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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singenv@naver.com Since 2013.4.16 https://linktr.ee/singenv

'종교'에 해당되는 글 10건

제목 날짜
  • '병맛' 주인공의 성장, 대립, 분열, 연대, 모험 이야기 <워리어 넌> 2020.08.17
  • 죽었다 다시 살아난 라짜로의 자본주의 세상 여정 <행복한 라짜로> 2019.07.17
  • 어른을 위한 소년만화, 그 완벽한 모범 <강철의 연금술사> 2018.10.22
  •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면, 누굴? <킬링 디어> 2018.08.03
  •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2017.08.23
  • 거장이 만든 침묵 속으로 그저 들어가보면 될 일 <사일런스> 2017.03.15
  • 멜 깁슨,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다 <핵소 고지> 2017.03.08
  • <한국인과 영어> "금일 이후 영어를 알지 못하는 분은 사회의 패잔자요"(2) 2014.05.12
  • 내맘대로 신간 수다-1310 첫째주(6) 2013.10.05
  • 우주에서 신을 몰아낸다는 바람은 이뤄질까?(10) 2013.09.12

'병맛' 주인공의 성장, 대립, 분열, 연대, 모험 이야기 <워리어 넌>

넷플릭스 오리지널 2020. 8. 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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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뷰]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포스터. ⓒ넷플릭스



7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홀로 살아남아 사지마비 상태로 보육원에서 자란 에이바 실바, 20살 되던 해 어느 날 불분명한 이유로 죽고어 수녀원으로 옮겨진다. 그날, 수녀원에 용병 집단이 쳐들어와 수녀 전사(워리어 넌) 리더 섀넌이 죽고 만다. 그들이 찾던 건 섀넌의 등에 박힌 헤일로, 신비한 힘의 원천으로 수녀 전사들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보물이다. 섀넌이 죽는 현장까지 적이 쳐들어오자, 전투 수녀들은 대항하고 수녀 한 명이 급히 헤일로를 숨기기 위해 죽은 에이바를 이용한다. 


헤일로의 힘으로 되살아난 에이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수녀원을 탈출한다. 수녀원은 발칵 뒤집히고 어쨌든 헤일로를 뒤찾고자 에이바를 쫓는다. 한편, 아크 테크라는 기업의 수장이자 천재 과학자 질리언 샐비어스는 바티칸 기록보관원 출신 크리스천의 조언을 받아 양자 역학으로 영적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만들고자 한다. 실상은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교황청과 전쟁을 선포하며, 헤일로와 함께하게 된 에이바와 이어진다. 


에이바는 사지가 멀쩡하게 다시 태어난 세상을 자유롭게 떠돌고, 에이바를 쫓는 수녀원 내부는 세력 다툼으로 파가 갈라진다. 뒤가 구린 추기경의 명을 듣고 에이바를 죽여서 헤일로를 가져와 전통 있는 헤일로 운반자로 하여금 맡게 하자는 파가 있었고, 수녀원을 담당하는 신부와 함께 몇몇 수녀 전사들은 에이바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고 헤일로 운반자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그녀를 수련시키면 된다는 파가 있었다. 각자의 복잡다단한 입장들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이야기의 행방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죽음에서 깨어나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여성의 성장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이하, '워리어 넌')는 죽음에서 깨어나 막강한 힘과 책임을 짊어지게 된 어린 여성의 성장을 다룬다. 아울러, 종교와 과학의 대립이 다뤄지며 교황청 내 세력 다툼에 휘둘리는 십자검 결사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흥미가 동할 설정임에 분명한대, 상당히 상이해 보이는 이야기들을 어떻게 짜맞출지 기대도 되지만 조마조마함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이런 설정에서 어린 여성의 성장은 대체로 그녀가 속한 조직과 조직이 속한 선의 세계가 승리하는 과정에 일조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내적 성장이라기 보다 외적 성장이랄까. 특히, 그동안엔 여성으로서 외적 성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선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결국 외적 성장도 뒤따르겠지만, 정녕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내적 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테면, 에이바는 악마의 세력으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워리어 넌의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 리더로서 헤일로의 운반자 칭호와 의무를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없다. 그녀는, 살아생전 사지마비로 힘겨운 삶을 살았고 다시 태어나 훨훨 날아다닐 정도로 자유롭고 기분이 좋을 뿐이다. 만끽하는 게 우선이다. 이후, 수녀원과 아크 테크의 회유 및 협박 및 위협 등을 통해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알고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충분하고도 넘칠 만한 고민과 한쪽으로서는 배신이라고 할 만한 행동을 하고는 돌고 돌아 길을 정한다. 이제까지의 성장 스토리와는 결이 다른 진짜 현실적인 성장 스토리, 괜찮다 싶었다. 


욕망이 대립이 선사하는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종교와 과학의 대립과 교황청 내 세력 다툼을 다루기에 앞서, 작품 속 헤일로의 역사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자 한다. 1000여 년 전 용맹한 여전사이자 최초의 전투 수녀로 신의 믿음으로 끝없는 전투에서 큰 공을 이루며 싸우던 와중 죽음을 맞이한 아레알라, 천사 아드리엘이 강림해 천사의 링 헤일로로 그녀를 부활시킨다. 반면, 아드리엘은 영원한 삶을 포기했다. 이후, 전투 수녀 비밀 집단 십자검 결사단이 꾸려져 헤일로를 지켜 후세로 전하기 위한 처절한 활동이 계속되는 것이다. 


천사의 링 헤일로를 몸 안에 심고 특별한 힘과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운명의 십자검 결사단 리더이자 헤일로 운반자, 문제는 많은 이가 헤일로를 원한다는 점이다. 짧은 시간밖에 현존하지 못하지만 너무나도 막강한 힘으로 십자검 결사단을 위협하는 악마 타라스크, 종교에의 믿음으로 약속받은 세계로 가는 다리를 막강한 에너지와 함께 과학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아크 테크, 십자검 결사단의 보수적 전통을 지키고자 하지만 동시에 그 조직의 중요성으로 말미암은 권력을 이용해 개인적 영달을 추구하는 추기경. 


와중에, 진짜 악마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적으로 선과 악이 불분명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악마 타라스크에겐 추악한 욕망이 보이지 않는 반면, 아크 테크 수장에겐 아픈 아들을 아프지 않은 세계로 데려가고자 하는 추악하다고 할 수 없는 욕망이 있다. 그런가 하면, 확신할 순 없지만 추기경은 세속적 권력과 개인적 영달으로 뒤가 구린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선 같은 악, 악 같은 선. 


주인공의 성장과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


자못 유치해 보이지만 자못 진지한 분위기의 작품을 확실히 풀어주는 이가 주인공 에이바이다. 그녀는 '병맛'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생각지도 못할 타이밍에 던져,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 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요즘 드라마구나' 하는 생각이 따라오게 만드는데, 눈쌀을 찌뿌리게 하지 않고 외려 적절하다고 생각하게 한다. 에이바로 분한 알바 밥티스타의 매력이 큰 몫을 차지하지 않나 싶다. 그녀를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지우기 힘든데, 10여 년 전 앳된 제니퍼 로렌스가 겹쳐진다. 앞날이 기대되는 배우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마라 시리즈 표준인 10화에 다다르는, 적지 않은 분량의 작품임에도 확실한 전개와 마무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스토리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며 시원시원하게 진행되지 않고, 에이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전체적 설정의 형성 과정과 설명에 상당 부분 투자했기 때문이다. 즉, 시리즈를 절대 시즌 1으로만 끝내지 않을 거라는 담대한 포부를 밝힌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주 괜찮게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어린 여성의 성장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또 다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저주받은 소녀>가 공개되었는데 이 작품이 주인공의 굴곡지지만 직선적인 여정을 중심에 두고 외롭지만 강인한 성장을 다루는 반면, <워리어 넌>은 주인공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성장의 여정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워리어 넌'으로 불리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분열과 연대를 아우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이 시대에 어울리는 적확한 스토리와 메시지 그리고 충분하고도 넘칠 다양한 재미를 선사하기에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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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황청, 병맛, 분열, 선악, 성장, 십자검 결사단, 여성, 연대, 워리어 넌: 신의 뜻대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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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다시 살아난 라짜로의 자본주의 세상 여정 <행복한 라짜로>

모모 큐레이터'S PICK 2019. 7.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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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큐레이터'S PICK] <행복한 라짜로>


영화 <행복한 라짜로> 포스터. ⓒ슈아픽쳐스



칸 영화제 철이긴 한가 보다. 매년 2월말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 맞춰 수상작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매년 5월달에 열리는 칸 영화제에 맞춰 역시 수상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수상작뿐만 아니라 노미네이트된 작품과 경쟁 부문에 진출한 작품들도 매우 많다. 올해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필두로, <로제타> <데드 돈 다이> <가버나움> <콜드 워> <아사코> <러브리스> <에어프릴의 딸> <행복한 라짜로> <해피엔드> 등 주로 작년 또는 재작년 수상작 및 진출작들이 대거 개봉했다. 의미있는 흥행 스코어를 기록한 건 <가버나움> 정도다. 


