가상의 인물 ‘모드 와츠’가 어떻게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과격한 폭력 활동까지 하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전력을 다하게 되었나를 앞뒤 가릴 것 없이 직진하는 식으로 그려낸 영화는, 심오한 고민이나 산재한 문제들을 뒤로 하고 현상에 집중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역사의 한 면과 본질을 무시한 것인데, 하등 이상할 것 없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서프러제트를 이끈 전설적 인물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아닌 그녀에게 감화된 수많은 여성 중 한 명을 가상의 인물로 내세운 점만 봐도 그렇다. 감독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한다.

 

지금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될 때까지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는 걸 안다. 그중 하나가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꽃 ‘선거’다. 특히 여성과 흑인의 참정권은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의 경우 그 어떤 참정권 운동보다 길었다. 결정적으로 과격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비폭력 투쟁’과 결이 완전히 반대인바, 그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읽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흔한 여성 노동자가 용기 있는 선택을 하기까지


영화는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흔한 여성 노동자인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 분)가 남성 고용주의 부당한 심부름(남자가 해야 하는 일을 떠맡김)을 가는 도중 서프러제트에 의한 폭력 활동을 목격하며 시작된다. 이후 세탁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남녀차별에 차츰 눈을 뜬다. 우연히 엉겁결에 의회에서 증언을 하게 되는 모드, ‘인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서’ 증언했다는 진심어린 말이 여기저기 회자된다. 때문에 정부에서 찍은 요주의 인물이 된다.



세탁공장에서 일하는 흔한 여성 노종다인 모드 와츠는 우연히 서프러제트의 폭력 활동을 목격한다. 이후 세탁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차별에 차츰 눈을 뜬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여성 참정권 가부 발표가 있던 날 현장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는 모드, 감옥에서 여성의 굴욕을 맛보고는 발을 빼려 한다. 하지만 더 심해진 차별을 보고 다시 현장으로 향한다. 그때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연설을 듣고 감화된다. ‘물러서지 말아요, 끝까지 싸웁시다, 우리는 이길 거예요. 노예가 되느니 반역자가 됩시다!’ 한 번 더 잡혀갈 위기에 처한 모드, 그런데 감옥이 아닌 집 현관으로 끌고 가는 게 아닌가? 남편한테 맡기면 알아서 할 거란 말과 함께.


남편의 행동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의 진정한 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정부가 행하는 폭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편은 그녀를 쫓아내고는 아이를 혼자 키울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입장 보내 버린다. 남자인 남편의 머릿속에 뿌리박힌 사상, “‘내’ 아내이고 아이의 ‘엄마’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녀들이 맞서야 했던 건 참정권이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남자, 나아가 여자들에게도 뿌리박힌 그와 같은 사상이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달라졌을까. 지금은 물론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다. 참정권은 돌아갔지만, 뿌리 깊은 사상은 아직 인 것 같다. 여전히 여자를 ‘남편의 아내이자, 아이의 엄마’로만 생각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장 효율적으로 강한 목소리 내기, '폭력'

 

쫓겨난 모드가 갈 곳은 서프러제트 일원의 집뿐이다. 그녀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족에게까지 한순간에 내팽개쳐진 그녀는 서프러제트 활동에 매진한다. 아무도 그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상황, 가장 뼈아픈 건 같은 여성들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대다수 여성들은 위험을 무릎 쓰고 현실을 바꿀 마음이 없다.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살다가 가는 게 운명이니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20세기 초 영국, 50년 동안 계속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끄떡없다. 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과격해진다. 정부가 유일하게 이해하는 말이 ‘폭력’이기 때문이다. 서프러제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라는 급진적 구호를 내걸고 활동한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남은 건 뭘까. 격렬히 시위하고 유리창을 깨고 의회에 청원해도 그녀들의 목소리는 속절없이 묻히지 않는가. 정부는 그 행위를 ‘관심을 얻어 보려는’ 수작으로 치부하고 만다. 그렇다면 남은 건 차원을 달리하는 행동이다. 그들이 행하는 짓보다 더한 행위, 힘없고 무능하다고 여기는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유능한 행위인 ‘폭력’말이다. 그것도 생각하기 힘든 폭력.

 

폭력은 격렬한 고민을 수반한다. 아니, 반드시 수반해야 한다. 폭력이라는 건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가장 악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서프러제트는 폭력을 목소리로 인지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편으로 말이다.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남성이었기에.

 

지금 한창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페미니즘과는 결이 다르다는 걸 말할 필요가 있겠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 페미니즘에 속해 있긴 하지만, 여성 참정권은 겉으로 드러난 활동이자 시작일 뿐이다. 거기서 끝나는 건 아무 것도 아닌 것과 다름없다. 진정 쟁취할 건 ‘남녀평등’에 있겠다. 아직 여러 면에서 남녀평등은 실현되지 않았다.

 

올바른 일이라면 행동하라

 

남녀평등에 대해 말할 때 굉장히 조심하는 편이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말할 때는 가끔 말을 더듬기도 할 정도다. 조심도 조심이지만, 스스로 남녀평등에 대해 절대적이리만치 선을 그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는-’이라는 말 자체가 나오지 않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 말이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남자를 옹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민감한 사항인 군대, 결혼 얘기가 나올 때가 그렇다.

 

여자들이 ‘여자니까 ~일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할 때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영화에서 남자들의 생각에 당연한 듯 동조하는 여자들의 심리처럼 말이다. 그런 이들이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남자는~’이라고 말하면 내 머릿속에서 ‘남녀평등’이 흔들리곤 하는 것이다.


요즘 페미니즘에 관해 수많은 논란이 오고간다. 이 영화는 그 시작이 성스러웠음을 보여준다. 비록 폭력을 동반했지만, 합당한 권리를 찾기 위한 그들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했다. 영화 <서프러제트>의 한 장면. ⓒUPI코리아


 

영화는 그런 나의 고민을 붙들어 주었다. 다른 건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여성 참정권’을 되찾기 위해 전진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성스럽게 다가왔다. 올바른 일이라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거기엔 많은 고민과 고충이 뒤따르겠지만, 실제로 뒤따랐겠지만 적어도 영화는 그렇게 보여주지 않았다. 행동만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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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민주주의, 서프러제트, 에멀린 팽크허스트, 여성, 여성 참정권 운동, 차별, 페미니즘, 폭력,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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