와중에 이탈리아 영화 <행복한 라짜로>가 2019년 칸 영화제 버프 시즌의 거의 마지막으로 함께 했다. 2018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으로, 알리체 로르와커라는 신예 감독의 작품이다. 그녀는 5년 전 두 번째 장편 극 영화 <더 원더스>로 2014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던 저력 있는 감독이었던 바, 세 번째 장편 극 영화 <행복한 라짜로>로 이탈리아에서 자타공인 손꼽는 감독이 되었다. 


영화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되살아난 나자로 이야기를 모티브로 마술적 리얼리즘이 가미된 시간여행과 공간여정을 내보인다. 즉, 한 편의 아름다운 우화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레고리적으로 풀어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풍성한 시골과 삭막한 도시를 비교하며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면 면면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라짜로'로 수렴되는 이야기의 맥락을 짚어보고자 하는 작업이 따라 온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시골 마을의 만능일꾼 라짜로, 죽었다 다시 살아나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이탈리아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 마을 사람들은 한가족처럼 지낸다. 크나큰 마을에 집이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곳에 있는 몇 개의 방에 몇 명 혹은 몇십 명이서 같이 지내는 것이다. 분명 때가 중세시대 혹은 근대 이전 시대가 아님에도 그들은 모두 알폰 시나 후작 부인의 '소작인'이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라짜로는 잡일부터 몸 쓰는 일까지 두루두루 맡아 하는 '만능일꾼'이다. 후작 부인은 마을 사람들을 부려 먹고, 마을 사람들은 라짜로를 부려먹는 것이다. 후작 부인과 마을 사람들 사이엔 관리인이자 집사 니콜라가 존재한다. 


어느 날 후작 부인은 아들 탄크레디와 함께 인비올라타로 행차한다. 도시 사람 탄크레디는 별종인데, 본인을 이 착취구조에서 예외적 인물로 생각하는지 라짜로에게 접근해 착취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도 모자라 자신과 라짜로가 배다른 형제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댄다. 순수한 선(善)의 결정체와 같은 라짜로는 그 말을 믿는다. 그날도 라짜로는 열심히 착취 당하며 일을 하다가 몸이 아파 드러누웠다가 일어나서는 탄크레디를 찾으러 나선다.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져버린다. 


한편, 탄크레디의 해괴한 자작납치극 때문에 후작 부인의 '대사기극'이 탈로 나 인비올라타는 외부에 개방된다. 마을 사람들은 해방되어 도시로 향한다. 몇십 년이 흘러, 죽은 게 분명했던 라짜로는 다시 살아나 도시로 향한다. 늙지 않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채 마을 사람들을 하나둘 만난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라짜로는 왜 다시 살아난 것일까. 


네오 리얼리즘의 실화와 마술적 리얼리즘의 우화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현대 시대에 소작인 제도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실화'를 가져와서는 죽은 자가 죽었던 모습 그대로 몇십 년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우화'에 입혔다. 실화는 영화 전반부에 해당하고, 우화는 영화 후반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각각 네오 리얼리즘과 마술적 리얼리즘의 자장 안에 있다. 이 둘을 이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라짜로이다. 


네오 리얼리즘이라 하면 전후(戰後) 이탈리아의 비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특징을 갖는데, <행복한 라짜로>의 전반부 실화가 이와 결을 같이 한다. 산 넘어 물 건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또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인비올라타 주민들은, 소작인 아닌 '노예'로서 후작 부인에게 빚으로 저당 잡힌 삶을 영원히 살 수밖에 없다. 불과 몇십 년 전 이탈리아의 시골 마을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다름 아닌 우리네 현재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난 2014년 세간을 뜨겁게 달궜던 '신안 염전노예' 사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하면 20세기 혼란스러웠던 중남미의 내면을 고백하려는 특징을 갖는데, <행복한 라짜로>의 전체에 걸쳐 이와 결을 같이 한다. 현실에 두 발 딛고 서 있지만 지극히 환상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을 소작인으로 부려 먹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와 죽은 자가 몇십 년 후에 그대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말이다. 


변한 것 없는 라짜로의 과거 시골과 현재 도시 시간공간여행은, 시골에서 소작인으로 지냈던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나와 좀도둑질이나 하면서 집도 없이 생활하고 있는 모습과 아이러니를 이룬다. 영화는 라짜로의 여행을 통해 세상과 시대와 장소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으니, '착취'가 그것이라고 말한다. 후작 부인에 의한 욕망 어린 가학적 착취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한 감춰진 우아한 착취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골에서 본인들만 알아채지 못했던 비참한 삶을 살았던 그들은, 이제 도시에서 만천하가 잘 아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종교적 색채와 실재하는 현실


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슈아픽쳐스



영화는 종교적 색채가 매우 강한 듯하다. 주인공 라짜로를 대상화하여 여러 장면들에서 기독교 성경의 부분들을 차용한 것이다. 그것이 다름 아닌 '우화'로 작용하는 한편 마술적 리얼리즘적 요소를 보여줌에 있어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영화가 어렵다고 느낄 수 있는 데가 바로 이 부분인데, 그러나 감독은 종교적 색채를 꼭 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되게끔 장치를 해두었다. 


라짜로를 중심으로 영화를 보면 종교적이지만, 라짜로 아닌 마을 사람들이 변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종교의 신성함 아닌 다분히 실재하는 현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우린 라짜로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킬 때, 손가락(라짜로)를 봐도 되지만 달(마을 사람)을 봐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일부러 라짜로를 한없이 착하고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캐릭터로 만들어놨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우리를 인도하는 객체일 뿐 그 자신이 주체가 되는 걸 바라지 않는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은 먹먹하고 슬프다. 하지만, 라짜로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먹먹하고 슬픈 와중에도 그저 눈물 흘릴 뿐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시골에서의 순수한 선(善) 결정체가, 부활하여, 도시에서의 성자(聖者)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뒤틀림'이 보이니 성자임에도 라짜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는 다시 만난 마을 사람들에게서도 쓸모 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데, 할 수 있는 건 성스러운 음악을 따라오게 하는 것뿐이다. 이 얼마나 쓸모 없는 성스러움인가.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쓸모'는 전부다. 돈도 못 벌어오는 쓸모 없는 성스러움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변함 없는 라짜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쓸모가 이 세상의 전부라면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쓸모가 수단뿐만 아니라 목적에로까지 침식해 들어갔다 하여도 말이다. 우린 라짜로를 발견해내야 한다, 라짜로의 진짜 모습을 알아차려야 한다, 라짜로의 진가를 추구해야 한다, 라짜로의 쓸모를 재정립해야 한다. 그것 또한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가치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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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리얼리즘, 마술적 리얼리즘, 부활, 시골 마을, 실화, 우화, 자본주의, 종교, 칸 영화제, 행복한 라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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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소년만화, 그 완벽한 모범 <강철의 연금술사>

생각하다 2018.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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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책 다시읽기] <강철의 연금술사>


<강철의 연금술사> 세트 표지들 ⓒ학산문화사



어릴 때 족히 수천 권을 봤을 일본 만화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니 남는 건 별로 없다. 스마트폰 출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게 된 만화도 그 피해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도 만화 편력도 그와 함께 변해가는 중일 테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서재를 차지하고 있는 만화책들이 있다. 어김없이 매해 다시 본다. 


웹툰책을 제외하고 순수 만화책은 손에 꼽는다. 데즈카 오사무의 <아돌프에게 고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 <20세기 소년>, 그리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강철의 연금술사>가 그것이다. <슬램덩크> 정도 들여놔야 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예전만큼 재미있지가 않다. <슬램덩크>를 위시해 일명 '소년 만화'들이 이젠 시시하달까?


일본 만화계의 수장 '소년 점프'는 1980년대부터 익히 말 한만 만화들을 쏟아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드래곤볼> <슬램덩크> <유유백서>도 압도적 평정을 한다.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도 도약한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소년 점프'의 두 번째 최전성기 한 가운데에 나왔다. 


배틀물이 최강세인 일본 만화계에서 <강철연>은 일명 '원나블'의 상업적 인기에 미치진 못했지만, '어른들의 소년 만화'를 완벽하게 구현해내어 완결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받고 있다. 연재 당시에도 '상업적' 인기가 아닌 순수 단행본 판매만 비추어볼 땐 <원피스>에 이은 2000년대 최강자 중 하나였다.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죽은 엄마를 되살리기 위해 연금술로 인체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 그 자체. 엄마라고 하기 힘든 무엇인가가 연성되었다가 바로 죽어버렸고, 에드는 왼쪽 다리를 알은 몸 전체를 잃고 만다. 에드는 오른쪽 팔을 희생하여 겨우 알의 영혼을 갑옷에 정착시킨다. 


에드와 알은 원래대로 돌아가기 위해 '현자의 돌'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그것은 연금술의 기본 법칙인 등가교환을 무시하고 대가 없는 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전설의 돌이다. 불로불사를 가능하게 해준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지없이 이 나라, 아니 이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음모가 감추어져 있다. 


일반 사람이라면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들은 군부의 개가 되기를 자처한다. 국가 연금술사가 된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 에드워드 엘릭과 동생 알폰스 엘릭은 현자의 돌을 찾아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소년만화답게 진지한 와중에 '빵' 터지는 유머를 잃지 않으며 판타지 세계는 아니지만 판타지적인 요소가 짙게 스며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배틀 액션이 기본으로 물고 물리는 캐릭터들의 향연이 이채롭다. 한편 '어른'의 소년만화답게 낯간지럽지 않은 진지 키워드와 주제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반전(反戰), 종교, 민족, 과학, 신, 도덕, 장애, 여성, 신념 등... 묵직한 개념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극을 이끌어간다. 


다양한 캐릭터들의 훌륭한 조화


<강철연>은 역대급 인기 만화답게 많은 콘텐츠로 재탄생되었다. 만화(책)으로 시작해 애니메이션 2번, 극장판 2번, 실사 영화와 소설과 게임까지. 그러면서 중점적으로 내세우는 주제와 캐릭터들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바뀌지 않는 건 시작부터 끝까지 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스토리이다. 


매주 연재되면서 앙케이드 조사를 통해 등수를 매기는 일본의 만화 시스템 덕분에 더 재미있고 또 독자의 입맛에 맞춰진 콘텐츠가 탄생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뒤로 갈수록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경향이 심하다. 많은 인기 만화들이 그렇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반면 이 만화는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히 세팅되어 있거니와 끝까지 휘둘리지 않고 고수한 듯 스토리가 이어진다. 아마도 메이저 잡지에서가 아니라 중소 규모의 잡지에서 연재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극을 이끌어 나가는 가장 큰 주체는 에드와 알을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이다. 그 어떤 만화 아니 콘텐츠에서도 마찬가지일 터, 하지만 이 만화에서 에드와 알의 여정 비중은 갈수록 줄어든다. 상당한 강수이자 모험인데, 결론적으로는 대성공, 거의 모든 캐릭터들이 자기 맡은 바 임무(?)를 훌륭히 소화해낸 것이다. 


임무란 다름 아닌 신념을 바탕으로 한 이상, 협력과 적대와 독주를 하면서도 누구 하나 신념을 잃지 않는다. 신념들이 대립하지만 궁극적이고 모두를 위한 곳으로 모이기도 한다. 가장 중심적인 주제이기도 한 '하나는 전체, 전체는 하나'를 몸소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만화는 두 주인공뿐 아니라 많은 주조연 캐릭터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고 또 가지게 된다. 거기에 어떤 동정이나 자학 또는 자격지심이 없다. 한없이 슬퍼하면서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여성 캐릭터들의 강함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에드와 알의 스승인 이즈미 커티스, 아메스트리스 최북부를 지키는 브릭스 요새 사령관 올리비에 밀라 암스트롱, 불꽃의 연금술사 로이 머스탱의 부관 리자 호크아이를 비롯 동쪽의 싱에서 온 란팡과 메이 창 등 육체적·정신적으로 생각하기 쉽지 않을 정도의 강함을 자랑한다. 작품의 핵심에 가까운 캐릭터들이기도 하다.


<강철연>만의 특장점, 진지 키워드


이 '소년만화'만의 특장점이기도 한 진지 키워드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은 상대적으로 만들기 쉽고 보기에도 편안하다.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만 이야기될 뿐 콘텐츠에서 파생되는 건 없다시피 할 것이다. 반면 선과 악의 모호한 구도는 만들어 내기도 어렵거니와 즐기기도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을 보여주는 진정 위대한 콘텐츠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게 분명하다. <강철연>은 후자의, 그런 콘텐츠다. 각자의 신념이 중요하고 우선이며 선과 악은 상대적 개념일 뿐이다. 


아메스트리스는 킹 브래드레이의 철권 통치 아래에 있는 군부독재국가이다. 사방에 적이 있거니와 수많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왔다. 그중에서도 '이슈발 내전'은 가장 큰 내전이었거니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에 군(軍)이 있는데, 고증이 철저한 군대 체계와 전쟁 상태, 전투 기술 그럼에도 어둡기 짝이 없거니와 비극적으로 그려지는 전쟁이 그것이다. 즉, 전쟁 관련 장면이 나오면 나올수록 반전이 기술되어지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는, 이슈발 내전의 이유는 종교와 민족이다. 아메스트리스와 명백히 종교와 민족이 다른 것이다. 이슈발인은 유일신을 믿는 반면, 연금술의 나라 아메스트리스는 과학이 우선이다. 합리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의 눈에 종교는 가장 합리적이지 않은 개념일 테지만, 그들을 없애버리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진리인지는 절대 확신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만화는 거기에 이어 과학의 도덕성에까지 들어간다. 


만화가 도달한 곳은, 에드와 알이 도달한 곳은, 수많은 캐릭터들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등가교환'에서 출발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 만화는 연금술로 등가되는 과학의 갈 길을 생각하고 있는 듯도 하다. 과학의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진지한 고민. 만화는 에드와 엘이 도달한 법칙, 일명 '등가교환을 부정하는 새로운 법칙'으로 대신한다. '10을 받으면 자기의 1을 더 얹어서 11로 만들어 다음 사람에게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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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연금술사, 과학, 군사, 민족, 선악, 여성, 여정, 장애, 종교, 캐릭터, 현자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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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면, 누굴? <킬링 디어>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8. 8.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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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킬링 디어>


영화 <킬링 디어> 포스터. ⓒ오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 중 한 명 에우리피데스, 그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가 전해진다. 그리스 연합군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아울리스 섬에서 함대를 출발시켜 트로이로 진격해야 했는데, 바람이 멎는 바람에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예언자 칼카스를 통해 수호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풀어야 한다는 신탁을 듣는다.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이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는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다. 그렇게 아가멤논은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리스의 영웅이 된다. 


<송곳니>, <더 랍스터> 등으로 전 세계 평론가들과 씨네필들의 열열한 지지를 받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모티브 삼아 신작 <킬링 디어>를 만들었다고 한다. 운명, 딜레마, 가부장제 등의 이야기와 질문과 비판을 곁들였다. 가히 고대 그리스 최고 작품에 비견될 만한 각본의 성취를 인정받아 제70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치밀함을 엿보자. 


가족 중 한 명을 골라 죽여야 한다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외과의 스티븐(콜린 파렐 분)에겐 젊은 친구가 한 명 있다. 마틴(배리 케오간 분)이라는 이름의 그 친구는 스티븐의 큰딸 학교 친구로 스티븐처럼 심장병 전문의가 되고 싶다고 한다. 병원에도 들르고, 산책도 같이 하고, 서로의 집도 오간다. 마틴의 집에 갔을 때 마틴 엄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온 후 스티븐은 마틴의 연락을 피한다. 


집착적인 행동을 보이는 마틴,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븐 가족들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된다. 먼저 작은아들 밥이 두 다리를 쓸 수 없어진다. 육체, 정신, 심리 검사를 다 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머지 않아 밥은 밥도 먹지 않게 되고, 큰딸 킴도 두 다리를 쓸 수 없어진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마틴이 스티븐에게 설명한다. 사실상 협박이다. 마틴의 아빠가 스티븐에게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맡은 환자였던 마틴의 아빠는 수술대 위에서 죽었다. 마틴은 스티븐이 자신의 아빠를 죽인 것처럼 스티븐이 자기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균형이 맞는 게 아니냐고. 


만약 스티븐이 직접 죽이지 않는다면 모두 병들어서 죽을 거라는 것이다. 밥이 죽고 킴이 죽고 스티븐의 부인 안나(니콜 키드만 분)도 죽을 거란다. 수족이 마비될 것이고, 먹는 걸 거부해서 기아에 허덕이게 될 것이며, 급기야 눈에서 피가 흐를 거고, 결국 죽을 거라고 말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예언을 믿을 수밖에 없는 스티븐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정말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일 것인가, 죽인다면 누굴 죽일 것인가. 


종교적 운명과 우연적 딜레마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신의 노여움을 사서 결국 큰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스티븐은 마틴의 분노를 사서 결국 자기 가족 중 한 명을 직접 죽일 수밖에 없게 될 운명에 처한다. 거스를 수 없는 운명처럼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일들 때문에 우연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신의 힘에 의해 이미 정해진 처지를 바꿀 능력 따위는 인간에게 없다. 특히 과학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인간에게 들이닥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모습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해보겠지만, 그저 지켜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종교라는 게 그런 것인가,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게 그런 것인가. 


영화는 운명의 굴레에 종속되어버린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종교의 한 면모를 통렬하게 비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한편, 이미 운명의 굴레 속에 들어간 또는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 일개 인간이 겪는 끔찍한 딜레마도 보여준다. 과연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말이다. 


운명이 신의 영역이라면 딜레마는 인간의 영역이다. 운명이 선택되어지는 거라면 딜레마는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 선과 악이 나뉘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치명적이고 어렵기 그지없다. 그럴 때 찾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이다. 절대로 선택할 수 없는 난제에 부딪혔을 때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타개하려는 게 그것이다. 영화는 딜레마에 처한 한 인간의 나약함과 무책임한 모습을 통해 종교를 비꼬고 운명을 무시하는 이들도 통렬하게 비꼬고 있는 것 같다. 


가부장제


영화 <킬링 디어>의 한 장면. ⓒ오드



자, 우리 스티븐의 얼굴을 보자. 얼굴을 뒤덮다시피 하는 '털'의 존재를 볼 수 있다. 밥은 마틴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줄 것을, 마틴은 스티븐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줄 것을 청한다. 이 세 남자 사이에서 나이순대로 보여지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털로 상징되는 권력, 그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모습이다. 


극중에서 안나는 말한다. 왜 남편이 잘못한 걸 가지고 남편 아닌 가족들이 피해를 봐야 하느냐고 말이다. 신의 대리인 마틴의 논리는 스티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티븐'이 마틴의 아빠를 죽였으니, '스티븐'이 자신의 가족 중 한 명을 죽여야 한다는 것. 등가교환이라면 스티븐이 죽어 마땅하나, 신은 '가부장제'라는 절대적 법칙을 만들어 내렸으니 가장인 스티븐이 주체가 되어 가족을 죽이는 '고통'을 맞보아야 한다는 것.


이 진중하고 으스스하고 가슴 졸이게 하는 영화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당연한 듯 하나하나 실행되고 실행에 옮기려고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이기도 하다. 아마도 그렇게 느끼면 느낄수록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게 그만큼 철처히 들어맞았다고 할 수 있겠다.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비꼼. 


여러 가지 것들을 통렬하게 비꼬는 와중에 그에 걸맞지 않아 보여 그 비꼼의 수위가 더욱 강해지게 만드는 분위기 연출에는 OST의 역할이 지대했다. 클래시컬한 OST들은 영화를 굉장히 날카롭고 불편하게 만든다. 모든 배우들이 발성하는 높낮이 없는 낮고 무성의한 목소리톤과 기묘하게 어울린다. 두 번 다시 보기 싫은 영화이지만, 여러 가지 의미로 두 번 이상 봐야 할 것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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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가족, 그리스 비극, 딜레마, 요르고스 란티모스, 종교, 죽음, 킬링 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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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콘택트>

오래된 리뷰 2017.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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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리뷰]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콘택트>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포레스트 검프> 등으로 익숙한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의 숨겨진 명작 <콘택트>. ⓒ워너브라더스



1980년대 '스타워즈'와 쌍벽을 이루며 그야말로 역대급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백 투 더 퓨쳐'. 그 단편적인 재미만큼은 그 어느 콘텐츠도 따라잡을 수 없을 영화 시리즈였다. 스타워즈에 조지 루카스가 있었다면, 백 투 더 퓨쳐엔 로버트 저메키스가 있었다. 이후 그는 작품성으로 선회하는데, 우리가 모를 리 없는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다. 


1994년 <포레스트 검프>, 2001년 <캐스트 어웨이>,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등이 그것이다. 이쯤까지가 그가 1990년~2000년대 초반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리우드 영화' 도식을 만들고 알린 시기이다. 기본적인 대서사의 지붕 아래,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유머와 약간의 감동과 약간의 사연과 약간의 전문지식 등이 생동하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즐기며 동시에 감정이입과 몰입까지 할 수 있다. 


이 와중에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을 영화 한 편이 있다. 1992년작 <죽어야 사는 여자>는 아니고, 2000년작 <왓 라이즈 비니스>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1997년작 <콘택트>이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장편소설을 영화한 작품으로, 전문적인 지식과 문학적 유흥의 완벽한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현실


현실과 지극히 동떨어진 일을 하는 우주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현실과 지극히 연결되어 있다. ⓒ워너브라더스



앨리 애로웨이(조디 포스터 분)는 어릴 적 매일같이 모르는 이의 교신에 열중했다. 일찍 세상을 떠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끼고 좋아해줬지만 9살 때 세상을 뜬 아버지.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수학과 과학 분야에 인생을 건다. 과학이야말로 진리 추구의 해답이거니와 '거대하고 거대한 우주에 오직 지구 생명체만 존재한다는 건 공간 낭비다'라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그 신념은 지구 아닌 우주에의 인간 아닌 생명체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긍정하게 되는 것으로 발현되고, 그 생명체가 보내는 신호나 메시지를 잡아내 결국에는 그들과 접촉하고자 하는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그녀는 보장된 자리를 내팽겨치고 미래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일개 프로젝트 그룹을 이끌며 나라의 돈을 받아 천문대를 돌아다닌다. 


'위대한' 일을 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는 과학자들, 하지만 그들도 자본의 지원이 없으면 나라의 동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애로웨이처럼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라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 소속되어 안정된 상황에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는데, 그건 더더욱 불가능하다. 일정 정도의 논문은 물론이고 행정과 정치도 병행해야 하는 곳이 그런 곳이다. 


애로웨이는 가히 그 출중한 실력으로 몇 년에 걸쳐 수많은 난관을 뚫고 중요한 발견을 해낸다. 외계 생명체가 보낸 것으로 추측되는 신호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그 공은 고스란히 그녀의 프로젝트에 가차없이 지원을 끊어버린 국가에서 가로채버린다. 그러곤 군대까지 대동한 검열도 시행한다. 일개 개인의 위대한 발견은 곧 나라의 위대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런 과학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상과학 영화가 보여주는 지극히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종교와 과학, 이중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


기독교 나라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종교가 최우선이지만 과학 또한 그들이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워너브라더스



애로웨이가 수신한 신호는 1936년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 연설이 송출된 후 다시 보내진 것이었다. 지구를 침공한다는 둥 비상식적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을 내뱉으며 애로웨이의 공을 깎아내리는 국가, 이에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그 영상의 프레임 사이에 있는 디지털 신호를 알아낸다. 그 신호는 다름 아닌 운송 수단, 외계를 오갈 수 있는 운송 수단 설계도였던 것이다. 


이전과 똑같이 다시금 애로웨이의 공을 뺏어가는 국가, 각 나라의 대표를 뽑아 외계로 향하는 운송 수단에 탑승시킨다. 하지만 애로웨이는 그 대표에 낄 수 없었다. 그녀가 종교를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다는 이유였다. 어이없고 황당하지만 대표를 뽑는 대통령 직속 고문단에는 당연히 종교인 팔로 조스(매튜 맥커너히 분)도 있었다. 그와 그녀는 사랑도 나눈 사이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나라에서 과학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이중적이기 그지 없다. 과학자로서 객관적인 데이터로 판단하건대 신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을 텐데,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절대자를 믿는다는 주장 하에 그녀의 신념은 묵살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무신론자인 그녀는 가장 큰 공을 세우고 나서도 역사적인 믿음과 대다수의 사람들의 바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대표로 선별되지 못한다. 과학자의 비애임과 동시에 '종교는 종교대로 과학은 과학대로'라는 절대적 이성적 잣대의 아이러니한 차별이다. 


여기서 영화가 나아갈 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확연히 보인다. '조화'. 절대로 맞물리지 못할 것 같은 과학과 종교의 화합. 신은 믿지 못하되 외계생명체 존재는 믿는 애로웨이 박사와 신에의 절대적인 믿음의 팔로 조스 신부가 방향과 신념은 다르되 '진리에의 추구'라는 지향점은 같다는 결론까지. 그건 서로를 존중하고 믿는 것일 테다. 자신이 믿는 바의 중심을 지키면서 상대의 중심에게 다가가기. 


과학에서 종교로, 종교에서 과학으로의 인정에의 희망


영화는 주인공 애로웨이를 통해 말한다. 과학과 종교에의 화합을 말이다.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가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 ⓒ워너브라더스



인간 대표들의 외계 탐험은 결국 무산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애로웨이는 비밀리에 진행되는 똑같은 종류의 외계 탐험 프로젝트에 참여해 수송선에 탑승하게 된다. 그녀는 기이하고 기이한 일을 겪고 돌아오는데, 전세계 모든 이가 지켜본 그녀의 경험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주장하는 18시간은 1초도 되지 않은 찰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국 청문회가 열리고 누구의 말이 맞는지 설전이 이어진다. 


과학자 애로웨이 박사의 과학자답지 않은 발언이 이어진다.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와중에 오로지 그녀의 주장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1조 달러 정도의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간 초국가적 프로젝트인 것,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만한 사안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과학자적인 신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직접 경험했고 다같이 나누고 싶기 때문에. 


"제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린 우주에 속해 있는 위대한 존재이며 결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전 그 경험을 모든 분들과 나누고 싶어요. 그게 바로 제 희망입니다."


과학자로서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발언이다. '절대자'를 믿는 종교인과 '절대적' 데이터를 믿는 과학자. 그녀는 과학자로서 과감히 한 축을 무너뜨리는 생각과 발언을 한 것이다. 과학의 끝에 영적 경험이 있을 수 있고, 영적 경험을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있을 테다. 또한 인간 그 자체로서의 위대하고 완벽한 존재의 발현과 동시에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의 발현, 이는 과학과 종교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다. 그걸 모든 이들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게 그녀의 희망이고 이 영화가 바라는 바이다. 


이 영화의 원작소설을 지은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였지만 마냥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과학적으로도 생각해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신이 자신을 본떠 만들었다는 '위대한' 존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지를 말이다. 그건 외계생명체와의 끈임없는 접촉과 대화 시도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절대자의 부정과 동일선상에서 이루어져서는 안 되겠다. 상호존중과 자가보완이 함께 나아가는 길이다. 그것이 모든 이의 행복과 그 기반 위의 진보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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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만든 침묵 속으로 그저 들어가보면 될 일 <사일런스>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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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사일런스>


영화계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일본이 낳은 거장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메인타이틀 픽쳐스



17세기 중반 일본, 천주교 박해가 한창이다. 그 한가운데에서 떨고 있는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 분). 그의 표정을 보니 흔들리는 것 같다. 그렇게 그의 소식은 끊겨버렸다. 몇 년이 흘렀다.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인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 분)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 분)가 스승의 부정적 소문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일본으로 떠난다. 물론 복음 전파의 목적도 있었다. 


페레이라 신부의 부정적 소문은 다름 아닌 '배교'였다. 불교로 개종하고는 일본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두 신부는 마카오에서 일본인 안내책 키치지로를 만나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그들을 맞이한 건 철저히 종교적 신념을 숨기며 살아가는 독실한 천주교도들이었다. 모두 일본인으로, 두 신부를 철저히 숨기며 극진히 대접한다. 두 신부의 복음 전파 목적은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볼 일본 정부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적인 거장 마틴 스콜세지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이후 3년 만에 <사일런스>로 신작 나들이를 했다. 러닝타임은 20분이나 줄었지만, 묵직함은 족히 20배는 늘었다. 일본이 낳은 거장 엔도 슈사쿠의 1966년작 <침묵>을 원작으로, 스콜세지가 1988년부터 30여 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두 거장이 만든 침묵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면 될 일이다. 


'믿음'과 '배신'의 아이콘, 그저 '인간'일 뿐


'믿음'의 로드리게스 신부. 하지만 그는 끝없이 의심한다. 침묵하는 신의 존재를. 그것도 응답의 일종일까. ⓒ메인타이틀 픽쳐스



영화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출현한다. 포르투갈 출신의 두 신부, 그들이 찾고자 하는 페레이라 신부를 제외하면 전부 일본인이다. 모두 독실한 천주교도. 그 중에서도 로드리게스 신부와 키치지로가 극 전체를 이끈다. 절대적 믿음의 아이콘 로드리게스, 배신의 아이콘 키치지로. 


이 둘의 모습은 예수와 베드로 또는 유다를 연상시킨다. 정작 우리가 그들을 통해 보게될 인상 깊은 모습은 '믿음'과 '배신'이 아니다. 로드리게스는 눈앞에 펼쳐지는 지옥에서 믿음 못지 않은 의심을 품는다. '이 고통의 순간에 신은 왜 침묵하십니까.' 키치지로는 오직 살기 위해 몇 번이고 신을 배신하지만 그때마다 로드리게스를 찾아와 고해성사를 한다. '신부님, 용서해 주십시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겐 '인간'의 본능이 선한다. 나 때문에 누군가가 죽는 걸 볼 수 없다. 천주교 박해의 중심에 있는 일본인 총독은 로드리게스는 놔둔 채 일본인 신자들만 죽인다.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로드리게스의 신의 부정. 즉, 일본인 신자들은 로드리게스 때문에 죽어가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신을 부정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수많은 일본인 신자들 옆에서 간단히 신을 부정하고 살아서 도망치는 키치지로. 그 나름대로 마음 속에선 끊임없는 신을 향한 의지가 불타지만 겉으로는 살기 위해 신을 부정할 뿐이다. 그 누구도 그를 무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죽고 싶은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세상이었다. 삶이 곧 지옥이 그들은 죽어서 천국에 가길 원할 뿐이다. 


믿음과 믿음, 신념과 신념의 가학적 충돌


참으로 무섭다. 종교의 우산 아래에서 믿음과 믿음, 신념과 신념이 충돌하는 모양이. 그 모양새란 게 정말 잔인하다. ⓒ메인타이틀 픽쳐스



로드리게스를 분한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이 돋보인다. 지난 2월 22일에 개봉한 <핵소 고지>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교에 입각한 기적의 신념을 보여준 데스몬드 의무병을 연기한 그다.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들 앞에서 데스몬드는 자신 한 몸을 던지는 의지를 선보이고, 로드리게스는 신을 찾아 울부짖으며 기도를 드린다. 


영화는 박해 받는 천주교도의 여러 군상들을 그저 보여준다. 장황한 설명보다 직접적인 행동과 나름의 생각들을 앞세운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이들, 그들은 현세의 지옥보다 사후의 천국을 원한다. 불교 행세를 하는 독실한 신자들,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들은 정부의 단속을 피해 자신의 믿음을 이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키치지로를 위시한 배교·배신과 복귀·믿음을 반복하는 자들. 적어도 완전한 배교·배신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점이 조금 거슬리는 부분인 바, 어떻게 한 명도 완전한 배교·배신을 시행하지 않는 것인지? 키치지로가 가롯 유다를 상징하는 거라면, 그는 회개가 아닌 지극히 인간적인 후회를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베드로를 상징하는 거라면, 후회가 아닌 회개가 맞을 것이다. 이 부분을 애매하게 보여주었기에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당시 일본의 국교인 불교에 대해선 로드리게스의 통역관과 총독이 그야말로 장황하게 설명을 가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종교가 있다. 왜 여기에 너네 종교를 퍼트리려 하느냐.' '일본 땅에 천주교를 선교하려는 이기심 때문에 일본인들이 죽어가는데, 그걸 바라느냐.' 등이다. 이 또한 절대적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믿음과 믿음의 충돌. 단순히 생각하면 선교를 포기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건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일.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건 국가적 신념에 어긋나는 일. 불가능하다. 어떤 신념이 옳고 어떤 신념이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 그저 그렇게 사람이 죽어갈 뿐이다. 


의아한 모습들, 그럼에도 침묵에 응답하려는 신앙의 위대함


논란의 요지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지만, 신앙인만이 보일 수 있는 모습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위대하다. ⓒ메인타이틀 픽쳐스



천주교 미화 영화로 비춰질 요지가 다분하다. 신의 침묵에 의심을 품고, 신의 침묵을 질타하고, 신을 부정하고 살아남는 것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신은 다 괜찮다고 말한다. 그 모든 게 다 신이 그린 큰 그림 안에 있다. 이 지옥보다 더 한 고통과 절망, 죽음조차도 말이다. 


몇몇 장면들에서는 의아한 모습들이 포착된다. 적어도 기독교 입장에서는 말이다. 예수가 그려진 판은 밟지만 마리아가 그려진 판에는 침을 뱉지 못하고 죽음을 당하는 모습. 일본인 신자들이 신부를 보자 환호하며 그를 마치 신처럼 떠받드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오로지 신부를 통해서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고해성사를 할 수 있는 모습.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숭고하다. 모든 의구심과 논란을 뒤로 하고, 로드리게스 신부에 집중해보자. 신앙인이 아닌 이도 '신앙'이 같는 위대함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신앙을 갖는 '신앙인'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믿음의 근본인 신이 '침묵'함에도 불구하고, 그 침묵에조차 충실히 '응답'하려는 의지 말이다. 침묵에 대한 응답에의 의지는, 그 자체로 '믿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비록 거기에 끝모를 '의심'이 함께 한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은 대단한 영화, 또 보긴 싫다


참으로 어려운 영화였다. 어느 한 쪽으로만 생각을 치우칠 수 없게 만드는 바, 만든 이들의 숙고와 노력이 각인되어 오래토록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대단한 '의미'를 동반한 반면, 대단한 '재미'는 동반하지 못했다. 완벽한 배경과 연기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진 않을 것 같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영화는, 언제든 다시 보고 영화에 대해 꺼리낌 없이 말하고 계속해 재해석할 수 있는 영화이다. 


실망을 했다는 차원과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앤드류 가필드에 대한 호감도는 상승했고, 그들의 차기작도 기대된다. 이런 류의 영화를 이 정도로 찍고 연기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어떤 모습을 선보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일견(一見)을 권하진 못하겠다. 완벽한 연출과 연기와 배경보다 신앙과 종교가 더 많이 다가올 수밖에 없는데, 다름 아닌 그 부분이 거슬릴 요지가 다분하다. 영화를 포함한 모든 콘텐츠엔 '장르'가 존재하지만, 거기에 종교와 신앙이 앞세워지면 모든 것들을 흡수해버린다. 예를 들어 '전쟁 영화'는 엄연히 장르를 구분하는 용어가 아니다. 소재를 나타내는 용어이지만, '전쟁'이 모든 걸 흡수해버린다. 정확히는 액션, 드라마 정도일 것이다. 종교와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이 영화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애초에 그걸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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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스콜세지, 배신, 불교, 사일런스, 신념, 신앙, 앤드류 가필드, 인간, 일본, 종교, 천주교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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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다 <핵소 고지>

신작 열전/신작 영화 2017. 3. 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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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멜 깁슨의 <핵소 고지>


10년만에 감독으로 돌아온 멜 깁슨. <핵소 고지>는 상타려고 만든 영화이자, 그의 영화관이 집약되어 있는 영화다. ⓒ판씨네마



멜 깁슨이 10년 만에 감독으로 돌아왔다. 손꼽으며 기다리는 정도는 아니나 일정 정도 이상의 기대는 하는 감독이다. 특히 이번 작품 <핵소 고지>는 그의 전작들이 가졌던 장점들만 모아놨다는 평을 듣는 전쟁영화인 바, 기대가 더 높아졌다는 걸 인정한다. 더불어 주연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가 스파이더맨 이미지가 굳혀질 것 같을 때 선택한 두 영화(<사일런스> <핵소 고지>) 중 하나이기에 더 관심이 갔다. 


멜 깁슨의 행보는 특이하고 영리하다. 1980~90년대 <매드 맥스> <리썰 웨폰> 시리즈 등으로 명성을 떨치고 많은 돈을 모으더니 돌연 연출을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공고히 했다. 1993년에 데뷔해 25년 가까이 5편을 연출한 된 베테랑 감독이기도 한데, 그동안 많은 논란을 뿌리면서도 탁월한 리얼리즘 액션과 고민하는 개인 심리 그리고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메시지 전달은 변치 않았다. 


어렸을 때 멜 깁슨이 주연한 <브레이브 하트>(당시에는 멜 깁슨이 연출과 감독 모두를 맡은 사실을 알 수 없었다)를 보고 상당히 감명을 받은 기억이 있다. 특히 장활한 연설 끝에 '프리덤!'을 외치며 엄청난 포스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한 점 흐트러짐 없는 얼굴로 달려가는 모습 말이다. 이번에도 이성을 잠식시키는 감성적인 명장면을 마음을 흐트러놓을까?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 영화관의 종지부


멜 깁슨이 그동안 만든 영화들에는 공통적으로 신념, 종교, 리얼리즘이 깔려 있었다. 이번 영화에 모조리 때려부었다. ⓒ판씨네마



어린 시절 있었던 일련의 일들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종교적인 이유로(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데스몬드 토마스 도스(앤드류 가필드 분)는 비폭력주의자가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도스는 또래들도 다 입대하고 할 것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자원입대 한다. 누구보다 체력이 좋은 그, 하지만 군인이라면 절대적인 '집총'을 '거부'한다. 개인의 절대적인 신념에 의한 것. 종교가 전부는 아닌 듯하다. 


미군은 이 초유의 명령볼복종인 집총거부를 인정할까? 징병제이니까 군에서 쫓아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군대에 남아서 사람을 살리는 의무병이 되어야겠다는 또 다른 신념을 절대 굽히지 않는 도스다. 그렇게 전쟁에 출전하게 된 도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일본 오키나와 핵소 고지가 주전장이다. 


그는 절대 굽히지 않았던 집총거부와 함께, 가장 치열한 전장에서 비폭력과 활인(活人)을 견지할 수 있을까? 영화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도스 개인의 신념 형성과 고민과 견지를 다룬다. 남은 절반에는 신념의 실천을 다루니, 이 영화는 전쟁영화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심리영화이자 종교영화라고 보는 게 맞겠다. 


비단 도스의 신념뿐 아니라, 도스가 속한 중대의 중대장 클로버(샘 워싱턴 분)의 신념과 간악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나오는 '악마' 일제의 대장의 신념도 살짝이지만 강렬하게 비춰준다. 멜 깁슨은 아무래도 이 영화로 자신이 만들어낸 신념과 종교와 리얼리즘을 버무린 영화관에 종지부를 찍을 모양인 것 같다. 


보통 수준의 전쟁신, 전쟁영화들이 생각난다


전쟁이 주된 테마 중 하나인만큼, 전쟁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여러 전쟁영화가 생각나는 보통 수준. ⓒ판씨네마



영화는 잔인하다는 평이 은근 많은 것 같다. 폭력의 수위가 다소 높다는 의견과 필요 이상으로 잔인하다는 의견이다. 아무래도 전쟁영화라서 그럴 수밖에 없을 텐데, 사실 이 정도면 양호한 수준 또는 보통의 수준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족히 20년은 된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해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수준의 수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가는 인간성 상실의 상황에, 오로지 살리고자 하는 신념 하나로 뛰어든 한 인간을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 대비가 극명하면 할수록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확실하게 드러날 수 있겠다. 모두가 살인을 할 때 홀로 활인을 외치고 실제에 옮기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나왔던 전쟁영화들에서 각종 장면을 차용한 것 같다. 초중반을 할애하는 전쟁 이전의 이야기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전쟁에 출전하기 전의 훈련병 내무반 생활 장면은 <풀 메탈 자켓>을,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벙커 탈환의 소소한 작전은 <신 레드 라인>을, 심지어 포탄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홀로 적진으로 향하는 모습은 <포레스트 검프>가 생각나게끔도 했다. 


그러니 전쟁영화를 섬렵하다시피 한 이들에게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보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감독이 이를 모를리 없으니, 길지 않은 전투 장면은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30분, 도스가 신념을 실현하는 모습에 있겠다. 


무리 없는 수작, 정이 가진 않는다


여러 논란거리가 있지만, 영화 자체로는 딱히 욕할 게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멜 깁슨이 다음에 또 이런 영화를 만든다면 보지 않을 것이다. ⓒ판씨네마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전체적인 내용을 일별하는 건 의미가 없다. 대신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도스라는 '전쟁 영웅'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그의 신념은 뒤로 하고 전쟁영화에서 비춰지는 영웅은 굉장한 위험이 뒤따른다.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에서 이긴 것 뿐인 역사의 승리자를 미화하며, 무엇보다 폭력을 미화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성격이 다르다. 전쟁 영웅을 다루지만 폭력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의 한 가운데에서도 절대적인 비폭력을 실행하니,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엄연히 실화이니 도식적이니 가식적이니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뒤로 한 신념으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국을 미화한다는 논란을 빚겨갈 순 없겠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미국은 한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었고 또 그 신념의 처절한 실천에 합당한 대우를 주었다. 그건 사실이지만, 영화는 그 부분들에 지극한 드라마를 가미했다. 각종 논란거리를 일삼는 트럼프 정부를 향한 '미국은 이래야 한다!'는 일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과거 수차례 인종 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멜 깁슨이니만큼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조금 무리가 있겠다. 


전체적으로 무리 없는 수작으로 볼 수 있는 <핵소 고지>, 하지만 정이 가지 않는다. 멜 깁슨이 또다시 이런 류의 영화를 내놓는다면 보지 않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가진 리얼리즘에 대한 관심과 능력을 최대한 살린 영화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거기에 어떤 논란거리를 얹혀놓지 않았으면 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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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멜 깁슨, 미국, 신념, 전쟁영화, 종교, 핵소 고지, 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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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영어> "금일 이후 영어를 알지 못하는 분은 사회의 패잔자요"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4. 5. 1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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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한국인과 영어>


<한국인과 영어> ⓒ인물과사상사

대한민국 역사상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친 세 나라를 뽑자면, 제일 가까운 나라들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나라는 공통적으로 우리나라를 통치한 적이 있다. 자연스레 그들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한자는 과거 수천 년 동안 우리나라 언어 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한편 현대 중국의 영향이 과거만큼 크지 않기에, 현대 중국어는 아직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고 있다. 물론 앞으로 거대해질 것이지만. 반면 일본어는 우리나라의 일본에 대한 뼛속 깊은 반감 때문에 직접적 통치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그리 많은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물론 저도 모르게 많은 단어들을 쓰고 

있지만, 그마저도 비속어 취급을 당한다. 


그렇다면 미국 언어인 영어의 경우는 어떠한가? 미국은 중국, 일본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거니와 역사도 형편 없이 짧아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초 미국과의 접촉은 19세기 후반 미국 이양선의 출몰, 그리고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을 겪은 후 내부 정비와 대륙 개척에 몰두하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던 때였다. 


정작 우리나라가 영어와 최초로 접촉한 때는 17세기이고 그 대상은 네덜란드인이었다고 한다. 이후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조선 본토 연안에 출현한 영국의 배는 '한국인과 영어'의 지독한 애증 관계의 시작이었다. 


강준만 교수의 <한국인과 영어>(인물과사상사)는 제목 그대로 한국인과 영어의 이 지독한 관계가 어떻게, 왜 시작되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최초의 접촉부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꼼꼼하게 다룬다. 때론 신기하고, 때론 어처구니 없고, 때론 씁쓸한 기록의 향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하고 한숨이 나오기도 하거니와 어쩔 수 없었구나 하는 체념의 기분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이 과열을 잠재울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저자가 한국인과 영어의 역사를 쭉 살피면서 얻게 된 결론이 세 가지 있다. 첫째, 영어는 애초에 권력이었다는 것. 영어는 사교권 장악 수단이었으며, 일제의 패망 조짐이 보이면서 일종의 '복음의 소리'가 되었고, 이는 이후 전개될 '영어 패권주의'를 예고한 셈이라는 것이다. 


일제 시대 때 이미 영어로만 출세해 고위직에 오른 사람이 있고, 주요 언론사는 영문란을 설치했으며, 경성제국대학에 가기 위한 필수 과목으로 영어가 채택되었다. 결정적으로 당시 영어 학습의 최강자라 불린 어느 영어 학교는 <조선일보> 광고를 통해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시대의 영어 광고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한 내용이다. 


"늙은이 젊은이나 영어를 모르면 지금 세상에는 암흑"(1931년 5월 23일)

"금일 이후 영어를 알지 못하는 분은 사회의 패잔자요"(1936년 8월 25일)

"영어 인풀레 시대가 도래한 오늘 근무의 여가에 시간을 쪼개 영어를 배워 생애의 희망을 실현하라"(1937년 9월 26일)


해방 이후 영어의 위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사실상 일본 대신 미국의 지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맥아더가 발표한 포고령 1호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고 하였다. 이에 영어는 최대의 출세 무기이자 생존 무기가 되었다. 


영어 권력은 한국 전쟁이 끝나고 새 시대가 도래했을 때도 여전했다.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해, 윤보선 대통령, 장면 총리, 장도영 육군참모총장, 장준하 등은 모두 영어권 유학파 출신 내지 영어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이었다. 이후 본격적인 수출 전쟁이 시작된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1970년대에서도 영어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모든 길은 수출로 통했고, 수출을 하기 위해서 영어가 필요했다. 


저자의 두 번째 결론은 한국인에게 영어란 종교와 같다는 것이다. 영어가 종교와 비교된 배경에는 '세계화'가 있었다. 1993년 대통령 자문기구 21세기위원회는 국제화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춘 국제인의 양성이 최우선 필요하다면서 영어와 한자 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언급했다. 이때부터 거짓말처럼 영어 교육 붐이 불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토익 및 토플 폭풍, 조기 영어 유학 열풍 등. 영어만 잘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좋은 기업에 취직할 수 있으며, 좋은 배우자를 얻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실제로 영어로만 충분한 돈과 명예를 쟁취할 수 있었기에, '영어'라는 절대적인 힘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거기에 선(善)의 이름을 붙이기까지 하였다. 


세 번째 결론은 영어가 공포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제는 단순히 영어를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영어를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영어를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절박한 생존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혀 수술까지 하는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공포의 느낌을 받게 하는 데는 '공포 마케팅'이 크게 기여(?)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6살 아이를 둔 부모가 상담을 요청하자 학원은 늦었다고 하며 3, 4살 때부터 시작한 친구들을 들먹이는 것이다. 이런 조기 교육의 공포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는, 훗날 그가 서게 될 '영어 계급사회'에서의 위치 때문이다. 토익 점수에 따라 평균 연봉이 차이 나고, 그에 따라 그의 인생이 상당 부분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편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한몫 한다. 특히 지금 시대는 인터넷이 대부분의 정보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못한다면 영어 천지인 인터넷을 못하는 것도 같은 말이다. 


"전문가들은 "영어에 대한 관심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의 이상 열풍은 과거보다 훨씬 절박한 이유에서 비롯됐다"며 인터넷과 경제의 글로벌화를 지적했다.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80퍼센트 이상이 영어로 되어 있어 영어를 못하면 지식 정보 사회에 낙오자로 전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본문 중에서)


그런데 저자는 맺는말에서 갑자기 영어 문제는 입시 문제와 판박이라며 학벌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영어 광풍에 근본적인 개선 방안은 있을 수 없다며, 조금 너그러워지자는 주장을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소위 SKY라 불리는 학벌의 최상위권 대학을 깨거나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대안은 '서열 유동화'이다. 


서열 유동화의 요지는 '다원적 경쟁 체제'이다. 사회 각계 엘리트의 절대 다수가 3개 대학이 아닌 30개 대학에서 나오게끔 하자는 것이다. 엘리트 충원 학교가 수적으로 대등한 수십 개 대학으로 늘어나면 서열 유동성이 생겨나게 되고, 대입 전쟁의 열기를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 분산 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는 이렇게 해야 진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의 주장은 일면 굉장한 파격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자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다른 건 젖혀 두고서라도, 1대 99로 대변되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싸움이 10대 90 혹은 그 이상으로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단지 기득권층 안에서의 싸움 만을 심각하게 보고, 그 싸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 것 같다. 


엘리트의 저변이 확대되면 물론 내부 경쟁이 비교적 완화될 테고 그러면 그 싸움의 궁극에 있는 영어 광풍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적으로 비엘리트계층의 수는 줄어들 테고 그러면 그들이 갖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커질 것이 아닌가? 


필자가 이 책을 읽고 나서 굳이 학벌주의의 대안을 제시할 이유가 없지만, 평소 생각했던 바는 '대학 평준화'이다. 어떤 의미에서의 평준화인가 하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대학에 철퇴를 가하고 제대로 된 대학 만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 직업 학교와 전문 학교의 수를 늘려야 한다. 정말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을 가고, 일찍 전문 직업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직업 학교 내지 전문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다. 영어 또한 직업에 필요로 하는 사람만 배우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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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권력, 다원적 경쟁 체제, 영어, 종교, 학벌 주의, 한국인과 영어
  • BlogIcon 제철찾아삼만리
    2014.05.12 08:53 신고

    한국인과 영어...제목만 봐도 참 슬프네요..
    요즘은..일상어도 영어용어가 참 많아서..한글보다 먼저 툭 튀어나오데요...
    제것이 하나도 없은 이세상...
    암튼, 서평 잘 읽고 갑니다.


  • 2014.05.19 11:0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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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대로 신간 수다-1310 첫째주

내맘대로 신작 수다 2013. 10. 5.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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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2013년 9월, 332쪽, 14000원, 도진기 지음, 추수밭(청림출판) 펴냄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추수밭

얼마 전에 인기리에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을 때, 표절 시비가 붙었던 적이 있다. 4~6회 분에 해당하는 '쌍둥이 살인 사건'이 2012년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의 도진기 작가 '악마의 증명'을 표절했다는 논란이었다. 이 논란은 논란으로 그치고 더이상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았지만, '악마의 증명'이란 단편소설은 대중의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되었다. 


그리고 그 소설을 지은 도진기 작가도 부각이 되었는데, 이미 그는 유명인사(?)였다. 그는 무려 현직 부장판사로 재직하고 있는 도중에, 어린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경력을 살려 2010년 추리소설가로 데뷔했다. 이후 매년마다 꾸준히 추리소설을 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법률가와 소설가의 특징을 잘 살린 책을 한 편 내놓았다.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상상할 수 없고, 부제로 봤을 때 재판에 관련된 독특한 형식의 이야기라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피고인을 천국으로 보내려하는 소크라테스 변호사와 지옥으로 보내려는 욱 검사(?), 그리고 재판장 염라대왕이 등장하고 여러 콘텐츠들의 캐릭터들과 그들이 맞이한 법에 관련한 상황들이 나온다. 


저자는 이런 상황들을 상상력으로 재밌게 풀어냄과 동시에 법률적 정확성을 지키고 있다. 그렇게 이 책에 실린 법의 원리는 22가지에 달한다. 법의 원리들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 재미있고 잘 읽히는 수십편의 법정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듯하다. 



<가장 오래된 교양>-3천년 인문학의 보고, 성서를 읽는다

2013년 9월, 552쪽, 22000원, 크리스틴 스웬슨 지음, 김동혁 옮김, 사월의책 펴냄


<가장 오래된 교양> ⓒ사월의책

인류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서'임은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단지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책일 뿐이다. 다른 의미로 성인(聖人)이 저술한 책이라는 뜻이 있듯이, 인류 보편적으로 애용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성서는 정확히 어떤 책일까. 단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듯 하느님의 말씀일까. 아니면 유대인들의 역사를 다룬 책일까. 아니면 이 둘을 묶어놓은 책일까. 사실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성서에는 수많은 지식과 지혜가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현대에서도 논란을 일으킬 만큼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고, 또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교양>은 이런 성서를 '인문학의 보고'라 칭한다. 모순투성이로 수많은 논쟁거리를 선사하지만, 그만큼 수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한다. 한 사람에 의해서 쓰인 것이 아닌 수 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기 때문에, 도서관과도 같은 지식이 쌓여 있다. 이 책을 통해 성서의 시작부터 지금까지를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큰 재미일 듯. 



<에덴 추적자들>-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의 발칙한 에덴 탐험기

2013년 9월, 416쪽, 22000원, 브룩 윌렌스키 랜포드 지음, 김소정 옮김, 푸른지식 펴냄


<에덴 추적자들> ⓒ푸른지식

'에덴'이라 함은 기독교 구약 성경에 나오는 지상 낙원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추방당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과연 에덴은 실제로 존재했는가? 왠지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 에덴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에덴 추적자들>는 그 14명의 추적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은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신학자, 대학교수, 의사 , 건축가, 과학자, 고고학자, 지리학자, 역사학자, 종교학자 등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에덴을 찾으려 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이 바로 거기에 있다. 에덴을 찾으러 가는 그 흥미진진한 탐험의 과정. 그리고 그들은 왜 에덴을 찾으려 하는가? 


사실 과학과 종교는 양립하기 힘들다. 창조론과 진화론(무신론)이 끊임없이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일면 과학적,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들이 창조론의 대표 심볼인 에덴을 찾아나서고 있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에덴 추적자들은 실제로 에덴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으니,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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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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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ogIcon 포장지기
    2013.10.05 08:08 신고

    다녀 갑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 가득한 시간 되세요^^

    • BlogIcon singenv
      2013.10.05 21:44 신고

      안녕하세요~
      하루 마무리 잘 하시길!

  • BlogIcon 김팬더
    2013.10.05 12:31 신고

    이글을 읽으니 막 갑자기 마구마구
    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잘보구갑니당~!

    • BlogIcon singenv
      2013.10.05 21:44 신고

      감사합니다~
      더더욱 재밌는 책 소개하도록 할게요 ㅋ

  • 해바라기
    2013.10.06 01:24

    그 신비의 에덴에 대해서 쓴 책이 보고 싶어집니다.
    글 감사히 잘 보고 갑니다.^^

    • BlogIcon singenv
      2013.10.06 02:29 신고

      재밌을 거 같더라구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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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신을 몰아낸다는 바람은 이뤄질까?

신작 열전/신작 도서 2013. 9. 12.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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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신 없는 우주>


<신 없는 우주> ⓒ바다출판사

고백하건대, 나는 과거 교회를 다녔었지만 지금은 무신론자이다. 하지만 신의 존재를 믿는 무신론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의 존재는 믿지만 어느 종교에 귀의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신께 기도를 드린다. 추석쯤 되어 보름달이 뜨면 어김없이 소원을 빌기도 하고. 


앞으로 어찌될 지는 모르지만, 교회를 다니다가 말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을 가고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협박(?)하는 길거리 전도사들의 말 때문이다. 그들 딴에는 위한답시고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믿었던 신도 믿기 싫어질 판이다. 


반면 그리 듣기 싫지 않은 말도 한다. "신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와 같은 말이 그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종종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에게만 해당할 것이다. 신을 향한 믿음과 불신, 이것은 비단 이런 작은 상황에서 뿐만 아니라 거대한 논쟁이 되어 있었다.


창조론 vs 무신론


또 한 번 고백하건대, 나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를 아직 읽지 않았다. 1993년 초판 발행 이후, 리처드 도킨스를 세계적인 명사 반열에 올림과 동시에 리처드 도킨스로 하여금 창조론과 무신론(진화론) 논쟁 최전선 투사로 자리매김하게 한 이 책을 아직 보지 않았다니.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내가 무식한 건지 진짜 책이 없는 건지, 창조론에 대한 정통한 책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쪽만 읽고 그것이 정답인 양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나름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던 내가 실수 아닌 실수를 저질렀다. "리처드 도킨스가 지구에서 신을 몰아냈다면, 빅터 스텐저의 이 책으로 우주에서 신을 몰아냈다."는 어마어마하게 도발적인 타이틀을 내세우며 출간된 <신 없는 우주>(바다출판사)를 읽게 된 것이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바둑으로 치자면 아마 18급이 프로에게 도전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이 책이 이전에 나왔던 무신론 책들보다 월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나의 머릿속에 든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다는 뜻이다. 여하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신을 철저히 검증한다. 


신가설의 부재 논증


저자는 증거의 부재 논증을 이용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먼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그 존재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를 찾는다. 그런데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논증의 정확성을 위해서인지, 1장을 통째로 할애해 상당히 지루한 논증을 위한 논증을 설파한다. 자신이 얼마나 탄탄한 논리 위에서 논증을 진행하는지 보라는 식이다. 그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신의 문제에 대해 가설적인 모형을 세우고, 경험적 데이터와 대조하여 그 모형을 시험하는 과학적 과정을 적용해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한 논증을 하나 소개한다. 그것은 창조론파에서 신의 존재를 뒷받침할 때 쓰이는 가장 유명한 논증으로, 일명 '설계 논증'이라 한다. 우주, 특히 지구상의 생물은 상상할 수 있는 자연의 메커니즘으로 생겨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러며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에, 신앙인들은 그 설명이 신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반박한다. 


"아무도 문제의 현상을 지금 당장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자연적으로 묘사할 수 없음을 보여 주지 못하는 한, 최소한 과학적 논증으로서는 그 자체로 실패작이다. 신은 과학이 자연적이거나 물질적인 과정들만을 근거로 해서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설명할 수 없어서 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증명되어야만 나타날 수 있다"(본문 속에서)


불쾌한 마무리 


저자는 비과학적인 종교의 주장을 과학적 논증으로서는 실패라고 말한다. 이는 어불성설이 아닌가? 로마에 가서 한국의 법을 들이대면 그게 맞는 것인가? 의식했는지, 저자는 여기에 대해 살짝 언급하고 지나간다. '과학이 모든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주장이 과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가 하는 주장과 논증 방법이 '종교 활동'을 포함한 일상 생활에서 흔히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종교에서도 자신의 논증 방법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고 장광설을 펼친다. 저자의 논증 방법은 상대의 주장을 모조리 반박하면서, 또 자신의 방법이 과학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는 내내 헷갈리게 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결정타로 상당히 불쾌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나는 이 책을 단지 창조론의 반대하는 무신론의 아주 객관적인 지표를 읽기 위해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마무리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종교와 '아름다움'을 주는 과학이다. 


종교를 부정적으로 이용한 사람들이 나쁘다는 것인지, 종교 자체가 나쁘다는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한다. 아무리봐도 전자의 사례를 주로 들고 있는데, 결론은 종교가 나쁘다고 하지 않는가? 이어서 굳이 건들지 않아도 될 듯한 부분까지 파고든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삶이 무의미하다'는 주장에 대한 논의. 내가 보기엔 이 주장에 대한 논의까지는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 과학이 선사하는 영감과 아름다움. 역시나 종교가 선사하는 영감과 아름다움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이어서 처절히 부정하고 있다. 만약 종교에 비해서 과학이 좋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물귀신 작전을 쓰기도 한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과학적 논증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저명한 물리학자에게 말하기에는 심할지 모르겠지만, 극단적으로 말해서 길거리 전도사들이 말하는 바와 다른 게 무엇인지? 끝까지 과학이 자랑하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호기롭게 시작해 빈약한 마무리를 보여준 책이다. 


신 없는 우주 - 6점
빅터 J. 스텐저 지음, 김미선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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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ingenv
과학, 무신론, 빅터 스텐저, 설계 논증, 신, 신 없는 우주, 종교, 진화론, 창조론, 책으로 책하다
  • BlogIcon 지후대디
    2013.09.12 07:29 신고

    저도 신의 존재는 약하게 믿지만(믿었다 안 믹었다 해서^^) 특정 종교에 귀의 하지는 못하는 무신론자랄까요 ^^ 소개해 주신 책 꼭 한전 읽어 봐야겠군요 ^^

    • BlogIcon singenv
      2013.09.12 11:06 신고

      그닥 추천해 드리고 싶지는 않지만ㅋㅋ
      무신론자들이 어떤 주장을 하는지 잘 알려주는 책임에는 분명해요~

  • 참교육
    2013.09.12 13:19

    저도 도킨슨의 만들어진 신을 읽다 항복했습니다.
    너무 어렵더군요.

    • BlogIcon singenv
      2013.09.12 13:41 신고

      예상외로, 많은 저자들이 자신의 넘치는 지식을 주체하지 못해 책을 쓰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도킨스도 그런 부류가 아닐런지.

  • BlogIcon S매니저
    2013.09.12 16:09 신고

    덕분에 잘 보고 간답니다~
    편안한밤 오후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 BlogIcon singenv
      2013.09.12 17:20 신고

      감사합니다~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 BlogIcon 알숑규
    2013.09.13 01:42 신고

    잘 봤습니다. 논쟁은 아마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듯 합니다.
    최소한 지금까지 종교가 있어왔던 시간만큼은 말이죠.

    • BlogIcon singenv
      2013.09.13 09:10 신고

      감사합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더불어 소모성 논쟁이 될 것 같은 느낌도 드네요.

  • BlogIcon 내일
    2013.10.04 14:51

    저도 님과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는 신학자입니다. 하지만 님의 지향점과는 조금 다른것 같아요. 우주의 법칙은 물리적으로 설명할수 있지만 자연법칙은 물리력으로 설명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기계적 함수관계로 생체리듬과 생명진화의 관계성을 설명하기에는 불규칙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학계의 경향은 불가항력적인 불규칙의 범위를 극복하기 보다는 어떻게하면 학문과 학문사이에 학문과 종교사이에 조화로운 상생관계 만들어질수 있을까? 고민한다고 합니다. 신이 있다 없다. 라는 상투적인 이해보다는 신의 존재를 상정해두고 풀어가자는 주장이 더 지배적이라는 말이지요. 창조론, 무신론, 진화론 등의 논쟁이슈는 이미 고물상에서 분리되어지는 고철덩어리와 같습니다. 아무튼 님글 잘익었구요. 제 블로그에도 놀러오셔서 (비록 종교적이지만) 제글도 평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 BlogIcon singenv
      2013.10.04 23:20 신고

      그렇군요. 그런 논쟁이슈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것이로군요!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요~
      덕분에 또 새로운 것에 눈이 떠지는 느낌입니다!
      일단 내일님 블로그 친추했구요!
      찾아가 보겠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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